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셔리 ART> 2024년

[2024 ART_COLLECTOR] 컬렉션은 낭만을 싣고 노희영

비즈니스와 미술 컬렉션은 어떤 관계가 있을까. 이에 관한 대답을 살펴볼 수 있는 노희영 대표의 집을 만나보는 시간.

EDITOR 박이현 PHOTOGRAPHER 이경옥

애그니스 마틴과 이수경 작가의 작품 앞에 앉은 노희영 대표.


노희영  ‘비비고’ 브랜드의 성공으로 잘 알려진 마케팅 전문가. 식음연구소와 비앤어스 대표를 역임하고 있으며 ‘삼거리푸줏간’, ‘세상의 모든 아침’, ‘평양일미’ 등의 레스토랑을 운영 중이다.



따가운 햇살이 내리쬐던 7월 말, 남다른 안목과 취향으로 컬렉션계의 숨은 고수로 알려진 노희영 대표의 집을 방문했다. 투자 목적이 아니라 매일 그 아름다움을 만끽하기 위해 컬렉션한다는 그녀의 비하인드 스토리는 언제 들어도 흥미진진하다. 인터뷰를 마친 다음 날, 노희영 대표는 파리로 떠났다. 본디 목적은 팝업 스토어 업무였지만, 브랜딩을 하는 사람으로서 LVMH가 전면에 나선 파리 올림픽이 궁금해 한 달 가까이 파리에 머물 예정이라고 했다. 일찍이 올림픽 기간 LVMH는 루이 비통 트레이, 쇼메 메달, 벨루티 유니폼 등을 통해 브랜드 노출을 약속받았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컬렉션과 대표님 사업의 연관성은 무엇이라 생각하시나요?

제가 여러 개의 레스토랑을 운영하고 있는데, 이제는 단순히 음식 맛만으로 승부가 안 납니다. 프랑스 미식계도 새로운 레스토랑을 여는 것보다 레노베이션이 강세라고 하더군요. 이러한 요소를 사업에 반영하려면 라이프스타일 트렌드를 이해해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요즘 유명하다는 전시회와 넷플릭스 프로그램을 다 봅니다. 유행하는 영화와 음악도 두루 섭렵하죠. 삶의 전반에 관해 관심이 많거든요. 인기 있는 매장이 있다고 들으면, 왜 사람들이 그곳에 줄 서는지 꼭 가봐야 직성이 풀립니다. 시간이 허락하지 않으면, 직원들을 보내 왜 사람들이 줄을 서는지 이유를 찾아오라고 합니다. 미술가도 마찬가지예요. 그 작가가 왜 떴을까요. 어떤 경우는 실력만이 전부가 아닐 때가 있어요. 눈을 감고 먹는 시대가 아닙니다. 오감이 필요한 시기예요. 맛집이라고 해서 맛만 있으면 안 되고, 방문객이 사진을 찍고 싶어 하는 곳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로브 윈Rob Wynne의 작품에 맞춰 지난해 벽을 청록색으로 변경했다.


마케터로서 작가와 전시에 대한 관점이 남다를 것 같아요.

세상 모든 것이 브랜딩입니다. 순수 예술이란 무엇일까요. 순수 미술이라는 말을 종종 사용하지만, 관람객을 위한 행위는 모두 상업 예술입니다. 그 안에서 작가가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며 진화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집에 들어오자마자 보이는 이우환 작가의 작품이 인상적이더군요.

모두 가격만 궁금해해서 공개하고 싶지 않았어요.(웃음) 미니멀리즘 화풍을 선보이는 작가를 좋아합니다. 1986년 퐁피두 센터에서 열린 <일본 아방가르드 아트Japon des Avant-gardes 1910-1970> 전시를 보고 충격을 받았어요. 퐁피두 센터 건축물 자체도, 전위예술이 이미 시작된 미니멀한 일본 미술계도 멋짐 그 자체였죠. 더욱이 전시에서 ‘이우환Lee Ufan’이라는 영문 이름을 발견하고 한국 작가인 것에 놀랐는데요. 그때부터 그에게 관심을 두게 되었습니다.



파독 간호사 출신 노은님 작가가 유명해지기 전부터 작품에 매료돼 여러 점을 소장하고 있다.


최초로 컬렉션한 작품은 무엇인가요?

서도호 작가의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서 작가가 유치원 동창입니다. 그가 제 결혼의 중매를 서줬고, 결혼할 때 그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집’ 시리즈의 1호인 이 판화를 선물했어요. 신랑·신부를 상징하는 청실홍실 색을 활용해 판화를 제작했습니다. 서 작가가 우스갯소리로 작품을 다시 돌려달라고 하는데, 절대 못 줘요. 그의 아버지 서세옥 작가와 온 가족이 집을 짓기 위해 고생하던 모습을 초등학교 때부터 봤습니다. 그 집은 우리가 20대가 되었을 때 완공되었는데, 비원처럼 아름다운 집을 보고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그 집념을 처음부터 봤기에 서도호 작가도 집에 대한 개념이 남다를 것으로 생각해요.


가구와 작품이 멋지게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뉴욕 파슨스 디자인 스쿨에서 프로덕트 디자인을 공부하면서 가구 디자인 수업을 많이 들었어요. 그러다 자연스럽게 가구를 사게 됐죠. 찰스 매킨토시, 알바르 알토, 핀 율 등의 작품을 공부하면서 가구 디자인에 매료됐습니다. 인테리어에도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요. 뉴욕에서 산 첫 가구는 ‘세븐’과 ‘에그’ 체어였어요.


노희영 대표와 돈독한 사이인 미샤 칸의 작품.


집 안에서 가장 좋아하는 공간은 어디인가요?

주방이 제일 중요합니다. 집은 실험실이에요. 음식, 가구, 인테리어를 실험합니다. 새로운 것을 좋아하고 요리와 파티를 즐깁니다. 손님을 초대하면, 전날 밤에 혼자 리허설을 하곤 해요. 식탁 의자는 핀 율 작품이고, 테이블은 직접 제작했어요. 이렇게 길고 큰 테이블을 갖고 싶다는 분들이 많은데, 저처럼 직접 맞춰보세요. 넓은 원목 판자를 2개 붙이면 근사한 테이블이 된답니다. 책상이 있는 거실도 중요한 공간입니다. 여기서 많은 시간을 보내요. 회사 사무실에는 거의 가지 않고, 낮에는 회의실이나 내가 운영하는 식당에 있어요. 밤에는 집 거실이 사무실이 되고요. 컬렉션 디스플레이와 인테리어를 종종 변경하는데, 지금 인테리어는 작년에 완성한 거예요.


컬렉션 취향에 변화가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트렌드에 민감합니다. 속물이라고 말해도 어쩔 수 없어요.(웃음) 마케터로서 미술계 트렌드와 컬러에 관심을 가집니다. 그리고 집에 어울리는 것도 중요합니다. 집에 바로 설치하지 못하는 작품에는 미련이 없어요. 구매하면 무조건 벽에 걸어야 합니다. 당장 행복해야 하거든요. 작품의 투자 가치에도 관심이 없어요. 그러니 다시 팔지도 않죠. 요즘은 미술 시장이 복잡해서, 비싼 작품을 미술관에서 감상하지, 소장은 잘 안 하더군요. 하지만 작품은 내 삶에 들어와야 해요. 사랑하고 사용해야지 어딘가 넣어두고 싶지 않아요. 자녀에게 물려줄 것도 아니고 제 취향에 맞고 우리 집에 맞아야 해요. 가구와 옷도 마찬가지고요.


필립 콜버트가 작품 중심에 노 대표의 영어 이름을 써줬다.


트렌디한 작가와 작품을 좋아한다니 흥미롭습니다. 조금 더 설명해주실 수 있을까요?

투자 가치와 미술사적 가치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지금 가장 주목받는 작가, 이야기가 있는 작가와 작품을 좋아합니다. 앤디 워홀 작품도 파슨스에서 공부할 때 거리에서 종종 보던 작가라는 인연으로 소장하게 되었어요. 장 미셸 바스키아와 ‘팩토리 걸’ 뮤즈였던 에디 세즈윅과의 관계도 재밌죠. 작가로 사는 것이 슬픈 사람이었던지라, 이러한 그의 스토리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람에 대한 관심, 예술가에 대한 관심이 높습니다. 그 사람에 대해 알게 되면 작품이 달리 보이지요. 현재 솔올미술관에서 전시 중인 애그니스 마틴Agnes Martin의 작품이 거실에 있는데, 그녀의 은둔 생활 이야기를 듣고 나니 작품이 멋지게 느껴져 소장했어요.


컬렉션한 모든 작가와 연관된 이야기가 있다는 의미네요?

필립 콜버트Phillip Colbert의 작품과 피규어가 거실에 여럿 있는데요. 작품에 직접 내 영어 이름도 써주었을 만큼 친해졌어요. 가구 디자이너 미샤 칸Misha Kahn도 친하고요. 해외에서 친한 작가들이 오면 이태원 클럽에도 같이 가고 트렌디한 곳을 보여줍니다. 7월에 청주시립미술관에서 강익중 작가의 전시가 열렸는데, 좋아하는 작가이자 친구예요. 축하해주고 싶어서 버스를 전세해 지인들과 청주에 우르르 내려갔습니다. 그날 강 작가가 참 반가워했어요. 이렇게 누가 행복해하는 것이 좋아요. 파티를 열었을 때는 강 작가가 기분이 좋아서 그날 모인 모든 사람에게 그림을 하나씩 그려주기도 했답니다.


거실에서 발견할 수 있는 고가구와 현대미술의 믹스 매치.


컬렉션과 디자인에 관심은 있지만,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모르는 독자에게 조언한다면?

컬렉션은 작품을 구매해야 하는 것이니 사실 자본과 관계되어 있어요.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색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멋진 집을 만들기 위해 뜯어고치고 인테리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색부터 결정할 것을 권하죠. 좋아하는 색을 집에 칠해보는 게 중요합니다. 브랜드 마케팅도 색에서 출발해요. 색감에 예민한 편이거든요. 보시다시피 현재 저의 집은 청록색이 중심인데, 작품에 어울린다고 판단해서 작년에 칠했어요.


프리즈 서울과 키아프 때문에 아트에 대한 젊은 층의 관심이 나날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젊은 층이 아트를 보는 게 단순한 유행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뭐든지 보면 기억에 남게 되어 있습니다. 좋은 콘텐츠를 보면 내 몸에 쌓이게 되고요. 정보를 자세히 모르고 전시를 봐도 괜찮습니다. 인연이 전혀 없던 컵도 한 번 보면 나중에 생각나는 것처럼, 무언가가 가슴을 치면 아닌 것 같아도 맘속에 쌓여서 우리가 변화하게 되죠. 정보를 많이 알면 감상에 방해가 될 수도 있어요. 취향을 찾으려면 많이 보고 느끼는 것이 좋고요. 기본은 알아야 하지만, 감동은 공부로 되는 것이 아니라 파고들어서 느끼는 것입니다. 작가도 아무 생각 없이 그냥 작업했을 수도 있어요. 그저 마음을 표현한 것뿐인데 우리가 감동할 수도 있고요.


애그니스 마틴 작품 맞은편에 있는 데이미언 허스트의 신작 회화.


향후 특별한 계획이 있나요?

11월에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빈센트 반 고흐> 전시가 열립니다. 제가 브랜딩을 맡은 만큼 노희영이 담당하면 전시도 특별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다니엘 뷔랭의 작품이 걸려있는 다이닝 룸. 이곳은 노희영 대표가 집에서 가장 좋아하는 공간이다.



WRITER  이소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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