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WV 디자인 스튜디오 채원식·김보령 공동대표
에이전시명 WV를 의미하는 ‘Works & Value’에는 어떤 철학이 담겨 있나요? 그리고 단순한 디자인 협업을 넘어 ‘가치’를 만든다는 것, WV는 그것을 어떻게 정의하나요? WV에서 말하는 ‘가치’는 두 가지 방향에서 정의됩니다. 첫째는 브랜드의 성장에 실질적으로 기여하는 디자인입니다. 시각적 완성도를 넘어, 제품이 시장에서 선택받고 브랜드가 확장되는 과정에 영향을 미치는 디자인을 지향해요. 둘째는 그 작업을 통해 스튜디오 스스로의 가치를 높여가는 것입니다. 좋은 작업이 기준을 만들고, 그 기준이 쌓이면서 WV의 가치 역시 함께 상승한다고 생각해요. 결국 저희가 하는 일은 브랜드의 가치와 WV라는 스튜디오의 가치를 동시에 끌어올리는 일입니다.
스튜디오 오픈 후 현재까지, 어떤 프로젝트들이 스튜디오를 한 단계 성장시키는 계기가 되었나요? 뷰티 분야에서는 토리든과 라카의 리뉴얼 프로젝트가 시작점이었습니다. 두 브랜드와 약 3년간 다양한 작업을 하며 브랜드와 함께 성장하는 경험을 했죠. 최근에는 티르티르와 디어클레어스의 리뉴얼이 브랜드 아이덴티티 측면에서, 네이밍의 ‘하트립 틴트’와 코랄헤이즈의 ‘듀 드롭 틴트’의 패키지 디자인이 프로덕트 아이덴티티 측면에서 스튜디오를 한 단계 끌어올리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풍선을 모티프로 디자인한
네이밍의 ‘블러리 하트 립 틴트’.
현재 진행하는 프로젝트 중 뷰티 브랜드 클라이언트의 비중은 어느 정도인가요? 현재 저희 스튜디오 프로젝트의 클라이언트는 90% 이상이 뷰티 브랜드이며, 그중 국내 80%, 해외 20% 정도입니다. 해외 클라이언트와의 인연은 대부분 저희 작업을 먼저 보고 문의해주시는 방식으로 이뤄져요. 태국 브랜드 슈퍼맘 역시 라카의 제품 디자인을 접한 것이 계기가 되어 찾아주신 경우였죠. 최근 K-뷰티가 글로벌 시장에서 뚜렷한 트렌드로 자리 잡으면서, 그 고유한 무드와 완성도를 구현하기 위해 한국 디자인 에이전시를 찾는 해외 브랜드가 점점 늘고 있습니다.
티르티르의 리뉴얼 작업에서 흥미롭던 부분은 키 컬러인 레드를 매체별로 세밀하게 조정한 점이었어요. 그런데 민감하지 않은 소비자는 무엇이 달라졌는지 느끼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 미세한 차이가 브랜드에 미치는 효과는 무엇인가요? 티르티르는 타원 형상과 레드 컬러라는 훌륭한 브랜드 자산을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레드를 아이덴티티로 삼은 브랜드가 이미 많았기에 ‘어떤 레드를 쓰느냐’보다 ‘레드를 어떻게 쓰느냐’가 핵심 과제였죠. 저희는 매체를 디지털, 인쇄물·제품, 공간으로 구분하고 각각의 특성에 맞는 레드 스펙트럼을 설계했습니다. 콘텐츠 소비 속도가 빠른 디지털 환경에서는 짧은 순간 시선을 사로잡을 수 있는 고채도의 레드를, 오랜 시간 곁에 두는 인쇄물과 제품에는 시각적 피로감 없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중채도의 레드를 적용했어요. 공간은 면적이 넓을수록 색이 실제보다 강하게 느껴지는 특성이 있어, 저채도의 레드로 중채도에 가까운 인상을 전달했습니다. 저희가 궁극적으로 바란 것은 단 하나, 어떤 매체에서 티르티르를 만나더라도 소비자가 ‘하나의 레드’로 기억하게 만드는 것이었어요. 민감하지 않은 소비자가 무엇이 달라졌는지 눈치채지 못한다면, 저희의 의도가 정확히 맞아떨어진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색은 매체마다 달라지되, 브랜드의 인상은 언제나 하나로. 그것이 이 작업의 본질이었죠.

태국 브랜드 슈퍼맘의
패키지 디자인 작업.
태국 브랜드 슈퍼맘 브랜딩 과정에서 새롭고 신선하게 느낀 지점을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세요. 방콕 현지에서 본 태국어 타이포그래피들이 신선하다고 느꼈어요. 띄어쓰기가 없고, 장체 계열 서체를 주로 쓰며, 그래픽은 훨씬 과감하고 색감도 강렬했습니다. 그 조형적 특이성이 인상 깊어서, 그 디테일들을 디자인에 반영하면 태국 소비자들이 친숙하게 느끼지 않을까 싶었어요. 그 고민의 결과로 장체 기반의 타이포그래피를 슈퍼맘 브랜딩에 적용하게 되었습니다. 이 프로젝트를 거치며 K-뷰티에 대한 내부적인 정의도 조금씩 정립되었습니다. 해외의 시선에서 한국다움은 전통적인 요소보다 지금 이 순간 가장 눈에 띄는 것, 즉 K-뷰티 브랜드들이 글로벌 시장에서 보여온 과감하고 진취적이며 세련된 그 모습 자체인 것 같아요. 흥미로운 것은 최근 들어 해외 클라이언트들이 한글 사용을 적극적으로 요청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는 점입니다. 한국 문화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면서 보다 본질적인 한국다움을 원하게 된 것이라고 생각해요.

티르티르의 브랜딩 리뉴얼 프로젝트.
AI 디자인 툴의 보편화가 브랜드 아이덴티티 작업의 본질을 바꾸고 있나요? 본질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바뀐 건 여정이죠. WV는 팀원 모두가 업무에 필요한 스크립트와 앱을 직접 개발해 실무에 적용하고 있습니다. 반복적인 작업이 줄어든 만큼 더 중요한 것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고요. 효율을 높여 본질에 더 가까이 다가가는 것. 저희가 AI를 통해 얻고자 하는 것은 결국 그것입니다.
지금의 뷰티 시장, 과포화인가요 아니면 오히려 기회인가요? 과포화보다 다양화에 가깝습니다. 다만 차별화에 대한 강박이 브랜드를 종종 잘못된 방향으로 이끌기도 하죠. 비어 있는 자리는 분명 있어요. 단, 그 자리가 트렌드 안에 있어야 합니다. 골대 밖으로 찬 공은 아무리 힘차도 의미가 없는 법이죠.
HAIR & MAKEUP ARTIST 김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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