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셔리> 2024년 4월호

혼자가 아닌 여럿이 연주하는 카덴짜, 조영주

여성으로서, 어머니로서 그 누구보다 당당한 걸음을 내딛고 있는 작가 조영주. 그는 지난 2020년 ‘제20회 송은미술대상’에서 대상을 수상하며 작가로서 터닝 포인트를 마련했다. 이를 기념해 마련한 개인전 <카덴짜>가 4월 14일까지 송은에서 열린다.

EDITOR 정송 PHOTOGRAPHER 이우경

조영주  성균관대학교 미술교육과 학사를 졸업한 뒤 프랑스로 건너가 파리 8대학 조형예술학과 석사과정을 수료하고, 파리-세르지 국립고등미술학교에서 학사·석사를 마쳤다. 베를린 골드 러시 예술가 프로젝트, 인천아트플랫폼, 서울문화재단 금천예술공장, 국립현대미술관 창동레지던시, 런던 델피나 레지던시에 참여해 입주 작가로 활동했으며, 한국과 독일·프랑스 등 국내외 주요 기관에서 열린 다수의 전시에 참여했다. 2020년 제20회 송은미술대상에서 대상을 받고 올해 기념 개인전 <카덴짜>를 개최하며 작가로서 한 단계 더 도약했다.



조영주의 목소리는 한결같았다. 늘 자신을 먼저 살피고, 상대방이 반응하는 상황을 눈여겨보며 끊임없는 질문을 던졌다. 오랜 외국 생활이 시발점이었을까. 프랑스 파리와 독일 베를린에서 이방인 여성으로서 살아가며 작가는 직접 체감한 차별, 그로부터 오는 불편함을 피하지 않고 직시했다. 그 기저에는 결국 이를 극복해서 한 사람의 인격을 바로 세우고, 작가로서의 품격을 쟁취하려는 욕망이 있었으리라. 그렇기 때문에 조영주의 작업은 늘 ‘조영주’ 그 자신에서부터 시작한다. 우연히 만난 남성의 티셔츠를 입고 잔 후 그 모습을 사진으로 남긴 작품 ‘One Night with Someone’s T-shirt in My Bed’는 그와 함께 떠오르는 작업이다. 자신을 중심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작가는 그 시선을 여성에게로 확장했다. 그에게 여성은 결코 ‘타자’가 아니다. 조영주의 작업에는 수많은 ‘그녀’가 등장한다. ‘Grand Cuties’, ‘DMG 비무장 여신들’, ‘디바들의 외출’ 등 오랜 유학 생활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와 선보인 작업은 이미 그가 혼자서는 결코 이룰 수 없는 퍼포먼스 협업 프로젝트를 통해 수많은 여성이자 타자를 아우르고자 했음을 보여줬다.


인생에서 조영주에게 가장 큰 터닝 포인트는 어쩌면 출산이었을 테다. 이는 그간 작가의 전 세대, 즉 어머니를 비춰 자신을 반추하고자 했던 그의 노력이 자연스럽게 미래를 향하게 했다. 또 여성 예술가로서 어떻게 생존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여성 어머니 예술가’로서의 생존 방법에 대한 고민으로 확장하게 만든 중요한 모멘텀이기도 했다. 그 처절하던 사투 속에서 벌써 9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언제나 자기 자신이 가장 중요했다고 강조해온 작가는 아이러니하게도 이제 세상 모든 여성, 그 여성이 품어온 모든 인간을 다정히 품어내기에 이르렀다.


2020년 제20회 송은미술대상에서 대상을 수상한 이후 4년이 지났다. 긴 시간이 걸려 선보이는 전시인데, 소감이 궁금하다.

작가로서 이렇게 큰 개인전을 오랫동안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진다는 건 큰 축복이라고 생각한다. 송은이 신사옥으로 이전하면서 좀 더 많은 작품과 큰 스케일의 작품에 도전해볼 수 있게 되었다. 그사이 작업 주제도 확장했고, 새로운 관심사가 생긴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4년 전 전시 <제20회 송은미술대상전>에 출품한 작품 ‘세 개의 숨’, ‘입술 위의 깃털’, ‘불완전한 생활’은 최근 몇 년 동안 고민하고 지속한 작업의 ‘씨앗’ 같은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사회에서 ‘나’라는 사람의 위치를 비롯해 나 자신을 밀접하게 들여다봤지만, 직접적으로 드러내진 않은 작품이다. 지금 전시에서는 이러한 시각을 다각도로 확장한 작품들을 선보인다.


이번 전시의 중요한 주제 가운데 하나가 ‘돌봄 노동’이다. 앞서 이야기한 시각의 확장과 연결되는 듯하다.

많은 사람이 조영주의 작품을 페미니즘의 영역에서만 읽으려 하는 경향이 있었다. 나 자신이 가장 소중한 사람으로서 여성은 나와 뗄 수 없는 중요한 주제였다. 그러다 아이를 낳으면서 나 역시 돌봄 노동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는데, 연구하다 보니 이 영역이 무척 광범위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요즘 반려식물, 반려동물 돌봄은 물론 오브제를 돌보는 사람도 있으니 말이다. 관계를 맺기 나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살핌 운동’이 바로 이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6명의 출연자를 2명씩 짝을 지었는데, 우리가 흔히 생각할 수 있는 전형적인 ‘엄마와 아기’, ‘할머니와 중년의 여성’ 같은 조합은 피했다. 대신 남자아이와 지적장애가 있는 성인 남성, 할아버지와 할아버지처럼 흔히 볼 수 없는 짝을 만들어서 손을 잡고, 등을 맞대며 운동하면서 서로 의지하고 지지하는 퍼포먼스를 펼쳤다. 이를 통해서 돌봄 노동은 결국 인간 사이에 발생하는 상호작용이라는 점을 생각하게 했다. 인간의 생애 주기를 보면 계속 받아야 하는 때도 있고, 줘야 하는 때도 있지 않은가.


음악 협주곡에서 정해진 규칙을 벗어나 연주자가 즉흥연주를 하는 부분을 뜻하는 ‘카덴짜’를 이번 전시 제목으로 차용한 이유는 무엇인가?

많은 사람과 함께 작업하지만, 모든 작품은 ‘조영주’의 이름으로 발표할 수밖에 없다. 작품에 참여하는 개인들이 가지는 역할, 고유한 성질, 그 속에서 발생하는 창조성이 있지 않은가. 중요하지만 터부시하거나 불편해하는 일, 여성, 성 소수자, 기타 소수자, 아기 엄마 등 다루는 주제가 모두 대외적으로는 전면에 드러나지 않는 것들이다. 이번에 이들을 모두 수면 위로 올려보자고 생각했다. 그것이 조영주가 작가로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닐까. 그리고 잠깐 언급했듯이 많은 이와 협업하게 되면 촬영 방식, 숨 쉬는 타이밍, 눈길을 두는 곳 등을 내가 하나하나 컨트롤할 수 없다. 작품 제작 전반에 참여하는 모두의 ‘창조성’이 발현되어야만 비로소 작품이 완성되는 것이다. 이번 전시에는 ‘이산 신체 해후’라는 이원 생중계로 진행하는 퍼포먼스 작품도 있는데, 이때 현장에 있는 관람객과 참여하는 모든 이들 역시 자신만의 ‘카덴짜’로 협연에 참여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조영주’라는 사람으로부터 작업이 시작된다. 출발점이 뚜렷한 만큼 이를 펼쳐낼 때 활용하는 메커니즘이 있는지도 궁금하다.

메커니즘이라고 하기에는 그렇지만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이 있다. 특히 어떤 불편함을 느낄 때 던지는 질문인데, ‘왜 이 상황이 나에게 이런 자극을 줄까?’, ‘내가 왜 이러한 불편함을 느껴야 하지?’, ‘나만 느끼는 불편함일까?’ 같은 것들이다. 프랑스와 독일에 거주할 때 이런 질문을 특히 더 많이 던졌던 것 같다. 그들과 동화되고 싶은 마음과 특별하고 싶은 마음이 동시에 존재하던 시기다. 내가 어떤 차별적인 부분에 신경을 쓰게 되면 이것이 개인이 가진 백그라운드의 차이 때문인지 궁금했고, 이를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마음 한편에선 그 차이를 극복하고 싶었으니까.


일전에 다른 인터뷰에서 ‘어떻게 살아남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갖고 작업을 한다는 말이 인상적이었다. ‘살아남는다’라는 표현은 조금 극단적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사람마다 어떤 상황을 받아들이는 방식이 굉장히 다를 수밖에 없다. 나는 항상 절실했다. 그 절실함은 욕망에서부터 출발했다. 너무 필요하고 갖고 싶은 것에는 절실하게 매달리게 되니까 말이다. 프랑스와 독일에서의 시간도 내내 작가로서 인정받고, 살아남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했던 날들이었다. 그런데 아이를 낳은 후에 가진 절실함은 좀 다른 차원의 것이었다. 작가로서 내가 낳은 ‘작품’을 책임지는 일도 사실 엄청난 일인데, 여기에 한 생명까지 나에게 온전히 안겨 있다는 사실이 엄청나게 커다랗게 다가왔다. 또 출산한 순간부터 작가로서 벼랑 끝에 내몰린 기분도 들었다. 나는 엄마가 되었다고 해도 작가로서 존재하고 싶은 그 욕망을 내려놓고 싶지 않았으니까. 조리원에 누워 있는 순간에도 작업을 했던 기억이 있다. 그만큼 작가로 살아남기 위해서 할 수 있는 일들을 치열하게 해왔다.




요즘 출산율이 0.7%이지 않나. 이런 뉴스를 접할 때면 여성으로서 양면적인 위기감을 느끼곤 한다. 이러한 현실에서 작가의 작품은 어떠한 유효성을 가질 수 있을까?

지금 우리는 페미니즘이라는 단어에 민감하고 편을 갈라서 싸우지만, 우리 모두 페미니스트로서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전시는 조영주라는 한 사람으로부터 출발한 이야기지만 나를 낳고, 당신을 낳은 어머니, 앞으로 당신 또는 당신의 아내가 낳을 다음 세대에 대한 것으로 이어진다. 이곳에서 수많은 사람이 만들어가는 연주에서 부디 누군가를 떠올리기를 바란다.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조영주에게 예술이란? 그리고 작가로서 사는 것은 행복한지?

어려운 질문이다. 그래도 답해보자면 예술은 ‘소통의 도구’라고 할 수 있겠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인생은 원래 고통과 갈등의 연속이라고 생각한다. 큰 행복이 찾아오는 건 어려운 일이고 그것을 마냥 바랄 수는 없는 노릇이니 순간순간의 기쁨에 집중하려고 한다. 내가 마시고 싶은 커피, 초콜릿 한 조각이 주는 달콤함 같은 것 말이다. 이러한 시각에서 보면 작가로 사는 것이 내 천직인 것 같다. 하지만 이 일을 하는 게 마냥 행복하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 창작은 고통스러운 일이다. 그렇지만 내가 계획했던 일이 맞아떨어지고, 어떤 일이 딱 맞물려서 완성됐을 때 그 쾌감이 중독적인 건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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