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셔리> 2024년 6월호

ART WAVE @VENEZIA

‘2024 베네치아 비엔날레’에는 현대미술이라는 파도가 일렁인다. 그중 도시 곳곳에서 열리는 위성 전시를 선별했다.

EDITOR 박이현



1 EVERY ISLAND IS A MOUNTAIN


베네치아 비엔날레 한국관 건립 30주년을 기념하는 전시. <모든 섬은 산이다>는 지난 30년간 한국관을 거쳐간 작가 36팀의 작업을 엄선해 한국 동시대 미술의 다양성과 역동성을 조명하는 데 의의가 있다. 제목은 섬과 섬이 마치 산맥처럼 해저 지형과 해양생태계로 연결되듯이 고립된 개인의 삶과 예술 역시 역사와 사회적 맥락에 이어져 있음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예술을 통해 시간과 공간을 잇는다는 뜻. 전시는 과거-현재-미래, 개인과 공동체, 기술과 예술의 경계를 가로지르는 예술적 사유와 실천을 보여주는 김수자·문경원 & 전준호·문성식·박이소·서도호·윤형근·최정화 등의 작품으로 구성했다. 한국관 30년의 역사와 이번 전시 관련 정보 및 자료 등을 정리한 공식 웹사이트(venicebiennale.kr)를 참고하면, 전시를 감상하는 재미가 배가된다. 9월 8일까지.



2 MADANG-WHERE WE BECOME US


광주비엔날레재단 설립 30주년을 기념하는 아카이브 특별전. 그동안 시각예술을 통해 여러 담론과 화두를 발화한, 즉 ‘마당’ 역할을 한 광주비엔날레의 동시대적 가치를 조망하고자 기획됐다. 전시는 3개의 섹션으로 진행된다. 광주비엔날레의 연대기를 훑어보고, 광주비엔날레 소장품(백남준의 ‘고인돌’, 크초의 ‘잊어버리기 위하여’)과 그 의미를 확장하는 김실비·김아영·전소정의 작품을 감상한 다음, 광주비엔날레의 행보를 담은 자료를 살펴보는 순. 베네치아 비엔날레와 어떤 공통점과 차이점이 있는지 비교하며 보는 것도 <마당-우리가 되는 곳>을 즐기는 방법이다. 11월 24일까지.



3 LA MAISON DE LA LUNE BRÛLÉE


정월대보름 밤하늘 아래 송액영복과 풍년을 빌던 청도의 전통문화 ‘달집 태우기’를 소리와 영상, 평면으로 소개하는 이배의 개인전. 전시장에 들어서자마자 마주하는 영상이 적당한 긴장감을 주는 게 인상적이다. 이는 ‘버닝Burning’이란 작품으로, 세계 각지에서 보내온 소원을 옮겨 적은 전통 한지 조각을 달집에 묶어 태우는 과정을 영상으로 기록했다. 한편, 전시장에 오라를 부여하는 작품은 ‘붓질Brushstroke’이다. 이배는 이탈리아 파브리아노의 친환경 제지를 도배한 바닥과 벽 위에 그림을 그렸는데, 공간에 남긴 여백의 미가 진한 여운을 준다. 검은 화강암을 깎아 세운 4.6m 높이의 ‘먹Inkstick’도 시선을 사로잡는다. 거대한 작품 앞에 서 있으면, 절로 겸손해져 지난날을 돌아보게 된다. 이를 함께 본 서양 관객 또한 겸허해졌다는 평을 남기기도. 11월 24일까지.



4 TOWARDS THE ANTIPODES


<지구 저편으로>는 60년 화업 전반에 걸쳐 동양철학의 ‘음양오행’을 뿌리로 삼은 이성자의 예술성과 미적 여정을 톺아보는 자리다. 전 국립현대미술관 관장 바르토메우 마리가 기획했다. 전시에 관해 그는 “전 세계 미술 관객은 주변 환경, 세상, 우주를 개인과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해석해내는 작가를 보게 될 것”이라고 설명한다. 이성자는 고향인 한국과 인생의 반 이상을 보낸 프랑스에서 각국의 주요 근현대미술사 흐름에서 벗어난 독창적 작품 세계를 구축했는데, 이 같은 작가의 타자他者의 삶은 올해 비엔날레 주제인 ‘이방인은 어디에나 있다’와 일맥상통한다. 11월 24일까지.



5 A JOURNEY TO THE INFINITE


“색채 없는 그림은 상상할 수 없다.” 한국 1세대 모더니스트이자 기하학적 추상화의 선구자 유영국의 첫 해외 기관 개인전 <무한세계로의 여정>에선 회화 29점과 석판화 11점을 만나볼 수 있다. 전시는 1960~1970년대 탄생한 회화에 초점을 맞췄다. 이 시기 유영국은 유기적인 형태에서 기하학적인 형태로의 변화와 실험을 추구했고, 과감한 원색 사용, 따뜻한 색과 차가운 색의 미묘한 변주를 통해 우아한 순수 추상으로의 끝없는 여정을 보여주었기 때문. 덕분에 작가의 예술 절정기를 응집력 있게 관람할 수 있다. 11월 24일까지.



6 SHIN SUNG HY


“묶인다는 것은 결합이다. 너와 나, 물질과 정신, 긍정과 부정, 변증의 대립을 통합하는 시각적 언어다.” 매듭 페인팅을 창안해 평면과 입체의 일체를 모색했던 신성희의 개인전. 1980년 파리로 이주해 30년을 살며 한국 미술인들의 ‘파리 사랑방’ 역할을 톡톡히 했다는 신성희. 두 나라 미술계의 주요 화두였던 단색화와 쉬포르 쉬르파스Support/Surfaces(색면이 곧 회화라고 주창한 미술 운동) 작품을 가까운 거리에서 바라본 그는 평면 화면에서 입체를 고민했던 독보적인 작가로 평가받는다. 7월 7일까지.



7 INVISIBLE QUESTIONS THAT FILL THE AIR


조각가 이승택과 개념 미술가 제임스 리 바이어스가 <공기를 가득 채운 보이지 않는 질문>에서 처음 만났다. 미술사에서 특정 계보나 ‘-이즘-ism’으로 분류되는 것을 거부했던 두 작가의 공통점은 비물질적 요소에 관심을 뒀다는 것. 이승택은 오브제나 묶인 돌, 산업폐기물, 노끈 같은 재료를 활용해 조각의 통속적인 방법론에 저항했으며, 정신성과 유한성을 추구하는 제임스 리 바이어스는 ‘완벽함’이란 개념을 물질화하고자 했다. 베네치아의 2인전 역시 일상의 사물을 고정관념에서 탈피시킨 이승택과 제임스 리 바이어스의 해체 미학 그리고 재맥락화로 점철돼 있다. 8월 25일까지.



8 JE EST UN AUTRE


아르튀르 랭보, 안나 아흐마토바 등 이방인의 여정을 따라가는 에르네스트 피뇽 에르네스트의 <또 다른 나>. 현실과 허구의 이미지를 정교하게 결합한 그는 가톨릭교회와 파시즘에 저항하다 암살당한 영화감독 파솔리니 같은 인물의 운명을 탐구한다. 특정 장소에 실물 크기의 이미지를 설치한 다음, 이들의 상호작용을 통해 신화적·역사적·정치적 울림을 탐색하는 것이 작업의 핵심. 11월 24일까지.



9 MONTE DI PIETÀ


베네치아 비엔날레에서 2015년엔 교회를 이슬람 사원으로 탈바꿈하고, 2019년엔 난민을 태운 채 침몰한 난파선을 작품화해 논쟁을 일으켰던 크리스토프 뷔헬. 그런 그가 프라다 재단과 손을 잡았다. <자비의 산>은 빚의 개념을 파헤치는 전시다. 서양 역사에서 빚은 동전의 양면 같은 존재였다. 채권자는 사회질서를 회복하려 반복적으로 채무자의 부채를 탕감해 사회 결속을 다지는 데 기여하기도 했지만, 사회를 위협할 때도 있었다. 고리대금업자가 권력과 결탁해 사람들의 고혈을 짜낸 것이 대표적. 그래서 고리대금업자는 셰익스피어 희곡 <베네치아의 상인> 속 샤일록처럼 늘 사악한 인간으로 그려져왔다. 전시는 과거부터 오늘날까지 빚을 둘러싼 사례들을 다룬다. 평소 NFT, 미디어에서 파생한 유형적·무형적 빚이 삶에 미치는 영향 등이 궁금했다면, 전시장 방문은 필수. 11월 24일까지.



10 THE SWEET MYSTERY


‘LOVE’가 가장 먼저 떠오르는 미국 팝아트의 상징 로버트 인디애나의 작가 인생 60년을 회고하는 전시. 대중에게 친숙하지 않은 작품을 선보인다고 해 오픈 전부터 화제가 됐다. ‘The Sweet Mystery’(1960-1962), ‘EAT/DIE’(1962), ‘Love is God’(1964) 등의 유명 작품은 전시의 일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교과서에서도 쉬이 보지 못했던 작품이 한 걸음마다 나타나 연신 셔터를 누를 수밖에 없다. 동선에 맞춰 설치된 작품들을 보노라면, 급진적으로 사회가 변화했던 20세기 중반 미국으로 시간 여행을 떠나는 듯한 착각에 자연스레 빠진다. 11월 24일까지.



11 EVERYDAY WAR


위안 광밍은 현대사회의 존재와 불안을 이야기하는 대만 비디오 아트의 거장이다. <일상의 전쟁>이란 전시 제목처럼 작가는 오늘날 어디에도 속할 곳이 없는 인간이 여기저기를 떠돌며 느끼는 상실감과 불확실함을 은유적으로 묘사한다. 어두운 전시장에는 ‘대만의 방공훈련’, ‘목가적인 집이 급작스러운 공격에 파괴됐다가 서서히 회복되는 모습’, ‘AI 기술로 전 세계의 비슷한 스트리트 뷰를 엮는 과정’ 등이 펼쳐진다. 기시감일까. 고립, 분열, 전쟁 등이 만연한 작금의 세계 정세가 뇌리를 스친다. 11월 24일까지.



12 PORTRAITS IN LIFE AND DEATH


피터 휴아르의 전설적인 작업 ‘Portraits in Life and Death’(1976)가 유럽 최초로 베네치아에서 공개됐다. 삶과 죽음을 그린 초상 사진 41장에는 비평가 수전 손택, 작가 프랜 레보위츠, 영화감독 존 워터스 등 1970년대 문화계 인사가 등장한다. 흡사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운 듯한 휴아르의 포트레이트는 전시장에서 이탈리아 팔레르모의 지하 묘지 카푸친 카타콤의 미라 사진과 나란히 배치됐는데, 기묘한 분위기가 썩 달갑지만은 않다. 11월 24일까지.



13 COURTYARD OF ATTACHMENTS


전시 때마다 생물학자로 변신하는 트레버 영이 이번엔 마당을 실험실로 탈바꿈했다. 그의 전체 작업을 관통하는 주제는 ‘관계’와 ‘통제’다. 작가는 누군가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선 자신을 통제할 필요가 있다고 역설한다. 이를 빗댄 것이 자신만의 시스템 안에 종속시킨 동물과 식물이다. 이와 유사하게 <애착의 뜰>에서 그는 감정을 이성적으로 조절할 수 있는지 묻는다. 예를 들어, 사랑의 줄다리기 혹은 조직 생활에서 감정의 우위를 누가 점하느냐에 따라 관계의 무게추가 기우는 일을 왕왕 겪지 않는가. 감정이 관계의 볼모로 잡힐 때 사람은 이성적인 판단을 내리기 어려운데, 작가는 그런 상황에 빠지는 일을 미리 경계해야 한다고 말하는 듯하다. 11월 24일까지.



14 THE JUGGLER’S REVENGE


만능 예술가 장 콕토의 회고전. 극작가, 디자이너, 영화감독 등으로 활동한 것을 비유라도 하듯 전시의 메인 사진 속 그의 손에는 가위, 책, 펜 등이 쥐어져 있다. 전시장에선 그가 제작한 그림, 사진, 영화, 태피스트리 등 150여 점이 관객을 기다린다. 생전 장 콕토는 에디트 피아프, 코코 샤넬 등과 예술적 교감을 나눴는데, 그들과 묘하게 닮은 작품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어 이스터 에그를 찾는 느낌도 든다. 9월 16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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