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셔리> 2024년 2월호

아티스트가 AI를 활용하는 방법

예술은 언제나 시대를 앞선다. 그러기 위해 예술가들은 가장 첨단의 기술을 활용하고, 그 과정에서 생각지도 못한 방식으로 그 가능성을 확장한다. 인공지능을 작업의 파트너로 활용하는 4명의 젊은 아티스트 역시 마찬가지다.

GUEST EDITOR 정규영

REFIK ANADOL


‘Living Architecture’, 그러니까 살아 있는 건축. 튀르키예 출신의 미디어 아티스트 레픽 아나돌은 지난 2022년 5월 7일, 5만여 명의 관중 앞에서 안토니 가우디의 기념비적 건축, 카사 바트요Casa Batlló 건물 전면에 디지털 매핑digital mapping 방식으로 인공지능이 학습한 마드리드 지역의 기후 데이터와 역사적 사건을 시각화한 영상을 투사했다. ‘기억과 감정’이라는 인간 고유의 영역을 데이터화하고, 인공지능에 학습시켜 탄생한 작품들로 주목받는 아나돌의 ‘Living Architecture: Casa Batlló’는 카사 바트요의 건축적 아름다움을 새로운 빛으로 조명하고, 관객들에게 이 건축물을 전혀 새로운 관점에서 경험하도록 돕는다. 건축과 예술, 인공지능 기술의 경계를 넘나드는 현대미술의 새로운 장을 연 프로젝트. 뉴욕 맨해튼 록펠러 플라자에도 실시간으로 중계된 이 다층적 프로젝트는 아티스트가 2021년 카사 바트요 내부에 설치한 ‘가우디의 마음속에서In the Mind of Gaudi’라는 AI 몰입형 공간 예술 프로젝트에서 시작되었다. 가우디의 스케치, 건물의 역사에 관한 시각적 아카이브, 인터넷과 SNS를 통해 수집한 카사 바트요의 방대한 이미지 데이터를 학습한 생성형 인공지능과 함께 완성한 ‘Living Architecture: Casa Batlló’ 프로젝트는 ‘역동적dynamic NFT’로 2022년 5월 11일 크리스티 옥션에서 138만 달러(약 18억 원)에 낙찰되었다. 레픽 아나돌이 생성형 인공지능과 협업해 만들어내는 독특한 디지털 매핑 영상은 최근 라스베이거스의 원형 공연장 ‘스피어Sphere’를 통해 더 많은 사람과 만나고 있다. refikanadol.com




SOUGWEN CHUNG


중국계 캐나다 아티스트 수젠 청은 인간과 비인간 사이의 협업을 탐구하는 런던 기반의 아트 스튜디오 ‘실리셋Scillicet’의 창립자이자 예술감독으로 활동하고 있다. 수젠 청은 로봇 팔과의 협업 드로잉이라는 독특한 작업 형식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는 자기 방식대로 그림을 그리고 그 과정에서 붓질의 세기, 팔의 움직임과 패턴 등을 데이터로 기록, 인공지능에게 학습시킨 후 로봇에 적용한다. 청이 그림 그리는 방식을 학습한 로봇 팔은 작가의 스타일과 기법을 모방해 함께 그림을 그리는데, 이 과정에서 수젠 청은 예상치 못한 발견을 했다고 한다. 인공지능과 로봇도 실수를 한다는 것. 청은 “인간과 기계 시스템의 아름다움은 그들의 공유된 오류 가능성과 그 고유함에 있다”라고 이야기한다. 기술과 예술의 경계를 넘나드는 수젠 청은 로봇의 실수와 불완전함을 받아들이며, 그것이 그의 작업을 더욱 흥미롭게 만든다고 설명한다. 인간과 기계 간의 창조적 협업으로 탄생한 결과물은 무척 서정적이며 전에 없던 방식으로 동양적이다. 수젠 청이 로봇과 함께 무대에서 라이브 드로잉을 하는 퍼포먼스 역시 무척 인상적인데, 기계의 알고리즘적 특성과 인간의 직관적·감성적 요소를 결합, 새로운 차원의 협업을 제시한다. 그 독특한 스펙터클 앞에선 인간과 기계 사이의 상호작용과 그 관계에 대한 깊은 사유가 자연스럽게 피어오르게 마련이다. 예기치 못한 기계의 오류가 만들어낸, 지극히 인간적인 예술. 수젠 청은 인간의 방식을 충실히 학습하는 것 이상의 아직 밝혀지지 않은 인공지능의 가능성을 지속적으로 탐구한다. 흥미롭다면 수젠 청의 TED 강연도 확인할 것. sougwen.com




QUAYOLA


본명 다비데 콸리올라Davide Quagliola, 이탈리아 출신의 미디어 아티스트 콰이올라는 가장 고전적인 예술과 인공지능을 비롯한 가장 현대적인 기술을 결합, 이전에 본 적 없던 결과물을 완성한다. 그는 그리스, 로마 시대와 르네상스 시대 조각 작품의 디자인과 형태를 인공지능 알고리즘을 통해 학습시켜 로봇 팔이 조각하게 하는 조형 작업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는 기존의 수작업 방식 조각과 완전히 다르며, 평면으로만 경험할 수 있었던 도트 페인팅의 삼차원적 실현이라는 독특한 방식의 조각이라 할 수 있다. 로봇이 실행하는 알고리즘은 인간이 설계했지만, 실제 조각 과정에서 원래 의도와 조금씩 어긋나는 결과물이 이 협업을 더욱 흥미롭게 만든다. 콰이올라의 조각 작업에서 인공지능과 로봇은 단순한 도구를 넘어서 예술 창작의 중요한 요소로 자리 잡는다. 이러한 기술의 활용은 예술적 표현의 새로운 차원을 열어주며, 인간과 기계 간의 상호작용을 통한 예술적 혁신이라는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다. 로봇 팔이 완성하는 섬세한 조각은 고대 조각가들의 노고와 첨단 기술의 정밀함이 어우러진 것으로 현대 예술에 새로운 지평을 여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콰이올라의 작업은 예술과 기술의 교차점에서 끊임없이 변화하고 발전하는 동시대 미술의 모습을 담아낸다. 그의 작업은 예술이 단순히 인간의 손길에 의해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인공지능을 비롯한 첨단기술과의 교류를 통해 새로운 차원으로 확장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콰이올라의 예술적 탐구는 우리에게 예술의 미래가 어떤 모습일지에 대한 흥미로운 통찰을 제공하며, 디지털 시대의 아티스트로서 고유한 역할을 입증한다. quayola.com




KANG HYUNSEON 


강현선은 서울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현대미술 작가다. 그는 뉴 미디어 설치, 회화와 영상, 사운드, 프린트, 게임 등 다양한 매체를 넘나드는 작업을 통해 건축적 공간과 심리적 공간을 만드는 시선의 구성을 질문하고, 특유의 위트와 그 그림자로서 고독한 감정을 표현한다. 디지털 매체가 자아와 욕망에 끼치는 영향은 섬뜩한 가상공간, 희미한 오브제, 무표정한 캐릭터 등으로 나타나는데, VR과 게임 엔진을 통해 구현한 가상공간은 해방의 장소이자 욕망의 세계이기도 하다. 작가가 지난 2022년 아트선재센터에서 개최한 <포스트-미Post-Me> 전시의 제목은 인공지능이 제안한 것. 접두사 ‘post’의 의미처럼 ‘나’를 벗어나고 초월하며, 그 이후 및 너머를 묻기도 하는 다양한 작업에 인공지능이 주요한 역할을 한다. 작가는 영국 식물학자 조지프 뱅크스Joseph Banks가 확립한 현대 식물 분류 체계로는 설명할 수 없는 가상의 식물 이미지를 인공지능과 함께 만들고, 뱅크스가 쓴 일지를 변형하게 한다. “앞부분에는 뱅크스의 정체성이 드러나는 반면, 뒷부분에는 그것들이 지워져 사라집니다. 제가 정체성을 지운 텍스트를 산출하라는 명령을 한 것이 아닌데도요.” 작가는 인간이 의도를 갖고 지시하지만, 그 정확한 결과를 예측하기는 어려운 인공지능의 불확실성에 주목한다. “어쩌면 우리가 안고 있는 여러 문제들 중에는 기술(과 예술)이 해결 가능한 것도 있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인공지능의 예측 불가능성이라는 불안하고 또 모호한 희망. 역설적이면서도 흥미로운 가능성을 제시하는 것, 어느 시대가 되었든 명백히 젊은 예술가가 해야 할 일이다. hyunseonk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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