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셔리> 2024년 7월호

세계 곳곳에 숨겨진 특별한 미식 공간 6

세계적 셰프의 창의적인 요리와 함께 자연 속에서 누리는 휴식까지, 기꺼이 먼 길을 떠날 이유를 만들어주는 레스토랑 6곳을 소개한다.

GUEST EDITOR 박지혜

LINDESNES IN NORWAY, UNDER




노르웨이의 최남단, 린데네스의 북극해 속에 파묻힌 레스토랑 ‘언더’는 ‘바다 아래’라는 이름을 내세우며 세계적인 유명세를 타고 있다. 이곳이 그토록 유명해진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독특한 건축물에 있다. 바닷속으로 비스듬하게 곤두박질친 듯한 콘크리트 덩어리는 내부 공간에 대한 상상력을 부채질한다. 이는 노르웨이를 대표하는 세계적 건축사무소 스뇌헤타Snøhetta의 작품으로 바닷속으로 5.5m가량 물속에 잠겨 있으며, 노르웨이에서도 가장 변화무쌍한 바다로 손꼽히는 이곳의 수압을 견뎌내도록 특수하게 설계되었다. 더불어 울퉁불퉁한 외부 콘크리트 벽이 인공 암초 역할을 하여 바닷속 해양 생물들이 자연스레 서식할 수 있도록 했다. 내부로 진입하면, 해안의 거친 파도를 순식간에 잊게 하는 평온한 풍경이 펼쳐진다. 따뜻한 나뭇결의 계단을 따라 내려가다 보면 튀르쿠아즈 빛의 창이 한눈에 들어오는데, 폭 11m, 높이 3.4m의 이 거대한 창을 통해 신비로운 해양 생태계를 관찰할 수 있다. 푸른빛 조명을 켠 듯한 이 너른 창 앞은 세심하게 준비한 다이닝 코스가 시작되는 무대이기도 하다. 이곳을 이끌고 있는 셰프는 베른트 빈두Bernt Vindu로, 모든 메뉴는 10~12코스의 해산물 요리와 와인 페어링으로 진행된다. 인근 바다에서 채취하는 생선과 조개, 해초류를 비롯해, 버섯과 베리류, 양고기 등을 사용하며, 메뉴는 미리 공개되지 않는다. 생태계에 대한 존중을 바탕으로 창의적인 맛을 선보인다는 평가를 받으며, 미쉐린 1스타를 획득했다. under.no




CARTMEL IN UK, L’ENCLUME




‘랑클룸’은 영국 북부 레이크 디스트릭트 국립공원의 가장자리에 있는 중세 마을 카트멜에 위치한다. 카트멜은 12세기에 지어진 이래 약 800년의 역사를 간직한 ‘카트멜 수도원’으로 잘 알려져 있으며, 고풍스러운 건축물과 아기자기한 풍경으로 영국 전원 마을 특유의 정취를 간직한 곳이다. 이 작은 시골 마을에 위치한 랑클룸은 영국에서 런던과 남동부 지역을 제외하고 유일하게 미쉐린 3스타를 받은 곳으로, 마을 소개에 가장 먼저 등장할 만큼 유명세를 타고 있는 곳이다. 이곳의 영광은 고집스럽게 자신만의 요리 철학을 펼쳐내고 있는 셰프 사이먼 로건Simon Rogan에게서 비롯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과일과 채소 판매상이었던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농산물의 낭비 없는 쓰임에 관해 줄곧 연구해온 셰프로, 농약이나 비료를 일절 사용하지 않고 직접 소규모로 농사를 지으며 그 수확물로 모든 요리를 선보이고 있다. 이렇듯 ‘제로 웨이스트’를 실천하는 그의 농사법과 조리법이 미쉐린 3스타와 더불어 미쉐린의 ‘그린 스타’까지 거머쥐게 한 저력이라 할 수 있다. 과거 대장간으로 사용되던 공간을 개조한 만큼, 내부 공간은 화려하기보다는 소박하고 정감 넘치는 분위기다. 그러나 비트 뿌리, 들깨 주스, 자작나무 수액으로 캐러멜라이징한 푸딩, 봄 새싹 절임 등, 이들이 내놓는 메뉴와 플레이팅은 모자람도 넘침도 없이 아름답고 완벽에 가깝다.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에 작은 게스트하우스도 운영하고 있으니, 영국 북부 여행 기회가 있다면 이 아름다운 미식 여행지를 꼭 기억해두길 바란다.




MERLIMONT PLAGE IN FRANCE, SUR MER




알렉상드르 고티에Alexandre Gauthier는 기술적인 정확성을 기반으로 하는 프랑스 요리를 대표하는 젊은 셰프다. 그는 아버지가 운영하던 레스토랑 ‘라 그레누예르La Grenouillere’를 이어받아 미쉐린 2스타를 획득하는 한편, 2023년에는 이곳을 ‘월드 베스트 레스토랑 50’에서 48위에 올려놓았다. 파리의 북쪽, 파드칼레의 몽트뢰유 지역을 기반으로 여러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그는, 형식이나 관념에 얽매이지 않는 창의적인 요리를 선보이는 걸로도 유명하다. 그런 그가 지난 2023년에 프랑스 북부 해변의 메를리몽에 그의 새로운 레스토랑을 선보였으니 바로 ‘쉬르 메르’다. 이곳은 몽트뢰유에서 나고 자란 그가 어린 시절부터 즐겨 찾던 해변으로, 이곳에서 새로운 ‘해변 요리’의 비전을 제시하는 것이 그의 오랜 꿈이었다고 전해진다. 그저 그런 해변 레스토랑의 이미지를 뒤집고, 자신만의 비전과 자부심이 담긴 새로운 ‘해산물 요리’를 선보이겠다는 것. 이를 위해 그는 ‘원양 여객선’을 개조한 다이닝 공간을 만들었다. 수평선과 눈높이를 맞춘 창, 항해하는 듯한 이미지의 노란 깃발과 파라솔, 세련되고 모던한 집기 등은 이곳이 안팎으로 세심하게 공들인 공간이라는 느낌을 전한다. 과일 비니거를 사용한 해산물 플래터, 합리적인 가격의 피시 & 칩스, 그리고 홍합찜 등이 이곳의 대표 메뉴다. 영국의 도버해협과 맞닿은 프랑스 북부 해변 특유의 정취, 그리고 지금 가장 주목받는 프랑스 셰프의 창의성을 확인하고 싶다면 꼭 기억해둘 만한 곳이다. lagrenouillere.fr, @surmer_merlimont_plage




TACHIKAWA IN JAPAN, AUBERGE TOKITO




2023년, 도쿄 도심에서 약 40분 거리에 위치한 다마 지역에 문을 연 ‘오베르주 도키토’는 ‘시간’ 또는 ‘순간’을 의미하는 일본어 ‘ときとう’에 프랑스어로 ‘오두막’이라는 뜻을 가진 ‘auberge’를 합해 만들어졌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이곳은 미식을 중심으로 다도와 숙박까지 ‘쉼’이라는 테마가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진다. ‘쇼쿠보’라는 이름의 다이닝룸에서 미식을 경험하고, ‘사보 티룸’에서 다도를 즐긴 뒤, 하루 네 팀만 묵을 수 있는 게스트룸에서 휴식하며 일본 특유의 환대를 누릴 수 있는 것. 이곳의 주방과 더불어 모든 서비스를 책임지고 있는 당사자는 유럽에서 최초로 미쉐린 2스타를 받은 일식 레스토랑 ‘UMU’의 총괄 셰프를 맡았던 이시이 요시노리다. 그뿐 아니라, 교토의 가이세키 레스토랑으로 1년 만에 미쉐린 1스타를 거머쥔 겐지 오카와라, 이탈리아의 미쉐린 3스타에서 일했던 히로키 히야마 등 미식계 스타들이 총집결했다. 이들이 선보이는 요리의 콘셉트는 일명 ‘아르티장 퀴진’. 일식 요리의 정수에 서양 요리의 매력까지 가미해, 전통에 얽매이지 않는 창의적인 요리를 선보이겠다는 것. 메뉴는 약 12가지 코스로 준비되는데, 지역 특산 해산물과 농산물을 사용하며, 조리 방식에서 셰프들 특유의 노하우가 더해진다. 현대적인 다도를 즐길 수 있는 ‘사보 티룸’부터 온천과 함께 자연 속에서 쉼을 누릴 수 있는 객실에서의 하루까지, 다각도로 진화하는 일본의 미식 신을 경험할 수 있는 곳이다. aubergetokito.com




KOBARID IN SLOVENIA, HIŠA FRANKO




‘히샤 프란코’는 요즘 미식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결코 피해갈 수 없는 이름이다. 미쉐린 가이드의 3스타 목록에서도, 매년 세계 최고의 레스토랑 50곳을 뽑는 ‘월드 베스트 레스토랑 50’의 리스트에서도 그 이름은 수년간 상위권에 링크되며 궁금증을 더해왔다. 레스토랑이 자리한 스타로 셀로 마을은 슬로베니아에서도 오지로 손꼽히는 소차 계곡에 위치한다. 우뚝 솟은 산기슭과 에메랄드빛 강 옆에 자리한 동화 같은 마을과 집이 바로 요리의 배경이다. 히샤 프란코는 모든 식재료를 이 지역의 자연에서 얻는 것을 고집한다. 인근 고산지대의 농부와 양치기·치즈 공방으로부터 사슴 고기와 염소 고기·각종 치즈를 제공받고, 인근의 어부들에게서 갓 잡은 송어를 제공받으며, 각종 채소와 과일·허브류는 직접 재배한 정원에서 얻는다. 외교관으로 일하다 독학으로 요리사에 길에 들어선 그의 요리는 그야말로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창의성으로 명성이 높다. ‘자연을 단순하게 받아들이고, 예상치 못한 것을 결합함으로써 자연의 테루아르를 온전히 표현하는 것’이 바로 그의 요리 철학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대표 메뉴가 ‘샹테렐레와 발터 피트 치즈를 곁들인 로바주 라비올리’, 인근 산에서 채취한 버섯으로 만든 ‘어텀 온 플레이트’ 등이다. 목가적인 느낌의 게스트하우스인 히샤 프랑코 카사도 함께 운영한다. 매일 아침 자연 속에서 미쉐린 3스타 셰프의 손을 거친 조식을 맛볼 수 있다는 것이 이곳의 최대 장점. 매년 선보이는 요리의 콘셉트가 달라지며, 2024년도의 콘셉트는 ‘50가지 색조의 레드’다. hisafranko.com




SNILTSVEITØY ISLAND IN NORWAY, IRIS




‘아이리스’는 노르웨이 로젠달 마을 옆의 작은 섬 스닐츠베이퇴이에 떠 있는 구형 건축물 ‘살몬 아이Salmon Eye’에 위치한다. 살몬 아이를 세운 당사자는 세계 최초이자 유일의 탄소 중립 인증 연어 생산업체인 아이데 피오르브룩Eide Fjordbruk으로, 이들은 바다의 광대한 잠재력을 탐구하기 위해 일종의 ‘해양 탐험 센터’를 세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철학에 공감하며 이 고립된 해양 센터에 승선한 이는 덴마크 출신의 셰프 아니카 마드센Anika Madsen. 그는 덴마크 최고의 레스토랑을 거친 인물로, 획일화된 식재료 공급 시스템에 맞서며 창의적인 요리를 선보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곳에서는 꿈만 꿀 수 있던 수면 아래의 우주를 탐험할 수 있다. 이 지역은 세계에서 가장 깨끗하고 다양한 해산물을 제공한다.” 그의 말처럼, 아이리스에서는 인근 해안에서 채취한 성게, 해초류를 비롯해 유제품과 육류 등을 사용해 무려 18코스의 정찬을 차려낸다. 이들의 설명처럼, 이곳을 방문하는 것은 하나의 ‘탐험’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노르웨이 제2의 도시 베르겐에서 장거리 페리를 탄 뒤에도, 구불구불 이어지는 피오르를 거쳐 두 번의 페리를 더 타고 이동해야 하기 때문. 그러나 피오르와 빙하의 풍경, ‘프롬 제로 투 히어로From Zero to Hero’ 같은 식재료와 요리의 특성을 딴 위트 있는 메뉴들, 각 요리에 대한 사려 깊은 설명은 6시간에 이르는 이 긴 미식 탐험을 지루하게 만들지 않도록 도와준다.

restaurantiris.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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