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셔리> 2024년 9월호

페라리 푸로산게, 게임 체인저

‘푸로산게Purosangue’는 페라리 75년 역사상 최초의 ‘4도어 4인승 스포츠카’다. 푸로산게를 타고 일본 나가노-하코네-도쿄를 달리는 ‘미디어 그랜드 투어’에 다녀왔다.

EDITOR 박이현

후지산을 배경으로 서 있는 페라리 푸로산게.


‘푸로산게’는 페라리 75년 역사상 최초의 ‘4도어 4인승 스포츠카’다.


440km에 달하는 일본 도로 위를 달리는 동안 연신 감탄사만 내뱉었다. ‘푸로산게’가 발산하는 밀당의 매력에 사로잡혔기 때문. 스티어링 휠을 잡았을 때는 심장박동이 뛰었는데, 2열 시트에 앉았을 때는 약간의 살랑거림만 동반하는 편안함이 찾아왔다. 본능적 드라이빙과 안락한 뒷좌석을 동시에 제공하는 페라리라니, 그야말로 진정한 게임 체인저의 등장 아닌가.

일견 푸로산게는 SUV처럼 보이지만, 페라리는 푸로산게를 SUV라고 지칭하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기본적으로 외관에선 일반적인 GT 차량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세련된 스포티함으로 무장해서인지 푸로산게는 지평선까지 이어진 길을 유려하게 미끄러져 나갈 듯한 인상을 자아낸다. 또 차량 높이가 1589mm로 높아졌으나, 우리가 흔히 소형 SUV로 구분하는 다른 자동차 브랜드 모델보다는 작다. 페라리 라인업 안에서만 훌쩍 성장했을 뿐이다. 무게 배분도 흥미롭다. 프런트 미드 엔진과 후륜 쪽 기어박스의 중량 비율을 49:51로 만들었다. 안정적인 핸들링과 가속에 이상적인 수치다. 이러한 스펙만 나열하면, 푸로산게는 이상적인 스포츠카와 다름없다. 2022년 푸로산게를 공개할 때 페라리는 “가족 모두가 페라리를 경험하길 원하는 고객의 목소리를 반영했다”라고 말한 바 있다. 결국, 페라리 고유의 DNA는 새겨둔 채 같은 시공간에서 더 많은 사람이 페라리를 즐길 수 있는, 전 세계에서 유일무이한 차량이 푸로산게인 것. 이는 페라리가 이탈리아어로 ‘순종throughbred’을 뜻하는 푸로산게를 이름으로 채택한 이유일 테다.



스와 다이샤에서 무사고 운전을 위한 차량 정화 의식이 진행됐다.


‘미디어 그랜드 투어’의 첫 번째 코스는 나가노 야쓰가타케 국립공원 산기슭에 있는 도비라 온천 묘진칸에서 출발해 비너스 라인, 스와 다이샤(신사), 가와구치 호수를 거쳐 하코네에 도착하는 여정이었다. 약 230km의 경로는 와인딩 도로가 주를 이뤄 코너링을 살펴보기에 적합했다. 낯선 나라에서의 운전이기에 긴장감을 안고 시동 버튼을 눌렀다. 그런데 시동을 걸자마자 들려온 배기음은 6.5리터 자연 흡기 12기통 엔진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정숙했다(최고출력 725마력, 최대토크 716Nm). 지난 5월 ‘페라리 투어 코리아 2024’의 파트너였던 ‘296 GTB’(6기통 엔진 & 하이브리드 시스템, 최고출력 830마력, 최대토크 740Nm)보다 작아 의아하던 찰나, 푸로산게가 ‘일상으로 들어온 페라리’라는 정의가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앞서 말하지 않았던가. 푸로산게 밑바탕에는 페라리 고유의 DNA가 존재한다고. 서서히 가속페달을 밟았더니 5000RPM을 넘어가는 지점에서, 레이싱 애니메이션 속 드라이버가 “부스터 온!”을 외치면 바로 반응하는 ‘크레센도(점점 세게) 배기음’을 뿜어냈다. 흡사 바리톤에서 테너로 탈바꿈하는 야누스적인 모습이랄까. 코너링은 예술 그 자체였다. 4개의 바퀴가 각자의 역할(모두 조향 가능)을 충실히 이행한 까닭에 급격한 코너에서도 빠르게 균형을 맞췄다. 태생이 낮은 차체인 296 GTB야 원심력을 가뿐하게 무시하지만, 키가 커진 푸로산게가 안정적인 건 반칙이란 생각이 들었다.


6.5리터 자연흡기 12기통 엔진을 장착했다.



푸로산게 운전석은 ‘SF90 스트라달레’에서 영감을 받았으며 거의 정확하게 조수석과 대칭을 이루고 있다.

실내 아키텍처는 듀얼 콕핏 대시보드 콘셉트를 기반으로 한다.


두 번째 코스는 하코네 턴파이크와 에노우라 측후소, 다이코쿠 휴게소, 도쿄 시내를 잇는 210km 루트. 국도와 고속도로가 혼재해 다양한 승차감을 느낄 수 있었다. 일단, 운전석에 올라 ‘일상’이라는 테마에 맞춰 마네티노Manettino 다이얼을 컴포트 모드에 맞췄다. 주행 성능은 두말하면 잔소리다(최고속도 310km/h, 제로백 3.3초). 폭발적이고, 묵직하다. 더욱이 알아서 센스 있게 안정감을 유지하니 ‘눈은 도로에, 손은 스티어링 휠에’ 둔 장거리 고속 주행에 자꾸만 욕심이 생겼다(시프트 다운을 사용하려면 마네티노 다이얼을 스포츠 모드로 변경하는 게 낫다). 승차감은 푹신한 쿠션을 상상하면 안 된다. 주지하다시피 페라리의 DNA는 스포츠카에 기인한다. 스포츠카의 서스펜션은 단단한 편인데, 무게중심이 크게 변하지 않고, 운전자의 조작에 피드백이 빨라 고속으로 코너링할 때 큰 도움이 된다. 그렇다고 푸로산게의 승차감이 떨어지는 건 절대 아니다. ‘이런 노면이구나!’라고 인식하는 수준이지, 전체적으로는 부드럽다. 즉, 푸로산게의 서스펜션은 스포츠카와 최고급 차량의 승차감을 적절하게 결합했다고 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버메스터Burmester® 오디오 시스템을 주행의 화룡점정으로 꼽는다. 저음과 고음을 생생하게 묘사하는 혁신적 기술이 드라이빙의 묘미를 배가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동승자들이 우스갯소리로 엔진 소리보다 버메스터 사운드가 더 기억에 남는다고 했을 정도. 이처럼 버메스터 시스템을 통해 흘러나온 음악이 도파민 넘치는 환경을 조성한 덕분에 긴 투어를 가족여행 같은 분위기에서 마무리할 수 있었다.


4개의 바퀴가 모두 조향 가능해 급격한 코너에서도 빠르게 균형을 맞춘다.


만화 <슬램덩크>의 배경인 가나가와현에 들렀을 때 주목받았던 순간을 여전히 잊지 못한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페라리 로고에 웃음꽃을 피웠으니까. 추측건대 서킷에서나 볼법한 차량이 일상에 침투한 게 의아했으리라. 그만큼 페라리는 선망의 대상이다. 그런 페라리가 푸로산게와 함께 친숙함으로 다가온다. 때로는 거칠게, 때로는 섬세하게 상황에 맞춰 변하는 푸로산게, 듣기만 해도 궁금하지 않은가. 라이프스타일의 판도를 뒤흔들 푸로산게는 올가을 서울에서 만나볼 수 있다.



휠 사이즈는 전륜이 22인치, 후륜이 23인치다.



2열 시트 센터 콘솔에서 에어컨, 열선 통풍 시트 등을 조절할 수 있다.



COOPERATION  FMK 페라리(537-03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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