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세계를 잇는 미술관

솔올미술관이 2월 중순 드디어 개관 소식을 알렸다. 지역 미술관을 넘어 한국과 세계를 잇는 허브로 거듭나리라는 포부를 내세우며 모습을 드러낸 솔올미술관 초대 관장 김석모를 만나 지역 미술관의 비전과 올해의 청사진에 대해 물었다.

EDITOR 이호준 PHOTOGRAPHER 이경옥

김석모  독일 프라이부르크 대학과 쾰른 대학에서 철학과 연극, 영화, 텔레비전학을 공부했으며, 뒤셀도르프 대학에서 미술사 전공으로 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 베이징에서 큐레이터로 활동했으며, 대구미술관 전시팀장과 포항시립미술관 학예팀장을 역임했다.


강릉에 새로운 아트 바람이 일었다. 솔올미술관이 그 진원지다. 개관 전부터 미술관의 건축을 리처드 마이어가 맡았다는 점과 건축물 내부를 채우는 첫 작가가 바로 루치오 폰타나라는 것에서부터 이목을 끌었기 때문. 솔올미술관은 한국 전통 건축의 구성에서 영감을 받아 중앙부에 마련한 마당 공간을 중심으로 크게 3개의 파빌리언으로 이뤄진 독특한 인상을 지니고 있다. 한국의 유교적 유산과 예술 철학을 건축물에 반영하고 싶었던 리처드 마이어의 의지가 담긴 것. 내부에서는 루치오 폰타나의 개인전 <공간, 기다림>의 하이라이트인 네온 공간 설치 작업이 2층의 전시실을 가득 메운 것을 볼 수 있다. 캔버스를 칼로 베거나 구멍을 뚫어 회화의 평면성에서 벗어나 공간을 작품의 일부로 만든 ‘Tagli(베기)’ 연작과 ‘Buchi(뚫기)’ 시리즈 등도 곁을 지켰다. 이와 함께 한국 미술사와 세계의 미술사적 흐름과 연결 짓는 프로젝트 ‘In Dialogue’의 일환으로 열리는 전시에는 한국 작가 곽인식의 작품이 걸렸다. 시작부터 화려한 솔올미술관 개관의 중심에는 대구미술관 전시팀장, 포항 스틸아트 뮤지엄 학예팀장을 지내며 지역 미술관에서 잔뼈가 굵은 김석모 관장이 있다.


드디어 솔올미술관이 오픈했습니다. 역사의 시작을 함께한다는 점에서 감회가 남다를 것 같습니다.

미술관은 예술적 상상력과 영감, 그리고 인문학적 상상력을 전할 수 있는 공간이어야 합니다. 하지만 국공립 미술관의 경우는 현실적으로 이러한 이상향을 실현하기에 여러 현실적인 제약이 뒤따릅니다. 그래서 전임 강릉 시장님께 솔올미술관 초대 관장 제의를 받았을 때 이를 수락한다는 전제하에 요청한 사안은 ‘미술관은 미술 관공서가 아니니 세계적 미술관으로서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미술사적 맥락과 연구가 필요하며, 미술에 대한 존중과 미술관 운영에 대한 최대한의 자율성을 보장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미술관의 방향성과 운영 철학, 미술관 외관과 내부 디자인에 대해 논의하는 과정에서 미술관과 함께 새로운 비전을 그릴 수 있을 것 같아 합류하게 됐습니다.


개관전 작가 선정도 고심했을 텐데요. 루치오 폰타나를 첫 개관전 작가로 선정하신 연유가 궁금합니다. 특히, 루치오 폰타나의 경우는 아시아 미술관 최초로 6점의 네온 공간 설치 작업을 선보인다고 들었습니다.

솔올미술관이 지향하는 것 중 하나가 ‘진화’입니다. 미술사적 맥락에서 과거에 존재한 미술의 갈래가 현재에 어떻게 적용되고 미래의 예술에 어떻게 영향을 줄 수 있을지를 제안하는 것에 목적을 둡니다. 빛을 이용한 라이트 아트, 몰입형 미술 등 현대미술의 혁신적인 움직임을 조형적으로 실험한 선구자라 평가받는 루치오 폰타나의 예술 세계가 미술관의 지향점과 맞닿아 있다고 봤습니다. 지금의 몰입형 아트는 오감을 자극하는 형식으로 전개되는 경우가 많아요. 대개는 스펙터클한 연출을 동반하죠. 하지만 여러 감각이 동시에 자극을 받는다는 건 몰입보다는 체험에 가까워요. 폰타나의 설치 예술 작업은 조각의 전통 위에서 비물질인 빛을 작품과 공간의 영역으로 가져와 관객이 몰입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작품에만 집중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예술이 어떠한 방식으로 관객을 몰입하게 만들어야 하는지에 대한 고찰을 제시하고 몰입형 아트의 발전의 여지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폰타나의 전시가 솔올미술관의 처음을 장식한다는 건 굉장한 상징성이 있습니다.


솔올미술관이 지역 미술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고심도 많았을 텐데요.

미술관이 지역의 정체성이 되고 지역 문화를 선도할 수 있음은 이미 해외의 여러 사례를 통해 입증됐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스페인의 빌바오 뮤지엄일 테죠. 도시가 낙후되어가는 과정에서 프랭크 게리의 건축물이 들어섰고, 세계적인 미술가의 작품이 전시되자 미술관이 지역의 랜드마크가 되더니 이내 스페인을 대표하는 미술관이 되었습니다. 지역적 정체성을 간과해서는 안되지만, 미래에 열어갈 강릉의 문화예술적 발전을 바라봐야 합니다. 리처드 마이어라는 세계적인 건축가의 건축이라는 점과 루치오 폰타나라는 거장의 전시가 열린다는 소식만으로 외신에서도 솔올미술관에 대해 주목했습니다. 예술이 있는 곳이면 한국 어디든 주목을 받을 수 있는 여지가 충분하다는 것을 엿본 신호탄이었죠.


솔올미술관의 궁극적인 지향점은 무엇인가요?

미술관은 미학적 담론의 장이 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세계 미술사적 맥락과 한국 미술계가 솔올 미술관을 통해 조응할 수 있게끔 하는데 목적을 두고 있습니다. 이러한 맥락의 프로그램이 바로 ‘In Dialog’ 프로젝트예요. 루치오 폰타나의 개인전과 곽인식 작가의 개인전을 함께 전개하는 이유입니다. 두 작가 사이에 직접적인 교류가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In Dialog’ 프로젝트를 통해 문화적, 역사적 배경이 다른 동시대 두 미술가의 작품이 어떻게 하나의 맥락으로 읽히고, 또 어떤 차별점이 있는지에 대해 비교 감상해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합니다.



리처드 마이어가 설계한 솔올미술관의 전경. 3개의 파빌리언이 모두가 자연과 조화를 이루어 미학의 극치를 체감할 수 있다.

내부에서는 루치오 폰타나의 전시가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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