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셔리> 2024년 4월호

BEHIND THE SCENES

2월 26일부터 3월 5일까지 프랑스 파리는 2024 F/W 패션위크로 들썩였다. 그중 <럭셔리>가 주목한 주요 브랜드의 인상 깊었던 신을 되짚어본다.

EDITOR 이민정

DIOR


파리 패션위크의 포문을 연 빅 쇼는 단연 디올이었다. 2024년 가을·겨울 컬렉션을 위해 디올은 인도 아티스트 샤쿤탈라 쿨카르니Shakuntala Kulkarni에게 공간 디자인을 맡겼고, 케인cane 소재로 만든 커다란 설치 작품과 벽면을 가득 채운 회화 작품으로 쇼장의 분위기를 조성했다. 쇼는 블랙핑크의 지수가 엄청난 취재진을 동반하고 입장한 뒤 시작됐고, 총 72벌의 웨어러블한 룩이 대거 등장했다. 세르주 갱스부르와 제인 버킨이 함께 부른 노래 ‘Je t’aime...moi non plus’의 선율 아래 디올의 레디투웨어를 상징하는 ‘MISS DIOR’ 로고를 대담하게 프린팅한 스커트와 트렌치코트, 송치 가죽을 적용한 아우터웨어, 비즈 디테일이 정교한 플래퍼 드레스 등 모노톤의 클래식한 의상들이 무대에 오르며 디올의 새 시즌을 예고했다.




LOEWE


로에베는 뱅센 성안에 플라워 프린트로 뒤덮인 공간을 설치하고 그곳에서 새로운 컬렉션을 공개했다. 내부는 마치 미로 정원같이 설계하고, 그린 컬러 벽에는 앨버트 요크의 회화 작품을 걸어 이번 컬렉션의 배경을 설정했다. 모델들은 큼지막한 버클 장식의 저지 드레스, 베스트와 타이, 테일 코트 등 성별을 구분 짓지 않는 다채로운 룩을 입고 등장했다. 여기에 장인 정신이 돋보이는 비즈 장식, 메탈 소재로 만든 조각 작품 칼라, 트롱프뢰유 기법으로 완성한 가죽 등 디테일도 놓치지 않았다. 조나단 앤더슨의 위트를 담은 ‘아스파라거스’ 백과 비즈로 수놓은 강아지 프린트 아이템 또한 이번 쇼의 재미를 끌어올린 요소였다.




MIU MIU


벨기에계 미국인 아티스트 세실 B. 에번스의 영상으로 시작한 쇼는 다수의 취향을 아우를 수 있을 만큼 다채로운 스타일의 룩을 종합 선물 세트처럼 공개했다. 인생의 다양한 경험에서 영감받아 선보인 이번 컬렉션은 어린 시절에 입은 듯한 짧은 소매의 상의, 어른이 돼서 입는 실크 드레스 등 옷을 통해 과거를 회상하고 미래를 상상할 수 있도록 여러 시기의 룩들이 공존하는 컬렉션을 완성했다. 쇼에 선 모델들 역시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연령과 인종을 아울렀으며 누구에게나 조금씩은 갖출 수 있는 미무 미우 특유의 소녀다움을 표출했다.




CHANEL


거대한 스크린이 설치된 샤넬의 쇼장은 페넬로페 크루즈와 브래드 피트가 등장하는 짧은 영상으로 문을 열었다. 클로드 를르슈 감독의 영화 <남과 여>를 오마주해 샤넬 ‘11.12’ 백을 조명하며 영화 속 장면을 재현한 것. 영상이 끝나자 등장한 모델은 에어Air의 ‘Sexy Boy’에 맞춰 런웨이를 활보하기 시작했고 스크린 속 영상은 도빌의 아름다운 산책로로 전환됐다. 우아한 롱 코트를 입고 챙이 넓은 밀짚모자를 쓴 모델들이 줄지어 나온 뒤에는 해 질 녘 바닷가를 연상케 하는 파스텔 톤의 트위드 재킷과 니트웨어들이 등장했고 후반에는 시폰처럼 유연한 소재의 드레스로 갈무리했다.




ISABEL MARANT


프렌치 시크로 무장한 패션 피플을 팔레 루아얄로 불러 모은 이자벨 마랑의 쇼는 패션위크의 분위기가 고조된 4일 차의 마지막을 장식했다. 밤 9시가 다 되어 시작한 쇼는 이자벨 마랑의 아이덴티티를 고스란히 담은 룩들을 선보였고, 웨스턴 무드를 더하는 가우초, 스웨이드 프린지 장식을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브라운, 카키, 베이지를 주 컬러로 사용해 전반적인 무드를 완성하고 여기에 블랙과 레드를 포인트 컬러로 컬러 팔레트를 구성했다.




ACNE STUDIOS


아크네 스튜디오의 2024 F/W 컬렉션은 17세기에 건립된 파리 천문대에서 열렸다. 새하얗게 칠한 네모난 공간 안에 폐타이어로 만든 거대한 의자와 오브제들이 중앙에 나열되어 있었는데, 이는 에스토니아 출신 아티스트 빌루 야니소Villu Jaanisoo의 작품. 타이어가 지닌 단단한 소재감을 강인함과 연관 지어 이번 컬렉션을 완성했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조니 요한슨은 강인함을 느끼고 싶을 때 갑옷 같은 가죽과 데님 소재에 집중한다며 두 소재를 주재료로 이번 컬렉션을 구성했다. 피부에 밀착되는 나파 소재 슈트부터 오일 코팅한 데님까지. 오버사이즈거나 미니멀한 실루엣으로 대조적인 룩을 선보였다.




SAINT LAURENT BY ANTHONY VACCARELLO


까만 밤하늘 아래 휘황하게 솟은 에펠탑과 그 아래 자리한 생 로랑의 쇼장은 수많은 셀러브러티와 쇼를 기대하는 마음으로 어둠이 내린 파리의 밤하늘을 훤히 밝힌 듯했다. 내부는 살롱을 연상시키는 에메랄드 벨벳 다마스크 천(초대장 역시 이 원단을 사용했다)으로 둘러싸인 2개의 원형 룸을 합친 형태로 꾸몄고 간접조명으로 무드를 조성했다. 패션쇼의 주인공인 룩은 말 그대로 ‘속 보이는’ 옷들로 가득했는데, 옷을 눈에 띄지 않게 함으로써 외려 주목하게끔 만든 안토니 바카렐로의 의도를 투명하게 드러냈다. 시어한 소재의 무릎길이 드레스부터 청동 유리로 만든 투명한 액세서리, 관능미를 끌어올리는 스틸레토 힐까지. 그가 제안하는 시스루 코드가 어떤 식으로 리얼 웨이에 안착할지 주목해보자.




BALMAIN


어머니가 즐겨 입던 트렌치코트, 피크닉 갈 때 항상 챙기던 깅엄 체크 블랭킷, 싱그러운 포도 패턴과 금속으로 제작한 포도 실물 크기의 이어링 등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올리비에 루스테잉은 와인 생산지로 유명한 보르도 지방에서 지냈던 어린 날을 추억해 컬렉션을 완성했다. 어머니와의 추억을 담은 컬렉션인 만큼 기품 있는 시니어 모델을 대거 기용해 다양성을 추구했고, 늘 그렇듯 모델들과 함께 피날레를 장식했다.




HERMÈS


공간 전체에 습기가 가득했던 이유는 쇼 시작과 함께 해답을 찾았다. 천장에서 떨어지는 물줄기로 어둑한 런웨이를 순식간에 비 내리는 거리로 탈바꿈했기 때문. 빗속의 여인으로 등장한 모델들은 에르메스가 가장 잘 다루는 가죽 소재 옷을 입은 채 빗속을 거닐었고 가로로 긴 형태의 ‘버킨’ 백이나 클러치백을 옆구리에 끼고 있었다. 스터드 장식을 더하거나 다른 소재와 믹스한 액티브 레더 웨어들은 활동성에 초점을 맞춘 듯 편안해 보였고, 이 룩을 입고 바이크나 말을 타는 여인의 모습이 절로 연상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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