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셔리> 2024년 4월호

SUSTAINABLE WAVE

전 세계 탄소 배출량의 8~10%를 차지하는 패션 산업. 소비자들의 환경에 대한 인식이 높아짐에 따라 지속 가능성 바람은 점차 거세지고 있다.

EDITOR 차세연

BALENCIAGA


폐기물을 저감하려는 전 세계의 전방위적인 노력에 따라 몇몇 글로벌 브랜드 또한 업사이클링 추세에 동참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산화탄소 배출량의 90%, 물 사용량의 65%를 절감한 ‘애니멀 프리’ 운동화를 출시하고, 매 시즌 패션쇼에 같은 의자를 사용하는 등 이전부터 공공 자원에 대한 남다른 관심을 보여온 발렌시아가. 2024년 봄·여름 컬렉션은 브랜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뎀나 그바살리아의 어머니이자 그의 오랜 스타일 뮤즈인 엘라가 문을 열었다. 그녀는 빈티지 원단을 세 조각으로 해체한 후 재조립한 카 코트를 입고 등장했으며, 재활용 가죽 소재의 바이커 재킷이 그 뒤를 이었다. 무엇보다 흥미로웠던 것은 발렌시아가가 바이오 소재 전문 기업 고젠과 2년간 협업해 개발한 신소재 ‘루나폼’으로 만든 맥시 코트다. 루나폼은 영양이 풍부한 환경에서 미생물이 만든 초결정질 패턴에 천연 물질을 더해 완성하는데, 전체 생산과정에서 플라스틱과 동물성 재료가 사용되지 않아 비건으로 분류된다. 지속 가능한 패션에 대한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줄 루나폼의 활약상을 기대해봐도 좋을 듯.




DURAN LANTINK


업사이클 의류 디자이너로 급부상 중인 뒤란 란팅크의 정체성 중 일부는 지속 가능성에 있다. 그녀는 평소 빈티지 옷과 재고 의류를 자신만의 감각을 넣어 재탄생시켜왔고, 이번 봄·여름 패션쇼 역시 다채로운 업사이클링 웨어로 가득 채웠다. 플라스틱병의 재활용이 큰 주제였는데, 특이한 점은 옷과 재료를 조화롭게 융합하는 친숙한 방식에서 벗어나 형태에 초점을 맞췄다는 것이다. 란팅크는 물에 떠 있는 구명부표에서 영감을 받아 미니드레스부터 셔츠, 스커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제품군에 인공적으로 풍만하게 부풀리는 공압 실루엣을 적용했다. 이뿐만 아니라 구명조끼의 디자인을 재킷과 보디슈트에 기발하게 녹여내는 등 아방가르드하면서 실험적인 옷도 대거 선보였다. 산뜻한 플라워 프린트로 가득 채운 라이크라를 포함, 컬렉션에 사용된 소재는 모두 재활용한 나일론, 레이스 등으로 구성됐다. 구제 식탁보에 19세기 스타일의 실크 베일을 결합한 드레스, 빈티지 데님 소재의 남성용 수영 브리프가 눈여겨볼 만한 제품이다.




STELLA MCCARTNEY


스텔라 맥카트니는 채식주의자인 부모님의 영향을 받아 남다른 환경 의식을 자랑한다. 브랜드 탄생 이래 환경과 동물을 보호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해왔고, 이에 대한 일환으로 천연 가죽과 퍼를 사용하지 않고 있다. 버섯 가죽부터 식물성 재료로 만든 가죽 대체재인 ‘미룸mirum’까지, 매 시즌 혁신적인 소재를 선보여온 그녀의 이번 봄·여름 컬렉션은 친환경 소재를 95%까지 끌어올려 더욱 화제가 되었다. 기존 섬유보다 탄소 발자국이 현저히 낮다고 알려진 신소재 ‘켈선KelsunTM’으로 짜 만든 스웨터와 드레스도 공개했는데, 반짝이는 백금 거울 장식을 더해 그 존재감이 더욱 확실했다. 켈선은 해조류에서 발견되는 풍부한 생체 고분자로부터 추출해서 만드는 환경 친화적인 섬유로, 매년 전 세계 해양으로 유입되어 생태계에 해를 끼치는 미세 플라스틱이 없는 것이 특징이다. 아직 상용화되지는 않았으나, 이번 런웨이를 통해 대중에게 확실하게 각인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 것이다. 이 밖에도 스텔라 맥카트니는 환경친화적 소재를 적용한 1970년대 스타일의 턱시도, 편안한 데이웨어 등과 함께 본인들의 방향성을 다시 한번 되짚어보는 시간을 가졌다.




ECKHAUS LATTA


직기에서 생산한 직물을 조각내어 다시 꿰매는 전통적인 의류 제조 공정에서는 낭비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에크하우스 라타는 이러한 직물 제조 공정을 단순화해 초과 재고량을 줄이고 싶었고, 2024 S/S 뉴욕 패션위크에서 최초로 3D 기술을 이용한 바지를 선보였다. 3D 직조 전문 기업 언스펀에서 개발한 ‘베가VegaTM’는 원사를 평평한 시트로 공정하는 대신 튜브처럼 엮어 만드는 최첨단 기술로, 10분 이내에 청바지와 치노 팬츠 같은 다양한 바지를 만들어낼 수 있다. 런웨이 속 금속 포일 원사로 짠 와이드 팬츠와 까칠한 질감을 살린 트위드 팬츠, 데님 팬츠가 바로 이 기술을 활용한 제품. 이들은 얇은 니트 또는 몸에 착 붙는 메시 소재의 톱과 매치되어 관객들의 시선을 단번에 사로잡았다. 3D 직조 기술은 원단의 생산 및 절단 과정이 자동화됨으로써 직물 폐기물과 운송 비용, 시간이 줄어들며 옷을 만들어내는 과정 자체가 짧고 민첩해진다. 에크하우스 라타와 언스펀의 협업은 3D 기술을 패션 산업에 소개하고 섬유 폐기물의 근본 원인인 과잉생산과 비효율적 제조 과정을 다뤘다는 점에서 큰 의의를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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