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셔리> 2024년 7월호

따로 또 같이, 크리스티앙·엘리자베트 포잠팍

비슷한 듯 서로 다른 두 건축가 부부가 모인 2포잠팍 건축사무소. 한국을 찾은 이들에게 2포잠팍이 추구하는 건축의 지향점은 무엇인지 물어보았다.

EDITOR 박이현 PHOTOGRAPHER 이우경(인물)

2포잠팍 건축사무소  크리스티앙(오른쪽)·엘리자베트 포잠팍(왼쪽) 부부가 이끄는 건축사무소. 1994년 프랑스 최초로 프리츠커상을 받은 크리스티앙은 문화 공간 디자이너이자 도시계획가로 높이 평가받는다. 엘리자베트는 도시계획, 제품 디자인, 실내 건축 등 다방면에서 작업하고 있다.



2포잠팍 건축사무소의 크리스티앙 포잠팍(이하 CDP)과 엘리자베트 포잠팍(이하 EDP)이 한국을 찾았다. 서울 한강변 재건축 사업 설계를 맡게 되면서 현장을 방문한 것. 세계 곳곳에 랜드마크를 설계한 건축 거장의 작품을 서울에서 만날 수 있다는 소식이 들리면서 재건축 현장엔 벌써 활기가 돈단다. 크리스티앙은 1994년 프랑스 최초로 프리츠상을 받은 건축가다. 서울 청담동의 ‘하우스 오브 디올’, 뉴욕 맨해튼의 ‘LVMH 타워’, 펜슬 타워(가늘고 긴 마천루)인 ‘원One57 뉴욕’ 등을 설계한 그는 ‘개방형 블록’을 뿌리 삼아 지역사회와 더불어 사는 건축을 지향한다. 한편, 그의 아내 엘리자베트는 도시와 개인 간의 장벽을 제거하는 ‘연결의 건축’을 내세우는 건축가로, 그동안 ‘로마 박물관’, ‘TIOC 타워’ 등을 작업했다. 흥미롭게도 이들은 각자 고유한 접근 방식이 있어 대규모 도시 프로젝트에서만 협업하는 경향이 짙다고. 그런 그들과 2포잠팍 건축의 방향성에 관해 이야기를 나눠보았다.


2포잠팍을 소개한 글에는 늘 “건축과 도시계획을 분리하지 않는다”라는 문구가 있다.

EDP 장소의 맥락, 지역사회의 특성을 헤아려 집단 및 개인 생활 공간의 질을 높이는 것이 우리의 목표다. 프로젝트 기저에는 20년 전 내가 주장한 ‘연결의 건축Architecture of Links’ 개념과 크리스티앙이 제안한 ‘개방형 블록Open Block’이 있다. 비록 각자의 색깔은 다르지만, 상호 보완하면서 인간적이고 기능적인 공간을 구현하고자 한다. 나는 ‘그랑 파리 익스프레스Grand Paris Express’(파리와 주변 지역을 연결하는 프로젝트)를 위해 오베르빌리에의 도서관 ‘위마테크 콩도르세Humathèque Condorcet’와 ‘부르제 기차역Bourget Train Station’을 설계했다. 위마테크는 누구나 지식을 습득할 수 있는 개방과 평등의 도서관을 지향하며, 부르제 기차역은 자연 채광을 끌어들여 실내 공간을 쾌적하게 했다.

CDP 건축가 초년병 시절부터 거리 개념을 배제한 20세기 중반 모더니즘 도시계획에 반기를 들었다. 거리는 건물이 도시에 어떻게 녹아들고, 무엇을 이바지할 수 있는지를 가늠할 수 있는 기준이자 질서다. 거리가 없는 동네는 상상하기 어렵다. 개방형 블록은 이 지점에 주목한다. 르 코르뷔지에의 ‘통로corridor’(자동차 중심의 개방된 도로)에 대한 반론이기도 하고. 거리의 다양성을 존중하고, 빛을 충분히 받아들이며, 시야가 트여 활기차고 쾌적한 동네를 만드는 것이 개방형 블록의 방향성이다. 일례로, ‘마세나Masséna’ 프로젝트(파리 남동쪽에서 진행한 재개발사업)가 있다.


개방형 블록을 더 자세히 설명해달라.

CDP 핵심은 대규모로 일관성과 통일성을 보여주는 것. ‘개방’은 빛을 받아들이고, 다양한 높이, 색상, 스타일의 재료를 수용하는 데 방점을 찍는다. 이와 함께 건물과 건물 사이에 크든 작든 공간을 둬 블록 중심부에 빛이 들어오게 한다. 단순한 형태에서 무한한 조합이 가능하다는 점이 놀랍지 않은가.


그렇다면 엘리자베트가 말하는 ‘연결의 건축’과는 어떤 관계인가?

EDP 서로 모순되지는 않지만, 동일한 사고를 공유하진 않는다. 개방형 블록이 현대 도시 공간의 물리적 구성에 중점을 둔다면, 연결의 건축은 인간과 환경 사이의 상호작용을 강조한다. 이제 환경은 생태적인 요소만이 아니라, 경제·문화·사회적 맥락을 포함하는 복잡한 개념이 됐다. 인간-환경-건축을 잇는 연결의 건축은 이를 바탕으로 지역 정체성을 강조하고, 사회적(≒사교적) 공간을 제공하는 데 의의가 있다.




오픈 블록과 연결의 건축이 아시아에 정착한 사례가 있나? 서울의 경우 공공과 민간의 경계가 허물어진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CDP 사적 공간과 공적 공간을 분리하는 일은 여전히 필수다. 개방형 블록은 전망과 채광을 공유하는 중간 공간을 창출해 사람들에게 다양한 경험과 관계를 제공하면서도, 서로의 사생활을 존중하도록 설계된다.

EDP 연결의 건축은 사적 공간과 공적 공간의 경계를 일차원적으로 논하지 않는다. 경제·문화·사회·생태 등을 두루 고려해 특정 장소를 재생해야 한다. 현재 현대건설과 협력해 서울에서 진행 중인 고층 건물 프로젝트에서 이를 실험하고 있다. 아시아의 경우, 중국 푸둥의 ‘사이언스 팰리스’에선 고도로 도시화된 삶을 사는 주민들에게 2헥타르의 공중 정원과 1헥타르의 지상 광장을 공급했다. 대만의 ‘TIOC 타워’는 지상에 있는 모든 공간을 통합해 수직으로 세운 도시 타워다. 사무, 상업, 주거 등의 기능을 하나의 건물 안에서 유기적으로 연결했다. 한편, ‘중국 융청 고고학 박물관’(2024~)은 생태적으로 보호해야 하는 습지 지역에서 진행할 프로젝트다. 현지 자재와 전통 건축 기법을 활용해 지역 환경에 녹아드는 건축을 선보이고자 한다. 인근 전통 마을을 복원하는 프로그램도 준비되어 있다.


건축가의 길을 걷게 된 계기가 있다면? 20대 초반, 크리스티앙은 건축가는 기술자일 뿐이란 생각에 문학·시·영화 등에 심취했다고 들었다. 지적 방황이 건축가의 삶에 어떤 도움이 됐나?

CDP 10대 시절 그림에 전념했다. 세잔, 로스코, 피카소의 그림을 보며 시간을 보냈다. 조각가 니콜라 쇠페르를 모방해 이동식 구조물도 만들었다. 당시 나에게 건축은 도시처럼 놀이 공간으로 인식됐을 뿐, 미지의 영역이었다. 그러다 서점에서 처음 건축을 접했다. 한 책에서 르 코르뷔지에가 인도 찬디가르Chandigarh 도시 설계를 위해 그린 ‘열린 손Open Hand’ 프로젝트 그림을 보았다. 그때 나는 하나의 그림이 삼차원 공간이 될 수 있음을 알았다. 풍경 속 조각 같은 건축물과 장소를 거닐고, 그림을 그리는 일이 같은 행위임을 배웠다고 할까.


기존 비평문에 따르면, ‘마른 라 발레 급수탑’을 기점으로 자신만의 스타일을 구축했다고 한다. 여기에 반영된 당신의 아이디어는 무엇인가?

CDP 1971년 마른 라 발레Marne-la-Vallée 에서 ‘고속도로에 의해 흩어지고 조각난 도시의 광활한 공간에 어떻게 의미와 형태를 부여할지’ 고민했다. 결론은 원형 교차로를 만들어 그 안에 급수탑을 식물 탑처럼 배치하는 것. 이러한 파열음이 도시 전체에 상당한 반향을 일으킬 것으로 예상했다. 이는 도구적인 것과 상징적인 것 사이의 논쟁과 다름없다. 오늘날 도시계획도 이와 비슷하지 않나. 이 프로젝트는 바벨탑을 참고해 유토피아를 건설하는 것, 도시 자체의 조건을 넘어서는 욕망을 도시에 투영하겠다는 선언문과도 같았다. 그리고 여기에 식물을 들여 비어 있으면서도 가득 찬 형태를 만들었다. 노자는 말한 바 있다. “내 집은 땅이 아니고, 벽도 아니며, 지붕도 아니다. 내 집은 사물 사이의 공백이다. 그곳이 내가 사는 곳이다.” 결국, 공백이 곧 공간이라는 뜻.


엘리자베트는 미술과 인연이 깊다. 어렸을 때부터 미술을 공부했고, 1986년에는 갤러리를 오픈했으며, 다양한 미술관·박물관 프로젝트에도 참여했다.

EDP 13세부터 17세까지 프랭크 셰퍼Frank Schaeffer 스튜디오에서 추상회화를 연습했다. 스튜디오 밖에선 개념 미술을 공부했으며 가구 디자인, 드로잉, 사진 등 다양한 작품 활동도 했다. 1986년에는 ‘모스트라Mostra’ 갤러리를 열고 인테리어 디자인에 발을 들였다. 지금도 디자인·미술 작업을 하고 있다. 궁금하다면, 현재 베를린 ‘에데스 건축 포럼Aedes Architecture Forum’에서 진행 중인 전시 를 검색해보시라. 나의 건축 프로젝트에는 직접 디자인한 가구의 요소가 종종 포함된다. 이 대목에서 살펴봐야 할 것은 프로젝트에 어떤 예술 장르(형식)를 사용했는지가 아닌, ‘예술과 건축이 어떻게 연결됐는지(태도)’다. 틀에 박히지 않은 사고 밑바탕에는 예술이 있다. 건축은 우리가 사는 세상을 구체적이고 가시적인 방식으로 바꿀 수 있지만, 현실적으로 건축가는 현대 예술가만큼 자유롭지 않다. 건축의 영역에서 예술은 유연한 사고를 위한 필요조건이다.


2포잠팍의 포트폴리오를 보면, 오스만 양식(정리 정돈된 구역)과 르 코르뷔지에의 모던함이 공존하는 듯하다.

CDP 르 코르뷔지에의 도시계획은 창의적이나 그의 주장은 과거를 파괴해야 새로운 것이 온다는, 매우 위험한 영웅적 논리에 기반을 둔다. 문명이 작은 움직임에 의해 작동됨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인류학적 오류다. 도시는 흘러가는 ‘시간’이므로 스스로 변화해야 한다. 나는 새로운 건물보다 이웃을 설계하는 일이 더 어렵고 긴요하다고 믿는다. 1930년대 그는 모든 강연에서 ‘거리의 죽음’을 언급하며 마무리했다. 하지만 나는 거리가 그리스와 로마에서 전해 내려온 매우 단순하고도 무서운 발명임을 깨달았다. 르 코르뷔지에는 ‘복기지palimpsest(원래의 글을 지우고 다시 쓴 고대 문서. 건축에서는 과거의 흔적 위에 새로운 구조와 디자인이 덧입혀져 어제와 오늘이 공존하는 것을 의미)’를 고려하지 않았다. 이는 내가 르 코르뷔지에에게 영향을 받았음에도, 온전히 그를 지지할 수 없는 이유다.




서울 청담동의 ‘하우스 오브 디올’, 뉴욕 맨해튼의 ‘LVMH 타워’, 생테밀리옹 슈발 블랑 와이너리 등 럭셔리 건축도 진행했다. 이때 염두에 둔 것이 있다면?

CDP 당신이 말한 건축물의 클라이언트는 모두 베르나르 아르노Bernard Arnault다. 우리의 협업은 수십 년 동안 지속됐다. 1990년대 그가 LVMH 미국 본사를 설계해달라고 연락했다. 이후 생테밀리옹에 있는 와이너리 설계를 부탁했고, 2011년 완공했다. 2015년엔 서울에 세워질 디올 플래그십 스토어의 디자인 의뢰를 받았다. 전체 분위기는 크리스찬 디올이 옷을 만들기 위해 자르고 모델링했던 흰색 캔버스에서 모티프를 얻었다. 한편, 올해 초 스위스 제네바에 오픈한 디올 플래그십 스토어에선 꽃잎이 하늘을 향해 뻗어가는 모습을 형상화했다. 럭셔리 건축의 장점이자 특징은 꿈을 실현할 수 있다는 것. 덕분에 예술 작품 같은 독특한 내러티브를 건축에 담아낼 수 있다.


마지막으로, 건축은 예술에 가까울까? 아니면 실용에 가까울까?

EDP 태초 이래 건축은 사람과 기관을 수용하는 건물을 갖춘 도시를 설계하는 예술로 존재해왔다. 건축의 품질은 기술적·미학적 요소와 건물의 목적성을 얼마나 조화시켰는지에 따라 정의된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즉 기술이 발전하면서 건축에 변화의 바람이 불었다. 대표적으로, 언젠가부터 수익성과 건설 속도를 우선시하는 위험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더라. 브레이크를 걸어줄 필요가 있다. 적절한 균형을 잡아주는 당신(미디어)의 역할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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