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셔리 ART> 2024년

[2024 ART_COLLECTOR] 예술이 만든 풍류 박수철

공간 브랜딩 프로덕션 쓰쿠루의 박수철 대표는 컬렉팅을 할 때 누군가의 말과 마음이 아닌, 자신의 직관과 내면의 소리를 듣는 행위에 모든 감각을 집중한다. 작품과 더불어 사는 집은 그가 자신에게 오롯한 집중을 쏟은 결과다.

EDITOR 이호준 PHOTOGRAPHER 이경옥

박수철 대표의 컬렉션 취향은 전방위다. 회화와 사진, 조각, 그래픽, 가구 등 장르에 구애받지 않고 자신의 내면을 두드리는 무언가가 있다면 그는 과감히 곁을 내어준다.


박수철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에서 착안해 이름 지은 브랜딩 프로덕션 쓰쿠루를 이끌고 있다. 최근 여의도점에 이어 합정점까지 오픈 소식을 알린 ‘탭샵바’를 포함해 ‘버핏 서울’, ‘하우스 베이커리’ 등 서울의 감각적인 공간을 탄생시켰다.



예술에 매료되는 이유는 제각각이지만, 그 순간만큼은 필히 불현듯 다가온다. ‘하우스 베이커리’, ‘탭샵바’ 등 서울 문화 트렌드 최전선에 있는 유수 브랜드의 브랜딩을 담당해온 쓰쿠루 박수철 대표에게도 예술은 일순간 찾아왔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을 좋아하던 청년이 그의 저서 <노르웨이의 숲> 커버를 장식한 이우환 작가의 ‘선으로부터’ 시리즈에 눈을 뺏기고, 이내 그의 작품 중 일부를 소장하는 데에 이르기까지 말이다. 시작은 순간이었지만 좋아하는 마음은 나날이 깊어졌다. 성북동에 위치한 그의 자택을 보면 이 말이 단번에 이해가 될 터. 마치 예술에 잠식당한 것처럼 집 안 곳곳에 자리한 작품들은 매 순간 그와 곁에 머문다. 아트를 벗 삼은 생활을 나날이 향유하는 셈이다.


처음 대표님의 집을 슬쩍 둘러보고는 사뭇 놀랐습니다. 나가바 유Nagava Yu의 100호 피스와 함께 거실 벽면을 메우는 작품 수 또한 상당합니다.

서울로 상경한 후 한 번도 이사를 해본적이 없어요. 매일 일에 치이다 보니 공간을 갈무리할 시간도 마땅치 않았던 것 같아요. 아직 걸어두지 못하고 보관 상태인 작품도 많죠. 수장고 마련도 고민 중입니다.


언제 작품을 처음 품에 안았나요?

회사명에서도 짐작할 수 있겠지만, 무라카미 하루키를 너무 좋아합니다. 그의 작품 <노르웨이의 숲> 커버에 이우환 선생님의 ‘선으로부터’ 시리즈가 사용됐잖아요. 당시 아트 문외한이었기 때문에 ‘한국 작가가 스타 작가의 책 전면을 차지했으니 참 성공했다’라는 겁 없고 무지한 생각을 품기도 했답니다. 책을 자주 읽다 보니 작품에도 관심을 기울이게 됐고, 이 작품을 소장하고 싶다는 당찬 마음도 먹어봤습니다. 그 가치를 몰랐을 때니까요. 작품에 대해 공부를 시작하고 나서 터무니없는 생각임을 알게 됐고 곧 그의 사인이 새겨진 어떤 작품이라도 좋으니 가져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서울옥션을 통해 선생님의 작품을 구매했죠.


박수철 컬렉터가 애정하는 작품 중 하나인 팀 아이텔의 ‘Untitled (Blocked)’(2009)


구매를 결정하고 난 뒤의 기분은 어땠나요?

작품을 샀다고 주변에 알리니 돌아오는 반응이 그다지 유쾌하지는 않았어요. 빈 캔버스에 점 하나만 찍어놓은 듯한 모습을 보면 객기를 부렸다는 생각을 가졌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구매할 때 저도 그랬으니까요. 하지만 작품을 실제로 받은 뒤에는 그런 염려가 싹 사라졌습니다. 갤러리에 걸려 있던 모습만 봐서 그런지 실제로 받아본 작품은 훨씬 커 보였던 데다 무엇보다 이 작품을 오래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좋았거든요. 실제로 불현듯 작품이 시선의 끝에 닿으면 계속해서 응시하게 되더군요.


작품 소장 과정에서 유독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요?

주로 서울옥션을 통해 작품을 구입하다 보니 그곳에서 일하시는 파트너분과 많은 대화를 나눕니다. 작품과 사람 간의 연을 맺어주는 분이지만, 작품을 소장하는 일은 별로 없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그분에게 작품을 선물하고자 애정하는 작가를 물었더니 베를린과 파리에서 활동하는 팀 아이텔Tim Eitel이라는 작가를 언급하셨어요. 국내에서는 작품을 좀체 구할 수가 없어 베를린 갤러리에 컨택을 시도했습니다. 현지 갤러리스트와 연락을 주고받다가 ‘크리스토’라는 회화를 구매했고요. 파트너분께는 판화 2점을 사서 하나를 드렸죠. 이후 2021년 잠시 파리를 방문했을 때, 당시 연락을 취했던 베를린 갤러리스트가 베를린에 들를 수 있는지를 묻더군요. 연락준 것이 고마워 방문했더니 작가들을 만나는 자리를 마련해줬습니다. 그중 한 명이 최근 파운드리 서울에서 개인전을 연 마르틴 그로스였어요. 학고재에서 개인전을 한 톰 안홀트도 알게 되어 두 분의 작업실을 방문하는 호사도 누려봤죠. 컬렉팅 덕분에 새로운 인연의 물꼬를 트게 된 셈이에요.



나가바 유는 자신의 100호 사이즈 작품이 박수철 대표의 집에 걸린 것을 보고 “원래 그곳에 있던 것 같다”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해당 작품 오른편과 아래에는 이우환 작가의 그림이 함께 놓여 있다.


어떠한 작품을 보고 소장하고 싶다는 열망을 품나요?

별도의 기준은 없습니다. 마구잡이로 모았다고 느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저는 작품을 마주한 순간 느끼는 직감을 믿습니다. 마음속에서 찌릿한 신호를 보내요. 그러면 하루 정도 작품을 홀드해놓고 생각해보는데요. 종일 머릿속에서 작품이 지워지지 않는다면 구매합니다. 망설이다가 작품을 놓쳐 후회한 적도 많거든요. 물론, 사고 나서 후회하는 경우도 더러 있겠지만 어느 경우든 후회의 경험은 필요하다고 봐요.


‘언젠가는 꼭 소장하고 싶다’고 목표하는 작품도 있을 것 같습니다.

바란다고 모두 품에 안을 수는 없겠지만, 혹시라도 제 인생에 언젠가 빛나는 순간이 찾아온다면 그때 저의 곁에 구사마 야요이의 ‘Infinity Nets’가 자리했으면 좋겠어요. 예전 런던 테이트 모던에서 그의 자서전을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아시아에서 어느 정도 입지를 굳혔다 생각해서 뉴욕에 덜컥 갔으나 불현듯 그저 도시 속에서 쓸려 다니는 청춘 중 한 명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라는 이야기가 책 속에 나오는데, 그 마음이 담긴 작품이라고 하더군요. 그 이야기가 그저 특별할 것 하나 없는 평범한 청년인 제게는 위로로 다가왔어요.



이혜인 작가의 회화 작품 ‘기후 관찰Observing the Weather’(2020).


브랜딩의 일환으로 공간을 구현하는 프로젝트도 진행하는 만큼 필연적으로 공간에 대한 이해를 갖춰야 할 듯합니다. 그렇다면 공간에서 아트는 어떠한 영향력을 발휘한다고 보시나요?

최근 아트 작품이 마치 최종 마감재처럼 쓰이는 경우를 종종 봅니다. 예술 작품이 공간에 힘을 불어넣는다는 사실은 대다수가 인정할 테지만, 단지 하얀 벽을 채우기 위해서 작품을 거는 행위는 선호하지 않습니다. 공간에 머무는 이에게 특별한 작품이기에 그 자리에 존재해야 한다고 봐요. 지금 이 거실 벽면에도 일반 갤러리에서라면 절대 시도하지 않을 작품 조합이 이뤄지고 있어요. 누군가의 조언보다는 내가 이 작품에 매료되어 매 순간 감상하고 향유하고 싶다는 마음이 기저에 있어야 작품이 제 영향력을 발산한다고 봅니다.


프리즈 서울과 함께 서울에 다시 한번 아트 열풍이 불 예정입니다. 활약을 기대하고 있는 전시 혹은 아티스트가 있을까요?

다양한 문화권의 전시를 접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최근 모리 미술관에서 티에스터 게이츠의 전시 <아프로 민예Afro-Mingei>를 봤어요. 아프리카계 미국인 아티스트가 일본 및 아시아 예술과 자신의 민족적 문화를 결합한 작품을 선보이는 자리였습니다. 전시 설명문에 “이 전시는 문화의 퓨전이 아닌 프렌드십이다”라는 문구가 있더군요. 이번 프리즈 서울에서도 문화 교류의 장이 될 전시를 만나봤으면 합니다.



이수지 작가의 사진 작품 또한 그의 컬렉팅 리스트에 안착했다.


예술을 컬렉팅한다는 행위가 삶에 어떤 변화를 가져온다고 보나요?

매번 신세계로의 문을 여는 시도처럼 다가옵니다. 어떤 세상이 펼쳐질지 모름에도 불구하고 우선 열고 나면 이전과는 전혀 다른 변화가 일어나니까요. 분명한 건 그 변화가 결코 비정하거나 불행하지 않고, 매일의 환기를 이뤄낸다는 거죠.


장르에 구애받지 않고 소중히 생각하는 작품이 무엇인지 물었다. 고심하던 그가 꺼내온 작품 중 하나인 데이비드 호크니의 판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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