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셔리> 2024년 7월호

롤스로이스, 컬리넌 시리즈Ⅱ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질 수 있는 모든 것을 우아함과 섬세함으로 탈바꿈한, 아니 극대화한 롤스로이스 ‘컬리넌 시리즈Ⅱ’를 스페인 이비사섬에서 만나고 왔다.

EDITOR 박이현

스페인 이비사섬에서 촬영한 ‘컬리넌 시리즈 II’.


롤스로이스가 6월 9일부터 10일까지 스페인 이비사섬 북쪽 ‘식스 센스 리조트’에서 ‘컬리넌 시리즈 II’를 가장 먼저 경험할 수 있는 글로벌 미디어 행사를 개최했다. 2018년 출시된 롤스로이스의 첫 SUV ‘컬리넌’은 지난 6년간 ‘어디서나 수월하게Effortless Everywhere’ 브랜드만의 고유한 승차감인 ‘마법의 양탄자Magic Carpet Ride’를 선사하며, 롤스로이스 전체 제품 중 최다 판매량을 기록한 차량으로 등극했다(2023년 글로벌 총판매량은 6032대로 역사상 최고 실적). 이번에 공개한 컬리넌 시리즈 II는 컬리넌의 부분 변경 모델이다. 얼핏 정체된 것처럼 들리지만, 롤스로이스는 동중정動中靜의 대명사가 아니던가. 실제로 운전을 해보니 “슈퍼 럭셔리 자동차를 재정의하는 컬리넌의 새로운 매력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는 CEO 크리스 브라운리지Chris Brownridge의 호언장담에 연신 공감할 수 있었다.



롤스로이스의 상징인 보닛 위 조각품 ‘환희의 여신상’.



부분 또는 전체를 광택으로 마감할 수 있는 7-스포크 디자인은 운행 시 차량이 지면 위를 떠다니는 듯한 착시 효과를 준다.



쿼터백의 움직임, 컬리넌 시리즈 II

결론부터 말하자면, 단순 스펙만으로, 즉 몇 개의 숫자와 단어만으로 컬리넌 시리즈 II를 설명하는 일은 불가능에 가깝다. “롤스로이스는 단순히 ‘자동차’만을 지칭하지 않습니다. 그 이상의 럭셔리한 라이프스타일을 의미하죠. 롤스로이스를 이해하려면 이러한 맥락에서 접근해야 해요. 이는 우리가 여러분을 이비사에 초대한 이유입니다.” 글로벌 미디어 행사 ‘Effortless Everywhere–Cullinan Series II’의 포문을 연 글로벌 커뮤니케이션 총괄 에마 베글리Emma Begley의 인사말 중 일부다. 처음엔 이를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했다. 롤스로이스와 이비사의 상관관계를 유추하지 못했으니까. 그러나 금세 깨달았다. 저 멀리서 리듬에 몸을 맡긴 디제이가 미국 소프트웨어 회사의 임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뒤로. 맞다. 흔히 이비사를 EDM의 성지로 알고 있지만, 섬의 북부는 조용한 럭셔리를 지향하는 사람들에게 딱 맞는 지중해의 휴양지다. 정중함과 화려함이란 상반된 조합의 극치, 롤스로이스로 이비사섬을 달릴 상상으로 설레던 첫날 밤이 그렇게 지나갔다. 롤스로이스는 롤스로이스였다. 다음 날 컬리넌 시리즈 II를 타고 도심에 나서자마자 행인들의 뜨거운 시선이 롤스로이스의 상징인 보닛 위 조각품 ‘환희의 여신상Spirit of Ecstasy’으로 향하고 있음을 체감했다. 그도 그럴 것이 컬리넌 시리즈 II의 디자인은 깔끔함 그 자체다. 3~4개의 선을 굵직하게 일필휘지한다면, 자동차의 전체적인 뉘앙스를 묘사할 수 있다. 먼저, 앞쪽의 수직 그릴은 웅장한 럭셔리 크루즈 요트의 선수와 닮았다. 전면부의 핵심은 컬리넌에 최초로 적용된, ‘팬텀’ 시리즈가 연상되는 ‘일루미네이티드 판테온 그릴Illuminated Pantheon Grille’. 일렬로 늘어선 그릴은 흡사 마천루 같은데, 운행 중인 차량을 정면에서 보노라면, 고층 빌딩을 배경으로 어두워진 거리를 미끄러져 나가는 대도시의 슈퍼 히어로가 떠오른다. 후면부는 요트의 선미와 비슷하다. 천장에서 트렁크로 이어지는 매끈한 대각선 라인은 금방이라도 바람 속을 유영할 듯한 모양새다. 화룡점정은 알루미늄 빌릿을 가공해 만든 23인치 휠. 부분 또는 전체를 광택으로 마감할 수 있는 7-스포크 디자인은 운행 시 차량이 지면 위를 떠다니는 듯한 착시 효과를 줘 마법이란 소리가 절로 나온다.


트렁크에 있는 전동식 뷰잉 스위트에 앉아 수평선을 바라보거나 스타라이트 헤드라이너를 감상할 수 있다.


내부 인테리어는 황홀함을 자랑한다. 은하수를 표현한 스타라이트는 포근한 분위기를, 은은하게 풍기는 가죽 향기는 거실 소파에 앉아 창밖 풍경을 바라보는 분위기를 자아낸다. 더불어 대시보드를 수놓은 나뭇결, 롤스로이스의 본고장 굿우드Goodwood의 하늘에 떠 있는 구름에 영감받아 제작한 ‘플레이스드 퍼포레이션Placed Perforation’ 패턴(0.8mm와 1.2mm 천공 10만7000개로 구성)을 입은 시트, 푹신한 바닥 매트 등은 ‘신발을 벗고 차에 올라타야 하나?’라는 질문마저 던지게 한다.

컬리넌 시리즈 II 시승은 2인 1조로 진행됐다. 식스 센스 리조트를 출발해 파세이그 항구Passeig del Port에 도달하는 루트(약 35km)에서 에디터는 전반부 드라이빙을 배정받았다. 타이트한 와인딩 주로가 예상돼 다소 긴장했지만, 심호흡으로 가슴을 안정시킨 다음 시동 버튼을 눌렀다. 그런데 12기통 6.75리터 가솔린 터보엔진이 맞나 싶더라(최고출력은 571마력, 최대토크 850Nm). 극도의 정숙함을 보여줘서다. 심지어 부드럽기까지 했다. 가속페달을 살짝 밟았을 뿐인데, 금세 속도가 올라갔다. 약 3톤의 거구가 시속 100km에 도달하는 시간은 5.3초. 자칫 집중력이 흐트러지면 눈 깜짝할 사이에 서울에서 온 핫한 레이서가 될 것만 같았다. 특히 에디터의 루트에는 속도를 감속해야 하는 구간이 잦아 주의를 기울일 수밖에 없었다. 이때 도움을 준 것이 ‘차선 이탈 경고 시스템Lane Departure’이다. 큰 덩치와 좁은 도로 폭에 쉬이 적응을 못해 한동안 코너를 돌 때마다 차선을 침범했으나, 이내 경고음이 들려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더욱이 사각지대에서 갑자기 사람이 튀어나와 급격히 스티어링 휠을 돌렸음에도 빠르게 차를 안정화했다. 이처럼 육중함과 민첩함을 동시에 갖춘 컬리넌 시리즈 II를 NFL에 대입한다면, 쿼터백 포지션이 제격일 테다. 드라이버 교체 후 앉은 2열 시트는 안락했다. 헤드룸과 레그룸에 여유가 있어 비행기 일등석 버금가는 편안함을 자랑하는 것은 기본. 시트 포지션과 냉난방 조절, 마사지(옵션)도 할 수 있는 덕분에 식은땀이 흘렀던 온몸에 짧게나마 휴식을 줄 수 있었다.



와인딩 주로 위에서도 부드러운 승차감을 느낄 수 있다.


시트 가죽에 작은 천공을 뚫어 예술 작품을 만드는 ‘플레이스드 퍼포레이션’ 패턴과, 식물에서 영감을 얻은 새로운 소재인

‘듀얼리티 트윌Duality Twill’을 적용했다.


또 다른 자아, 블랙 배지 컬리넌 시리즈 II

다음 시승 차량은 컬리넌의 고성능 버전인 ‘블랙 배지 컬리넌 시리즈 II’. 파세이그 항구 카페와 칼라 혼달 해변Cala Jondal Beach 사이 약 35km 달하는 경로 중 에디터는 직선 코스가 주를 이룬 후반부 드라이빙을 맡았다. 블랙 배지 컬리넌 시리즈 II는 롤스로이스에 대한 보다 본능적인 해석을 원하는 특정 고객층을 위해 개발된, 롤스로이스의 또 다른 자아다. 고객 요청으로 검은색 손잡이를 적용한 것을 포함해 외부와 내부 트림에 블랙이 많아진 게 확연히 눈에 띈다. 이와 함께 검은색 일루미네이티드 판테온 그릴과 은색 수평선을 추가한 수직 주간 주행등 프레임의 만남은 강인한 인상을 전한다. 혹, 완전히 어두운 차량을 원할 경우 전체를 검정으로 변모시키는 것도 가능하다. 23인치 휠은 10-스포크 디자인을 채택했지만 광택과 페인트, 음각을 조율해 5-스포크 휠로 보인다. 이로 인해 디스크 브레이크 캘리퍼(시그너처 레드. 블랙, 튀르쿠아즈, 만다린, 포지 옐로 중 색상 선택)가 선명하게 드러나 드라이버만의 개성을 뽐낼 수 있다.


일루미네이티드 판테온 그릴과 은색 수평선을 추가한 수직 주간 주행등 프레임의 만남이 강인한 인상을 전하는 ‘블랙 배지 컬리넌 시리즈 II’.



마찬가지로 12기통 6.75리터 가솔린 터보엔진을 탑재한 블랙 배지 컬리넌 시리즈 II의 최고출력은 600마력, 최대토크는 900Nm, 제로백은 5.2초다. 차량 무게는 컬리넌 시리즈 II와 대동소이하지만, 힘이 붙어서인지 왠지 모를 묵직함이 느껴졌다. 그래서일까. 고속 주행에서 배기음과 풍절음이 닫힌 창틈으로 살짝 밀려 들어왔다. 하지만 동승자와 대화하는 데 아무 문제가 없을 정도로 미미했다. 가속 능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액셀을 밟으면 즉각적으로 피드백이 온다. 에디터의 안전을 위해 조수석에서 인스트럭터 역할을 했던 롤스로이스 스태프가 기어 조작 레버에 있는 ‘로Low’ 버튼을 추천해 눌렀더니 기어 변속이 빨라지는 것이 감지됐다. 스태프가 과속 카메라를 조심하라고 웃으며 경고했기에 간신히 제어할 수 있었다. 2열 시트는 피로감을 줄이는 데 탁월하다. 앞선 시승에선 직선 코스 때 자리를 잡아서 잘 몰랐는데, 와인딩 주로를 주행할 때 앉으니 원심력 따윈 가뿐하게 이겨내 내적 탄성을 질렀다.시승을 마치고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내야 할지 고민했다. 대부분의 럭셔리 슈퍼카가 그러하듯 비교 대상이 애매하기 때문. 어쩌면 SUV의 승차감 기준을 컬리넌 시리즈 II로 삼는 게 정답일지도 모르겠다. 컬리넌Cullinan의 어원은 세계 최대크기의 남아프리카공화국 다이아몬드 원석에서 기인한다는데, 단순 스펙에서 벗어나 원석을 깎는 마음으로 자신만의 라이프스타일을 구축하고자 하는 사람에게 어울리는 차가 바로 컬리넌 시리즈 II가 아닌지, 이비사섬에서 돌아오는 길에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외부와 내부 트림에 블랙이 많아진 게 확연히 눈에 띈다. 개별 뒷좌석 시트를 주문할 경우, 샴페인 쿨러를 내장할 수 있는

리어 테크니컬 카본 ‘워터폴’ 섹션에 블랙 배지를 상징하는 무한대 심벌과 모티프를 추가할 수 있다.



COOPERATION  롤스로이스 모터카(512-5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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