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셔리> 2024년 3월호

FASHION FANTASY

패션에 대한 꿈과 환상을 현실 세계로 소환시킨 2024년 봄·여름 오트 쿠튀르 컬렉션. 옷을 ‘입는다’는 원론적 개념을 넘어 하나의 아트 피스로 승화한 오트 쿠튀르의 세계.

EDITOR 이민정

MAISON MARGIELA

메종 마르지엘라와 함께한 10년을 기념하듯, 존 갈리아노는 패션 신에서 오래도록 회자될 만한 오트 쿠튀르 컬렉션을 공개했다. 1년 동안 준비한 이번 컬렉션은 존 갈리아노가 파리의 부랑자에게서 영감받아 선보였던 지난 2000년 디올 쿠튀르 쇼의 업그레이드 버전을 보는 듯하다. 1930년대 축축하고 어두운 파리의 클럽과 뒷골목을 재현한 알렉상드르 3세 다리 아래에서 모델들은 섬세한 쿠튀르 기법으로 완성한 의상을 입고 연기하듯 골목길을 누볐다. 보디라인을 부각한 코르셋, 회화적인 프린트를 더한 튈 드레스, 크리스찬 루부탱과 협업해 제작한 펌프스 등 존 갈리아노의 장기를 극대화한 룩으로 쇼의 분위기를 한층 드라마틱하게 연출했다.



CHANEL


버지니 비아르는 오트 쿠튀르 컬렉션을 준비하면서 샤넬과 떼려야 뗄 수 없는 발레, 무용에 집중했다. 특히 올해는 가브리엘 샤넬이 발레를 위한 첫 디자인을 선보인 지 100주년이 된 해인 만큼 이를 위한 서정적인 컬렉션을 완성했다. 샤넬 코드를 엿볼 수 있는 거대한 단추 아래 하우스의 앰배서더인 마거릿 퀼리가 등장했고, 뒤이어 우아하고 여성스러운 발레코어 룩이 주를 이뤘다. 컬러 팔레트는 프랑스 발레단 ‘발레 뤼스’의 색채에서 영감받았고, 드레스·점프슈트·짧은 케이프에 드레이퍼리, 리본, 일루전 튈 포켓 등 장식적 요소를 가미했다.



GIAMBATTISTA VALLI


꽃, 장미, 자연을 쿠튀르적으로 재해석한 지암바티스타 발리의 2024년 봄·여름 오트 쿠튀르 컬렉션. 자연의 생명력과 장미의 아름다움을 의복에 적용해 벨벳 보디슈트에 흰 장미를 가득 장식하고, 풍성한 드레이프의 드레스를 팽창시켜 극적인 볼륨감을 자랑한다. 이뿐만 아니라 헤어피스에도 다채로운 장미를 장식해 향기로운 장미 화원에 온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VALENTINO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피엘파올로 피춀리는 이번 컬렉션을 소개하기 위해 관객들을 살롱으로 초대했다. 살롱의 상징적인 의미와 오트 쿠튀르의 본질이 맞닿아 있다는 점에 주목해 가장 동시대적인 워드로브를 완성했다. 텍스타일 기술력으로 완성한 독특한 텍스처의 패브릭과 레더 소재, 깃털과 퍼로 화려함을 끌어올린 룩, 시퀸 소재를 절개한 독창적인 디자인의 룩 등 오트 쿠틔르의 본질적인 의미를 담고자 했다.



SCHIAPARELLI


대니얼 로즈베리의 상상의 끝은 어디일까. 또 어떤 기상천외함으로 패션 판타지를 선보일지 오트 쿠튀르 기간이 다가오면 기대감을 증폭시킨다. 이런 마음을 잘 안다는 듯 ‘스키아파-에일리언Schiapar-alien’이라는 테마로 ‘3D 척추’ 장식이나 , 얼굴까지 뒤덮은 비즈 장식 드레스, 전자 부품과 주얼 스톤을 장식한 드레스 등 초현실적 퓨처리즘과 ‘백 투 더 퓨처’의 향수를 동시에 담았다. 입는 재미보다 보는 재미를 선사하는 쿠튀르의 묘미를 만끽할 수 있다.



DIOR


마리아 그라치아 치우리는 하우스의 유산을 현대적으로 풀어낸 룩으로 2024 S/S 오트 쿠튀르 컬렉션을 꾸렸다. 1952 F/W 컬렉션에서 선보인 ‘라 시갈La Cigale’ 드레스에 무슈 디올이 사랑한 무아레moire 패턴을 적용하고, 아워글래스 실루엣인 ‘뉴룩’ 스타일을 대거 등장시킨 것. 과장된 실루엣과 초현실적인 룩이 즐비한 오트 쿠튀르 컬렉션 사이에서 외려 눈길을 끈 착장이었다. 플라워 자수 장식, 깃털 케이프 등 쿠튀르적 오라aura도 엿볼 수 있었다.



JEAN PAUL GAULTIER


2020년 1월, 장 폴 고티에가 은퇴한 뒤부터 게스트 디자이너를 초대해 오트 쿠튀르 컬렉션을 전개해온 장 폴 고티에. 지난 시즌 라반의 줄리앙 도세나에 이어 바통을 이어받은 주자는 바로 시몬 로샤. 주특기인 리본과 보 디테일로 브랜드 아카이브를 소녀풍으로 재해석한 의상은 쇼 직후, SNS의 피드를 점령하며 그녀의 영향력을 다시금 상기시켰다. 장미 가시 모양의 콘 브라, 리본으로 표현한 스트라이프 패턴, 오간자 소재의 드레스에 장식한 뱀 프린팅 등 그녀의 감성으로 재탄생한 장 폴 고티에의 아이템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FENDI


실루엣에 의한, 실루엣을 위한 오트 쿠튀르 컬렉션을 선보인 펜디. 상자를 뜻하는 스카톨라scatola 실루엣의 블랙 튜브 톱 드레스를 오프닝으로 실루엣 속의 또 다른 실루엣을 가미한 드레스, 보디라인을 타고 흐르는 듯한 유연한 소재의 드레스 등 현실과 이상 사이를 아슬하게 오가는 룩이 즐비했다. 정확성과 감성을 동시에 아우르고 싶다는 아티스틱 디렉터 킴 존스의 의도가 여실히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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