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코드 11.59 바이 오데마 피게 그랑 소네리 카리용 슈퍼소네리’ 워치. 수동 와인딩 ‘칼리버 2956’을 탑재한 모델로, 회중시계 수준의 음향 성능을 구현한 슈퍼 소네리 메커니즘을 담았다. AUDEMARS PIGUET.
어둠 속에서 태어난 미닛 리피터
미닛 리피터는 조작 시 시각을 종소리로 알려주는 기계식 타종 컴플리케이션이다. 시hour, 15분 단위quarter, 분minute을 각기 다른 음높이로 구분해 울리기 때문에, 귀로 시간을 ‘읽는’ 경험을 선사한다. 낮은 음이 한 번 울리면 1시, 두 가지 음의 화음이 울리면 15분, 높은 음이 한 번 울리면 1분. 전기도, 배터리도, 디스플레이도 없다. 오직 정밀하게 조율된 스프링과 해머, 그리고 강철 공gong으로 구현된다. 시계 제작자들은 미닛 리피터를 ‘가장 어렵고 가장 보람 있는 컴플리케이션’이라 부르곤 한다. 제대로 만들려면 공학적 정밀함과 함께 음악적 감각까지 갖춰야 해서다. 소리의 품질은 공의 강도와 진동이 케이스 전체로 얼마나 효율적으로 전달되는지, 케이스가 공명판 역할을 얼마나 잘해내는지에 의해 좌우된다. 즉, 미닛 리피터를 만드는 일은 기계공학이면서 음향 공학인 동시에, 어떤 면에서는 악기 제작이기도 하다. 이 기술의 기원은 어둠이다. 전기 조명이 없던 시절, 밤중에 시간을 확인하려면 소리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처음에는 종탑처럼 정해진 시간마다 자동으로 소리를 내는 방식이었지만, 점차 사용자가 원할 때 시각을 요청할 수 있는 ‘리피터’ 방식으로 진화했다.
이 진화의 배경에는 미닛 리피터의 세계에 끊임없이 도전한 이들이 기여한다. 파텍 필립은 이 분야의 기준점으로, 지금도 회장이 직접 사운드 테스트를 거친다는 일화로 유명하다. 바쉐론 콘스탄틴은 가장 오래된 연속 운영 매뉴팩처답게 전통적인 제네바식 미학을 계승하고, 브레게는 아브라함-루이 브레게가 남긴 타종 메커니즘 유산을 소중히 이어받고 있다.
그리고 타종 시계의 개념 자체를 새로 정의해온 두 메종, 오데마 피게와 예거 르쿨트르가 있다. 오데마 피게는 이 역사의 중심에 있던 브랜드다. 1882년부터 1892년 사이, 오데마 피게가 생산한 컴플리케이션 워치의 절반 이상이 타종 메커니즘을 탑재했을 만큼, 차임은 당시 최고급 시계의 핵심 기능이었다. 그리고 1892년, 오데마 피게는 오메가의 전신으로 당시 비엔Bienne에 자리 잡고 있던 루이 브란트 & 프레르와 협력해 세계 최초의 리피터 손목시계를 탄생시켰다. 회중시계를 손목 위로 이식한 이 성취는 당시로서는 경이로운 일이었다. 1922년부터 1940년 사이에는 아르데코 양식의 리피터 손목시계 22개를 제작하며 귀족적 아름다움과 기계적 정밀함을 결합했다. 그러나 1960년대부터 1992년까지 미닛 리피터가 다시 회중시계의 영역으로 후퇴하면서 손목시계에서 자취를 감췄다. 수요 감소, 쿼츠 파동, 소형화 기술의 한계가 맞물린 결과였다.
전환점은 1992년이었다. 오데마 피게의 모델 ‘25723’과 ‘25725’가 차임 손목시계의 새로운 황금기를 열었고, 이후 주요 메종들이 경쟁적으로 미닛 리피터 개발에 뛰어들었다. 예거 르쿨트르 역시 1870년대에 첫 미닛 리피터를 제작한 이후 꾸준히 타종 기술을 축적해왔으며, 1900년 이전에만 100개 이상의 미닛 리피터 칼리버를 제작한 기록이 있다. 오늘날 예거 르쿨트르가 보유한 리피터 칼리버는 200개가 넘는다.


(위) 1882년부터 1892년 사이에 생산한
오데마 피게의 컴플리케이션 워치에는
미닛 리피터 기능이 대다수 탑재돼 있다.
(아래) 1892년, 오데마 피게가 루이 브란트, 프레르와 협력 제작한 세계 최초의
리피터 손목시계.
소리를 재설계한 오데마 피게
과거 미닛 리피터 손목시계에는 우스꽝스러운 역설이 있었다. 시계를 귀에 갖다 대야 겨우 소리가 들린다는 것. 손목에 착용하면 피부가 진동을 흡수해버려 소리가 현저히 작아지기 때문인데, 수백 년 전통을 자랑하는 기술이 정작 손목 위에서는 제 기능을 온전히 발휘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좋은 소리를 내려면 케이스에 고무 등 시계를 패킹하는 개스킷이 없어야 했고, 케이스는 얇고 가벼울수록 좋았다. 장인들은 오랫동안 로즈 골드 케이스가 가장 좋은 음색을 낸다고 믿었다. 이는 곧, 미닛 리피터는 방수도 안 되고, 케이스도 얇고, 소재도 제한적이어야 한다는 뜻이기도 했다. 완벽한 ‘실용 불가 전시용 시계’의 조건이 아닌가!
오데마 피게는 2007년부터 이를 정면 공략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스위스 로잔 연방 공과대학교와 ‘어쿠스틱 리서치Acoustic Research’ 프로젝트를 가동했다. 워치메이커, 엔지니어, 음향학자, 뮤지션까지 참여한 이 팀의 목표는 오직 20세기 초 오픈 케이스 회중시계의 음량과 음질을 손목시계에서 구현하는 것이었다.
8년간의 연구 끝에 2015년, ‘RD#1 프로토타입’ 워치를 공개하고 2016년 ‘로열 오크 콘셉트 슈퍼소네리’ 워치를 상업화했다. 혁신의 핵심은 케이스 구조였다. 기존에는 공이 무브먼트의 플레이트에 고정되어 있어 진동이 플레이트에서 케이스로, 케이스에서 공기로 전달되는 구조였는데, 이 과정에서 에너지가 상당량 손실됐다. 그래서 공을 플레이트가 아닌 구리 합금으로 만든 얇은 공명 멤브레인Resonance Membrane에 직접 연결했다. 이 공명 멤브레인은 무브먼트와 케이스 백 사이에 밀봉된 채로 자유롭게 진동하도록 설계됐다. 오데마 피게는 이를 기타의 상판에 비유했다. 기타 줄을 튕기면 그 진동이 얇은 나무 상판 전체를 울리고, 몸통 내부의 공기가 공명하며 소리가 풍부해진다. 슈퍼소네리는 이 원리를 시계 케이스 안에 구현했다. 놀랍게도 슈퍼소네리는 손목에 착용한 상태에서 오히려 소리가 더 크고 좋아지는 것으로 측정됐다. 피부가 멤브레인을 살짝 눌러 공명 특성을 더욱 최적화하기 때문이다. 역설은 반전됐고 이 기술은 이후 ‘로열 오크 미닛 리피터 슈퍼소네리’, ‘코드 11.59’ 라인으로 확장됐다. 2023년 출시한 ‘코드 11.59 유니버셀’ 워치는 그랑 소네리를 포함한 23개의 컴플리케이션과 40가지 기능을 하나의 케이스 안에 담아냈다.

사운드 박스가 협소한 ‘리베르소’ 모델의 사각 케이스에 맞춰 음질을 향상시킨 ‘리베르소 트리뷰트 미닛 리피터’ 워치. 메종의 미닛 리피터 특허 일곱 가지를 통합 적용했다.

(왼쪽) 미닛 리피터의 음향을 담당하는
예거 르쿨트르의 고음용 공과 무브먼트.
(오른쪽) 런던 웨스트민스터 사원의 빅 벤에서 들리는 ‘웨스트민스터 카리용’의 구현을 위해
4개의 해머를 장착한 ‘마스터 히브리스 아티스티카 칼리버 184’ 워치의 모습.
소리를 공학으로, 예거 르쿨트르
타종 시계는 크게 세 가지 방식으로 나뉜다. 사용자가 시각을 요청하면 시·15분·분을 모두 알려주는 미닛 리피터, 매 시간 15분마다 자동으로 소리를 내는 프티 소네리, 그리고 자동으로 시와 15분을 타종하는 가장 복잡한 형태의 그랑 소네리다. 이 세 방식의 제작 난도는 기하급수적으로 점점 높아진다. 예거 르쿨트르가 이 모두를 다룬다는 사실은, 왜 ‘워치메이커의 워치메이커’로 불리는지를 말해준다.
예거 르쿨트르의 미닛 리피터 접근법은 철저히 엔지니어링 중심이다. 지난 20여 년간 이 메종이 출원한 특허들은 하나같이 소리를 더 잘, 더 크게, 더 효율적으로 만드는 데 집중되어 있다. 그리고 이 도전의 역사를 모은 5년 전 서울에서의 전시, <더 사운드 메이커>를 통해 메종의 그러한 집착적 여정을 보여주기도 했다.
2005년 특허받은 크리스털 공명 기술은 공을 무브먼트 플레이트가 아닌 사파이어 크리스털 다이얼 유리에 직접 납땜으로 고정하는 것이었다. 크리스털 자체가 공명판이 되어 진동이 더 선명하고 넓게 퍼져나가도록 한 구조다. 2009년 특허받은 트레뷔셰 해머Trebuchet Hammer는 중세 공성 무기인 투석기에서 이름을 따왔다. 관절형 이중 축 구조의 이 해머는, 투석기가 반동 에너지를 극대화하듯 징을 타격할 때 에너지 손실을 최소화한다. 더 작은 스프링 배럴로도 더 강하고 명확한 타음을 얻을 수 있으며, 덕분에 무브먼트의 크기와 에너지 소비를 줄이면서도 음량은 오히려 커졌다. 2014년에 발표한 ‘사일런트 인터벌 제거’ 기술은 전통적인 미닛 리피터에서 시 타음과 분 타음 사이, 15분 단위가 없을 때 생기는 어색한 침묵 구간을 제거한 것이다.
이 세 가지 혁신이 하나의 무브먼트에 통합된 대표작이 ‘마스터 그랑드 트레디션’ 시리즈와 ‘리베르소 트리뷰트 미닛 리피터’ 워치다. 후자는 2025년 출시한 신작으로, 새로 개발한 ‘칼리버 953’에 크리스털 공명, 트레뷔셰 해머, 사일런트 인터벌 제거를 포함한 총 7개의 특허 기술을 담았다. 48시간의 파워 리저브를 확보한 것 역시 에너지 소모가 큰 미닛 리피터 무브먼트로서는 주목할 만한 성과다.
예거 르쿨트르의 야심이 극단적으로 발휘된 것은 ‘히브리스 메카니카Hybris Mechanica’ 시리즈다. 2014년 공개한 ‘칼리버 362’는 두께 4.7mm의 자동 무브먼트에 미닛 리피터와 플라잉 투르비용을 완전 통합했다. 올해 공개한 ‘마스터 히브리스 메카니카 울트라 씬 미닛 리피터 투르비용’ 워치는 이 기술을 다시 한번 극한까지 밀어붙인 작품이다. 미닛 리피터의 타음 메커니즘을 메인 플레이트의 3분의 1 공간 안에 완전 통합하고 트레뷔셰 해머로 구동하는 사각 단면 공이 유려한 차임을 만들어낸다.
어둠 속에서 시간을 알기 위해 태어났지만, 오늘날 미닛 리피터를 만드는 이유는 더 이상 어둠 때문이 아니다. 오데마 피게가 8년의 연구와 음향 공학을 동원해 슈퍼소네리를 개발한 것도, 예거 르쿨트르가 트레뷔셰 해머와 크리스털 공명이라는 기술을 개발해 특허를 계속해 쌓아온 것도, 더 실용적인 시계를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것은 기계가 낼 수 있는 소리의 한계를 밀어붙이고 인간의 손으로 가장 작은 오케스트라를 완성하려는 욕망에 가깝다. 이것이 오늘날에도 미닛 리피터가 시계 예술의 왕관으로 불리는 이유다.

스켈레톤 디자인을 넘어 투명한 사파이어 크리스털 브리지를 통해 미닛 리피터의 모든 작동 과정을 감상할 수 있는
‘마스터 히브리스 메카니카 울트라 씬 미닛 리피터 투르비용’ 워치. 미닛 리피터의 타음 메커니즘을
메인 플레이트의 단 3분의 1 공간에 완전 통합했다. JAEGER-LECOULTRE.
COOPERATION 예거 르쿨트르(1877-4201), 오데마 피게(543-2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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