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셔리> 2024년 1월호

브루크너 탄생 200주년

20세기가 도래하기 직전, 교향곡의 새로운 챕터를 연 작곡가 안톤 브루크너Anton Bruckner가 올해로 탄생 200주년을 맞았다. ‘초월의 음악가’ 브루크너를 기리기 위해 전 세계 음악계가 준비 중인 공연과 이벤트, 새로 발매된 기념 음반 등을 모아 소개한다.

GUEST EDITOR 박지혜



흔히 말러와 브루크너의 음악은 클래식 음악 감상, 혹은 교향곡 감상의 종착지로 여겨지곤 한다. 적응하기 쉽지 않은 대담한 화성과 구조의 복잡성, 그리고 쉽사리 손에 잡히지 않는 심오한 주제 의식, 무엇보다 짧게는 60분에서 길게는 2시간가량 이어지는 곡의 길이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이 오랫동안 애호가들에게 사랑받는 이유 역시 다분하다. 과거의 교향곡에서 볼 수 없던 신선한 시도, 대규모 오케스트라만이 선사할 수 있는 장대한 사운드와 규모의 희열감, 그리고 두드러지는 음악성 때문이다. 과거 두 작곡가에 모두 정통했던 명지휘자 베르나르트 하이팅크는 “말러는 언제나 나를 두렵게 하고 흥분시키는 반면, 브루크너는 언제나 마음의 위안을 준다”라고 말했다. 혹자는 “말러는 평생 신을 찾아 헤맨 음악, 브루크너는 마침내 신을 찾은 음악”이라고 두 작곡가를 비교하기도 한다. 이런저런 의견에도 불구하고 중론이 있다면, 오르가니스트이자 세상과 거리를 둔 은둔자였던 브루크너의 교향곡에서 ‘삶을 초월한 충만의 경지’를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이다. 브루크너 탄생 200주년을 맞은 2024년은 그런 의미에서 일명 ‘브루크네리안’들에게 축복의 한 해가 될 전망이다. 해석의 난도와 장대한 스케일 덕에 자주 만나보기 힘든 브루크너의 곡이 세계 전역에서 끊임없이 연주될 예정이기 때문. 브루크너의 나라 오스트리아에서 펼쳐질 공연, 세계 명악단의 브루크너 교향곡 사이클, 국내에서 선보일 브루크너 교향곡 공연 등을 모아 소개한다.





브루크너의 고향, 린츠에서 열리는 기념 축제들

브루크너의 나라 오스트리아와 그가 젊은 시절을 보낸 오스트리아 북부의 작은 도시 린츠Linz는 2024년 ‘브루크너 200’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성대한 기념행사와 공연을 선보인다. 우선, ‘미래의 박물관’이라는 애칭을 가진 아르스 일렉트로니카 센터The Ars Electronica Center는 브루크너의 음악과 사상을 주제로 한 ‘인터랙티브 사운드’ 전시를 선보인다. ‘딥 스페이스 8K’라 이름 붙은 멀티 전시실에서 아르스 일렉트로니카 퓨처 랩이 개발한 몰입형 사운드 설치 작업을 통해 브루크너의 사상과 음악을 재조명하는 것. 노르디코 도시역사박물관Nordico Stadtmuseum에서는 라는 전시를 통해, 당대의 음악 천재가 남긴 기록물과 음악적 유산을 6가지 테마로 정리해 선보일 예정이다. 모든 행사 중 하이라이트라 할 만한 것은 브루크너가 20~30대의 젊은 날을 오르가니스트로 보낸 ‘성 플로리안 성당’에서 열리는 음악 축제다. 5월부터 10월까지 성당 내부에는 브루크너의 꿈과 비전을 경험할 수 있는 다양한 시각예술품이 전시될 뿐 아니라, 브루크너 음악을 담은 4000점 이상의 레코딩을 들을 수 있는 청취실도 마련된다. 이 밖에도 지휘자 마르쿠스 포슈너가 브루크너 오케스트라 린츠와 함께 선보이는 콘서트, 어린이와 유스 오케스트라가 주축이 되는 다양한 공연이 펼쳐진다.

진정한 브루크네리안이라면, 린츠를 대표하는 오케스트라 브루크너 오케스트라 린츠가 상주하는 ‘브루크너하우스Brucknerhaus’의 9월, 10월 공연을 놓쳐서는 안 될 것이다. 모든 공연이 사상 최초로 ‘오리지널 사운드’, 즉 브루크너가 교향곡을 작곡했을 당시인 100여 년 전 실제로 사용된 악기들로 연주될 예정이기 때문. 동물의 내장을 사용한 일명 ‘거트 현’ 악기, 빈 목관악기 등 당시 브루크너의 머릿속에 있던 사운드를 그대로 만나볼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이 될 것이다. 켄트 나가노, 아담 피셰르, 파블로 에라스 카사도, 필리프 헤레베허 등의 지휘자가 이 특별한 여정에 함께한다.



전 세계 교향악단이 펼치는 브루크너의 향연

베를린 필하모닉은 2024년 상반기 주요 공연을 ‘브루크너’ 레퍼토리로 시작한다. 낭만주의 흔적이 남아 있는 브루크너의 가장 대중적인 명곡, 교향곡 4번 ‘로맨틱’을 대니얼 하딩의 지휘로 1월 18~20일 3일간 선보일 예정. 뒤이어 지휘자 크리스티안 틸레만은 브루크너의 정식 교향곡에 포함되지 않는 ‘습작 교향곡’과 이른바 ‘0번 교향곡’이라 불리는 ‘Nullified’를 관객들과 공유한다. 브루크너의 명백한 스타일이 정립되기 이전의 작품들을 실연으로 접할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로 2월 29일부터 3월 2일까지 세 차례 공연할 예정이다.

세계 3대 악단 중 하나인 네덜란드의 로얄 콘세르트헤바우는 브루크너 탄생 200주년을 맞아, 약 1년 반에 걸쳐 그의 교향곡 9곡 전곡 사이클을 진행한다. 9개의 교향곡은 각기 다른 지휘자가 맡을 예정이며, 9명 지휘자의 면면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화려하다. 이반 피셰르가 12월 17일에 지휘하는 3번 교향곡에 이어 2024년 1월 19일에는 정명훈이 7번 교향곡을 지휘할 예정이며, 5월 2일에는 클라우스 메켈레가 5번 교향곡을 선보인다. 뒤이어 크리스티안 틸레만이 8번, 앤드루 맨즈가 2번, 야프 판즈베던이 4번, 블라디미르 유롭스키가 1번, 사이먼 영이 6번을 선보일 예정이며, 2025년 2월 리카르도 샤이의 9번으로 그 대장정이 마무리된다.

브루크너가 음악가로서의 전성기를 보낸 빈에서도 그의 200년을 축하하는 공연이 열린다. 빈필하모닉은 2월, 프란츠 벨저 뫼스트의 지휘로 교향곡 9번을 선보이는 데 이어, 거장 주빈 메타는 빈 필하모닉과 3월에만 약 여섯 차례 브루크너 교향곡 7번을 들려줄 예정이다. 한국에서는 KBS교향악단과 서울시립교향악단의 연주로 브루크너를 만날 수 있다. KBS교향악단은 7월 18일엔 한스 그라프의 지휘로 브루크너의 미완성 교향곡 9번을, 9월 27일엔 피에타리 잉키넨의 지휘로 브루크너 교향곡 5번을 들려줄 예정. 서울시립교향악단은 12월 12일과 13일 야프 판 즈베던이 선사하는 교향곡 7번을 연주한다.



브루크너 탄생 200주년을 기념하는 음반

  브루크너 탄생 200주년을 맞아 과거 로얄 콘세르트헤바우가 거장 지휘자들과 함께 녹음한 브루크너 교향곡 전곡 실황을 알차게 담았다. 1972년부터 2012년까지 열린 전설적인 공연 실황들을 선별했으며 지휘자 베르나르트 하이팅크(1번, 7번), 리카르도 샤이(2번, 9번), 쿠르트 잔데를링(3번), 클라우스 텐슈테트(4번), 오이겐 요훔(5번), 마리스 얀손스(6번), 주빈 메타(8번)의 연주가 수록되었다. 대부분 미발매 음반을 한데 모은 것으로, 상세한 해설도 함께 담겨 있다. RCO

  오스트리아와 독일 낭만주의 레퍼토리의 권위자인 지휘자 크리스티안 틸레만이 빈 필하모닉과 함께 녹음한 브루크너 교향곡 전집. 수록된 9개의 교향곡 외에도 브루크너의 초기작인 ‘Nullified’와 ‘습작 교향곡’까지 더해, 브루크너의 음악적 보물을 전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도록 했다. 작곡가와 각 교향곡에 대한 166페이지에 달하는 광범위한 라이너 노트가 담겨 있으며, 총 11장의 CD로 구성되어 있다. 소니 뮤직

  독일 게반트하우스오케스트라의 음악감독 안드리스 넬손스의 ‘브루크너’에 대한 해석을 만날 수 있는 박스반이다. 기존에 게반트하우스오케스트라와 녹음한 1번부터 9번 교향곡에, ‘0번 교향곡’이라 불리는 ‘Nullified’를 더해 완성한 교향곡 전집이다. 독특한 점은 브루크너에게 막대한 영향력을 끼친 바그너의 관현악 작품을 수록했다는 점. ‘지그프리트의 목가’, ‘로엔 그린’, ‘탄호이저’ 등의 명곡을 함께 만날 수 있다. 도이치 그라모폰



COOPERATION  오스트리아 관광청(austria.info), 브루크너하우스(brucknerhaus.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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