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셔리> 2024년 6월호

워치메이킹의 살아 있는 교과서, 브레게

창립자 아브라함 루이 브레게의 정신을 그대로 이어나가는 브레게. 스위스 발레 드 주Vallée de Joux에 자리 잡고 있는 브레게의 매뉴팩처에서 전통과 역사, 놀라운 기술력의 조우를 직접 체험하고 왔다.

EDITOR 김송아


스위스 발레 드 주에 위치한 브레게 매뉴팩처의 전경.


위대한 역사와 문화유산을 자랑하는 브레게는 1775년, 시계 의 역사와 기술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워치메이커 아브라함 루이 브레게의 손에 탄생했다. 그는 일평생 워치메이킹의 모든 분야에 걸쳐 일하며 현대적인 시계를 구성하는 놀라운 발명품을 꾸준히 선보였다. 퍼페추얼이라고 불리는 셀프와인딩 워치, 미닛 리피터의 공 스프링, 중력으로 인해 시계에 오차가 생기는 것을 방지하는 투르비용이 그 주인공이다. 이 같은 대담한 발상과 기술력에 반해 마리 앙투아네트 왕비부터 윈스턴 처칠까지 수많은 유명 인사가 브레게의 열렬한 고객이 된다. 1810년, 브레게는 나폴리 왕비였던 카롤린 뮈라 보나파 르트를 위해 세계 최초의 손목시계를 발명하며 또 한번 시계 사에 큰 한 획을 긋는다. 1999년에는 스와치 그룹으로 인수 되어, 현재까지 창립자의 정신을 바탕으로 기술력 향상에 집중하고 있다. ‘클래식 컴플리케이션’ , ‘트래디션’, ‘타입 XX’ 컬렉션 등 정제된 디자인과 완벽한 컴플리케이션을 결합한 타피스는 현재까지 무수한 사랑을 받고 있다.


매뉴팩처의 시설과 과정



섬세하게 기요셰 작업을 하고 있는 장인의 모습.


브레게의 시계가 탄생하는 매뉴팩처는 스위스 발레 드 주의 심장이라 할 수 있는 로리앙L’Orient에 자리 잡고 있다. 스위스 제네바에서 차로 약 1시간 정도의 거리다. 이곳은 1999년 브레게가 스와치그룹에 인수된 이후, 스와 치그룹 대표인 니콜라스 G. 하이예크의 대규모 투자로 새롭게 단장했다. 현 대 파인 워치메이킹 부문에서 선두 주자의 역할을 하고 있는 브레게 매뉴팩 처의 시설과 과정은 크게 4가지로 나뉜다. 첫 번째 라인에서는 기요셰, 인그레이빙 등의 기법을 활용해 케이스 부품을 가공하고, 두 번째 라인에서는 무브먼트를 조립한다. 세 번째 라인에서는 다이얼의 핸즈 피팅 및 컴플레이케이션 조립과 투르비용 워크숍을, 마지막 네 번째 라인에서는 스트랩과 브레이슬릿의 조립을 담당하며 각각의 작업이 체계적이고 섬세하게 나뉘어 진행된다. 브레게는 기요셰, 인그레이빙, 앙글라주, 에나멜링 등 자체 워크숍을 개발하고 보유한 몇 안 되는 매뉴팩처로도 명성을 떨치고 있다. 특히 로즈 엔진 머신을 복원한 유일한 매뉴팩처 중 하나로, 공예에 대한 브레게의 진심을 확인할 수 있다. 각각의 공예 기법은 시계에 개성을 부여함과 동시에 미학적으로도 최고의 수준으로 끌어올린다.




‘마린 5517’ 워치의 다이얼 위로 기요셰 패턴을 새기고 있다.



‘클래식 컴플리케이션 3358’ 워치의 컴플리케이션에 인그레이빙을 하는 작업 모습.



기요셰는 1786년, 아브라함 루이 브레게가 워치메이킹에 처음으로 도입한 기법이다. 엔진 터닝 도구를 이용해 특정 소재에 다양한 형태의 선을 정교하게 새긴다. 반복적이고 대칭적인 디자인은 심미적으로도 완벽하지만 그가 기요셰를 도입한 이유는 기능적인 측면에 있다. 스크래치나 변색에 취약한 시계의 표면을 더욱 강하게 만들고, 빛반사를 줄여 다이얼의 가독성을 높이기 때문. 이뿐만 아니라 다이얼 위의 챕터링, 스몰 세컨즈, 파워 리저브 인디케이터 등 각 부분을 명확하게 구분해주는 역할까지 한다. 브레게는 약 240년 동안 기요셰 기법을 전수해오며 클루 드 파리, 파니에 등 독자적인 패턴을 개발했다. 시계 무브먼트를 구성하는 메인 플레이트와 브리지에 정교한 패턴을 새기고, 무브먼트 구성품에 수작업으로 브레게의 이름을 더하는 인그레이빙 또한 장인들에 의해 이뤄진다. 음각화를 의미하는 타예두스 Taille-douce는 깊이를 섬세하게 조절해 패턴을 만드는 작업으로 극도의 정교함을 필요로 한다. 또한 각 브리지에 장식한 패턴은 조립했을 때 하나의 이미지가 되도록 설계하기 때문에 그 과정은 더욱 감탄을 자아낸다.


인그레이빙 작업을 마친 ‘클래식 5317’ 워치의 로터.




복원 워크숍

브레게 매뉴팩처는 장인들의 메티에다르, 컴플리케이션의 개발뿐만 아니라 기념비적인 마스터피스의 복원 워크숍에도 열과 성의를 다하고 있다. 1783년, 브레게는 마리 앙투아네트를 위해 세계에서 가장 복잡하고 아름다운 시계를 만들기 시작했다. 이퀘이션 타임, 퍼페추얼 캘린더, 리피터, 온도계, 크로노그래프와 파워 리저브 인디케이터를 장착한 ‘마리 앙투아네트 No.160’ 워치가 그 주인공. 안타깝게도 마리는 완성된 모습을 보지 못했고, 1983년 예루살렘의 박물관에서 보관하던 이 워치는 몇 년 동안 도난을 당했다. 마침내 도둑의 미망인이 시계를 기증함으로써 세상에 공개된다. 니콜라스 G. 하이예크는 브레게의 정신을 살리겠다는 일념하에 2008년 바젤 페어에서 이를 복원한 ‘마리 앙투아네트 No.1160’ 워치를 선보였다. 복원 된 워치는 남아 있는 문서를 바탕으로 역사적인 시계의 기술으로 활용해 브레게의 유산을 그대로 이어간다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깊다.


나폴레옹 1세가 구입한 것으로 유명한 ‘심퍼티크 클락 No.178’. 심퍼티크 클락 윗부분에 있는 하우징에 손목시계를 넣으면 시간이 자동으로 세팅되며
동력이 충전된다. 역사 속의 시계 ‘마리 앙투아네트 No.160’ 워치와 2008년 이를 복원한 ‘마리 앙투아네트 No.1160’ 워치.



미닛 리피터

‘클래식 뚜르비옹 엑스트라 플랫 스켈레트 5395’ 워치의 컴플리케이션을 조립하는 모습.


시계에서 전통적으로 통용되는 컴플리케이션은 퍼페추얼 캘린더, 스플릿 세컨드, 미닛 리피터 그리고 투르비용이 있다. 브레게 매뉴팩처의 컴플리케이션 부서는 이 각각의 요소를 완성도 있게 구현하고, 정밀하고 명확하게 결합한다. 특히 브레게 매뉴팩처에는 미닛 리피터 사운드의 조화를 연구하는 공간이 따로 마련되어 있을 정도다. 미닛 리피터는 17세기 후반 저명한 시계 학자들이 어두운 밤에도 소리로 시간을 알리는 기능을 개발하는 경쟁 속에서 탄생했다. 아브라함 루이 브레게는 이 미닛 리피터에 매료돼 1783년, 보편적으로 사용하던 벨이 아닌 공 스프링으로 작용하는 최초의 스트라이킹 리피터 시계를 개발하기에 이른다. 처음에는 직선 형태의 공 스프링을 뒷면 플레이트 위에 대각선 방향으로 탑재하다가 이후 무브먼트 주위를 감싸 올라가는 코일 형태로 발전시켰다. 이 방식은 소리를 보다 조화롭고 선명하게 만드는 장점이 있다. 그는 이에 그치지 않고 15분, 15분의 절반, 1 분마다 시간을 알려주는 멀티 스트라이킹 메커니즘을 발명했다.



브레게 핸즈, 셀프와인딩, 투르비용을 적용한 ‘뚜르비옹 엑스트라 플랫 5367’ 워치.



투르비용

초기 오리지널 투르비용 포켓 워치 ‘No. 1176’의 스케치.


역사상 가장 탁월한 컴플리케이션으로 손꼽히는 투르비용은 223년 전 아브라 함 루이 브레게의 손에서 탄생했다. 뛰어난 정밀성, 정교한 메커니즘으로 완성한 투르비용은 오늘날까지 브레게 하우스와 아브라함 루이 브레게의 명성을 널리 알리는 데 크게 기여했다. 시계의 무브먼트는 지구 중력의 영향을 받기 마련인데, 그는 이 중력 의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분당 1회전 주기의 모바일 캐리지 내부에 전체 이스케이프먼트를 설치했다. 결함이 규칙적으로 반복되면서 상호 보완 작용을 하고, 이 과정에서 베어링의 밸런스 피벗에 의해 접촉 지점이 계속 바 뀌면서 매끄러워지게 되는 원리다. 그의 발명으로 시계의 정확도가 개선됐을 뿐만 아니라 시계 산업은 파인 워치메이킹 디바이스를 얻게 되었고, 브레게는 10여 년간 치열한 발명 끝에 1801년, 투르비용으로 특허를 취득 한다. 이후 브레게와 직원들은 역사적인 기록물에 관한 조사와 투르비용의 중요성에 확신을 가지고 꾸준한 신기술 개발로 더욱 품질을 강화한 다채로운 투르비용을 워치를 제작해오고 있다.



‘트래디션’ 워치의 투르비용을 조립하는 모습. 


COOPERATION  브레게(3479-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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