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2월호

비로소 내뱉는 숨, 이나래

홀로서기는 힘든 법이다. ‘이날치’의 멤버로 모두에게 익숙했던 이나래는 자신의 이름 석 자의 무게를 고스란히 혼자서 짊어질 준비를 마쳤다. 이제 오랫동안 참았던 숨을, 노래를 내뱉을 시간이다.

EDITOR 정송 PHOTOGRAPHER 김제원

튈 드레스는 소라폴 런던. 레더 팬츠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슈즈는 코스. 이어링은 포트레이트 리포트.


1986년생 이나래는 국립국악고등학교를 거쳐 서울대학교 국악과를 졸업한 전통 소리꾼의 길을 걸어온 인재다. 국악에 대한 풍부한 이해를 바탕으로 현대적인 팝 스타일과 힙합, 얼터너티브 음악 등을 모두 조화롭게 소화하며 자신만의 장르를 개척해나가고 있다.



이나래는 2019년 결성된 이날치의 보컬리스트로서 ‘범 내려온다’, ‘별주부가 울며 여짜오되’ 등과 같은 히트작으로 대중에게 널리 목소리를 알렸다. 이들과 함께 활발하게 활동했지만 긴 고민 끝에 2023년 초 비로소 꾹꾹 눌러 담은 것들을 노래로 뱉어보기로 결심했다. 누구의 간섭도 없이, 자신만의 이야기를 가장 편안한 숨에 담으며 천천히 또 확실하게. 이나래는 이제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올 초에 이날치와 헤어지고 홀로서기를 하게 되었어요. 그런 큰 결정을 내린 이유는 무엇이었나요?

대중에 많은 사랑을 받으면서 참 감사한 시간을 보냈죠. 그런데 공동의 목표를 가지고 흘러가다 보니 내 것에 대한 갈증이 시간이 지날수록 심해졌던 것 같아요. ‘내가 잘하는 건 뭐지?’, ‘내가 하고 싶은 음악은 뭘까?’ 이런 생각들이 꽤 오랫동안 저를 압박했어요. 제가 하는 음악의 색깔이 사람들의 어떤 주파수와 맞으면 충분히 공감을 끌어낼 수 있다는 걸 알게 됐으니, 제가 해보고 싶던 음악을 치열하게 고민하고 만들어보며 도전하고 싶었어요.


혼자서 오랫동안 앨범을 준비했고 이제 곧 공개를 앞두고 있죠. 여러모로 의미가 남다를 것 같아요.

처음에는 ‘한풀이’같이 시작한 작업이에요.(웃음) 제가 가진 갈증이나 갈망 같은 것들을 쏟아낼 창구가 필요했거든요. 규칙적인 삶을 살아봐야겠다 싶었고, 그 일환으로 하루에 음악 스케치 2개는 만들어보자고 다짐했어요. 자연스럽게 곡이 쌓였죠. 어릴 때부터 음악을 대하는 방식이 그랬던 것 같아요. 소리를 지르며, 감정을 쏟아내는 판소리를 하면서 평소에 담아둘 수밖에 없는 여러 가지를 표출했고, 그렇게 ‘이나래’라는 사람을 지탱한 거죠.


이나래가 펼치는 음악을 소개해보자면요?

첫 곡부터 끝 곡까지 모두 듣다 보면 이어지는 시퀀스를 느낄 수 있을 겁니다. 앨범의 초반부는 심연으로 잠겨 들어가는 모습을 담았어요. ‘죽음’을 떠올리기도 했지요. 죽음은 결국 ‘삶’과 그 가치를 증명한다고 봤어요. 휘몰아치는 물결과 파도 그리고 잠식되어가는 어두운 장면들이 마치 인당수에 몸을 바친 심청이의 상황 같죠. 중반부는 잠식된 상황에서 삶이 주마등처럼 스치는 듯한 장면들이 연상돼요. 답답한 상황에서도 이를 타파해보고자 어떤 행위를 이어가는 저의 하루하루를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런 것들이 마지막 부분으로 이어져 결국 저를 일으키죠. 내가 물속 저 깊은 바닥에 있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 그 판이 뒤집혀 있음을, 그래서 육지에 서 있음을 깨닫는 거예요. 이 모든 건 결국은 마음가짐 때문이라는 메시지를 담았어요.


직접 모든 음악을 만들었는데, 작업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이어갔던 건 무엇이었는지 궁금해요.

음악은 곧 ‘대화’라고 생각해요. 음악 구성 요소 안에서는 물론 연주자들끼리도 끊임없이 상호작용이 이뤄지죠. 특히 국악에서는 소리꾼이 소리를 뱉으면 고수가 받아주는데, 그런 것들이 순환이고 균형이거든요. 저는 이번에 대화하는 것처럼 툭툭 읊조리는 듯한 창법을 많이 구사했어요. 최대한 낮은 음역에서 움직이면서 듣는 사람이 거슬리지 않는 톤을 찾아가려고 노력했죠. 대신에 배경은 복잡하게 흘러가도록 만들었어요. 음악의 이런 대화가 결국에는 가수와 리스너 사이의 대화로 이어진다고 믿어요.


지금 가장 큰 고민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동료’가 아닐까 싶어요. 저에겐 음악이 곧 대화라고 말씀드렸잖아요. 저는 작업 에서 이러한 소통이 잘 일어나는 걸 중요시하는 것 같아요. 제가 신나서 이야기하는 바를 찰떡같이 알아듣고 그것에 의견을 또 얹어주고, 그걸 함께 발전시켜나가는 데 쾌감을 느끼는 거죠. 음악은 제 평생 하는 일이잖아요. 그래서 그 고민은 그냥 제 인생 저변에 깔려 있다고 보면 될 것 같아요.(웃음)


솔로 뮤지션으로서 어떤 아티스트가 되고 싶나요?

판소리를 한 사람들은 제 음악을 듣고 국악을 느낌만 입혔다고 비판할 수도 있고, 대중은 제 음악이 생소하다고 평가할 수도 있겠죠. 그런데 국악, 현대음악 모두 역사적으로 보면 한 시절 유행한 음악이잖아요. 왜 이런 음악이 인기가 있을까 생각해보게 되죠. 이를 바탕으로 이 시대 대중을 설득할 수 있는 음악은 무엇일지 찾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제가 제일 잘할 수 있는 음악으로 사람들을 설득하는 아티스트로 남고 싶어요.



블랙 원피스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이어링은 포트레이트 리포트.




HAIR  윤성호  MAKEUP  박이화  STYLIST  이승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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