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2월호

태양의 서커스 부회장, 다니엘 라마르

태양의 서커스 <루치아>가 한국에 상륙했다. 팬데믹의 위기마저 뛰어넘은 이 놀라운 엔터테인먼트의 중심에는 창조적 사고가 비즈니스의 핵심이라고 말하는 다니엘 라마르 부회장이 있다.

EDITOR 윤정은 PHOTOGRAPHER 이기태

캐나다 몬트리올에 본사를 둔 태양의 서커스 그룹 부회장. 저널리스트로 커리어를 시작해 미디어 및 홍보 회사를 거쳤고, 퀘벡 최대의 민영 TV 방송사인 TVA 텔레비전 네트워크의 CEO를 역임했다. 창립자 기 랄리베르테의 요청으로 2001년 태양의 서커스에 합류해, CEO로서 연 매출 10억 달러에 이르는 성공을 이끌었다. 2022년에는 창조성을 비즈니스의 핵심으로 소개하는 책 <균형 잡기의 기술>을 출간했다.



1984년 캐나다에서 탄생한 ‘태양의 서커스Cirque du Soleil’는 기존에 없던 파격적인 형식과 전개로 많은 이를 놀라게 했다. 눈앞에서 생생하게 펼쳐지는 곡예와 환상적인 스토리라인은 가는 곳마다 관객들을 매료시켰고, 전 세계에 그 이름을 각인시키며 새로운 엔터테인먼트의 탄생을 알렸다. 그 후 30여 년간 60개국, 450여 도시에서 성공적인 공연을 펼친 이들은 2020년대 초 연간 매출 10억 달러(약 1조3000억 원)를 달성하며, 세계 각 지역에 라이브 프로덕션 44개를 보유한 글로벌 기업으로 우뚝 섰다. 그러나 눈부신 성공도 팬데믹의 위협을 피해 가진 못했다. 공연이 전부 중단되면서 직원의 95%를 해고하고 파산 위기에 직면한 것. 다행히 투자자들의 도움으로 간신히 위기를 모면한 태양의 서커스는 여행과 관람이 비교적 자유로워진 2021년 말, 다시 화려하게 관객 곁으로 돌아왔다. 중국과 멕시코에서 먼저 개막했고, 라스베이거스의 상징적 쇼인 <미스테르>와 <오>가 그 뒤를 이었다. 현재 태양의 서커스 부회장인 다니엘 라마르는 2001년 회사에 합류해 수십 년간 황금기를 이끌었고, 이번엔 팬데믹 극복의 신화까지 만들어낸 전설적 인물이다. “창조성 없이는 비즈니스도 없다”라고 말하는 그는 이러한 철학을 바탕으로 <균형 잡기의 기술>이라는 책도 펴낸 바 있다. 한국에서 선보이는 신작 <루치아> 개막에 맞춰 서울을 방문한 다니엘 라마르 부회장을 디자인하우스 사옥에서 만났다.


서울은 얼마 만의 방문인가?

작년에도 방문했고, 이번이 세 번째다. 2년 연속 같은 나라를 찾는 일이 흔치 않은데 이번엔 서울뿐 아니라 부산도 방문할 예정이라 기대가 크다. 서울 외에 한국의 다른 도시를 가보는 것은 처음이다.


팬데믹 전과 비교해도 회사의 규모를 완전히 회복한 것 같다. 현재 직원 수는 어느 정도인가?

4500명의 직원이 있다. 팬데믹 이전보다는 못 미치지만 계속 채워가는 중이다. 우리는 고용hiring이라는 말 대신 캐스팅casting이라는 표현을 쓴다. 최고의 인재를 적합한 자리에 데려오는 일은 비즈니스의 실패와 성공을 좌우할 만큼 중요하다.


2001년 태양의 서커스에 합류한 이래, 기업을 놀랍게 성장시켰다. 가장 기억에 남는 성과는 무엇인가?

태양의 서커스를 통해 비틀스나 제임스 캐머런 같은 훌륭한 아티스트들과 협업할 수 있었고, 그 과정에서 스스로도 더욱 발전할 수 있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자랑스러운 성과는 팬데믹이라는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고 재기에 성공했다는 점이다.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인가?

스포츠에서 통용되는 말이 있다. “꿈을 꾸고 있다면 그 꿈을 구체화하라.” 얻고자 하는 결과를 눈앞에 그리면 내 안의 용기와 긍정적인 에너지를 끌어올리는 데 도움이 된다. 15개월간의 록다운 시기동안 나 또한 ‘다시 일어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을 것 같다’는 절박한 심정이었다. 괴로운 순간마다 라스베이거스에서 공연을 성공적으로 마친 후 관객들과 함께 환호하고 아티스트들과 얼싸안는 내 모습을 구체적으로 상상했다. 결국 그날이 현실로 실현되었다.


팬데믹 이후의 회복 과정은 어떠했나.

공연이 중단되면서 직원 대부분을 해고해야 했지만, 그들과 꾸준히 소통하며 우리가 언젠가 다시 함께할 수 있으리라는 꿈과 유대를 이어갔다. 특히 아티스트들에게는 매달 빠짐없이 연락해 언제든 돌아올 수 있도록 재능 개발을 게을리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그들 역시 나를 믿고 따랐고, 덕분에 다시 시작하는 상황에서 곧바로 합류할 수 있었다.


많은 아티스트와 협업해왔는데, 특히 기억에 남는 인연은?

먼저, 태양의 서커스 창립자인 기 랄리베르테Guy Laliberté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나의 열정에 불씨를 붙여주고, 내 창의력의 한계를 넓혀 이를 어떻게 비즈니스에 연결할 수 있을지에 대한 길을 열어줬다. 그는 모두에게 영감을 주는 정말 굉장한 아티스트다. 현재는 디제이 활동을 하며 여전히 재미있게 살아가고 있다. 우리와 함께 <토템>을 작업한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의 연출가 로베르 르파주Robert Le Page도 놀라운 창조성을 가진 인물이다. <루치아>의 감독인 다니엘레 핀치 파스카Daniele Finzi Pasca도 내게 큰 영감을 준다.


기 랄리베르테와는 어떻게 만났나?

벌써 22년 전이다. 1986년 캐나다에서 큰 PR 회사를 운영하고 있을 때, 태양의 서커스에 투자하면서 그와 처음 만났다. 하지만 결과가 좋지 않아 인연을 덮어야 했다. 그 후 13년이 지나 TV 네트워크에서 근무할 때 또다시 연락이 닿았다. 우리는 태양의 서커스를 방영하고자 했으나 권리금 문제로 계약이 잘 성사되지 않았다. 그리고 4년 뒤, 런던에서 그에게 전화가 왔다. “우리와 함께하자”는 제안이었다. 긴 어긋남 속에서도 좋은 관계를 이어온 덕분에 비로소 우리의 시간을 만난 것이다.


태양의 서커스를 한국에 소개하는 공연 기획사 마스트 엔터테인먼트의 김용관 대표와 다니엘 라마르.


두 사람 사이의 신뢰가 느껴진다.

오랫동안 그를 지켜보면서 남들이 가지 않는 창조적 행보를 이어가는 것에 대한 존경의 마음이 있었다. 그 여정에 함께할 수 있어서 기뻤다.


기업의 성공 비결로 창조성creativity을 이야기해왔다. 창조성이란 무엇인가?

창조성을 크게 C와 c로 나누고 싶다. C는 창조적 결과물이다. 놀랍고 혁신적인 공연을 올리는 것이 우리 회사의 C다. 반면에 c는 일상에서 빛나는 모든 아이디어를 의미한다. 아직 도입하지 않은 기술 혹은 새로운 광고 캠페인의 방향일 수도 있다. 이 모든 것이 합쳐져 성공적인 비즈니스로 귀결된다.


폐쇄적인 조직 구조나 시스템, 여러 주변 환경이 창조성을 가로막기도 한다.

혹자는 우리를 가리켜 “태양의 서커스는 원래 창조적이고 예술적인 작업을 하는 회사가 아니냐”라고 물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설령 은행 같은 딱딱한 조직에 들어간다고 달라질까? 분명 그 환경에 맞춰 나의 창조성을 발휘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갈 것이다. 창조성은 누구나, 어디서나 발휘할 수 있다.


창조성을 발현하는 리더십도 중요할 것 같다. 어떻게 해야 팀원들을 창조적으로 이끌 수 있나?

창조적 사고는 어느 날 갑자기 “우리 이제 시작합시다”라고 해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어떠한 문제 제기가 있을 때, 직원들이 이에 대해 효과적인 해결 방안을 가져오게 하기 위해선 무엇보다 이를 받아들일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야 한다. 우리 회사의 경우, 내가 어떤 의견을 제시하든 모두가 환영할 것이라는 믿음이 각자에게 있다. 자유롭고 열린 분위기가 중요하다.


그러한 분위기를 조성하고 비전을 공유하기 위해선 먼저 주변 사람들의 마음을 여는 것이 중요하다. 비법이 있다면 알려달라.

가장 중요한 건 말뿐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얼마 전, 크리에이티브 팀의 일원이 내게 와서 스위스에 공연용 드론을 만드는 개발자가 있다고 전했다. 나는 “당장 스위스에 가서 그 기술을 확인해보자”라고 말했고, 회사 내엔 순식간에 드론을 공수했다는 소문이 퍼졌다. 내가 무언가를 이야기하면 곧바로 실행한다는 믿음이 직원들에게 있는 것이다.


방금 말한 예처럼 태양의 서커스는 새롭고 혁신적인 기술을 공연에 적용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변화를 빠르게 적용하기 위해 별도의 노력을 기울이는지?

우리는 새로운 변화나 기술을 받아들이기 위해 항상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현재 약 11개 회사와 협업 중이며 삼성에서 VR 기술을, 마이크로소프트에서 홀로그램 기술을 지원받았다. 신작 <루치아>에는 영혼으로 비를 불러들이는 장면이 있는데, 이 부분 역시 여러 기업의 기술 지원을 받았다. 기대해도 좋다.


하나의 프로젝트가 완성되기까지의 과정이 궁금하다.

주제를 발전시켜 아이디어를 구성하는 데만 1년이 소요된다. 두 번째 해부터는 캐스팅과 리허설을 시작하고, 이를 바탕으로 6개월에서 1년을 준비해 하나의 공연을 완성한다. 완성된 공연은 몬트리올에 있는 크리에이티브 스튜디오에서 먼저 무대 위에 올리는데, 실제 투어처럼 합숙까지 재현하는 점이 특별하다. 그 후 전 세계 45개 도시를 돌며 관객들에게 선보인다.


현재도 세계 곳곳에서 수십 개의 공연을 선보이고 있다. 공통적으로 추구하는 가치나 철학이 있다면?

태양의 서커스를 찾는 관객들은 무대에서 살아 움직이는 아티스트를 보고 싶어한다. 그게 우리의 가장 큰 강점이자 차별점이며, 당연히 곡예사들의 재량도 세계 최고 수준이어야 한다.


10월 25일부터 12월 31일까지 잠실 종합운동장 내 빅탑에서 펼쳐지는 태양의 서커스 <루치아>. 1만 리터의 물을 활용한 수중 곡예가 압권이다.


태양의 서커스가 끊임없이 관객들을 매료시키는 이유는 무엇일까?

‘관객들을 놀라게 하자’, ‘완전히 새로운 것을 보여주자’ 우리는 항상 이러한 도전 정신을 바탕으로 모든 공연을 준비한다. 하버드 대학교의 김위찬 교수가 자신의 ‘블루 오션 전략Blue Ocean Strategy’ 이론의 대표 사례로 태양의 서커스를 언급한 적이 있다. 그는 태양의 서커스가 기존 서커스와 다른 완전히 새로운 장르를 개척했다고 평했다. “태양의 서커스를 보지 않은 자와는 논하지 말라”라는 말과 함께. 우리 역시 그러한 자부심을 가지고 항상 놀라운 공연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한국에서 선보이는 신작 <루치아>에 대해 소개해달라.

루치아Luzia는 스페인어 어원으로 빛luz과 비lluvia라는 뜻을 담고 있다. 물을 무대 위에 활용하는 것은 처음이다. 여기에 기술적 요소를 반영해 환상적인 장면을 연출했다. 관객에게 멋진 경험을 선사할 것으로 기대한다. 전반적인 스토리라인은 멕시코의 문화에서 영감받았다. 언젠가는 한국 문화를 바탕으로 이러한 공연을 만들고 싶다는 꿈이 있다. 서울과 부산에서 열리는 이번 공연이 그 꿈의 발판이 되기를 바란다.


앞으로 더 이루고 싶은 꿈이 있다면?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재능 있는 아티스트들과 함께하면서, 그들이 창조성을 펼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싶다. 시대가 복잡해질수록 아티스트의 역할이 중요하다. 모든 사람이 아티스트와 같은 섬세한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사회를 이끌어가면 전쟁이나 위협도 줄어들지 않을까? 우리 사회에서 예술가들이 조금 더 큰 몫을 안고 갔으면 좋겠다.



COOPERATION  마스트 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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