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말러와 브루크너의 음악은 클래식 음악 감상, 혹은 교향곡 감상의 종착지로 여겨지곤 한다. 적응하기 쉽지 않은 대담한 화성과 구조의 복잡성, 그리고 쉽사리 손에 잡히지 않는 심오한 주제 의식, 무엇보다 짧게는 60분에서 길게는 2시간가량 이어지는 곡의 길이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이 오랫동안 애호가들에게 사랑받는 이유 역시 다분하다. 과거의 교향곡에서 볼 수 없던 신선한 시도, 대규모 오케스트라만이 선사할 수 있는 장대한 사운드와 규모의 희열감, 그리고 두드러지는 음악성 때문이다. 과거 두 작곡가에 모두 정통했던 명지휘자 베르나르트 하이팅크는 “말러는 언제나 나를 두렵게 하고 흥분시키는 반면, 브루크너는 언제나 마음의 위안을 준다”라고 말했다. 혹자는 “말러는 평생 신을 찾아 헤맨 음악, 브루크너는 마침내 신을 찾은 음악”이라고 두 작곡가를 비교하기도 한다. 이런저런 의견에도 불구하고 중론이 있다면, 오르가니스트이자 세상과 거리를 둔 은둔자였던 브루크너의 교향곡에서 ‘삶을 초월한 충만의 경지’를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이다. 브루크너 탄생 200주년을 맞은 2024년은 그런 의미에서 일명 ‘브루크네리안’들에게 축복의 한 해가 될 전망이다. 해석의 난도와 장대한 스케일 덕에 자주 만나보기 힘든 브루크너의 곡이 세계 전역에서 끊임없이 연주될 예정이기 때문. 브루크너의 나라 오스트리아에서 펼쳐질 공연, 세계 명악단의 브루크너 교향곡 사이클, 국내에서 선보일 브루크너 교향곡 공연 등을 모아 소개한다.
브루크너의 고향, 린츠에서 열리는 기념 축제들
브루크너의 나라 오스트리아와 그가 젊은 시절을 보낸 오스트리아 북부의 작은 도시 린츠Linz는 2024년 ‘브루크너 200’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성대한 기념행사와 공연을 선보인다. 우선, ‘미래의 박물관’이라는 애칭을 가진 아르스 일렉트로니카 센터The Ars Electronica Center는 브루크너의 음악과 사상을 주제로 한 ‘인터랙티브 사운드’ 전시를 선보인다. ‘딥 스페이스 8K’라 이름 붙은 멀티 전시실에서 아르스 일렉트로니카 퓨처 랩이 개발한 몰입형 사운드 설치 작업을 통해 브루크너의 사상과 음악을 재조명하는 것. 노르디코 도시역사박물관Nordico Stadtmuseum에서는
진정한 브루크네리안이라면, 린츠를 대표하는 오케스트라 브루크너 오케스트라 린츠가 상주하는 ‘브루크너하우스Brucknerhaus’의 9월, 10월 공연을 놓쳐서는 안 될 것이다. 모든 공연이 사상 최초로 ‘오리지널 사운드’, 즉 브루크너가 교향곡을 작곡했을 당시인 100여 년 전 실제로 사용된 악기들로 연주될 예정이기 때문. 동물의 내장을 사용한 일명 ‘거트 현’ 악기, 빈 목관악기 등 당시 브루크너의 머릿속에 있던 사운드를 그대로 만나볼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이 될 것이다. 켄트 나가노, 아담 피셰르, 파블로 에라스 카사도, 필리프 헤레베허 등의 지휘자가 이 특별한 여정에 함께한다.
전 세계 교향악단이 펼치는 브루크너의 향연
베를린 필하모닉은 2024년 상반기 주요 공연을 ‘브루크너’ 레퍼토리로 시작한다. 낭만주의 흔적이 남아 있는 브루크너의 가장 대중적인 명곡, 교향곡 4번 ‘로맨틱’을 대니얼 하딩의 지휘로 1월 18~20일 3일간 선보일 예정. 뒤이어 지휘자 크리스티안 틸레만은 브루크너의 정식 교향곡에 포함되지 않는 ‘습작 교향곡’과 이른바 ‘0번 교향곡’이라 불리는 ‘Nullified’를 관객들과 공유한다. 브루크너의 명백한 스타일이 정립되기 이전의 작품들을 실연으로 접할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로 2월 29일부터 3월 2일까지 세 차례 공연할 예정이다.
세계 3대 악단 중 하나인 네덜란드의 로얄 콘세르트헤바우는 브루크너 탄생 200주년을 맞아, 약 1년 반에 걸쳐 그의 교향곡 9곡 전곡 사이클을 진행한다. 9개의 교향곡은 각기 다른 지휘자가 맡을 예정이며, 9명 지휘자의 면면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화려하다. 이반 피셰르가 12월 17일에 지휘하는 3번 교향곡에 이어 2024년 1월 19일에는 정명훈이 7번 교향곡을 지휘할 예정이며, 5월 2일에는 클라우스 메켈레가 5번 교향곡을 선보인다. 뒤이어 크리스티안 틸레만이 8번, 앤드루 맨즈가 2번, 야프 판즈베던이 4번, 블라디미르 유롭스키가 1번, 사이먼 영이 6번을 선보일 예정이며, 2025년 2월 리카르도 샤이의 9번으로 그 대장정이 마무리된다.
브루크너가 음악가로서의 전성기를 보낸 빈에서도 그의 200년을 축하하는 공연이 열린다. 빈필하모닉은 2월, 프란츠 벨저 뫼스트의 지휘로 교향곡 9번을 선보이는 데 이어, 거장 주빈 메타는 빈 필하모닉과 3월에만 약 여섯 차례 브루크너 교향곡 7번을 들려줄 예정이다. 한국에서는 KBS교향악단과 서울시립교향악단의 연주로 브루크너를 만날 수 있다. KBS교향악단은 7월 18일엔 한스 그라프의 지휘로 브루크너의 미완성 교향곡 9번을, 9월 27일엔 피에타리 잉키넨의 지휘로 브루크너 교향곡 5번을 들려줄 예정. 서울시립교향악단은 12월 12일과 13일 야프 판 즈베던이 선사하는 교향곡 7번을 연주한다.
브루크너 탄생 200주년을 기념하는 음반
COOPERATION 오스트리아 관광청(austria.info),
브루크너하우스(brucknerhaus.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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