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2월호

그 어디에도 성역은 없어

미스치프MSCHF는 어느덧 26명으로 이뤄진 셀러브러티가 되었다. 대림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연 미스치프 CEO 가브리엘 웨일리를 만났다.

EDITOR 정송 PHOTOGRAPHER 안지섭


미국 뉴욕 브루클린을 베이스로 활동하는 아티스트 그룹 미스치프의 CEO.다. 일상의 모든 것을 작업의 소재로 보고 다양한 범주의 작품을 홈페이지에 2주마다 ‘드롭drop’ 하는 방식으로 선보이고 있다. 위트를 겸비했지만 비판적이며, 문제적 시각도 함께 제시하는 이들의 작품에는 물음표와 느낌표가 항상 함께 따라붙는다.



미스치프는 예술가인가? 아니면 패션 크리틱인가? 그것도 아니라면 이들은 그저 이것저것 만드는 메이커인가? 영 뭐 하나로 정의하기 쉽지 않은 이들의 정체는 대림미술관에서 내년 3월 31일까지 이어지는 전시 를 보면 더욱 아리송해진다. 이런 모호함이 바로 미스치프가 추구하는 그들의 정체성이다. 바로 ‘정의되지 않음’으로 정의하는 것. ‘심각하지 않은 장난’이라는 뜻의 이름을 가지고 있는 이들은 어느덧 그 이름 아래 모여 5년 동안 충실히 장난스러운 행위를 이어왔다. 첫 번째 프로젝트는 2019년의 ‘혼돈의 지속The Persistence of Chaos’으로, 6개의 악성 코드에 감염된 노트북을 경매에 부친 일이었다. 결과는 약 15억 원에 낙찰됐을 정도로 대성공. 이후 이들이 세간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프로젝트는 나이키 ‘에어맥스 97’에 요르단강에서 공수한 ‘성수holy water’를 넣어 판매한 ‘예수 신발’이다. 무려 “예수님과 컬래버레이션했다”라고 얘기하며, 물 위를 걷는 예수의 이야기가 나오는 <성경>의 ‘마태복음 14장 25절’도 새겨 넣어 마치 이 신발을 신으면 물 위를 걷는 이적을 행하는 것 같은 기분도 선사했다. 이 밖에도 사람의 피를 넣은 화제의 운동화 ‘사탄 신발’도 있었으며, BTS와의 컬래버레이션 작품은 물론, 최근 많은 이가 열광한 ‘아톰 신발’까지 다양한 작업을 선보였다. 누군가는 불편할 수도 있는 사회, 문화, 종교, 예술, 정치 등과 연결된 주제를 적극적으로 넘나드는 이들은 이번 전시를 통해 지난 활동을 한차례 정리하고 다시 한번 더욱 거침없는 장난을 이어갈 것을 다짐했다.


이번 전시의 열기가 뜨겁다.어떻게 한국에서 이렇게 큰 전시회를 열게 된 것이며, 얼마나 오래 준비한 건지 궁금하다.

모두 많은 관심을 보여줘서 감사한 마음이 크다. 대림미술관 측에서 우리에게 먼저 전시를 제안했다. 그게 벌써 1년 가까이 된 이야기다. 긴 시간 동안 우리도 그간 2주에 한 번씩 드롭했던 작업물들을 돌아보고 어떤 작품들을 이곳에서 선보일 수 있을지 함께 고심했다. 우리에게도 이번 전시는 매우 좋은 기회다. 2019년 처음 결성한 이후 벌써 시간이 흘러 5년이 지났다. 그동안 변화한 것도 있지만 여전한 것도 있지 않은가. 그런 것들을 세심히 살피며 우리가 현재 서 있는 곳을 면밀히 파헤쳐보고자 했다.


그렇게 돌아본 5년의 세월 속에서 새롭게 와닿은 것들이 있었는가?

처음 우리는 5명으로 시작했다. 유명하지도 않았고, 우리가 하는 일이 성공할 수 있을지 없을지 가늠도 안 됐다. 한 마디로 우왕좌왕하던 때가 있었는데, 단 한 가지 우리가 믿었던 건 바로 ‘아이디어’다. 우리가 드롭한 작업물마다 이야기하고 싶던 바가 명확했고, 아이디어가 확실했기 때문에 지금까지 이어올 수 있었던 것 같다. 예술에서부터 패션, 스트리트 문화는 물론 럭셔리까지 모두 아우르게 된 것도 우연 같지만, 필연적이었단 점을 우리 작업을 돌아보며 다시 한번 느꼈다. 아무래도 손수 작업을 하다 보니 럭셔리 오브제까지 넘어가게 되는 것이 자연스러웠으니 말이다.


미스치프의 작업은 정의할 수 없음이 가장 큰 특징이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통통볼’ 같다. 하지만 지금까지 전개한 작업들에 이어지는 하나의 기조가 있을 것 같다. 그것이 무엇인가?

우리는 세상을 하나의 ‘재료material’이자 ‘도구 상자tool kit’로 보고 있다. 그러니까 일상의 모든 물건이 우리에겐 작업의 소재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우리의 시각과 관점을 투영해 새로운 오브제를 만들고 이를 통해 이전에 하지 못한 경험을 창출해내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주제 면에서 살펴보자면 우리 일상을 좌지우지하는 ‘모호성’의 힘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예를 들면 ‘돈의 가치는 무엇일까?’란 질문을 던지는데 뻔하지 않은 방식을 택하는 것이다. 돈의 이미지를 흐릿하게 처리하는 등 우리만의 터치를 집어넣어 보다 확실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우리를 둘러싼 모든 것을 비판적인 시각으로 재해석하지만, 재미없고 딱딱한 방식을 차용하는 것이 아니라 말랑하고 위트 있는 방법을 끊임없이 모색한다고 볼 수 있겠다.


어떤 사람이 미스치프의 일환이 될 수 있는지 궁금하다. 나도 도전할 수 있는 것인가?

미스치프를 이루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한 명 한 명 모두 유니크한 백그라운드를 가지고 있다. 우리가 하는 작업들이 이제는 굉장히 다양해지고 있다 보니 우리 작업에 필요한 스킬을 가진 사람을 구체적으로 찾는 편이다. 참 신기하게도 우리는 서로 ‘자석’ 같은 면이 있다고 얘기하곤 한다. 지금까지 열정적으로 찾아 나서지 않아도 적재적소에 필요한 인재가 척 달라붙었다. 지금은 우리 모두 안정적인 상황이다. 당장 필요한 인재는 없지만 만약 당신이 가진 능력이 미스치프에게 꼭 필요한 날이 온다면 언젠가는 일원이 되는 것이 가능하지 않을까.(웃음)


많은 사람이 하나의 목표를 가지고 달려가는 일이 쉽지는 않을 것 같다. 의견 충돌이 있을 것도 같은데, 조율하는 과정에서 트러블은 안 생기는지, 또 어떻게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는지 궁금하다.

뻔한 답이지만 신뢰가 바탕이 된다는 점이 주효하다고 생각한다. 생각보다 의견 합치가 잘 이뤄진다. 우리에겐 나를 비롯해 5명의 창립 팀이 있다. 그리고 이후에 들어온 멤버들도 있는데, 프로젝트의 향방을 결정하고 진행할 때 서로의 의견을 잘 들어주는 편이다. 다른 멤버들이 창립 팀을 존중하고 우리의 결정에 지지해주는 점이 감사하다. 2주에 한 번씩 새로운 무언가를 계속 생산하는 일이 절대 쉽지 않다. 서로를 향한 신뢰가 없다면 이렇게 빠른 속도로 진행될 수 없다.


전시 전경. © 대림미술관


<NOTHING IS SACRED>라는 전시 제목이 의미심장하다. 그 의미에 관해 설명하자면?

우리 사회에는 절대 건드리면 안 되는 ‘성역’이 있다. 예를 들면 예술 작품을 만지는 일, 어떤 종교를 비하하는 일 등 말이다. 이를 건들이면 어떤 식으로든 책임을 져야 한다. 왜냐하면 그것이 가진 힘이 사회에 어떤 균형점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러한 파워 구조에 질문을 던져보고 싶었다. 도대체 뭐가 그렇게 성스러운 것인가? 모든 아이디어는 한 번 꼬아질 수 있고, 그것은 전적으로 아티스트가 가진 힘이라고 믿는다. 우리가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어떤 장난의 경계를 건드리고 실험해볼 때 다행스럽게도 사람들이 우리의 의도를 이해하려 노력하며 공감해주고 있어 지속할 수 있는 게 아닐까.(웃음)


이번 전시에서 미스치프에게 가장 중요한, 마일스톤 같은 작품이 있는가?

미스치프를 구성하는 사람들 모두가 이 질문에 다르게 답할 것 같다. 기대와 다르게 이렇게 답할 수밖에 없음이 미안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이번 전시에 소개하는 모든 작품, 그러니까 이번 전시 그 자체라고 말하고 싶다. 그간 우리의 활동을 정리하는 자리이기도 하고, 전시 역시도 우리 작업의 일환이니 말이다.


이번 전시를 기점으로 미스치프의 행보에 어떠한 변화가 있을까?

하나의 챕터를 마무리한다는 기분이긴 하지만, 결코 우리의 모습이나 아이덴티티에 변화가 있을 것으로 생각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전의가 좀 더 불타오른다. 우리의 수위를 좀 더 높여봐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동안에도 잘해왔으니 조금 더 ‘악의 없는’ 심한 장난을 쳐보면 어떨까? 내년에는 확실히 그간 보여준 적 없는 새로운 포맷의 작품을 선보일 예정이다. 개인적으로는 흥미롭다고 자부하지만, 위험할 수도 있을 것 같아 양가적인 마음이 든다.


(왼쪽) 작품 모음집 . (위) 전시에서 ‘아톰 부츠’가 전시된 공간 전경. © 대림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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