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셔리 M> 2024년 5월호

아티스트 킬드런, 음악을 화폭에 담는 성실한 예술가

말투는 간결하고, 철학은 진지했다. 유명인의 얼굴을 그리고 인기 브랜드들과 협업하며 인스타그램 팔로워가 36만 명이 넘는 미술계의 셀러브러티. 가짜가 판치는 세상에서 진짜 아티스트로 남겠다며 매일같이 붓을 드는 성실한 장인. 둘 다 맞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다양성이 공존하는 아티스트 킬드런을 만났다.

EDITOR 윤정은 PHOTOGRAPHER 이경옥

킬드런  본명은 김석원. BTS, 박재범, 지디, 태연 등 여러 아티스트들을 비롯해 나이키, 롯데 등 다양한 기업과 협업했다. 인스타그램 팔로워가 36만 명(현재 기준)이 넘으며 인스타그램 공식 계정에 최초로 소개된 한국인 아티스트이기도 하다. 지난 4월엔 서울 리빙디자인페어에 맞춰 열린 ‘크래프트 서울’에서 전시 및 굿즈를 선보였다.



한 번 들으면 잘 잊히지 않는 이름, 킬드런Kildren은 유추할 수 있듯 ‘죽이다’라는 뜻의 킬kill과 ‘아이’를 의미하는 칠드런children을 합친 단어다. ‘늙지 않는, 멋진’이란 뜻을 가졌다. 밴드의 기타리스트로 활동할 때부터 사용한 예명으로, 20대 후반 그의 어린아이 같은 면모를 엿본 한 친구가 지어줬다. 십수 년이 지난 지금, 킬드런은 독특한 화풍의 초상화로 전 세계에 이름을 알렸다. K-팝 슈퍼스타인 BTS 멤버들을 비롯해 데이비드 보위, 커트 코베인 등 이름만 들으면 대번에 알 수 있는 유명 뮤지션들의 얼굴이 가로세로 1~2m, 혹은 2m가 훌쩍 넘는 대형 캔버스에 담겨 있다. 극사실주의로 그려낸 정교한 초상에 판타지풍의 다채로운 요소가 어우러져 어딘가 몽환적이고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자유롭게 다양한 작품 활동을 이어왔는데, 초상화가 너무 크게 주목받아서 작가로서는 사실 아쉬운 부분이 있어요. 그게 전부가 아니니까요. 그래도 지금까지 충분히 하고 싶은 대로 살았으니 당분간은 대중이 원하는 방향을 조금 맞춰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요.”

그의 작품은 대부분 청각적 영감에서 비롯된다. 초상화 역시 사진을 보며 하나하나 묘사한 것이 아니라 그저 음악을 들으며 자유롭게 펼쳐낸 즉흥적 결과물이다. 몇 년 전 한 TV 프로그램에서는 주제를 던지자 순식간에 그려내는 킬드런의 라이브 드로잉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음악을 들을 땐 가사나 선율보다 무드에 집중해요. 나의 감정과 경험에서 교차점을 찾으려 하고요. 뮤직비디오도 굳이 찾아보지 않아요. 선입견이 생기면 표현에 제약이 생기니까요.” ‘음악이 없었다면 무엇으로 그림을 그렸을지 모르겠다’라고 말할 만큼, 음악은 킬드런의 삶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요소다. 장르를 가리지 않고, 귀에 닿을 수 있는 모든 음악을 끊임없이 찾아 듣는다는 그는 이를 통해 얻은 찰나의 감정과 느낌을 자신의 그림에 반영한다. 동양화, 유화, 스프레이 등 재료 또한 가리지 않는다. 몇 년 전부터는 디지털 작업에도 뛰어들었다. “어차피 머릿속에 있는 것들을 꺼내는 일이어서 표현 방식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아요. 디지털로만 표현할 수 있는 작품들도 있고요. 작업실에서 돌아와 집에 있을 때는 일종의 휴식처럼 디지털 작업에 몰두할 때도 있어요.”




그는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어렸을 때부터 그림을 그렸다. 한국의 많은 미술 학도처럼 입시 미술에 전념했고 졸업 후에도 관련 교육에 종사하다가 서른 살 무렵 훌쩍 도쿄로 건너갔다. “인생을 새로 시작하고 싶었어요. 가장 빠르게 떠날 수 있는 곳이 도쿄였죠.” 유학 생활을 마치고 2012년 한국에 돌아온 그는 많은 아티스트와 교류하며 영역을 넓혀갔다. 지드래곤의 ‘그XX’ 뮤직비디오, BTS의 공식 아트워크 등을 진행했고 나이키, 롯데 등 여러 기업과도 협업했다. 올해도 이미 진행 중인 프로젝트들로 스케줄이 꽉 차 있다고 작가는 덧붙였다. 바쁜 행보 속에 더욱 놀라운 건 꾸준히 연간 200점 이상의 작품을 내놓는 작가의 저력이다. “매일 원하는 작품이 나오진 않죠. 괴로운 상황에서도 아침에 눈 뜨자마자 달려와서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의지와 집념이 필요해요. 그러려면 무엇보다 자신의 일을 열렬히 사랑해야 하고요.” 작품의 주제와 분위기 때문에 대중성이나 트렌드를 좇는 것으로 오해받을 때도 있지만, 예술을 대하는 킬드런의 태도는 오히려 진중한 장인에 가깝다. 그는 매일 아침 종로에 있는 스튜디오로 출근해 오후 늦게까지 작업에 몰두한다. 예술가의 가장 큰 재능은 꾸준함이라고 그는 강조했다. “보통의 꾸준함이 예술을 만듭니다. 특별한 영감을 찾거나 찰나의 기지에 의존하는 사람은 진짜 예술가의 길을 갈 수 없어요. 사실 영감은 언제 어디에나 존재하거든요.”



INSPIRATION IN LIFE

꾸준함과 성실함, 그 속에서 번뜩이는 영감이 킬드런의 작품 세계를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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