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셔리> 2024년 3월호

LIVING in SEOUL

태어나고 자란 땅을 떠나 서울에 둥지를 튼 이들이 있다. 각기 다른 나라에서 온 다재다능한 이들이 삶의 터전으로 서울을 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23명의 외국인이 이야기하는 서울의 매력과 이곳에서의 라이프스타일, 아끼는 풍경과 공간들.

EDITOR 정두민 PHOTOGRAPHER 이기태, 이창화

피에르 가니에르 서울 총괄 셰프, 프레데리크 에리에



“서울은 24시간 365일, 환한 불빛이 거리를 비춘다. 치안이 보장되어 있고, 언제 어디서나 필요한 것을 얻을 수 있는 이곳은 외국인이 살기에 정말 좋은 도시다.”


프랑스 아비뇽 지역에서 태어난 프레데리크 에리에는 어렸을 적 미디어를 통해 접했던 ‘1988년 서울 올림픽’이 한국에 대한 첫인상이었다. 그 후 수십 년의 세월이 흘러 방문한 한국은 그때와는 완전히 다른 세상이었다. “2012년에 한국에 처음 발을 들였을 때 어렸을 적 보았던 한국의 모습과 너무 달라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고향에 있는 가족과 친구들은 한국이라는 나라에 대해 잘 알지 못했기 때문에 시시때때로 걱정스러운 안부 전화를 했다.” 가족들의 염려는 현재진행형이지만 프레데리크 에리에는 지난 12년 동안 서울에서의 삶이 만족스러웠다고 말한다. “서울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절대 잠들지 않는 도시’라고 할 수 있다.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을 원하는 때, 원하는 곳에서 언제든지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서울에서의 하루하루가 늘 새로운 경험의 연속이라는 그는 ‘요리계의 피카소’라 불리는 피에르 가니에르의 수제자로 2012년 6월부터 ‘피에르 가니에르 서울’ 총괄 셰프직을 맡고 있다. “셰프라는 직업은 선택한다고 누구나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셰프로서 적합한 능력이 있는 사람만 할 수 있는 일이다. 나 같은 경우는 열네 살에 처음 주방에 선 이후로 한 번도 요리를 쉰 적이 없고, 요리에 대한 열정으로 사람들과 함께 음식을 나눌 때 가장 행복하다.” 30년 넘는 세월 동안 한 가지 일을 이어갈 수 있는 비결은 이런 열정과 실력을 겸비했기 때문이 아닐까. 프레데리크 에리에는 한국에 온 지 십 년이 넘었음에도 여전히 한국말이 서툴고 서울 지리에 익숙하지 않을 정도로 삶의 대부분을 주방에서 보냈다. “집과 직장이 가까워 평소에는 잘 돌아다니지 않는 편이다. 잠시 휴식을 취하고 싶을 때는 높은 빌딩들 사이를 벗어나 집 근처 덕수궁을 방문하거나 전통 도자기를 보러 다닌다. 평화로운 분위기 속에서 잠시 힐링을 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다.” 지금 살고 있는 서울 시청 근처에는 현대 건축물과 전통 건축물이 조화를 이루고 있어 원할 때 언제든 방문할 수 있다는 것이 서울살이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그는 말한다. 인터뷰 당일에도 안부를 묻는 가족의 전화를 받았지만 그는 아직 서울을 떠날 생각이 전혀 없다. “사실 서울에 오기 전에는 이곳에서의 삶을 기대하지 않았다. 하지만 서울에서의 삶은 편리하고 안정적이다. 이곳에서 살아온 12년의 삶에 만족하고, 지금까지 보내온 시간만큼 앞으로의 12년도 서울에서 계속 살고 싶다.”



에빗 레스토랑 셰프, 조셉 리저우드



“서울에서의 삶은 개인적으로도, 일적으로도 성장할 수 있는 기회였다. 이곳에 정착한 것은 내 생애 가장 잘한 일 중 하나다.”


한국의 식재료와 음식 문화에서 영감받아 현대적인 스타일로 재해석한 파인다이닝을 선보이는 레스토랑 ‘에빗’의 셰프, 조셉 리저우드. 호주에서 태어나 미국과 영국 유명 레스토랑을 거치며 경력을 쌓은 그는 세계 각지의 음식과 문화에 대한 지대한 관심으로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미식 프로젝트를 진행하다 2016년에 한국이라는 나라를 처음 접했다. “2016년 서울에서 팝업 레스토랑을 운영하면서 한국 요리의 맛과 기술, 특히 발효 음식에 매료되어 한국이라는 나라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당시 내가 알고 있던 한국의 음식은 바비큐와 김치가 전부였기 때문에 다양한 한국 식재료는 꽤나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는 이를 계기로 한국 요리 문화와 식재료를 본격적으로 파고들기 위해 5년 전, 한국인 아내와 함께 서울에 새로운 둥지를 틀었다. “서울은 거리마다 활기차고 역동적인 에너지를 품고 있다. 고급스러운 코스 요리부터 다채로운 길거리 음식까지 멀리 나가지 않아도 이 모든 것을 경험할 수 있다. 특히 번화한 골목길을 탐험하고 제철 식재료를 찾아다니는 것을 좋아해 경동 시장을 자주 방문한다. 이곳의 신선한 농수산물과 제철 음식을 직접 맛보는 일은 레스토랑에서 새로운 메뉴를 개발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된다.” 모든 외국인이 타지에 살면서 직면하는 전반적인 어려움은 있지만 자신의 활동적이고 탐험적인 성격이 늘 새로운 볼거리를 발견할 수 있는 ‘서울살이’와 잘 맞아 향후 몇 년간, 혹은 평생을 서울에서 살게 될지도 모른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무언가를 끊임없이 탐험하는 열정과 자신이 잘하는 일을 하나로 묶고 싶었던 리저우드는 이를 위해 서울에 레스토랑을 열었다. 지금도 창의적인 메뉴 개발을 위해 전국 각지를 돌아다니며 새로운 식자재를 찾아나선다. “한국에서 5년 가까이 지냈지만, 이곳에서 나고 자란 것은 아니기 때문에 새로운 지역에 가서 그곳의 이야기와 문화를 접하는 일은 늘 새로운 영감이 된다. 특히 한국의 음식 문화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형성하고 사람들을 한곳으로 모이게 하는 수단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러한 관계 중심적인 한국 문화를 배우며 지금껏 하던 대로 한국 식재료와 문화를 열린 시각으로 바라보고 연구하며,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요리를 계속해서 선보일 계획이다.” 리저우드는 본국에 있는 가족과 친구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새로운 것을 탐구하는 투지 하나로 한국에 정착했다. 음식에 대한 열의와 도전 정신으로 가득 찬 그의 행보를 지켜볼 일만 남았다.



튀르키예 전통 미술 ‘에브루’ 아티스트, 세르칸 졸볼든



“아티스트로서의 꿈을 펼치기에 서울은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장소다. 이곳에서 에브루 미술을 국제적으로 널리 알리고 싶다.”


한국에서 튀르키예 전통 미술을 가르치며 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세르칸 졸볼든. 그를 서울로 이끈 건 한국에서 오랫동안 거주하고 있던 형의 우연한 권유였다. “고등학교를 다닐 때부터 형은 이미 한국에서 살고 있었고, 여동생도 나보다 앞서 한국에서 유학 생활을 하고 있었다. 형의 권유로 서울에 여행을 왔다가 나 역시 유학 생활을 시작했고, 지금은 튀르키예어로 ‘에브루’, 영어로 ‘마블링’이라 불리는 아트 작업을 하며 지내고 있다.” 형과 여동생뿐만 아니라 남동생과 어머니까지 온 가족이 한국에 머물고 있어서 남들보다 비교적 빠르게 한국 생활에 적응할 수 있었던 그는 아티스트로서 활동할 수 있게 된 것도 우연의 연속이었다고 말한다. “에브루는 튀르키예에서 12년 동안 취미로 해오던 일이었고, 지금처럼 전문적으로 할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새로운 것을 배우고 다양한 경험을 선호하는 한국 사람들에게 튀르키예 전통 미술을 가르칠 기회가 생기면서 전문 아티스트의 길을 걷게 됐다. 지금은 일주일에 한두 번씩 클래스를 진행하고 있다.” 한국에 살면서 비로소 자신이 진짜로 하고 싶은 일을 찾게 된 그는 에브루 미술을 좀 더 전문적으로 가르치고 알리기 위해 해방촌에서 새롭게 터전을 잡았다. “원래 성수동에 살다가 작업실도 마련할 겸 해방촌으로 거취를 옮겼다. 친구들이 다 이 근처에 살고 있고, 이곳만의 편안한 분위기가 마음에 든다. 지금 서울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이곳에 사는 가장 큰 장점 중 하나는 한국 사람뿐만 아니라 여러 국적의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는 거다. 이를 계기로 에브루를 더 국제적으로 알리고 싶다.” 가족들의 도움으로 서울에 빠르게 정착할 수 있었지만 낯선 타지에서 자신만의 분야를 개척해나가는 것은 그에게도 분명 기진한 일일 터. 이를 극복하기 위해 한국에서 지난 5년이라는 시간을 허투루 보내지 않고자 부단히 노력했다. “처음 서울에 도착했을 때 높은 건물들 사이로 많은 사람이 분주히 움직이는 모습이 마치 ‘멈추지 않는 시계’와 같았다. 하루하루 바쁘게 사는 한국 사람들을 보며 덩달아 정신없이 지내왔다.” 졸볼든은 지난해 튀르키예 대지진 후원 기금 마련 전시와 ‘미술슈퍼마켓’ 아트페어에 참여하며 바쁜 나날을 보냈고, 요즘도 지금껏 선보여온 작품을 대중에게 알릴 개인전을 준비하는 데 여념이 없다. “서울에 5년 가까이 살면서 새로운 언어도 배우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찾게 됐다. 이를 증명할 라는 제목의 개인 전시를 준비하고 있는데, 지금껏 쌓아온 내 노력을 증명할 기회라고 생각한다.”



이탈리아 식료품 유통업체 대표, 테오도로 마라니



“서로 다른 문화를 공유하는 일은 어렸을 적부터 꿈이었다. 한국이라는 무대를 발판 삼아 유럽과 아시아 문화의 연결 고리 역할을 하고 싶다.”


스위스에서 태어나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자란 테오도로 마라니는 대학 시절부터 한국에서 이탈리아 식료품 유통 사업을 하는 현재까지 한국인과 유독 접점이 많았다. “대학 시절 가장 친한 친구 중 한 명이 한국인이라 그 친구를 통해 한국이라는 나라를 처음 접했다. 졸업 후에는 한국에서 다양한 사업을 하고 있는 친구와 인연이 닿으면서 2019년에 서울에 오게 되었고, 운이 좋아 일자리도 바로 구할 수 있었다.” 마라니는 요리를 못하는 가족을 위해 음식을 만들면서 요리를 시작하게 되었고, 서울에서 이탤리언 레스토랑을 운영하며 셰프로서 첫 발자취를 남겼다. “어렸을 때부터 요리를 못하시는 부모님을 위해 여러 가지 요리를 시도했다. 이 경험을 바탕으로 이탈리아 요리를 수년간 연구했고, 내가 만든 음식으로 이탈리아의 식문화를 널리 알리는 데 기여하고 싶었다. 현재는 이탈리아의 식료품과 주류를 수입하는 ‘루프 트레이드 이노베이터Loop Trade Innovators’라는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그는 특히 한국의 음주 문화에 관심이 많다. “한국의 음주 문화는 낯설면서도 흥미롭다. 성별과 나이, 사회적 위치에 따라 역할이 다르고 술을 따라주는 행위 등 특정한 방식으로 행동하는 것이 독특하다. 한번은 본국에 방문할 때 한국에서 파는 숙취 해소제를 들고 간 적이 있었는데, 이탈리아에는 숙취 해소 문화가 없기 때문에 친구들이 무척 신기해했다.” 다른 나라의 문화를 가족이나 친구들과 공유하는 일은 늘 즐겁지만 때론 서울에서의 라이프스타일이 여태껏 살아왔던 방식과는 달라 고충을 겪을 때도 있다고 말한다. “타지에 터전을 잡는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엄청 어려운 일이다. 언어와 문화 장벽에 부딪히기도 하고, 사람들은 타지 사람을 100% 신뢰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외국인으로서 인간관계를 형성하는 데 어려움을 겪으며 향수병에 시달리기도 한다. 하지만 외국인으로서 많은 사람에게 더 각인될 수 있다는 장점도 분명히 있다. 특히 경제·사회·문화적으로 크게 성장을 이룬 서울은 다양한 커뮤니티가 잘 발달되어 있고, 새로운 경험을 늘 마주할 수 있는 기회의 땅이기에 앞으로의 커리어에도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가 마주했던 서울의 첫인상은 강도 높은 노동으로부터 나오는 ‘잠들지 않는 도시’, ‘새로운 기회의 땅’이었다. 이를 발판 삼아 지금껏 셰프로서 몇 가지 업적을 성취했지만 여전히 해야 할 일이 많다고 말한다. “새로운 사업이 업계에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사업가로서 입지를 더 넓혀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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