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셔리 ART> 2024년

[2024 ART_COLLECTOR] 그 남자의 수집법 김남규

북촌 한옥마을에 있는 김남규 컬렉터의 집은 우리나라의 역사를 대표하는 고미술품과 내로라하는 현대미술 작품이 묘한 조화를 이룬다.

EDITOR 박이현 PHOTOGRAPHER 이우경

조각품과 해주 항아리가 놓인 고즈넉한 마당에서 촬영한 김남규 컬렉터.


김남규  웹 디자인과 다수의 개인 사업을 했다. 프랑스문화원과 다양한 프로젝트를 일을 진행했고, HSBC 은행의 아트 컨설팅을 맡았다. 현재 은퇴 후 국립현대미술관 패트론Patron 활동, 전시 감상, 작품 컬렉팅을 하며 지내고 있다.



북촌 한옥마을에 ‘삼청동 마당발’이 산다. 그가 부재한 삼청동 전시의 오프닝은 허우룩함 그 자체라는 미술 신의 증언이 수두룩하다. 부끄러움에 이를 연신 부인하는 그의 이름은 김남규다. 컬렉터가 사는 한옥은 미술사 책을 집약한 모양새다. 마당에선 해주 항아리가 정겨운 풍경을 자아내고, 거실 한쪽에선 가야·신라·조선을 대표하는 고미술품이, 다른 한쪽에선 내로라하는 현대미술 작품이 대비의 미학을 선사한다. 지하로 내려가는 층계도 눈길을 끈다. 이성자·전광영·하종현 등 우리나라 대표 작가들의 작품이 어둠 속에서 빛을 발하는 중이다. 이토록 다채로운 그의 컬렉션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시작했을까. 거실 소파에 앉아 작품을 보는 시간이 가장 평온하다는 김남규에게 ‘그 남자의 수집법’에 관해 물어보았다.


보면 볼수록 행복해지는 마력에 빠져 탕 컨템포러리 아트를 통해 소장한 우국원 작가의 ‘Twinkle Twinkle’(2024).


소문으로만 듣던 작품들을 드디어 만나네요. 컬렉션의 출발점은 어떻게 되나요?

20년 전부터 친하게 지낸 프랑스 친구가 컬렉터예요. 둘이 전시회와 아트페어를 하루의 루틴처럼 보러 다녔습니다. 인사동에서 열린 젊은 작가들의 전시와 키아프·화랑미술제 등을 감상하며 새로운 세상을 발견했어요. 아트페어장을 거닐다가 김창열·석철주·임만혁 작가의 작품에 반해 순서대로 구매할 정도로요. 그러다 어느 순간 저만의 취향이 생겼고, 자연스레 작품 소장에 대한 욕심이 커졌습니다.


소장품의 면면을 보니, ‘치열한 정보 싸움의 결과물’이란 표현이 안성맞춤이네요.

주요 전시회는 빠지지 않으려고 해요. 좋아하는 작가의 오프닝에는 대부분 참석하는 편이고요. 직접 작가를 만날 수 있고, 다른 컬렉터와 디테일한 대화를 할 수 있는 까닭이죠. 마음에 드는 작품을 마주하면, 그 자리에서 구매하기보다는 소속 갤러리, 초기 작업과 지금의 공통점 및 차이점, 경매 결과 등 작가와 작품에 관해 더 공부한 후 결론 내리려고 합니다. 조급함에 덜컥 서명했다가 나중에 후회할 수도 있거든요. 이때 도움이 되는 것이 갤러리스트와의 긴밀한 소통이에요. 시행착오를 줄이는 지름길이니까요.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건 자신의 취향입니다. 전망, 투자 가치 등은 참고만 하세요. 확실한 미래는 누구도 알지 못해요. 다만, 컬렉팅이 깊어질수록 마음은 풍요로워지나, 통장의 잔액은 풍요롭지 못할 위험이 크다는 것만 명심하시길 바랍니다.(웃음)


첫 번째와 마지막 컬렉팅 작품이 무엇인가요?

박서보 작가의 1990년대작 ‘묘법’입니다. 화려한 캔버스 작품들과 형식이 달라 일견 낯설었지만, 단순함 속에서 내공이 느껴져 구매를 결정했어요. 저에게는 행운이었다고 생각합니다. 20년 전 가격은 현재와 차이가 크거든요. 한편, 해외 옥션에서 낙찰받은 첫 작품은 니콜라스 파티의 드로잉 ‘Simple Life’(2008)예요. 최근에는 국제갤러리에서 양혜규 작가의 ‘Non-Folding Geometric Tipping #31’(2013)을, 탕 컨템포러리 아트에서 우국원 작가의 ‘Twinkle Twinkle’(2024)을 구매했어요. 양혜규 작가의 경우 압도적인 에너지를 발산하는 설치 작품이 대표적이라 컬렉팅 엄두가 나지 않았던 게 사실입니다. 그런데 몇 년 전 우연히 본 ‘Non-Folding Geometric Tipping #31’에 반한 거예요. 당시 판매가 돼서 아쉬움으로 남았는데, 얼마 전 국제갤러리에서 작품을 찾아줘서 소장하게 되었습니다.


                                                          

지하로 내려가는 층계에 있는 장 미셸 오토니엘의 ‘Amant Suspendu’(2021). Courtesy of Kukje Gallery


장 미셸 오토니엘의 ‘Lotus of Hope’(2021)를 품에 안기 위해 전화 인터뷰까지 하셨다고요?

오토니엘의 작품을 기다리는 분들이 긴 줄을 서고 있었어요. 갑작스레 갤러리에서 인터뷰로 소장자를 선정하겠다고 하더군요. 해외 갤러리라 현지 시각에 맞추려고 새벽에 전화를 걸었습니다. 간절하게 준비했는데, 긴장해서 어떤 말을 했는지 “Please” 외에는 잘 떠오르지 않아요.(웃음) 다행인 건 저로 정해졌다는 연락을 받았을 때 기뻤던 상황만큼은 정확히 기억한다는 것이죠.


시대를 아우르는 고미술품의 양도 대단해요.

고가구와 목기, 제기, 토기 등이 있지만, 저의 ‘최애’는 ‘백자향로’입니다. 일본이나 중국의 향로와 달리, 백자향로는 절제된 모양과 포근한 인상을 자랑해요. 다른 대상과 이질감 없이 어우러지죠. 참고로 구본창 작가가 제 백자향로를 촬영한 적도 있습니다. 아직 한국의 고미술이 너무 저평가되었다고 봐요. 고미술은 한옥뿐만이 아닌 현대적인 공간에도 멋스럽게 잘 어울립니다. 가격도 디자인 소품과 비교해 높지 않아 부담스럽지 않고요.


한옥 공간은 구조가 독특해서, 혹은 난해해서 작품과의 조화를 위해 신경 쓸 부분이 많을 듯해요. 게다가 벽도 부족하고요.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한옥의 분위기에 어울리도록 작품을 멋스럽게 놓을 방법을 고민했어요. 하지만 곁에 두고 싶은 작품들을 선택하는 일이 어려워서 여백의 미를 살리는 일을 과감히 포기했습니다. 제 생활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작품을 여기저기에 배치했어요. 한옥에 사는 장점 중 하나는 공간이 주는 매력 덕분인지 해외 손님이 자주 방문한다는 거예요. 그동안 사이먼 후지와라, 슈퍼플렉스, 에티엔 샴보, 엘름그린 & 드라그셋 등과 이곳에서 친분을 쌓았습니다.


국제갤러리를 통해 소장한 양혜규 작가의 ‘Non-Folding Geometric Tipping #31’(2013). Courtesy of Kukje Gallery


개인적으로 한옥에서 책을 펼치면, 영감이 뇌리를 스쳐 지나갈 것이라는 상상을 하게 됩니다.

한국 근현대 미술가들의 글을 사랑합니다. 특히 이우환 선생이 2002년 출간한 <여백의 예술>을 읽으며 작품에 대한 안목을 키울 수 있었습니다. “작품이, 만남이 가능한한 타자성을 띠고, 본다는 것이 양의성을 회복할 때 예술의 새로운 지평은 열릴 것이다”, “엉거주춤한 짜임새로 언저리의 공기에 활력을 불어넣는 듯한 임장적인 공간을 시도해보고 싶을 뿐이다. 있는 그대로를 ‘있는 그대로’로 되새겨 옮겨 엮는다”라는 구절을 틈날 때마다 읊조리곤 하는데요. 이를 통해 내가 진심으로 작품을 대하고 있는지를 스스로 살펴봅니다. 더불어 저만의 컬렉팅 스타일을 구축하기 위해 흔들리지 않는 무게중심을 잡으려 노력하고요.


컬렉터의 눈으로 본 오늘날 한국 미술 시장은 어떤가요?

요즘 미술 시장이 투자 쪽으로 치우치고 있음을 체감해요. 팬데믹 기간에 성장한 한국 미술 시장에 장점만 있는 건 아닙니다. 컬렉팅 저변이 확대된 건 부인할 수 없지만, 작품 구매를 위한 오픈런은 분명 기이한 현상이죠. 미술품을 미래의 자본으로 여기는 분들을 만나는 일 역시 잦아지고 있고요. 그런데도 이러한 흐름 속에서 미술품 감상과 소장에 대한 기쁨을 함께 누릴 수 있는 분들이 점점 늘어나는 것 같아 기쁩니다.


김남규 컬렉터가 사는 한옥 거실에는 우고 론디노네의 ‘Red White Silver Mountain’(2022), 이수경의 ‘Translated Vase’(2015), 하종현의 ‘Conjunction’(1997), 이배의 ‘White Line’(2022) 등이 자리 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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