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셔리 M> 2023년 10월호

‘푸시투엔터’ 대표 김정희

창덕궁의 후원이 창 너머로 보이는 공간에 작품이 걸렸다가 내려지고, 건축이 펼쳐졌다 접힌다. 이곳에 자리를 틀고 미술과 건축, 한국과 중동을 넘나들며 다리를 놓는 이가 있다.

EDITOR 정송 PHOTOGRAPHER 이우경

김정희  건축을 전공하고 이와 맞닿은 지점에서 다양한 건축 및 인테리어 프로젝트와 브랜딩 프로젝트를 진행해왔다. 최근에는 갤러리 푸시투엔터를 열어미술과 건축의 접점에 대해 고민하고 있으며, 동시에 2025 오사카 엑스포 한국관 콘셉트를 설계하고 자문을 맡아 진행하고 있기도 하다. 우리나라 현대미술 작가와 건축가에게 세계적인 기회를 열어주는 것이 그의 목표이다.



건축에서 문은 화재를 비롯한 비상사태가 벌어졌을 때 대피에 용이하도록 안에서 밖을 향해 밀어서 나가야 하는 게 상식이다. 그래서 밖에서 안으로 들어올 때는 문을 당겨서 열고 들어오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서울 중구 원서동에 위치한 ‘푸시투엔터PUSHTOENTER’는 이러한 건축적 상식을 비틀어, 누구라도 쉽게 드나들길 바란다는 의미를 담아 이름을 지었다. “문을 밀고 공간에 들어오는 이는 사람을 비롯해 이곳을 점유할 예술적 사물과 행위 모두를 아우르죠. 가볍게 들어오라고 지은 이름 덕분인지, 이 근처를 지나는 사람들이 불쑥 들어와서는 몇 시간씩 머물다 가는 경우가 많아요. 신기한 일이에요.”

김정희 대표는 원래 건축을 전공했다. “설계에는 그렇게 재능이 뛰어나지 않다는 걸 금방 느꼈죠. 그래서 건축 측면에서 바라보며 기획할 수 있는 프로젝트부터 인테리어, 패션쇼 디렉팅, 브랜드 아이덴티티 설계 등은 물론 국가사업까지 다양한 일을 해봤어요. 그러다가 20대 후반 미술 큐레이터로 일을 시작했습니다.” 그때 동료들과 밤새워가며 남다른 퀄리티로 만들던 제안서, 기획안, 공간과 디테일한 마감에 대한 다종 다양한 경험은 김정희 대표가 홀로서기를 결심할 때 용기를 북돋워주었다. 그동안 해온 프로젝트를 헤아려봤을 때 김정희 대표는 자신이 무엇을 사랑하고 있는지 어렵지 않게 깨달았다. “워낙 다양한 것에 관심이 많아요. 그런데 미술이란 장르가 일단 너무 다양하잖아요. 저와 딱 맞더군요.” 그렇다고 김 대표가 건축을 놓은 것은 아니다. 이미 다져놓은 네트워크가 워낙 탄탄하기도 하고, 미술과 건축에서 문화적으로 연결된 지점이 보이니, 자연스럽게 이를 엮을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지금은 자신만의 무엇인가가 꼭 필요한 시대라고 생각해요. 저한테는 그것이 미술과 건축이라고 보고요. 건축을 전공한 갤러리스트로서의 강점이죠. 여기에 더해 ‘중동’을 저만의 강점으로 꼽고 싶어요.”



아직 우리나라에서 중동의 예술은 미지의 영역이나 다름없다. 물론 에텔 아드난Etel Adnan, 와엘 샤키Wael Shawky, 모나 하툼Mona Hatoum 등 세계를 무대로 활약하는 작가와 영향력 있는 미술 시장이나 행사들이 많지만, 여전히 현대미술에서는 변방이기에 국내에서는 큰 관심을 받지 못한다. “2014년 블루스퀘어 네모에서 일할 때 아랍 현대미술전 <유동체Fluid Forum II>를 협력해 만들었어요. 그때 아랍 미술에 대한 저의 편견이 깨졌죠. 2018년에 직접 아트 두바이에 가서 처음으로 중동의 문화를 경험하고는 빠져들었어요. 그후 아랍에미리트, 사우디아라비아, 카타르 등에 매년 찾아갔어요. 덕분에 비엔날레 관계자와 갤러리, 작가 등 탄탄한 네트워크를 갖게 됐죠.” 김정희 대표가 정확히 관심이 있는 지점은 한국의 작가를 그곳에 데려가는 것이다. “제가 매년 그곳을 찾고, 중동 작가의 전시와 교류 프로그램을 만드는 이유는 단 하나예요. 저는 예술성과 기획 면에서 우리나라 작가가 차지할 수 있는 부분이 많다고 믿어요. 저는 반드시 그 기회의 문을 열어주고 말 거예요.”

지난 9월 김정희 대표는 건축가이자 독립 큐레이터인 송승엽과 함께 건축이라는 공통분모를 갖고 있는 정해욱, 하이퍼스팬드럴, 버진 올지아티 3인의 기획전 <(Really) New Territory>를 열었다. “다들 새로움에 목마른 시대예요. 송승엽 기획자는 뻔하지 않은 전시를 기획했어요. 건축가가 주체적으로 자신의 건축적 사유를 미학적으로 풀어내는, 새로운 방식의 작업을 보여주자는 것이었죠. 기성세대 건축가들이 와보고 ‘소름 돋는다’고 할 정도로 반응이 좋았어요. 건축 작품인데 컬렉터 소장도 많이 됐죠. 그런 물결을 일으키는 전시를 하고 싶어요.”

어찌 보면 미술계에선 별종이다. 누구도 등 떠밀지 않았지만, 자발적으로 자신이 열고 싶은 문들을 하나씩 밀고 들어가는 중인 김정희 대표. “작가, 기획자, 컬렉터, 비평가 모두 모여서 생각을 나누다 보면 정말 생각지도 못한 기상천외한 일들이 벌어지곤 하잖아요. 그래서 누구라도 거침없이 쓱 밀고 들어와 푸시투엔터의 전시를 점유하는 주체가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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