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셔리> 2024년 7월호

모두에게 열린 미술을 꿈꾸며

한국 미술계에 새 피를 수혈한 신선한 예술 공간이 등장했다. 인사동 (구)아라아트센터의 건물 전체를 전시와 교류의 에너지로 채울 ‘그라운드 서울Ground Seoul’이다. 기획 전시 공간과 갤러리가 공존하는 형태로 개방적이고 진일보한 예술 공간을 만들겠다는 기획자 윤재갑을 만났다.

GUEST EDITOR 박지혜 PHOTOGRAPHER 이우경

윤재갑 홍익대 예술학과를 졸업하고, 중국 중앙미술학원, 인도 타고르 미술대학에서 공부했다. 2003년부터 2007년까지 대안공간 루프LOOP의 공동 디렉터를 맡았으며, 2005년부터 2010년까지 아라리오 갤러리 총괄 디렉터로 일했다. 2011년 제54회 베네치아 비엔날레 한국관 커미셔너, 2016년 부산 비엔날레의 전시감독을 맡았으며, 올해 초까지 중국 상하이의 하우 아트 뮤지엄 관장으로 일했다.




돌이켜보면,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중반은 한국의 미술계가 그야말로 질적, 양적으로 팽창하는 시기였다. 신진 작가들을 발굴하는 자유로운 예술 집단과 대안 공간들이 활발한 활동을 벌였으며 서도호, 양혜규, 구정아, 이불 등 지금은 세계적인 작가 반열에 오른 미술가들이 하나둘 수면 위로 끌어올려졌다. 당시의 이런 현상을 이끈 당사자로는 현재 50의 나이를 넘긴, 국제적인 큐레이터 몇몇을 빼놓을 수 없다. 그들은 이렇듯 용솟음치는 ‘한국 현대미술’의 한가운데서 수많은 작가를 발굴하고 해외에 소개하는 한편, 국제적인 비엔날레의 커미셔너나 독립 기획자로 활동하며 다양한 담론을 이끌었다. 그중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바로, 윤재갑이다. 그는 대안 공간의 디렉터와 상업 갤러리의 큐레이터, 베네치아 비엔날레의 한국관 커미셔너까지, 그야말로 미술계에서 대부분의 포지션을 두루 경험한 인물이다. 약 20년간 중국을 기반으로 일하며 한국 미술계에서 잊힌 듯했던 그가, ‘그라운드 서울’과 함께 돌아왔다. 그라운드 서울은 인사동의 (구)아라아트센터에 문을 연 새로운 전시 공간. 현재 이곳에서는 국내 최초로 뱅크시 문화 재단의 인증을 받은 대규모 뱅크시 전시 <리얼 뱅크시>가 열리고 있다. 공간에 대해 설명하는 기획자 윤재갑의 일성은 또렷하고도 뜨거웠다. ‘전시를 만들어가는’ 기획자와 작가, 평론가를 제대로 대접하고, 대중이 편안하게 유입되며, 언제고 신선하고 반짝이는 전시를 만날 수 있는 제대로 된 판을 마련하겠다는 것. “할 수 있는 한 열심히 해보겠다.” 노련한 기획자의 입에서 담담하게 터져나온 이 말은 다시금 새로운 챕터로 들어선 그의 진심을 가늠케 했다.


뱅크시가 2015년 영국에서 선보였던 기괴한 테마파크 ‘디즈멀랜드Dismaland’를 재현한 전시 공간.


중국 상하이의 ‘하우 아트 뮤지엄’에서 10여 년간 관장으로 일했다. 그곳에서는 어떤 일을 주로 했나.

2012년부터 2019년까지는 중국 미술 시장이 정점에 다다른 시기였다. 사립 미술관 붐이 일어서 상하이에만 해도 50개가 넘는 미술관이 생겼고, 하우 아트 뮤지엄 역시 그중 하나다. 사실 하우 미술관에서 선보인 전시의 80~90%가량은 국제 미술을 중국에 소개하는 전시였다. 당시 중국에는 국제적인 미술 신을 다룰 수 있는 중국 국내 큐레이터가 없었고, 그 공백의 상태에서 내가 운좋게 중국에 있었던 거다. 관장이라는 자리를 맡아보니 ‘디렉터십’이라는 것은 큐레이터십과는 다른 거더라. 직접 기획을 하진 않지만, 전반적인 미술관의 방향을 잡아야 한다. 미술관 전시의 바이오리듬을 잘 관리하고, 큐레이터들이 자기 역량을 충분히 발휘하게 서포트하는 것이 내 일이다. 나는 그런 일을 잘하는 것 같다.


과거 독립 큐레이터로 일하면서도 늘 미술관의 공공성과 개방성에 대해 많이 이야기해왔다. 그라운드 서울을 기획할 때도 이런 뜻을 담았을 것 같다.

중국에서 느낀 가장 큰 문제가 검열이었다. 중국에서는 미술관, 작은 갤러리, 아트페어 모두 당국에 작품 리스트를 보내고 컨펌을 받아야만 한다. 정치권력에 의한 문화 검열은 치명적이다. 이런 환경에서 중국의 현대미술이 침체기로 들어섰고, 홍콩도 마찬가지다. 한국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느낀다. 정부에서 문화 예술 기관장을 임명하는 제도이기 때문이다. 관장의 임기도 2년에서 3년이다. 관장이 재임 당시 기획한 전시를 마무리하지 못하고 떠나야 하는 구조다. 중국에 있다가 와서 그런지 이런 점들이 더 눈에 띈다.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워져야 문화 예술이 발전할 수 있다. 문화가 결코 정치의 시녀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은 내 변치 않는 신념이다.



그라운드 서울 1층에 설치된 육근병의 작품 ‘풍경의 소리+대지를 위한 눈’.


그라운드 서울은 ‘아튠즈’라는 아트 컴퍼니에 의해 만들어졌다. ‘아튠즈’는 처음 어떻게 설립하게 되었고, 왜 그라운드 서울을 기획하게 됐나.

아튠즈는 나를 포함한 4명이 함께 시작한 회사다. 오너 위주의 갤러리가 아니라, 합리적으로 수익을 배분하고 운영하는 아트 컴퍼니가 나와야 미술계도 질적으로나 양적으로 한 단계 성숙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우리는 지분을 철저히 공평하게 기계적으로 배분한다. 이 공간을 발견하고 건물 전체 임대 계약을 한 후, 함께 사업 포트폴리오를 짰다. 워낙 공간이 크다 보니, 지하 4개 층은 티켓을 파는 블록버스터 전시 기획 공간, 1층은 라운지 공간, 그리고 2~5층은 작품을 파는 갤러리로 하자고 뜻을 모았다. 미술계는 특히 경기를 많이 타다 보니, 위험 분산을 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 설령 갤러리에서 작품이 안 팔리더라도 좋은 기획 전시를 한다면, 일반 관객들은 분명히 보러 올 것이라 생각했다.



뱅크시의 작품 ‘Flying Copper’(2003) 옆으로 가상의 보안 검색대를 설치한 모습.



2000년대 초반 제작된 그라피티 판화를 모아 선보이는 ‘Real Banksy, Real me’ 섹션의 전경.


첫 전시로 뱅크시 재단과 협업해 <리얼 뱅크시> 전시를 선보이고 있다. 전시 구성에도 신경을 많이 쓴 것 같다.

전시 공간이 내려다보이는 창에는 우리 팀원들의 아이디어로 뱅크시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모티프인 ‘스마일리’ 얼굴을 한 인물을 프린트해서 붙였다. 또 군데군데 뱅크시가 그라피티를 남겼던 런던의 뒷골목이나 뉴욕의 할렘 같은 공간을 재현해서 그 분위기를 느낄 수 있도록 했다. 이런 가운데 뱅크시의 오리지널 작품 130여 점이 놓여 있는 것이다. 전시 제목이 <리얼 뱅크시>인 이유는, 이 전시가 뱅크시의 문화재단인 페스트 컨트롤Pest Control에서 공인한 첫 해외 전시이기 때문이다. 뱅크시 문화 재단에 2명의 큐레이터가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 그중 피에르니콜라 마리아 디 로리오Piernicola Maria Di lorio라는 큐레이터가 직접 이 전시를 기획했고, 공간 연출 역시 그와 상의해서 작가의 의도에 맞게 구현한 것이다.


한편으로는 그라운드 서울에서 티켓 판매로 수익을 내는 기획 전시를 선보이는 일이 ‘상업의 최전선’에 섰다는 뜻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중국에서 근 20년간 일하다가 한국에 들어오니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더라. 미술관에서도, 독립 큐레이터로서도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이를테면 국공립 미술관은 정년제라서 한 사람이 퇴직해야 젊은 사람이 들어갈 수 있는 구조다. 아무리 뛰어난 기획 의도가 있더라도 그곳에서 외부인이 쉽사리 전시를 기획할 수가 없다. 하지만 미술관이라는 곳은 항상 신선한 생각이 들어오고, 젊은 사람들이 드나드는 곳이어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내 나이 또래, 50대 초중반의 큐레이터들은 세계적으로 활동하는 사람이 굉장히 많다. 우리가 30대였던 20년 전만 하더라도, 대안 공간도 있고 미술계의 공간들이 훨씬 열려 있었다. 그런데 우리 아래 세대들은 그렇게 활동하는 친구들이 거의 없더라. 이게 무슨 뜻이냐면, 한국에서 독립 큐레이터들이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이 거의 없다는 뜻이다. 그래서 뭘 해야 하나 고민하던 끝에 그라운드 서울을 기획하게 된 거다.


갤러리는 어떤 방식으로 운영되는지 설명해달라.

일단 지하 4개 층에서 <리얼 뱅크시> 전시를 여는 것으로 1차 개관을 했고, 2차로 8월 22일에 지상 층에 위치할 갤러리를 오픈하면 완전체가 될 거다. 갤러리에서는 1년에 네 번 정도 전시를 열 생각인데, 전부 국내외 외부 큐레이터들에게 의뢰할 생각이다. 내 목표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미술관보다 훨씬 더 반짝반짝하는 좋은 전시를 선보이는 거다. 게다가 미술관은 판매를 못 하는 대신, 우리는 작품을 팔 수 있지 않나. 이 말인즉슨 전속 작가를 두지 않겠다는 뜻이다. 대신 작품이 팔리면, 작가의 머더 갤러리에 커미션을 지급하면 된다. 갤러리나 작가들에게 모두 이익이 돌아가는 구조다. 젊은 큐레이터나 작가들을 제대로 대우하면서 일할 기회도 만들어주고, 평론가들에겐 글 쓸 기회를 만들어주고, 그러고 싶어서 만든 공간이다.


갤러리 공간은 그라운드 서울이 아닌 다른 이름을 갖게 되는 건가? 혹은 통합적으로 하나의 이름으로 운영되나?

그에 관해서는 고민 중이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라운드 서울이 서로 다른 성격을 지닌 전시를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 메리트가 있는 공간이 될 거라는 점이다. 티켓을 구입해서 지하 층에서 전시를 본 뒤에 지상 층의 갤러리에서 열리는 전시들까지 함께 둘러볼 수 있다. 그렇게 따지면 이곳에서 누릴 수 있는 것들이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느끼게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더불어 나는 전시장은 작품과 작가, 관객들이 만나는 인연의 장소이자 만남의 장소라 생각한다. 실컷 만나라고, 아주 정겹게 만나라고 1층 전체를 탁 트인 라운지로 꾸몄다. 이곳에서 자신만의 빛나는 보석을 발견했으면 좋겠다.


직접 전시를 기획할 생각은 없나?

오는 8월에 열릴 갤러리 개관전의 제목이 다. 이번 첫 개관 전시만 내가 기획해서 선보인다. 물리학에서 발견한 불변하는 진실 하나가 우주가 영원히 팽창하고 있다는 사실 아닌가. 이는 계속해서 뭔가가 움직이면서 끊임없이 형상이 창조되고 소리가 만들어진다는 얘기다. 이는 우리가 사는 우주에 대한 직접적인 묘사이며, 현대미술의 가장 핵심적인 요소이기도 하다. 미디어 아트, 사운드 아트, 페인팅, 비디오, 현대미술의 모든 분야가 이 키워드로 압축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1층 라운지에 하나둘 채워지고 있는 작품들도 육근병, 신상호 등 이 전시에 포함되는 작가들의 작품들이다. 중국 작가 1~2명, 일본 작가 1~2명, 다수의 한국 작가 작품을 모아 전시를 구성할 예정이다.


디렉터께서 생각하는 진정한 ‘럭셔리’란 뭔가?

(앉아 있는 의자를 가리키며) 이건 피에르 잔느레가 디자인한 의자다. 인도가 1947년에 독립하면서 새로운 수도를 만들기 위해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에게 진행을 맡긴 게 이른바 ‘찬디가르’ 프로젝트다. 그리고 그 인테리어와 도시 건축의 실질적인 부분을 상당수 피에르 잔느레가 관할했다. ‘지상의 유토피아’, 즉 이상향을 만들고자 하는 과정에서 만든 게 바로 이 의자다. 찬디가르 도서관에서 실제 쓰던 의자인데, 이 오리지널 피스를 최근에 아주 좋은 가격에 갖게 됐다. 이 사무실의 책상은 조계종의 종정스님이신 성파스님이 “여기 앉아서 일해라. 이게 우주다” 하시며 만들어주신 거다. 피에르 잔느레의 의자와 성파스님의 책상, 그리고 이 방이 나에게는 지상과 우주에서 최고의 럭셔리다.(웃음) 이곳은 나에게 너무 고귀하고 과분한 공간인 동시에 겸허해지고 겸손해질 수 있는 장소이기도 하다.



뱅크시의 가장 유명한 작품인 ‘Love is in the Air(Flower Thrower)’(2003)와 비디오 작품 등으로 꾸민 전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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