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셔리 ART> 2024년

[2024 ART_COLLECTOR] 아름다움을 나눈다는 것 샤를 카이생

컬렉팅한 미술 작품을 누군가와 함께 보고 느끼는 일에서 감명을 받는다는 샤를 카이생. 아름다움은 나눌수록 가치가 커진다고 믿는 그의 로프트에 다녀왔다.

EDITOR 박이현 PHOTOGRAPHER 신창용

샤를 카이생 뒤의 레드 라운드 월 작업은 조르주 루스Georges Rousse의 ‘in-situ’.


샤를 카이생Charles Kaisin  벨기에 브뤼셀에 거주하는 컬렉터. 건축을 전공한 뒤 디자이너와 예술가로 활동하고 있다. 재활용 소재를 활용한 기하학 형태의 디자인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동안 까르띠에, 델보, 롤스로이스, 에르메스 등의 브랜드와 협업했다.



벨기에의 수도 브뤼셀에 거주 중인 디자이너이자 예술가 샤를 카이생은 현대미술 컬렉터다. 그의 브뤼셀 로프트는 오랫동안 수집해온 작품들로 가득 차 있다. 마리나 아브라모비치, 아니시 카푸어, 아델 압데세메드, 올라푸르 엘리아손, 제니 홀저 등의 작품이 자리 잡은 이곳은 작지만 꽉 찬 미술관을 방불케 한다. 더욱이 올해 4월, 그는 1층 로프트와 연결된 공간에 ‘프로젝트Projeckt’라는 비영리 아트 갤러리도 오픈했다. 샤를 카이생의 유니크한 취향이 가득한 이곳에 직접 찾아가 첫 컬렉팅을 한 17세부터 오늘까지 이어지는 흥미로운 컬렉션 과정과 예술을 바라보는 그만의 시선에 관해 물어보았다.


로프트에 있는 컬렉션이 정말 어마어마해요. 언제, 어떻게 컬렉팅을 시작했나요?

이게 제가 소유하고 있는 작품의 일부라면 믿어지나요?(웃음) 가까운 거리에 있는 웨어하우스에 더 많은 컬렉션이 있어요. 17세 때 브뤼셀에 온 적이 있습니다. 하룻밤을 보낸 친구 집에서 눈을 뜨자마자 마주한, 벽에 걸린 르네 마그리트 페인팅 10점에 감동했어요. 친구의 부모님과 할아버지가 마그리트와 가까운 사이인데다가, 그의 작업을 전담한 딜러여서 가능했던 일이었죠. 그날부터 막연히 그리고 맹목적으로 마그리트 작품을 구매하겠노라 마음먹었습니다. 당시 주머니 사정이 넉넉하지 않은 학생이었기에 친구의 아버지가 마그리트의 엽서보다 조금 큰 드로잉 작품을 추천해줬어요. 이후 매년 여름 아르바이트를 해서 번 돈으로 작가의 드로잉을 컬렉팅했습니다. 계속 작가에 관해 공부하던 중 우연히 제가 태어난 마을 근처에 사는 어떤 사람으로부터 마그리트의 ‘La Magie Blanche’라는 큰 드로잉 작품을 품에 안은 적도 있습니다. 파리 퐁피두 센터를 포함해 전 세계를 여행하며 전시됐던 작품으로 저에겐 정말 큰 의미가 있는 작품이었는데요. 지금 살고 있는 이 로프트를 얻기 위해 고민을 거듭하다가 16년 전 판매했습니다. 슬프긴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드로잉을 통해 많은 사람과 생각을 나눌 수 있었고, 마그리트에 관해 더 깊이 알게 돼 마음이 괜찮아졌어요.


시간이 지나면서 컬렉팅 취향이 변했나요?

예술 자체가 변화의 연속선상에 놓여 있어요. 세계는 돈의 흐름에 따라서, 다양한 사건들에 의해서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습니다. 만약 20년 전이었다면, 아델 압데세메드Adel Abdessemed의 작품을 구매하지 않았을 수도 있죠. 물론, 당시에도 그는 꾸준히 작업 중이었을 거예요. 다만, 지금의 제가 가진 심미안과 정치·사회적으로 명확한 태도를 지닌 아델 압데세메드의 작업이 공명했기에 프로젝트에서 전시까지 할 수 있게 된 것이죠. 작가는 우리 사회에서 볼 수 있는 미학, 폭력 등 수많은 상황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드러내고 있거든요. 동시에 날카로운 질문도 던지고요. 20년 전의 저라면, 이해하려고 노력조차 하지 않았던 내용입니다.(웃음)


칼로 만들어진 사다리 작품은 마리나 아브라모비치, 사다리 옆 버드 드로잉은 아델 압데세메드, 사다리 뒤 박스 작품은 폴 뷰리Pol Bury, 블랙 & 화이트 콜라주 작품은 사스키아 핀텔론Saskia Pintelon.


예술을 바라보는 관점이 성숙해졌다는 의미일까요?

‘성숙’이라는 단어가 정확할지는 모르겠지만, 예술가뿐 아니라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려고 노력합니다. 이미 잘 알려진 작가일지라도 그가 작업해온 과정을 이해하고, 현재 어떤 일에 관심을 두는지 유심히 관찰하려고 하죠. 다시 말해, 작업이 우리가 직면한 현실과 어떤 관계를 맺는지, 또 어떻게 이를 미화해서 표현하는지를 중점적으로 보려 합니다. 각 작품은 저마다의 사연이 있고, 관객은 여기에서 큰 영향을 받으니까요.


컬렉터로서 새로운 작가를 어떻게 발굴하나요?

끊임없이 작가와 다른 컬렉터를 만나는 일이 중요합니다. 로프트에 사람들을 초대해 만나는 시간을 즐깁니다. 다양한 정보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죠. 또 전 세계에서 열리는 다양한 아트페어에 방문해 신진 작가들을 발굴합니다. 자주 가는 곳을 꼽자면 런던과 뉴욕? 특히 런던에는 제 호기심을 자극하는 신진 작가들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데요. 이런 재능 있는 작가들의 작업을 만나고, 경제적으로 지원하는 데 보람을 느낍니다.


테라코타 작업은 세니 아와 카마라Seyni Awa Camara, 브론즈 스툴은 에릭 크로스Eric Croes, 컬러풀한 스트라이프 페인팅은 해럴드 앤카트Harold Ancart, 모빌은 올라푸르 엘리아손의 작품.


경제적으로 지원하는 작가들을 고르는 기준이 있나요?

사실 명료한 기준은 없어요. 그래도 설명해야 한다면, 작가의 작업 과정을 이해하고 강렬한 무언가를 발견하는 순간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그동안 많은 것을 봐왔기 때문에 이제는 직관적으로 느낄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작가의 개성과 야망, 가고자 하는 방향과 신념을 보려는 건 당연하고요.


개인적으로 선호하는 작업 방식이나 특정 매체가 있나요?

<럭셔리> 독자들이 로프트와 프로젝트를 둘러보면 금방 알 텐데, 기회가 없어서 아쉽습니다.(웃음) 보시다시피 벽에는 회화 작품들이 자리 잡고 있고요. 다이닝룸 옆에는 마리나 아브라모비치Marina Abramović가 칼로 만든 사다리 작품이 있습니다. 그 앞에는 그녀가 원석으로 만든 작품도 있죠. 그리고 곧 다이닝룸과 거실 근처에 각각 미셸 프랑수아Michel François가 베네치아에서 선보인 작품, 300kg이 넘는 앤터니 곰리Antony Gormley의 작품이 설치될 거예요. 정말 다양한 작업 방식과 재료를 넘나드는 컬렉션 아닌가요.



아델 압데세메드와 함께한 비영리 아트 갤러리 ‘프로젝트’.


그렇다면 당신의 컬렉션 중 보면 볼수록 매력적인 설치 작품을 꼽아볼까요?

먼저 아니시 카푸어Anish Kapoor의 모형 작업을 꼽겠습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커다란 설치 작품이 아주 견고하게 재탄생했거든요. 음과 양, 여성과 남성을 상징하는 카푸어의 작업이 드물기에 더욱 특별하죠. 타키스Takis의 라이팅 작품도 빼놓을 수 없겠네요.


예술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당신의 개인 컬렉션을 학생들과 공유한다고요?

제 수업을 듣는 학생들을 집으로 초대해 컬렉션을 감상하고 작품에 대해 의견을 나누는 시간을 적어도 한 학기에 두 번은 가지려고 노력합니다. 좀 더 캐주얼한 분위기에서 작품을 감상할 수 있고, 젊은 학생들의 신선한 시선과 의견은 저에게 큰 영감이 되니까요.


비영리 아트 갤러리인 프로젝트의 전시는 어떻게 진행되나요?

1년에 몇 번 전시하겠다는 특별한 방침은 없어요. 유명 갤러리에 소속된 작가여도 방향성이 맞으면, 그동안 공개하지 않았던 새로운 작업을 소개해달라고 부탁할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충분한 준비 기간이 필요합니다. 두 달 정도 이어지는 전시가 시작되면, 매주 토요일마다 같이 일하는 필리프와 도슨트 시간을 마련해서 전시장을 찾는 사람들에게 최대한 자세히 작가의 작업에 관해 설명하려고 합니다. 우리가 좋아하는 예술을 더 많은 사람과 공유하고 싶거든요.


샤를 카이생이 직접 디자인한 다이닝 테이블 뒤 삼부작 페인팅은 해럴드 앤카트, 신문을 쌓아 만든 것은 데루야 유켄Teruya Yuken의 작품. 뒤로 보이는 구리로 제작된 사다리는 앨리스 앤더슨Alice Anderson, 다이닝 테이블 끝의 사진은 카일량 양Kailiang Yang.


우리의 대화를 지켜보고 있는 필리프 르뵈Philippe Levieux와 8년 동안 일했다고 들었어요. 무언가를 결정할 때 엇박자가 난 일은 없었나요?

작가와 작품을 선택해야 할 때 각자의 목소리를 경청합니다. 대체로 비슷한 취향을 가지고 있지만, 종종 상반된 의견이 존재할 때도 있어요. 제가 그의 말에 동의하지 않으면, 필리프는 제 팔을 잡아당기며 왜 좋아하지 않느냐고 물어보는데, 이럴 때마다 심도 있는 토론을 하게 돼요. 우리는 매주 다양한 전시를 보고, 작가 스튜디오에 방문합니다. 지난주에는 이탈리아에 있는 ‘갈레리아 콘티누아Galleria Continua’에서 전시를 보았고, 다음 주에는 프랑스 ‘카르미냑 재단Fondation Carmignac’에 갈 계획이에요. 직접 보고 느껴야 온전히 이해할 수 있거든요. 이는 제 로프트에 여러 작품이 공존할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사람마다 컬렉팅하는 목적이 다릅니다. 누구는 투자일 수도 있고, 누구는 사회적 지위를 보여주기 위함일 수도 있죠. 당신은 어떤가요?

여기에 ‘충동적’이라는 말도 추가해주세요.(웃음) 실제 꽤 많은 컬렉터가 그렇거든요. 3가지 항목 모두 조금씩 해당하지만, 저의 컬렉팅 밑바탕에는 작품이 가진 독특한 면모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아무리 아름다워도 특정한 기능을 지녀야 하는 생활 속 오브제와 미술 작품은 달라요. 그래서 저는 작품이 우리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는지, 우리에게 끊임없이 어떤 질문을 던지고 이해시키려 하는지를 면밀하게 살펴봅니다.


요한 크레텐Johan Creten의 스툴 위에서 올라푸르 엘리아손의 모빌을 바라보고 있는 샤를 카이생. 뒤에 보이는 페인팅은 해럴드 앤카트, 뒤의 가구와 오른쪽에 보이는 거울은 엘리아손의 작품, 그리고 타키스의 라이팅 작품.


오랜 시간 대화하면서 당신의 말 속에 ‘나눔’이라는 가치가 녹아 있단 걸 깨달았어요.

어쩌면 제가 학생들을 가르치는 사람이라서 그런 것일지도요. 벨기에의 또 다른 훌륭한 컬렉터와 비교하면, 제 컬렉션의 규모는 작아요. 그렇지만, 이러한 컬렉션이라도 기회가 될 때마다 미술관 전시를 위해 빌려주고, 나아가 주변 이웃, 친구, 심지어는 모르는 사람과도 함께 감상하며 작품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려 해요. 아름다운 것은 더 많이 나눌수록 그 가치가 커진다고 믿으니까요.



응접실에는 타키스의 라이팅 작품, 해럴드 앤카트의 UFO 그림과 성냥 페인팅, 아나스타샤 베이Anastasia Bay의 인물 페인팅, 트레이시 에민Tracey Emin의 누드 드로잉이 빽빽하게 전시되어 있다.



WRITER  김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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