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셔리> 2024년 4월호

소년의 마음과 어른의 손으로 시릴 콩고

시릴 콩고는 그래피티가 더 이상 거리에 머무는 예술이 아니라고 말한다. 기존의 방식과 관습에 얽매이지 않고 도리어 편견에 휩싸인 관객과 세간의 시선을 바꾸며. 아이의 순수한 눈과 어른의  대담하고도 섬세한 손으로 완성한 그래피티 아트를 그의 첫 번째 한국 개인전 <그래피티의 연금술사: 경계를 넘은 예술의 여정 >에서 만나볼 수 있다.

EDITOR 이호준 PHOTOGRAPHER 이창화

시릴 콩고  시릴 콩고라는 이름은 그가 머물던 국가 중 하나인 ‘콩고’의 명칭과 본명인 시릴 판Cyril Phan을 합쳐 만든 이름이다. 1986년부터 그래피티 아티스트로 활동하기 시작한 그는 근 40년이 지난 지금 세계적인 그래피티 작가로 평가받는다. 그래피티 컬렉티브인 ‘MAC 크루’ 일원이었으며 프랑스 바뇰레에서 열리는 국제 그래피티 축제 ‘코스모폴리트’의 창립자로 활동하는 등 그래피티 대중화 및 예술화에 이바지해왔다. 2011년 에르메스와 협업 이후 여러 럭셔리 브랜드의 러브 콜을 받고 있다.



전 세계 그래피티의 선구자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 아티스트 시릴 콩고는 여타 제도권 교육을 받지 않고 독학으로 자신만의 고유한 작품 언어를 확장해왔다. 베트남인 아버지와 프랑스인 어머니 밑에서 자란 그는 베트남에 머물다 프랑스로 이주했는데, 프랑스어 문외한이던 그에겐 그래피티가 유일한 친구이자 매개였다. 이후 콩고와 미국 등 여러 나라를 다니며 1986년부터 본격적으로 그래피티 아티스트로서 활동한 그는 다양한 거리 예술 페스티벌과 전시 등에 참여해 유명세를 얻기 시작했다. 시릴 콩고에게 2011년 에르메스와 진행한 컬래버레이션 프로젝트는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는 터닝 포인트였다. 이를 기점으로 리차드 밀, 샤넬, 마세라티 등 유수의 럭셔리 브랜드와 협업하며 세계 전역으로 이름을 떨치는 데 성공했기 때문. 그러나 “나는 거리에서 배웠다. 나의 예술의 근원은 늘 그곳에 있었다”라는 그의 말처럼 시릴 콩고는 그래피티 아트의 정신을 잊지 않았다. 프랑스 바뇰레에서 열리는 국제적인 그래피티 축제 ‘코스모폴리트Kosmopolite’의 창립자로 거듭나는 등 그는 그래피티 아트의 부흥을 위해 계속해서 노력을 기울였다.

3월 중순 열린 그의 한국 첫 개인전 <그래피티의 연금술사: 경계를 넘은 예술의 여정>은 그간 시릴 콩고가 걸어온 여정을 관망할 수 있는 전시다. 총 3개 층에서 진행되는 전시인 만큼 꽤 큰 규모다. 1층과 2층에서는 작가의 그래피티 아카이브는 물론 메타 캔버스로 작업 영역을 확장한 시릴 콩고의 예술 생애를 관람할 수 있다. 전시의 하이라이트인 3층에서는 럭셔리 브랜드와 협업한 작품으로 공간을 꾸렸다. 첫 컬래버레이션 작품인 2011년 에르메스 실크 스카프부터 칼 라거펠트와 작업한 샤넬 공방 컬렉션 등 다채로운 작품이 자리하고 있어 흥미롭다.


<그래피티의 연금술사>라는 전시명에서 장르적으로나 방법론적인 확장의 포부가 느껴졌다. 전시명에 어떤 의미를 담았나?

그래피티라는 장르는 ‘거리의 예술’이라는 별칭처럼 즉흥적이고, 빠르게 그려진다는 선입견과 자주 마주한다. 하지만 그래피티는 오랜 시간 손이 기억하는 숙달된 속도와 노하우를 집약한 예술이다. ‘그래피티의 연금술사’에는 프랑스어로 장인 정신을 의미하는 ‘사부아르-페르Savoir-faire’를 강조하고자 하는 의지가 담겨 있다. 또 그래피티가 실크나 유리 등 어떠한 소재, 물성과도 접목될 수 있는 것임을 물성을 바꾸는 학문인 ‘연금술’로 표현했다.


“나는 한 표면만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색채, 에너지, 낙관주의로 대변되는 삶의 모든 순간을 이야기한다”라고 말한 바 있다. 이러한 마음이 담긴 당신의 작품 세계를 관통하는 하나의 키워드가 바로 ‘그래피티’인 듯하다.

내게 그래피티는 수단이자 표현의 매개체다. 나는 거리에서 배웠고, 그래피티는 내 모든 작업의 출발점이다. 스튜디오에서 작업하는 지금도 변하지 않는 사실이다. 그래피티는 거대한 벽이든 또 다른 형태의 표면이든 어디에 그려지건 특유의 코드를 지닌 언어로서 그림뿐만 아니라 글쓰기의 형태로도 존재한다. 나의 이야기와 예술을 향한 내면의 욕망을 다른 차원으로 이끌어주는 게 그래피티인 셈이다. 시각적 탁월성, 예를 들면 문자나 도형의 그래픽적 변화 등은 그래피티가 매개체 역할을 충실히 수행할 수 있게 한다. 수작업을 통해 완성된다는 점에서도 매력적이다. 그래피티가 나의 DNA임을 부정할 수가 없다.


중세 프레스코화를 연상시키는 거대한 규모의 작품 속에 보이는 우주나 왕관 등 어린아이의 낙서 같은 요소를 보면 아이의 천진난만함이 느껴진다. 어떠한 마음으로 ‘그리기’라는 행위에 임하나?

생텍쥐페리의 생애에서 많은 영감을 받는다. 그는 어른도 아이의 눈과 마음으로 세상을 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내 마음속에 있는 아이와의 연결과 소통에 늘 주목한다. 아이가 지닌 활기, 꿈, 희망 등을 녹여내는 것에 골몰한다. 또 빛과 사랑, 풍요 등을 작품에 녹여 관객에게 내면의 아이를 찾도록 도와주는 것도 중요한 부분이라 여긴다.


총 3층으로 구성한 전시가 시릴 콩고의 예술 여정을 집약한 것처럼 보인다. 주목할 만한 작품이 있다면 알려달라.

이번 전시는 여정이라는 행위를 통한 일련의 연결을 보여주려 했다. 개인 간의 교류나 작품과 개인의 교류 등을 여정에 빗대고자 했는데, 전시장 1층에 배치한 ‘No Border’는 이름처럼 전시의 주제를 관통하는 작품이다. 규모 면에서도 존재감이 크니 감상해보길 바란다. 여정과 만남은 나를 예술가로 살게 하는 원동력이다. 서울에서의 전시가 새로운 영감으로 다가온 만큼, 다음 작품의 소재는 서울이 되지 않을까.




다문화 가정에서 자랐다는 것과 베트남, 프랑스, 콩고 등에 머물며 다양한 문화를 겪은 경험이 작품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을 것 같다.

베트남인 아버지, 프랑스인 어머니와 함께 베트남에 살다 부모님과 떨어져 프랑스로 떠난 것이 나의 첫 번째 여정이었다. 당시 타인과 세상에게 나를 표현할 수 있었던 유일한 수단은 그림이었다. 그때부터 예술과 함께 살았다. 내게는 그림이라는 만국 통용어가 있었고, 덕분에 여러 국가와 도시를 돌아다니면서도 낯섦이나 두려움은 적었다. 각 도시의 문화를 받아들이면서 그림이라는 언어는 더 다채로워졌다.


첫 협업작인 2011년 에르메스 실크 스카프를 선보인 이후부터 리차드 밀, 에르메스, 샤넬 등 여러 럭셔리 브랜드에게 러브 콜을 받았다.

모든 협업은 단순히 브랜드의 명성만을 고려해 내린 결정은 아니다. 각 프로젝트의 목적성에 대해 고민하고 나의 작업이 어떠한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지 고려한 뒤 컬래버레이션의 큰 초안을 그린다. 이 모든 숙고의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진정성이라 봤다. 일례로 리차드 밀과의 작업은 큰 벽화 작품을 조그마한 시계 다이얼에 고스란히 구현해야 하는 작업이었다. 각 부품을 만들고 조립하는 장인들의 작업 과정과 방식을 침범하지 않으면서도 나의 예술을 펼치는 작업이다 보니 시계 제작 과정과 방식, 마인드를 충분히 공부해야 했다. 브랜드가 추구하는 가치를 존중하되, 나의 작품이 훼손되지 않도록 연구하는 노력이 그들에게 느껴졌기에 흥미로운 협업의 기회가 계속 찾아온 것이지 않을까.




비단 협업 프로젝트뿐 아니라, 다양한 물성을 도입하거나 장르적 변화를 시도하는 등의 도전에도 거리낌이 없는 듯 보인다. 새로운 도전에 대한 두려움은 없나?

예술을 시작했을 때부터 나의 스튜디오는 거리였다. 도시를 캔버스 삼아 그림을 그렸고, 그리고 싶은 모든 곳에 그림을 그려왔다. 트럭 위, 지하철, 기차 등 내 화폭에는 어떠한 제한이 없었다. 그러니 실크나 유리, 옷, 시계 등에 나의 작업을 입힌다는 건 내게는 도전이라기보다 그저 변화의 영역에 있는 행위일 뿐이다.


한국에서의 첫 개인전이니만큼, 전시장을 찾는 관객들에게 전하고픈 이야기가 있을 것 같다.

눈을 통해서 보는 것보다 마음을 통해서 작품을 바라봤으면 좋겠다. 그림을 분석하고 역사적인 맥락이나 함의, 가치 등을 찾기보다는 작품을 마주하는 순간 마음이 전하는 감정에 집중해달라. 눈이라는 것은 가끔 사물의 본질을 호도하는 경향이 있다. 눈은 뇌와 연결되어 있어 바라보는 대상을 본능적으로 지성적인 해석의 방향으로 이끌기 때문이다. 때로는 마음으로 봐야 할 것들이 있다. 본질이 언제나 눈에 보이는 것은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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