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K 옐로 골드에 9캐럿 오벌 컷 핑크 스피넬과 라운드 브릴리언트 컷 다이아몬드 48개를 세팅한 ‘스타’ 링, 9캐럿 쿠션 컷 퍼플 스피넬을 중심으로 페어 컷
다이아몬드 8개와 라운드 브릴리언트 컷 다이아몬드 2개를 매치해 입체감을 살린 ‘버터플라이’ 링 모두 TIFFANY & CO.
1940년대 레트로, 전쟁이 바꾼 골드와 볼륨의 문법
나는 뉴욕에 갈 때마다 버그도프 굿맨Bergdorf Goodman 백화점에서 반나절씩 보내곤 한다. 1층 주얼리 섹션에 한번 발을 들이면 좀처럼 나올 수가 없기 때문이다. 15년쯤 전에도 그곳을 서성이다가 눈을 뗄 수 없는 팔찌를 만났다. 두툼한 골드 커프 위 몰타 십자가 안에 시트린, 페리도트, 자수정이 세팅된 베르두라Verdura 제품이었다. 1930년대 코코 샤넬 밑에서 풀코 디 베르두라Fulco di Verdura가 처음 만든 뒤 1940년대 레트로의 대표작이 된 이 팔찌에 이끌려, 나는 그 시대의 주얼리 사조를 파고들기 시작했다.
제2차 세계대전은 주얼리 소재의 문법을 송두리째 바꿨다. 전쟁 한복판에서 터져 나온 이 과장되고 청키하고 컬러풀한 스타일을 주얼리 사조에서는 ‘레트로 모던Retro-Modern’ 또는 ‘레트로Retro’라고 부른다. 1970년대, 이 시기의 주얼리가 경매와 빈티지 시장에서 재조명되면서 과거를 돌아본다는 뜻의 ‘레트로’가 소급 적용되었다. 대략 1935년부터 1950년대 중반까지를 아우르는 이 사조는 아르데코의 평면적 기하학과 결별하고 조각품 같은 입체감과 육감적인 볼륨을 앞세웠다. 이전 시대를 평정한 블랙 앤 화이트의 절제된 톤은 알록달록한 유색석에 자리를 내주었고, 전쟁이라는 극한의 제약 속에서 주얼러들은 완전히 새로운 차원의 대담하고 입체적인 다른 조형 언어를 정립해 나갔다.

땜 없이 완성한 유연한 튜브 형태의 ‘세르펜티
투보가스’ 브레이슬릿 워치. 1949년. BVLGARI.

1 주얼리 디자이너 풀코 디 베르두라Fulco di Verdura와 코코 샤넬이 디자인한 ‘몰타 십자가’ 커프 브레이슬릿. 1930년. VERDURA. 2 두툼한 옐로 골드에 큼지막한 시트린을 장식한 링. 1940년대. FD GALLERY. 3 군용 차량 탱크에서 영감을 얻은 18K 옐로 골드 브레이슬릿. 1940년대. FD GALLERY.
플래티넘에서 골드로
벨에포크부터 아르데코까지 하이 주얼리의 주역이었던 플래티넘은 전쟁과 함께 무대에서 퇴장했다. 제1차 대전 때와 마찬가지로 ‘전략물자’로 분류되어 주얼리 제작이 전면 금지되었기 때문이다. 전투기 엔진과 폭발물에 필수적인 소재를 장신구에 쓸 여유는 어느 나라에도 없었다. 유럽 쪽 규제가 특히 심했는데, 프랑스 은행은 1940년부터 귀금속 신규 판매 자체를 막고, 기존 주얼리를 녹여 재활용할 때도 금속량의 일정 비율을 국가에 헌납하도록 했다. 미국은 1941년 12월 참전 이후 플래티넘 사용을 금지하는 한편, 주얼리에 사치세를 부과했고 전쟁이 길어지면서 세율을 더 올렸다.
플래티넘 대신 무대에 오른 건 골드였다. 다만 금은 사실상 화폐나 다름없어 거래가 자유롭지 않았고, 주얼러들은 9K나 10K처럼 순도가 낮은 합금으로 눈을 돌렸다. 구리의 비율을 높여 붉게 만든 핑크 골드와 레드 골드가 이 시기에 대거 쓰이기 시작했다. 은을 섞어 초록빛을 내는 그린 골드도 간간이 등장했다. 소재의 제약은 기법의 실험으로 이어졌다. 금속 내부를 비우는 할로hollow 기법으로 무게를 줄이면서도 볼륨은 유지했고, 표면을 꼬거나 땋거나 주름 잡아 나선·소용돌이·벌집 같은 패턴을 새겼다. 이 시기 골드 세공의 정수를 보여주는 기법이 1920년대 가스관에서 이름을 빌려온 투보가스다. 금을 구리나 나무 심에 촘촘히 감은 뒤, 심을 빼내거나 산으로 녹이면 땜 없이도 유연하게 휘어지는 튜브형 밴드가 완성된다. 불가리는 1948년 이 기법으로 뱀을 형상화한 브레이슬릿 워치를 선보였다. 훗날 메종을 대표하는 ‘세르펜티’ 컬렉션이 여기서 시작된다.

핑크 골드 위 오닉스 얼룩무늬와 차보라이트 가닛의 눈빛으로 야생의 생명력을 시각화한 ‘팬더 드 까르띠에’ 이어링, 옐로 골드와 오닉스의 대담한 대비 속에서 차보라이트 가닛이 반짝이는 ‘팬더 드 까르띠에’ 네크리스 모두 CARTIER.
브로치의 시대
전쟁으로 원단 공급이 막히면서 여성들은 같은 옷을 여러 날 반복해서 입어야 했고, 이에 따라 주얼리의 역할도 달라졌다. 눈에 띄는 대형 브로치 하나면 같은 옷이라도 어제와 다른 분위기를 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꽃다발, 햇살, 새와 동물 같은 자연 모티프가 브로치의 단골 주제로 등장했고, 리본 형태도 자주 쓰였다. 하지만 벨에포크 시대의 얇고 섬세한 리본과 달리 1940년대의 리본 브로치는 두툼하고 조각적이었다. 탱크의 무한궤도에서 따온 굵은 골드 팔찌, 벨트를 풀면 팔찌가 되는 변신형 디자인 등 군용 기계의 구조미를 차용한 피스들이 쏟아졌다. 부쉐론은 이 시기 볼드한 골드 브로치로 두각을 드러낸 메종 가운데 하나다. 전쟁 중 귀금속 재고를 아끼며 버티다가, 창업자의 손자 제라르 부쉐론Gérard Boucheron 체제에서 전후 부활의 발판을 마련했다. 그는 1947년 디올이 발표한 ‘뉴룩’에 호응하듯 동식물 모티프의 골드 주얼리를 집중적으로 내놓았고, 골드를 다양한 형태와 텍스처로 가공해 금속 자체를 디자인의 주인공으로 끌어올렸다.

1930년대 벨트 디자인에서 영감받은 고리 모티프를 바탕으로, 브릭 모티프의 18K 옐로 골드 메시 디테일과 벨트 버클을 연상시키는 다이아몬드 장식을 결합한 ‘루도’ 브레이슬릿 VAN CLEEF & ARPELS.
반클리프 아펠, 발레리나와 루도
반클리프 아펠은 1940년대 레트로의 정수를 보여주는 제품을 여럿 남겼다. 공동 창업자 루이 아펠Louis Arpels은 방돔 부티크에서 도보 거리에 있는 오페라 가르니에의 단골이었고, 그의 발레 사랑이 주얼리에 반영된 결과가 ‘발레리나’ 클립이다. 파리가 나치 독일에 점령당한 뒤 크리에이티브 거점이 뉴욕으로 옮겨지면서 1941년 그곳에서 첫 피스가 탄생했다. 발레리나의 전신을 루비, 에메랄드, 다이아몬드로 구현했는데, 포즈와 의상은 피스마다 달랐지만 얼굴에는 예외 없이 로즈 컷 다이아몬드 한 점을 세팅했다. 에드가르 드가의 발레리나 연작에서 영감을 받은 이 브로치는 지금까지 수백 점의 변주를 선보였고, 메종의 상징으로 이어지고 있다. ‘루도’ 브레이슬릿은 루이 아펠의 애칭 ‘루도’에서 이름을 딴 것으로, 1934년 처음 등장했다. 벨트에서 착안해 벽돌 문양의 골드 메시에 보석 버클을 달아 완성했다. 루이의 아내 엘렌 아펠Hélène Arpels은 이를 긴 장갑이나 소매 위에 착용하곤 했는데, 패브릭 위에서 유연함이 한층 돋보였다. 1940년대 들어 컬러 스톤 버클의 변주가 더해지면서 레트로 시대를 대표하는 피스로 자리 잡았다.

유자와 바질, 민트잎을 곁들인 칵테일에서 영감받은 ‘피아제 칵테일’ 컬렉션. 카닐리언 비즈 6개로 붉은 열매를 묘사한 ‘스파클링 유주’ 링, 총 5.5캐럿 아콰마린으로 푸른 칵테일을 담아낸 ‘시크릿 블루’ 링, 총 3.5캐럿 핑크 쿼츠로 리치 과육을 표현한 ‘리치 트위스트’ 링 모두 PIAGET.
유색 보석과 칵테일 주얼리
보석의 판도도 바뀌었다. 남아프리카 다이아몬드와 버마·태국산 루비의 공급이 끊기거나 크게 줄면서, 주얼러들이 의존할 수 있는 산지로 떠오른 게 브라질이었다. 전쟁 직전 대규모로 개발된 브라질 광산에서 시트린, 자수정, 아콰마린, 토파즈가 쏟아져 나왔고, 이 보석들이 파인 주얼리의 중심을 꿰찼다. 큼지막한 에메랄드 컷이 주류였고, 전쟁 전 비축해둔 소형 다이아몬드를 주변에 배치해 광채를 보강하는 방식이 보편화되었다.
전쟁의 타격을 정면으로 맞은 파리의 주얼리 업계가 위축되는 동안, 대서양 건너 미국에서는 볼드하고 역동적인 칵테일 주얼리가 전성기를 맞았다. 칵테일 링이라는 이름은 1920년대 금주법 시대의 비밀 파티에서 유래했지만, 반지 자체의 스케일이 폭발적으로 커지고 조형이 대담해진 건 1940년대다. 큼지막한 시트린이나 아콰마린을 센터에 놓고 주변을 작은 다이아몬드로 두른 구조가 전형적이었는데, 전쟁이 끝나자 해방감과 맞물려 더 과감한 형태로 진화했다. 이어서 할리우드 황금기와 겹치면서 레드 카펫 위의 대형 브로치와 칵테일 링은 여성들의 자기표현으로 자리매김했고, 스크린 속 배우들의 주얼리가 곧 트렌드를 대변하는 시대적 아이콘으로 부상했고, 흑백 화면을 넘어 전해지는 화려한 보석의 광채는 대중의 미적 기준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았다.
WRITER 윤성원 주얼리 히스토리언이자 한양대 공학대학원 보석학과 겸임교수. <나는 금 대신 보석을 산다>, <젬스톤 매혹의 컬러>, <세계를 매혹한 돌> 등을 집필했으며 주얼리의 역사, 보석학 정보 등 모든 분야를 융합적으로 다루고, 나아가 보석업계의 인재 양성에 기여하고 있다.
COOPERATION 까르띠에(1877-4326), 반클리프 아펠(1877-4128), 티파니(1670-1837), 피아제(1877-42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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