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1월호

A DAY IN CASTLE

왕과 귀족 등 역사 속 상위 계층이 머물거나 군사적, 전략적 요새로 사용되던 성이 새로운 모습으로 변신했다. 레노베이션을 거쳐 과거의 문화를 엿볼 수 있는 건축과 인테리어, 현대적인 매력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6곳의 호텔을 소개한다.

EDITOR 이호준


CHÂTEAU FRONTENAC

캐나다 퀘벡 세인트 로런스강 근처를 거닐다 보면 청록색 구리 지붕과 붉은 벽돌로 지은 웅장한 규모의 ‘샤토 프롱트낙’을 마주할 수 있다. 1980년대에 국립 사적지로 지정됐을 만큼 역사·문화적인 가치를 인정받은 이곳은 프렌치 로마네스크 양식의 건축물로 고전적인 매력을 한껏 발산한다. 캐나다 태평양 철도의 사주였던 윌리엄 코넬리우스 밴 혼William Cornelius Van Horne에 의해 지금의 형태를 갖춘 샤토 프롱트낙은 기존 5개 동의 저층 건물과 이후 증축한 고층 빌딩 덕분에 총 600여 개라는 어마어마한 객실 수를 자랑한다. 중세 시대부터 지금껏 이어온 유럽의 여러 호텔에 비해 역사는 짧지만 오픈 이래로 근대 역사에서 주목해야 하는 사건과 다수 관련되어 있어 흥미롭다. 윈스턴 처칠과 프랭클린 루스벨트를 필두로 제2차 세계대전의 전략을 논의한 퀘벡 회담에 참여한 내빈들이 이곳을 방문했으며, 1756~1763년의 7년 전쟁 중 격전으로 알려진 프렌치 인디언 전쟁과 1759년 9월 아브라함 평원 전투의 주요 전장 또한 이곳이었다고 한다. 영화를 사랑한다면 앨프리드 히치콕의 <나는 고백한다>의 주요 배경이라는 점 역시 쉽게 깨달을 수 있을 것. fairmont.com/frontenac-quebec





MANOIR DE LÉBIOLES

‘벨기에의 베르사유’라는 별칭으로도 불리는 ‘마누아르 드 레비올레’는 벨기에의 첫 번째 국왕인 레오폴 1세의 친아들이자 외교관으로 활동했던 조르주 네이Georges Neyt가 휴양차 머물던 곳이다. 별칭에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듯 그는 프랑스 베르사유궁전에 깊이 감명받아 벨기에 산악지대에 자리한 아르덴Ardennen에 작은 베르사유를 만들고자 했다. 이러한 연유로 탄생한 작은 성은 조르주 네이의 사후 그의 딸에 의해 사업가였던 에드몽 드레스Edmond Dresse의 소유가 됐다. 에드몽 사망 후 성은 ‘오텔 드 샤름Hôtel de Charme’이라는 이름의 호텔로 운영되다가 이내 버려진 건물처럼 방치되는 불운을 겪었다. 하지만 15년 전 창과 지붕, 계단 등 낡고 노후화된 부분을 현대적으로 탈바꿈하는 대규모 레노베이션을 거친 후 최근에 이르러 지금의 모습과 명칭을 갖추게 됐다. 미네랄이 풍부한 온천과 스파로도 유명한 아르덴의 명성에 걸맞게 이곳 또한 잘 갖춰진 스파 시설과 부대 프로그램을 자랑한다. 객실 수는 16개로 비교적 규모가 작은 편이지만 레노베이션을 거치면서도 개방형 벽난로 등 13세기 특유의 장식적인 인테리어 스타일을 보존해 현대적인 매력과 클래식한 감성을 고루 즐길 수 있어 특별하다. manoirdelebioles.com





HOTEL CASTELLO DI RESCHIO

이탈리아 움브리아와 토스카나 사이 목가적인 풍경을 배경 삼아 50여 채의 농가와 함께 어우러진 ‘카스텔로 디 레스키오’. 10세기경부터 안토니오 볼차Antonio Bolza 백작의 소유였던 성은 오랜 시간 방치되다 후손인 베네딕트 볼차Benedikt Bolza에 의해 새로운 모습을 갖추게 됐다. 런던에서 건축가로 활동했던 그는 이곳에서 10여 년간 거주하며 고성의 변화 가능성을 발견해 지금의 호텔을 구현해냈다. 총 5개 층에 30개의 스위트룸을 마련했는데, 성이 지닌 건축적 인상과 객실 인테리어가 조화로울 수 있도록 테라코타 벽돌과 티크를 주로 활용했으며 장인의 손을 거친 이탈리아산 직물과 정교한 세공이 돋보이는 시칠리아 대리석 세면대 등을 비치해 완성도를 높였다. 와인 저장고 용도의 석조 지하실에 스파 공간을 마련해 기존 성의 구조를 십분 활용한 이색적인 부대시설을 만드는 한편, 증축 과정을 거쳐 새로운 공간을 구현한 점 또한 재밌다. 빅토리아시대의 온실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팜 코트Palm Court’가 바로 적절한 예다. 망루 형태로 레노베이션한 옥상 테라스 ‘일 토리노Il Torrino’ 또한 이곳의 자랑 중 하나. 특히, 해가 질 무렵 이곳에서 석양과 석양에 물든 주변 풍경을 바라보는 시간은 이 호텔에서의 경험을 한층 특별하게 만들어줄 것. reschio.com





ALILA FORT BISHANGARH

‘왕들의 땅’이라는 뜻을 지닌 인도 라자스탄Rajasthan은 세계적 문화유산인 케올라데오Keoladeo 국립공원과 함께 다양한 종교 사원과 도자기, 직물을 만날 수 있는 그야말로 문화의 도시다. 다양한 볼거리가 넘쳐나지만 이곳을 대표하는 건 아라발리Aravalli 언덕에 자리한 호텔 ‘알리아 포트 비샹가르’. 본래 요새로 사용했던 성인 만큼 고지대에 자리해 멀리서도 육안으로 호텔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이곳이 라자스탄의 명물이 된 이유는 바로 인도의 황금시대라 불린 무굴제국 시기에 유행한 자이푸르 가라나Jaipur Gharana식 건축 양식과 당시 성행하던 회화 사조인 라즈푸트Rajput의 특징을 발견할 수 있어서다. 독특한 프레임이 특징인 자로카Jharokha 창문이나 장식적이고 화려한 데이베드 등을 고스란히 보존한 데다 그 시절에 만든 예술품과 골동품도 함께 비치해 마치 무굴 제국 시대에 방문한 듯한 착각을 선사한다. 수백 년을 버텨온 만큼 보수 작업은 불가피했지만 페인트 대신 가루처럼 부순 돌가루를 활용하는 수르키Surkhi와 아라이시Araish로 색을 내 벽에 바르는 등 인도의 전통 궁궐 미장 방식을 최대한 활용했다는 점이 이곳의 매력을 한층 강화한다. 실크로드 루트에서 영감받아 인테리어한 레스토랑 ‘아마르사르Amarsar’에서는 총괄 셰프인 란비르 브라Ranveer Brar를 필두로 로컬 식재료를 최우선적으로 고집해 만든 라자스탄식 요리도 맛볼 수 있다. alilahotels.com





CHÂTEAU SAINT-MARTIN & SPA

‘샤토 생마르탱 & 스파’는 프로방스풍의 외관에서 쉽게 엿볼 수 있듯 오랜 역사를 품고 있는 성에 자리한다. 프랑스 남부의 도시 방스Vence에 위치한 이곳은 본래 프랑스의 대표적인 성인 중 한 명인 투르Tours의 주교 생 마르탱Saint Martin이 휴양차 머물던 곳이었으나, 중세 시대에 이르러서는 예루살렘에서 돌아온 십자군들을 위한 군사적·전략적 요충지이자 요새로 변신했다. 프랑스 역사 기록부에 기념물로 등재될 만큼 역사적인 가치를 인정받은 생마르탱 성이 완벽한 호텔의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은 1994년 글로벌 호텔 체인 오테커 컬렉션Oetker Collection이 이곳을 인수하면서부터다. 이곳의 자랑은 단연 스파. 호텔 스파 시설인 ‘생마르탱 바이 라 프레리Saint-Martin by La Prairie’가 세계 럭셔리 스파 어워드에서 유럽 최고의 럭셔리 스파 여행지로 선정됐을 만큼, 뛰어난 수준의 스파 시설과 웰니스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매 시즌 아티스트와의 협업 전시를 선보인다는 점도 눈여겨볼 만하다. ‘역사가 깃든 호텔에서 예술과 함께하는 휴양’을 목표로 다양한 작가와 손을 잡고 전시 혹은 프로모션 등을 진행하는데, 여름 시즌은 화가이자 도예가인 아그네스 산달Agnès Sandahl과 전시를 열었다. 호텔 레스토랑인 ‘르 생마르탱’에서는 그가 호텔을 위해 직접 디자인한 테이블웨어에 먹음직스러운 음식을 서빙하니 참고할 것. oetkercollection.com/hotels/chateau-saint-martin





LE GRAND JARDIN

프랑스 지중해 연안 레랭 군도에 자리한 4개의 섬 중 가장 큰 섬이자, 유네스코가 보호하는 섬인 생트 마르그리트Sainte Marguerite. 섬 전체가 세계자연유산인 만큼 사람들의 손길을 타지 않은 광대하고 아름다운 자연이 펼쳐져 있는데, 이곳의 유일한 사유지에는 13세기경 문을 연 이후 루이 14세와 15세가 소유했던 성을 레노베이션한 호텔 ‘르 그랑 자르댕’이 무수한 녹음과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이러한 조화는 르 그랑 자르댕을 중심으로 펼쳐진 1만4000m2 규모의 식물원 덕분. 자연과 함께할 수 있는 공간과 일상이 호텔의 1순위 운영 철학인 만큼,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는 친환경적 요소는 이곳에서의 시간을 더욱 특별하게 만든다. 일례로 식물원이라는 명칭처럼 다양한 종류와 수형의 식물과 나무가 울창한 정원을 이루고 있는데, 식물 보호와 지역 야생 동물 보호를 위해 인위적인 관리법을 최대한 지양하고 있다. 수영장도 섬의 강물을 활용해 운영하고 있으며 암석 바닥과 천연 대리석, 티크 목재 등 호텔 건축물에 사용한 대부분의 자재가 모두 지속가능한 재료라는 점 또한 재밌다. 나아가 ‘팜 투 테이블 철학’을 실천하고자 자체 채소 정원을 운영해 주방에 필요한 채소와 허브도 직접 재배한다. 이와 더불어 지역 생산자들과 협력해 지역 문화와 재료를 적극 도입하고 있다. lgj-cannes.com

목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