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셔리> 2024년 5월호

자비로운 불교 생활

불교를 다루는 콘텐츠가 온·오프라인에서 연일 화제다. 예전부터 이어진 불교미술에는 ‘지금 여기’에서 잘 살아나가길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다.

EDITOR 박이현

‘석가탄생도’, 조선 15세기, 혼가쿠지. 조선 초기 왕실 주도로 편찬된 일련의 한글 불전 문학에 근거해 석가모니의 탄생을 전후한 여러 장면을 그린 불화. 궁중의 큰어른과 천신의 이미지가 중첩된 마야부인의 모습에서 그림의 발원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했을 왕실 여성들의 권위를 읽을 수 있다.



최근 대중적으로 ‘핫’한 종교는 불교다. 시쳇말로 ‘힙’하다. 분위기가 젊어졌고, 기존의 틀을 깨는 데 거리낌이 없다. 불교계에선 이를 ‘자비慈悲’라 분석한다. 이런 현상을 함축하는 단어가 중생에게 즐거움을 주고 괴로움을 없앤다는 뜻의 자비라니 흥미롭다. 일례로, 뉴진스님(개그맨 윤성호) 캐릭터가 있다. 온라인 동영상 플랫폼에서 먼저 화제가 된 그는 얼마 전 ‘서울국제불교박람회’에서 “극락왕생!”을 외치는 디제잉으로 신명 나는 공감을 끌어냈다. 불교 굿즈도 난리다. 반가사유상을 필두로, ‘응~ 수행 정진하면 돼’, ‘중생아 사랑해’ 같은 인터넷 밈이 연상되는 문구를 프린팅한 티셔츠와 LED 연꽃 수정 구슬 등은 긴 줄을 서야 겨우 살 수 있다. 그야말로 젊은 세대의 취향을 제대로 저격했다. 무릇 불교의 본질이란 깨달음인데, 요즘엔 불경을 정독하며 정진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터. 그러니 오늘날 불교의 인기는 현대화된 자비가 아닐까 싶다.

때마침 전통 미술로 자비를 베푸는 시간도 진행되고 있다. 동아시아 불교미술을 조망하는 전시 <진흙에 물들지 않는 연꽃처럼>(호암미술관, ~6월 16일)이다. 불교미술에 스민 ‘여성’들의 번뇌와 염원, 공헌을 조망한다는 기획 의도가 신선하다. “남자만 성불할 수 있다”, “여성의 몸으로는 부처가 될 수 없다” 같은 표현이 있을 만큼 불교는 탄생부터 남성 중심의 종교였다. 고려 시대 진한국대부인 김씨가 <감지금니 묘법연화경> 발원문에 “이전 겁의 불행으로 여자의 몸을 받았으니… 참으로 한탄스러울 뿐”이라 적었을 정도다. 그런데 이러한 상황에서도 여성은 불교를 지탱한 옹호자이자 불교미술의 제작자, 후원자를 자처해왔다. 소원을 세우고 이뤄가는 성취감과 이로 인해 쌓은 공덕을 타인에게 돌리는 기쁨을 알아갔기 때문. 실제 전시장 동선을 따라가면, 처음엔 차별에 직면했던 여성 불자가 점점 진일보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진흙에 물들지 않는 연꽃처럼>을 기획한 이승혜 큐레이터는 “시대와 지역, 장르의 구분을 벗어나 여성의 염원과 공헌이라는 관점에서 불교미술에 접근했습니다. 이들 속에서 동시대적 의미를 발견해보시길 바랍니다”라고 전시를 소개한다.


‘영산회도’, 조선 1560년, 개인 소장. 자색 비단 위에 금선으로 영축산에서 설법하는 석가모니여래와 권속들을 그린 불화.

문정왕후가 조선 왕실의 안녕을 기원하며 발원했다.


‘감지금니 묘법연화경 권1-7’, 고려 1345년, 리움미술관. 절첩본 형식의 <법화경> 사경으로 전체 7권이 모두 남아 있다.

발원문에 이전 겁의 불행으로 인해 여자의 몸을 받았다고 적혀 있다.



<진흙에 물들지 않는 연꽃처럼>은 유물로 구성됐지만 블록버스터급 재미가 있다. 이번 전시를 위해 전 세계 27개 컬렉션에서 다양한 불교미술품 92점(한국 미술 48점, 중국 미술 19점, 일본 미술 25점)을 빌려왔다. 그중 해방 이후 자취를 감췄다가 95년 만에 국내에 공개된, ‘백제의 미소’라 불리는 ‘금동관음보살입상’, 석가모니의 출가를 앞두고 슬퍼하는 부인 구이와 아버지를 그린 ‘석가출가도’, 석가모니의 어머니인 마야부인을 권위 있게 묘사한 ‘석가탄생도’(5월 5일까지 전시 후 일본으로 돌아감) 등은 평소 보기 어려운 작품이니 특히 주목할 것. 더불어 성불을 간절히 바라는 여성의 모습이 드러난 고려 시대의 ‘장곡사 금동약사여래좌상 복장물’, 불교미술을 열렬히 응원했던 문정왕후가 조선 왕실의 안녕을 기원하며 발원한 ‘영산회도’, 부정하다고 여겨진 여성의 머리카락으로 부처를 형상화한 일본의 ‘자수 아미타여래삼존내영도’ 등도 인상적이다. 진흙에서 피어난 연꽃처럼 사회와 제도의 제약에서 벗어나 자신을 찾으려 고군분투했던 여성들에게 공명한 까닭이리라.

종교라는 인식 탓에 불교미술이 어렵게 다가오겠지만, 이면에 있는 내용을 숙지하면 사극의 한 장면을 보는 듯 가슴이 뛴다. 불교는 우리 삶과 밀접한 종교다. 4세기 후반 고구려 소수림왕 때 공식적으로 한반도에 들어온 불교가 국가를 통치하고, 민심을 수습하는 역할을 한 건 자명한 사실. 그러니 동네마다 사찰 하나쯤은 있고, 그 안에 여러 미술품이 있는 게 자연스러울 수밖에 없다. 국립경주박물관 신명희 학예연구사는 “불교는 오랜 세월 인류와 함께했습니다. 여기서 빚어진 불교미술도 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있죠. 강산 곳곳에서 만나는 사찰, 돌탑 등의 불교미술품은 금세 친밀해질 수 있는 우리 주변의 예술품이에요”라고 말한다. 동국대학교박물관 권보경 학예사의 의견도 일맥상통한다. “1600년 넘게 불교는 우리나라 정치·문화·사상과 영향을 주고받으며, 무언가를 계속 재창출해왔어요. 불교미술은 이 같은 흐름을 반영합니다. 불교라는 종교가 우리나라에 어떻게 수용되고 발전됐는지, 또 확산했는지를 살펴볼 수 있는 것이 불교미술의 매력이에요.”


국립경주박물관 내 신라미술관 2층 불교사원실은 신라 최대 사찰인 황룡사를 비롯해 분황사, 감은사, 사천왕사 등에서 출토된 불교미술품을 소개한다.


‘영산회상도’, 조선 1777년, 동국대학교박물관 소장. 석가모니가 영축산에서 제자들에게 <법화경>을 설법하는 장면을 묘사한 그림.


불교와 관련된 다양한 이야기는 불교미술의 기본이다. 부처님의 손 모양, 보살상이 지닌 장식 등으로 시대마다 유행한 양식, 후원자들의 염원 등을 읽어낼 수 있다. 신 학예연구사는 국립경주박물관에 있는 ‘수구즉득다라니’를 예로 든다. “<다라니경>에 적힌 부처님의 가르침을 외우고 쓰고 몸에 지니면 바라는 바가 즉시 이뤄진다고 해서 통일신라 시기부터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죠. ‘소원 성취 부적’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데, 오랜 세월 한국인 곁에 있었던 것을 보면, 불교는 피할 수 없는 고난의 현실에서 힘이 되어준 안식처였던 것 같습니다.” 이에 권 학예연구사는 이렇게 덧붙인다. “불교미술은 대중에게 친숙한 종교적 성격의 미술이자 미학적·학술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복합적인 장르입니다. 학술 가치가 높은 불상과 불화임에도 사찰에 봉인돼 불교 신자가 예불하는 살아 있는 미술이기도 하고, 박물관에 수장돼 우리나라 역사와 문화를 연구하는 데 도움이 되기도 하죠.”

이처럼 불교는 온라인과 오프라인, 트렌디함과 예스러움 같은 표현 형식만 달라졌을 뿐, 자비를 베푼다는 태도는 한결같이 우리 곁에 머물러 있었다. 이를 대표하는 게 불교미술 아닐는지. 과거의 불교미술을 통해 작품이 탄생했을 때의 시대상을 이해할 수 있는 건 기본이다. 앞서 머리말에서 언급한, 이젠 미술 영역 안에 있는 굿즈와 퍼포먼스도 오늘날 불교의 인기를 보여주는 척도다. 즉, 가장 가까이서 마음으로 들어가는 통로이자 마음을 비추는 거울인 셈. 동국대학교박물관 권보경 학예사는 설명한다. “작품을 만든 작가는 본인이 속해 있는 시대적 성격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내가 사는 세상’을 담게 돼요. 불교미술에 시대성이 담겨 있는 건 공통점이지만, 시기마다 정치·문화·사상이 다르기에 옛날과 현재의 불교미술은 차이점이 발생하죠. 2024년의 불교미술은 현세의 우리를 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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