<럭셔리> 2026년 3월호

RAW. REAL. SURI.

‘메종 수리’ 대표이자 <럭셔리> 스페셜 에디터인 수리의 다방면 능력과 팔색조 매력은 계산의 산물이 아니다. 한 걸음 먼저 내딛는, 대담함의 결과물이다. 그녀에게 ‘막’은 단순한 즉흥을 넘어, 때로는 무모함이 열어주는 무한한 자유와 가능성을 의미한다.

EDITOR 손소라 PHOTOGRAPHER 박재영

10 CREATORS: THE ART OF MAK

디자인하우스가 걸어온 반세기의 철학 위에서 창간 25주년을 맞은 <럭셔리>는 한국 문화에 내재한 ‘막MAK’의 정신을 하나의 미학이자 태도의 언어로 정리하고자 한다. 이에 유연한 막 정신을 삶과 작업 속에 체화하고 있는 창작자 10인의 생생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미술가·음악가·배우 백현진부터 드라마와 연극, 영화를 아우르는 공민정, 무대와 런웨이를 오가는 기무간, 다양한 표정을 지닌 배우 옹성우, 음악의 진동을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그레이코드와 지인, 이제는 하나의 장르가 된 윤산하, 캔버스에 해석의 여지를 남기는 캐스퍼 보스만스, 다채로운 능력과 독보적 존재감의 대명사 수리, 가구와 공간을 잇는 문승지, 장르를 넘나들며 브랜드 컨설팅을 하는 김아린까지. 이들의 기록은 우리 시대의 독보적인 아카이브가 될 것이다.



수 리


우아한 핑크 컬러 셋업 WEEKEND MAX MARA. 핑크 골드에 오팔린 다이얼의 ‘리베르소 트리뷰트 모노페이스’ 워치. 1931년 최초의 리베르소 모델을 연상시키는 우아함과 모던한 감각이 조화를 이룬다. JAEGER-LECOULTRE.


파리, 모나코, 한국, 그리고 지금 머무는 영국까지. 수리의 일상은 4 개의 도시를 선처럼 잇고, 그 사이를 부드럽게 흐르는 리듬으로 완성되네요. 몇 년 동안은 승무원보다 더 자주 비행기를 탔다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해외여행과 출장이 일상이었죠. 하지만 이제는 몸이 보내는 작은 신호에도 귀 기울이며, 삶의 균형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중요한 것들에 우선순위를 두고, 오랜 시간 준비해 온 웰니스 프로젝트와 영국 옥스퍼드 석사 과정 등을 균형 있게 조율하고 있습니다. 익숙한 곳과 새로운 도시를 오가다 보면, 휴식이 주는 안도감과 배움이 주는 설렘을 동시에 느껴요. 호기심은 다시 자극되고, 자연스레 동기부여도 되죠. 새로운 사람들, 낯선 환경 속에서 색다른 영감까지 얻게 되고요.


다양한 영역을 넘나들며 일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원칙은 무엇인가요? 영역은 달라도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방향성과 본질은 같다고 생각해요. 좋은 영향, 즐거움, 긍정적인 메시지, 그리고 유익한 영감을 전하는 것. 예를 들면 디제잉과 강의는 완전히 다른 영역처럼 보이지만, 결국 사람들 앞에서 공간의 에너지를 이끌어내는 일이라는 점에서는 닮아 있어요. 매 순간 맡은 역할에 집중하고 그 원칙을 오롯이 지켜나가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 저에게 ‘막’은 일단 내디뎌 보겠다는 제 마음의 온도를 닮아 있습니다. 망설이다 놓쳐 후회하는 삶보다는, “일단 한번 해보자”라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걸어온 길이 차곡히 쌓여 지금의 다양한 순간들을 이어올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수리 글로벌 인플루언서이자 아트 컨설팅 플랫폼 ‘메종수리Maison Suri’의 대표로 <포브스>가 선정한 ‘30세 미만 영향력 있는 예술계 리더 30인’에 이름을 올린 인물이다. 고려대학교 국제미술전문가 최고위 과정의 디렉터로 활동했으며, 디제이로서의 감각까지 겸비하고 있다. 현재는 <럭셔리>스페셜 에디터이자 옥스퍼드 대학교 석사과정에 재학 중이다. 유럽의 한 매체가 그를 ‘현대의 르네상스 우먼’이라 소개할 만큼, 다채로운 능력과 독보적인 존재감을 지닌 인물로 평가된다.


수리만의 결을 만들어내는 감각의 비결을 듣고 싶어요. 다방면에서 활동한다고 해서 각 분야의 역량이 떨어질 것이라는 편견은 버리려고 해요. 한 분야의 전문성만을 깊게 파고드는 방식은 이제 AI가 상당 부분 대체할 수 있는 시대잖아요. 하지만 ‘내 의견’, ‘내 취향’, ‘내 목소리’는 어떤 기술로도 대체할 수 없어요. 그래서 저는 다양한 분야에 자신을 열어두고 배우며, 편협하지 않은 여러 소스에서 영감을 얻으려 해요. 그러다 보면 내가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 그리고 정말 원하는 것의 윤곽이 보다 또렷하게 드러나죠.


본인의 콘텐츠를 사랑하는 사람들로부터 가장 자주 듣는 이야기나 반응은 무엇인가요? 저의 의외성과 특이성을 좋게 봐주시는 것 같아요. 보는 사람 입장에서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그 예측 불가능성이 제 특이점이자, 저를 좋게 봐주시는 분들이 사랑해주는 지점이라고 생각해요. 요즘처럼 콘텐츠가 넘쳐나는 시대에는 어떤 캐릭터나 사람이 ‘읽히는 순간’, 즉 모든 것이 파악되고 예측 가능해지는 순간 흥미와 재미가 급격히 떨어지잖아요. 일종의 ‘관심경제Attention Economy’의 특징이기도 하고요. 앞으로도 누군가에게 쉽게 ‘읽히고’ 싶지 않아요. 내가 가고자 하는 길은 스스로 정하고, 상대방의 긴장감을 유발하는 것, 그것이 제 방식이라고 생각해요. 재미있잖아요.



웨이브 네크라인이 우아함을 자아내는 재킷 RECTO. 스트레이트 핏의 데님 YCH. 다이얼부터 브레이슬릿까지 빼곡히 세팅한 다이아몬드가 화사한 매력을 선사한다. 스퀘어 셰이프 다이얼의 피아제 워치는 개인 소장품.


인생이 잠시 숨 고르는 그 틈을 실패라고 부르나요, 아니면 또 다른 시작으로 읽어내나요? 어떤 일을 실패로 받아들이거나 굳이 그렇게 정의한 적이 거의 없어요. 예상보다 결과가 기대치에 미치지 못했더라도, 그건 어디까지나 ‘기대치와의 간격’일 뿐이지 실패라고 단정할 일은 아니죠. 저에게 모든 일은 과정이에요. 어떤 일이 완성되기까지 필요한 여러 단계 중 하나일 뿐이라고 여기면, 실패라고 느끼를 일이 자연스레 사라지더라고요. 물론 인생에는 크고 작은 우여곡절이 존재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면 마음이 훨씬 단단해지고 자유로워져요.

수리가 생각하는 진정한 ‘럭셔리’란 무엇인가요? 겉으로 보기에는 화려하고 사치스럽게 느껴질 수 있는 비주얼 콘텐츠일지라도, 그 안에는 진정성 있는 이야기와 마음에 닿는 메시지가 담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진정한 럭셔리’의 다양한 의미 중 하나를 꼽으라면, 저는 ‘나다움’이라고 말하고 싶어요. 우리는 나만의 무언가를 갖고 그것을 지켜내기가 점점 더 어려운 시대에 살고 있어요. 보이지 않는 알고리즘과 정교하게 설계된 넛징Nudging의 영향을 쉽게 받게 되었고, 정말 ‘나다운’ 생각과 취향, 결을 유지하는 일 자체가 훨씬 복잡해졌죠. 그래서 저는 어떤 것이 나다운지를 알고, 그것을 가꾸고 지키며 스스로의 결을 발전시켜나갈 수 있는 태도가 궁극적인 리얼 럭셔리라고 생각합니다.




끝으로, 당신의 ‘막’이 가장 눈부신 결말로 피어난 순간이 궁금하네요. ‘막’ 정신은 제가 살아온 방향과 정확히 맞닿아 있어요. 큰 방향은 잡되 계산 없이, 겁 없이 시도했을 때 비로소 마주하게 되는 예기치 못한 결과들. 사실 저는 통역이나 아나운서 트레이닝을 제대로 받아본 적이 없어요. 어느 순간 제3의 언어권과 문화권에서 활동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막’ 나서야 하는 순간들이 찾아왔죠. 생각지도 않았던 동시통역의 자리, 갑작스러운 스피치 요청, 그리고 큰 행사에서의 사회까지요. 전문적으로 훈련받은 분야는 아니지만 ‘해보면 되지, 못할 게 뭐 있나?’라는 마음으로 그저 ‘막’ 해봤어요. 물론 준비는 철저히 했고, 연습도 치열하게 했습니다. 그런데 예상보다 훨씬 긍정적인 피드백이 이어졌고, 다음 기회들이 자연스럽게 찾아왔어요. 열심히 하다 보니 자연스레 실력도 쌓였고, 제가 사회를 보는 모습을 본 분들이나 프로젝트를 함께했던 분들이 다시 연락을 주시면서, 아나운서의 역할을 하게 되는 순간들이 계속 되었습니다. 정형화된 트레이닝을 거치지 않은 ‘자연스러움’이 오히려 제 장점이 되었죠. 여러 역할을 하며 쌓인 경험에서 비롯된 예상 밖의 상황 대처 능력 역시 좋은 평가로 이어졌고요. 그렇게 파리 올림픽 호스트를 맡게 되었고, APEC에서도 사회를 보게 됐죠.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흐름이 특별한 결과로 이어진, 제 인생의 소중한 경험이에요.



HAIRSTYLIST 김귀애 MAKEUP ARTIST 공혜련 ASSISTANT 김희수 COOPERATION 렉토(790-0798), 예거 르쿨트르(1877-4201), 위크엔드 막스마라(1661-4841), YCH(798-6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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