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셔리 M> 9월호

아티스트 김휘동, 캔버스에 새긴 초유령적 이미지

김휘동은 디지털 세계에서 마치 유령처럼 부유하는 이미지를 포착해 자신만의 그림 언어로 치환한다. 
어디에나 있을 법한, 그러나 실재한 적 없었던 노스탤지어를 담고서.

EDITOR 이호준 PHOTOGRAPHER 이우경

김휘동  모바일과 스크린, 지면을 막론하고 생산과 복제, 그리고 확산과 소멸을 제약 없이 반복하는 현시대의 이미지를 유령에 비유하며, 바야흐로 동시대를 ‘초유령화’라는 맥락으로 바라보고 이를 회화로 구축한다. 실재 또는 실존의 구분이 모호해진 시대에서 실체적 물성을 가진 회화의 기능과 역할을 고민하는 중이다. 서울아트위크 기간에 더 프리뷰 성수에서 그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김휘동 작가는 현대사회의 이미지가 마치 ‘유령’ 같다고 표현한다. “제 그림은 레퍼런스를 필요로 하는 작업입니다. 실제 인물이나 풍광, 사물 대신 디지털 속 세상, 즉 평면 스크린 속을 보고 그리는 행위에 더 친숙함을 느낍니다. 하지만 매번 너무 많은 양의 이미지를 마주하게 됩니다. 그리고 각 이미지가 어떠한 기능과 의미를 담고 있든 간에 우리는 스와이프 한 번에 그 이미지를 휘발시키거나 몇 번의 조작으로 쉽게 변형합니다. 쉽게 크롭될 수 있고 또 쉽게 공유될 수 있다 보니 히토 슈타이에를이 정의한 ‘빈곤한 이미지’처럼 원래의 목적성과 형태가 소멸해 마치 유령같이 부유하는 듯 느껴집니다.”

그렇지만 작가는 매일같이 디지털 세상에 접속한다. 인스타그램, 유튜브, OTT 등의 플랫폼을 통해 그저 보고, 그림으로 구현하고 싶은 장면이 있다면 마치 컬렉터가 작품을 수집하듯 캡처해 보관 폴더에 저장한다. 이미지를 확대하거나 크롭해서 저장하는 경우도 잦다. 그 과정에서 이미지의 크기, 형태, 화질, 색 등이 바뀌면 그 순간부터 해당 이미지는 원본과 복사본이라는 아류적 관계를 벗어난 또 다른 고유의 이미지가 된다. 부유하던 유령이 유동적으로 변화하는 그 순간을 두고 김휘동 작가는 ‘초유령적’ 상태라 이름 붙였다. 원본이 더는 실재하지 않아 출처에 얽매이지 않게 된, 새로운 이미지로 거듭난 상태. 그것이 바로 작가가 정의하는 초유령적 상태다. 그는 회화 작업을 통해 이를 현실 세계에 구현해낸다. 우선 SNS에 업로드된 이미지, 영상이나 광고의 한 장면을 사실적으로 표현한다. 그림의 대상이 되는 인물이나 사물의 모습은 온전할 수도, 어딘가를 강조한 듯 확대될 수도, 혹은 무언가에 의해 가려져 있을 수도 있다. 다만 그는 자신의 터치로 환한 빛을 캔버스에 구현하고 그림자를 그려 일견 아련해 보이는 작품을 만들어낸다. 그의 터치로 탄생한 화면 속 아련함은 회화로 승화한 이미지를 ‘초유령적’이라 부를 수 있는 상태로 이끌고 간다. 원본 이미지를 그리되 이를 흐릿하게 가려지듯 표현함으로써 원 이미지의 시공간성을 의도적으로 해체해 이것이 어디에서 어떻게 오게 되었는지, 원래 어떤 색을 지녔는지, 무엇이 편집되었는지를 그저 유추하게끔 만든다. 올해 6월, CDA갤러리에서 열린 김휘동의 개인전<하이퍼 고스티즘Hyper Ghostism>은 바로 이런 상태를 구현한 29점의 작품들을 전시한 자리다.



개인전을 준비하다 문득 그는 자신이 수집한 일련의 이미지들 간의 연결 고리를 발견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저는 특히 일본에서 생겨난 콘텐츠, 가령 애니메이션이나 영화, 드라마 심지어는 음악에서 많은 영향을 받습니다. 특히 1980~1990년대 만들어진 것들을 즐겨 보는 편입니다. 일례로 에반게리온이나 신카이 마코토의 작품, 푸른 산호초를 부르는 마츠다 세이코의 무대 등을 봐요. 영상을 보면서 저도 모르게 많은 이미지를 캡처해 저장합니다. 그저 그려보고 싶은 마음 때문인 줄 알았는데, 실은 ‘그리움’이라는 감정 때문이더군요. 제게 실재하지 않는 기억인데도요. 향수와 유사한 무언가를 느끼다니 말이 안 되지 않나요? 겪어보지 못한 것에 대한 노스탤지어는 마치 모든 이가 청춘을 막연히 그리워하는 마음과도 같다고 느꼈습니다.” 이는 그가 화이트스톤 갤러리에서 ‘Youth’를 테마로 한 단체전에 작품을 출품한 것과도 일정 부분 맥락이 닿아 있는 지점이다.

서서히 자신의 작품 세계를 확장하고 심화하는 그는 올해 누구보다도 바쁜 시간을 보냈다. 개인전과 단체전을 연달아 준비하는가 하면 키아프와 프리즈 서울을 필두로 하는 서울아트위크 무렵에는 성수동에서 열리는 위성 전시 격 페어 ‘더프리뷰’에도 작품을 출품할 예정. 마치 수행하듯 그림을 그려내는 셈이다. “올해만 총 4개의 전시 계획이 있었어요. 이후에는 잠시 재정비의 시간을 가지려 합니다. 자신을 낭비하고 싶지는 않으니까요. 다만 그 시간에도 절대 붓은 놓지 않을 거예요. 저는 무조건 그림을 그려야 하는 사람이라는 걸 알아요. 매일같이 그릴 수 있는 것들을 찾고 있습니다. 디지털 세상의 유령이 되어서요.”



INSPIRATION IN LIFE

디지털 세계에서 유령처럼 떠도는 이미지를 수집하는 김휘동 작가의 작품 세계를 이루는 것들.



영화나 애니메이션, 지면, 심지어 음악까지 일본의 문화 콘텐츠를 즐긴다. 특히 그는 동시대 작품이 아닌 1980~1990년대 작품을 조금 더 선호한다. 작업실을 방문할 당시 김휘동 작가는 일본 아이돌의 전설이라 불리는 모리타카 치사토의 앨범을 보여줬다. 따라 부르기 쉬워 그림을 그릴 때면 저도 모르게 흥얼거리게 된다고.



성산동에 위치한 김휘동 작가의 작업실 한편에는 일본 여행에서 사온 사진집이나 애니메이션 피규어가 자리하고 있다. <에반게리온>의 아스카 피규어가 가장 먼저 보이지만 그가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는 미사토다.



CDA 갤러리에서 열린 김휘동 작가의 개인전 <하이퍼 고스티즘> 전경.



김휘동 작가는 히토 슈타이에를이 내세운 빈곤한 이미지에 대해 감명을 받았다. 디지털 세계에서 이미지를 수집하는 그에게 이미지의 효용, 형태, 함의 등은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요소이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백남준 아트센터가 위치한 곳 인근에 살았던 김휘동 작가는 이곳에서 작가가 창작한 작품이 전시를 통해 선보이게 되는 것에 감명을 받았다. 이곳이 그가 작품을 창작하고 싶다는 마음을 갖게 해준 시작점인 셈이다.



화이트스톤 갤러리에서 열린 단체전 에 출품한 작품 ‘Bubble Gum’. 포트레이트 촬영 당시 그는 뉴진스의 팬 티셔츠를 입고 있었는데 해당 작품명을 듣고 그가 뉴진스의 팬임을 확신했다.



캡처한 이미지를 화폭에 구현하는 모습. 그는 작품을 그릴 때 최대한 다양한 재료를 활용하려 한다. 아크릴, 유화, 에어브러시 등을 활용해 다채로운 표현을 하기 위해서다.



OTT 콘텐츠도 즐겨 본다. 인터뷰 당시 그가 보고 있던 넷플릭스 프로그램 <도쿄 사기꾼들>의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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