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셔리> 2024년 7월호

장신구 랩소디

서울공예박물관에서 7월 28일까지 한국-오스트리아 현대 장신구 교류전 <장식 너머 발언>을 개최한다. 현대 장신구를 ‘예술 표현 수단’이자 ‘대안적 소통 매체’로 바라본 전시의 이모저모.

EDITOR 박이현




‘현대 장신구Contemporary Jewellery’란 제1·2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형성된 공예 장르를 일컫는다. 20세기 중반,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작가들의 활동이 본격화되며 이름을 알렸다. 과거 장신구는 부와 권력을 상징하거나 미美를 뽐내기 위한 장식품 성격이 짙었지만, 이때부터 독립적인 예술품으로 인식되면서 과감한 재료와 형식을 이용한 공예적 실험이 이어졌다. 장신구를 사회적·예술적·철학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매체로 삼은 것이 대표적. 당시 작가들은 기계화 시대의 직선적 이미지와 간결한 형태 혹은 과장된 형식을 도입함으로써 ‘착용’이란 개념을 여러모로 실험했다.


전통적인 얼굴 표현 모티프의 범위를 확대한 아니타 뮌츠Anita Münz의 ‘3개의 입을 가진 얼굴’(1984). 1부 주얼리 아방가르드, © Bildrecht, Wien 2024  

2 한국적 미감과 정서, 화각(소뿔) 같은 고전적 재료와 기법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이정규의 ‘시간의 소리’(2022). 1부 주얼리 아방가르드

3 목걸이의 구조를 탐구해 새로운 측면을 보여주는 주자네 하머Susanne Hammer의 ‘선을 넘다’(2021). 2부 현대 장신구의 오늘 #서사, © Bildrecht, Wien 2024

4 금속공예의 기술적 정교함과 절제된 형태의 아름다움을 묘사하는 엄유진의 ‘프리즘 Ⅲ’(2016). 2부 현대 장신구의 오늘 #서사

5 과거 화려한 시절의 장신구를 이용해 아름다움의 무상함을 전달하는 페트라 치머만Petra Zimmermann의 ‘무제’(2018). 2부 현대 장신구의 오늘 #서사

6 다양한 소재로 구성된 돌을 만들어 장신구 재료로 활용하는 슈테피 모라베츠Stephie Morawetz의 ‘69718469741851392000’(2014). 3부 현대 장신구의 내일

7 색상이 더해진 큐브를 이어 다양한 방법으로 착용할 수 있게 만든 콘슈탄체 프레히틀 Konstanze Prechtl의 ‘색에 대해-흐름’(2019). 3부 현대 장신구의 내일



그중 오스트리아는 이러한 현대 장신구 흐름의 한가운데에 있는 나라다. 합스부르크 왕조 시대에는 정교하고 화려한 장신구를 제작해 유럽에서 큰 명성을 얻었고, 20세기 초 설립된 ‘빈 공방Wiener Werkstätte’은 아르누보Art Nouveau 스타일의 가구, 도자기, 직물 등을 통해 기능성과 아름다움을 결합한 독특한 디자인을 내세워 널리 알려졌다. 이후 장신구에 사회적 목소리를 담아낸 1970년대를 거쳐 최근에는 빈 공방의 전통을 잇는 디자이너들이 마치 현대미술 같은 독창적인 작품을 발표하는 중. 그런 오스트리아 예술 장신구의 타임라인을 톺아보는 전시가 서울공예박물관에서 펼쳐지고 있다. 전시 <장식 너머 발언>은 과거 권력의 상징이자 탐미의 대상으로 여겨지던 전통 장신구의 의미를 넘어 새로운 ‘시각언어’로 등장한 현대 장신구에 주목하고자 마련된 자리다.

전시에는 한국 작가의 작품이 대거 포진해 눈길을 끈다. 이는 <장식 너머 발언>이 1892년 한국과 오스트리아가 수교를 맺은 이래 사상 처음으로 손을 맞잡은 대규모 예술 장식 교류전이기 때문. 이번 교류전의 출발점인 오스트리아 대사 부인 주자네 앙게르홀처Susanne Angerholzer는 이렇게 설명한다. “2020년 한국에 온 후 우연히 ‘갤러리 오’에서 한국 장신구를 봤어요. 보자마자 한눈에 매료됐죠. 같은 해 오스트리아에서 주자네 하머와 우르줄라 구트만이 선보인 현대 장신구를 여성주의 시각에서 접근한 전시 <그들의 마음: 오스트리아의 주얼리Mind of Their Own: Jewellery from Austria>도 영감이 됐습니다. 이 전시를 본 뒤 한국 작가와 함께 보다 넓고 새로운 관점으로 확대한다면 과거와 현재, 동양과 서양을 이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서울공예박물관과 협업하게 되었어요.”




<장식 너머 발언>은 총 3부로 구성된다. 먼저, 1부 ‘주얼리 아방가르드’는 1970년대부터 시작된 한국과 오스트리아의 현대 장신구 역사를 조명한다. 두 나라 선배급 작가들의 활동을 비교하는 재미가 있는 섹션으로, 공예를 활용해 사회·정치적 구조를 비판한 오스트리아와, 유학을 다녀온 여성 작가들의 영향으로 ‘자연’과 ‘신체’를 은유적으로 풀어낸 한국 장신구의 경향을 만나볼 수 있다. 2부 ‘현대 장신구의 오늘’은 2000년대 현대 장신구 작품을 ‘신체’, ‘자연’, ‘서사’라는 소주제로 나눠 소개한다. 이곳에선 오스트리아는 개별 스튜디오를 중심으로 제작 환경이 변화하면서 주제 전개와 재료의 다양성을 획득했음을, 한국은 금속공예 기반을 넘어 재료 선택과 제작 방식이 다각화됐음을 보여준다. 마지막으로, 3부 ‘현대 장신구의 내일’은 미래 제작 환경을 고려한 현대 장신구 작가들의 제작 방식과 태도를 살펴본다. 양국 작가 작품 모두 자신만의 조형 언어를 구축하려 3D 프린팅, 플라스틱 같은 소재를 사용한 것이 흥미롭다. 기존 생산방식에서 제기되는 문제점, 자연과 인공 간의 가치 판단을 이야기하는 방식이 읽혀 인상적이다.

기실, 이미 우리는 장신구의 달라진 위상을 잘 알고 있다. 일례로, 미국 국무장관이던 매들린 올브라이트는 기자회견의 맥락에 맞춰 브로치를 옷에 부착했다. <장식 너머 발언>을 기획한 황혜림·이효선 학예연구사는 말한다. “단순 장식용이란 기능성을 넘어 사회적 개념이나 어떤 정치적인 발언 혹은 개인 메시지를 전달하는 소통 매체로서의 가능성을 눈여겨보시길 바랍니다.” 한국·오스트리아 공예 작가 111팀의 작품 675점을 바탕으로 현대 장신구가 걸어온 길과 동서양 문화 예술의 연결 고리를 새로이 발견할 수 있는 <장식 너머 발언>은 7월 28일까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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