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셔리 M> 2024년 5월호

시인 & 사진가 이훤, 그럼에도 평온한 마음

그가 펴낸 시집의 제목처럼, 두 눈으로 서로 다른 세계를 동시에 바라보는 ‘양눈잡이’ 이훤은 빈틈없는 다정함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가장 낮은 곳에서부터 가장 어두운 곳까지, 무엇도 소외시키지 않고 응시하며 귀 기울인다. 따뜻한 존중으로 점철된 그의 물건과 사람, 시선과 취향에 관한 이야기들.

EDITOR 이연우 PHOTOGRAPHER 이창화

이훤  시인이며 사진가. 2014년 <문학과의식>에 시를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카고 예술대학에서 사진을 공부했고 미국, 중국, 캐나다, 스코틀랜드, 한국에서 크고 작은 사진전에 참여했다. 3권의 시집과 2권의 산문집을 냈으며 각종 책에 사진으로 참여했다. 정릉에서 사진 스튜디오 겸 교습소 ‘작업실 두 눈’을 운영 중이다.



이훤은 텍스트와 이미지로 이야기를 만드는 일을 한다. 시인이자 사진작가로 활동하는 그의 이름 ‘훤’에는 2가지 뜻이 담겨 있다. 시끄럽게 말할 훤喧 그리고 따뜻할 훤煖이다. 그는 “동사일 때와 형용사일 때 온도 차이가 재미있어서” 필명으로 이 단어를 골랐다. 그리고 그는 이 이름에 걸맞게 다양한 온도의 틈에서 길어 올린 이야기들을 따뜻하게 매만져 쏟아놓는다.

고등학생 때 미국으로 건너가 기계공학과 사진을 공부한 그는 이질적인 시공간과 언어, 문화 사이를 오가며 시를 쓰고 사진을 찍었다. 자연스레 분리와 단절 그리고 고립 사이에서 일어나는 감정에 주목하게 됐다. 시집 <우리 너무 절박해지지 말아요>를 비롯한 이야기들이 그렇게 탄생했다. 그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경계를 허물어 새로운 세계를 찾아 나섰다. 구분 지어진 것들을 해체해 모호하게 만들고, 일부러 비틀어 다르게 쌓으며 낯선 감각을 이끌어낸다. 세 번째 시집 <양눈잡이>를 필두로 문자 언어와 시각 언어를 때로는 각각, 때로는 포갠 형태로 펼쳐놓으며 다양한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있다.

재작년 10월, 17년의 타국 생활을 마무리하고 한국으로 돌아온 그는 요즘 독자들과 좀 더 가까이 만나면서 또 다른 세계를 확장해가고 있다. 변화된 감각과 생각을 담은 시집과 산문집도 준비 중이다. ‘양눈’으로 보는 그의 세상은 쉬지 않고 넓어지고 있다.


내 스타일의 ‘한 끗’은?

큰 틀의 스타일 안에서 자유로이 흐르는 호기심. 유행에 반응하며 매 시즌 패셔너블해지지 않아도 일관된 멋을 찾고 꾸리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나를 매료시킨 스타일 아이콘은?

클레이 애니메이션 <패트와 매트>의 매트. 유년기 TV에서 본 매트는 밋밋한 캐릭터 같았다. 30년이 지났고 이것저것 입어보며 나는 가장 그 사람다운 모습이 가장 스타일리시한 것이라 생각하게 됐다. 매트는 늘 가장 매트다운 옷차림을 하고 있다.


옷장에서 가장 오래된 아이템은?

12년 전에 구매한 디타DITA 안경. 요소마다 실루엣이 근사하다.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써온 안경은 이제 몸의 일부 같다. 눈이자 피부, 옷이라고 여긴다.

세상을 보는 시야일 뿐 아니라 타인에게 비치는 나의 모습에서도 큰 비중을 차지한다. 실은 옷보다 더 중요한 물건 같다.



단 한 벌만 챙겨야 한다면?

흰 박서. 하루의 기분은 속옷에서부터 시작되므로. 중요한 날은 흰 박서나 그레이 박서를, 보통은 검은 박서를 입는다.


늘 지니고 다니는 가방 속 필수품은?

비상 파우치. 파우치에는 안경 닦개, 만년필, 영양제와 진통제, 위염약, 비상용 이어폰, 치간 칫솔 등이 들어 있다.


옷을 쇼핑할 때의 기준은?

무드와 가격, 활용도. 옷을 만든 사람들의 역사. 오래 입을 수 있는지, 여러 벌과 매칭이 가능한지. 가끔 평소 디깅하는 브랜드의 옷을 온라인에서 즉흥적으로 한두 벌 사기도 하지만, 오프라인에선 끈질긴 편이다. 여러 군데 둘러보고 잘 맞는 숍에서 여러 벌 산다.


가장 최근에 구입한 것은?

‘테이크 아이비’에서 구매한 세컨드 핸드 리바이스캐주얼 세트업. 리바이스 청바지는 흔하지만 리바이스 산하 브랜드 리바이스캐주얼 의류는 구하기 어렵다. 봄, 늦여름, 초가을에도 입기 좋은 컬러와 패턴이라 마음에 든다. 단품으로도 활용도가 높아 구매했다.


원목을 좋아하는데, 몇 년 전 ‘도잠’이란 브랜드를 만나고 나서 거실 겸 작업실을 이 브랜드의 책상, 맞춤 제작한 키보드 장 등으로 채워 넣었다.

실용적이면서도 강박적인, 아름다운 브랜드라 생각한다.


요즘 가장 갖고 싶은 것은?

장수에 필요한 모든 자질. 항상성 그리고 편안한 마음. 근 몇 년간 사는 게 좋아졌다. 너무 좋아서 장수하고 싶어졌다. 그리고 즉흥적인 결정을 좋아했던 나는 옅어지고 규칙적인 생활과 예측 가능한 사회 반경을 선호하게 됐다. 번뜩이는 순간보다 매일 조금씩 쌓는 희열에 이제는 더 마음이 간다.


나의 시그너처 향은?

수토메 아포테케리의 ‘페인팅Painting’. 이름이 기억 나지 않는 어느 숲 깊숙한 곳에서 맡았던 것 같은 향이 난다.


요즘 즐겨 듣는 음악은?

김사월의 ‘칼’, 베니 싱스의 ‘Rolled Up’, 손 럭스의 ‘This is a Life’, 선우정아의 ‘뒹굴뒹굴’, 제시카 프랫의 ‘World on a String’.


근래 가장 인상 깊었던 책은?

사진책 <고스트 모션>.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사이의 사치를 책으로 느껴보시길. 이민지 작가의 아름다운 사진과 박지수 편집장의 통찰로 태어난 책. 작가의 의도를 정확하게 담아낸 물성과 기획자의 크고 작은 선택들에 감탄했다.


근래 가장 인상 깊었던 영화는?

<듄: 파트2>. 이토록 완전한 세계를 가질 수 있다면. 영화관에서 두 번 봤고 시청각적으로 완전히 매료됐다.




작품을 소장하고 싶은 아티스트가 있다면?

사진가 류한경. 고요하게 묻고 두드리며 파장하는 이미지를 담는다.


내 인생의 스타를 꼽는다면?

이슬아. 멋있는 사람이자 존경하는 사람. 개인으로서 그리고 작가로서 그는 나를 움직인다.


일어나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사람 한 명, 고양이 두 명과 아침 인사 후 폼 롤러 스트레칭, 땅콩 볼 마사지.


잠들기 전 하는 일은?

고양이들 야식과 물 주고, 폼 롤러 스트레칭, 땅콩 볼 마사지.


절대 빼먹지 않는 자기 관리법은?

필라테스와 풀업-스쿼트-푸시업-플랭크 루틴.


냉장고 속 필수품은?

무설탕 무첨가 매일두유. 비건 지향적으로 먹으며 몸이 깨끗해지는 걸 느꼈다. 서리태와 두유는 훌륭한 식물성 단백질인 데다 맛있기까지 하다.


평생 하나의 음식만 먹는다면?

가지 라자냐.


나에게 의미 있는 장소는?

여러 시제의 집(들). 타국에 머무는 동안 천천히 몸으로 배우게 되었다. 집은 아파트일 수도, 가끔 찾아오는 모종의 상태일 수도, 먼 언어로 부른 노래일 수도 있다. 사람일 수도 있다. 그들은 하나의 시제로 거기 있지 않다.


최고의 여행 기념품은?

하와이 해변에서 가져온 돌. 신혼여행 동안 하와이에서 머물렀다. 작업은 적게 하면서 매일 걷고, 장 보고, 바다를 거닐던 한 달이었다. 화산의 영향으로 어두운 화강암과 비교적 밝은 두 돌이 나란히 있는 걸 보고 우리 같다고 생각했다.


내가 받은 최고의 선물은?

슬아에게 받은 편지와 운석 반지. 편지를 읽고 펑펑 울었다. 그가 사는 방식이 너무 아름답고 씩씩하고 또 덕분에 내가 자주 충만해져서. 요즘도 종종 꺼내 읽는다. 운석 반지도 자주 낀다. 액세서리와 별 보는 걸 좋아하는 사람에게 이만 한 선물이 있을까?


요즘 내가 가장 집중하고 있는 것은?

내 안의 시를 새롭게 하기. 3권의 사진 산문집 집필.


인생에서 포기할 수 없는 즐거움은?

페퍼민트를 넉넉히 넣은 두유 밀크티를 마시고 고양이들과 낮잠 자는 것.


인생에서 가장 의미 있었던 조언은?

“두어 손짓에 게을러지지 마.” 두어 손짓이 만든 차이가 누적돼 유의미한 변화를 만들었다. 패턴이 되고 생활이 되고 일상의 리듬이 되었다.


내가 만약 다른 삶을 살 수 있다면?

그때도 이야기 만드는 일을 했을 것.


내가 가장 편안함을 느낄 때는?

귀가해 모든 정리를 마치고 아내와 파자마로 갈아입었을 때.


나의 영감의 원천은?

생활, 지금 지나고 있는 시절, 그리고 스크린 안팎으로 지나온 사람들. 실제로 교류해온 사람들만큼이나 스크린으로 만나는 허상의 인물들에게서 영향을 많이 받는다. 별로 이동하지 않고도 더 많은 만남이 가능해졌다.


내가 생각하는 ‘럭셔리’란?

그럼에도 평온한 마음. 모든 감각은 거기서 시작되니까.


답변을 마치는 소감은?

반가웠고, 묻고 또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긴 버전의 대답은 책에서, 그리고 10월에 있을 개인전에서 읽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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