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셔리> 2024년 6월호

MILAN DESIGN WEEK - FASHION IN LIVING

매년 4월, 지구 최대의 디자인 페스티벌인 밀라노 디자인 위크가 열린다. 축제의 서막이 오르면 수많은 건축물이 하루아침에 전시장으로 탈바꿈하고 그저 거리를 거닐기만 해도 곳곳에서 예술 작품을 마주할 만큼 도시 전체가 그야말로 하나의 디자인이 된다. 올해에는 4월 15일부터 21일까지 일주일 간 축제가 이어졌으며, 가구 박람회 살로네 델 모빌레Salone del Mobile부터 밀라노를 무대로 삼는 장외 전시 푸오리살로네Fuorisalone 현장까지 축제가 열리는 모든 스폿이 용광로 같은 열기로 이글거렸다. <럭셔리>가 직접 전하는 밀라노 디자인 위크 하이라이트를 감상하며 전 세계 디자인의 현주소와 비전을 가늠해볼 수 있기를 바란다.

EDITOR 이호준

라이프스타일 분야에서도 특유의 저력을 발휘한 럭셔리 패션 하우스의 활약.



HERMÈS



매해 리빙, 패션, 아트 등 기라성 같은 전시가 열리는 밀라노 디자인 위크 현장에서도 에르메스의 전시는 단연 손꼽히는 하이라이트다. 에르메스는 올해 <지구의 대지Ground, The Earth>라는 테마를 내세우며 대자연의 일부인 ‘땅’에 주목했다. 시대적 한계를 넘어서는 자유를 향한 의지를 표현하고자 했는데, 이에 흙과 자갈, 테라코타 등 대지에서 파생된 비가공 자연 재료들이 가공 형태와 방식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변화할 수 있다는 점을 떠올린 것. 이어 에르메스는 대지의 재료를 활용해 여러 기하학적 패턴을 결합한 인스톨레이션을 전시장 플로어에 선보였는데, 언뜻 하나의 거대한 러그처럼 보였다. 인스톨레이션에 접목한 다채로운 패턴은 기수가 착용하는 실크 저지에서 영감을 얻었다. 인스톨레이션과 함께 이번 전시를 통해 최초로 공개한 올해 홈 컬렉션 역시 안장을 만드는 에르메스의 가죽 장인의 노하우와 기술력을 기반으로 탄생했다. 특히 ‘디아파종 데르메스Diapason d’Hermès’ 라운지체어와 ‘볼티주 데르메스Voltige D’ 램프 등 퍼니처, 램프 라인부터 바스켓, 테이블웨어, 블랭킷까지 컬렉션 구성 또한 다채로웠다. 한편, 전시장에서는 이전 컬렉션과 신제품을 함께 전시해 에르메스 홈 컬렉션의 변천사도 가시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LORO PIANA


로로피아나는 브랜드 창립 10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의 일환으로 이탈리아의 건축가이자 디자이너 치니 보에리Cini Boeri에 대한 존경을 표하는 전시를 마련했다. 브랜드와 함께 탄생 100주년을 맞은 치니 보에리는 1979년 황금컴퍼스상을 수상한 모듈식 스트립 시스템, ‘페코렐레Pecorelle’ 소파 및 암체어, ‘보보Bobo’ 및 ‘보보릴랙스Boborelax’ 암체어 등 현재까지도 많은 사랑을 받는 가구를 제작했다. 알플렉스Alflex와 함께 한 전시 <치니 보에리에게 바치는 헌사>의 관전 포인트는 로로피아나가 엄선한 고퀄리티의 패브릭을 사용해 기존 디자인의 재해석을 시도했다는 점. 먼저 ‘보톨로’ 체어의 경우 캐시미어와 실크를 혼합한 캐시퍼Cashfur로 변화점을 줬다. 그런가 하면 보보 암체어는 로로피아나의 시그너처 컬러인 퀴멜Kümmel 컬러 캐시미어 셰르파를 둘러 기존과는 또 다른 모습으로 재탄생해 많은 관심을 받았다.




THOM BROWNE


톰 브라운은 160년 전통의 하이엔드 리넨 브랜드 프레떼Frette와 함께 마치 한 편의 연극 같은 전시<…Time to Sleep…>으로 밀라노 디자인 위크를 향한 당찬 첫 출사표를 던졌다. 톰 브라운의 시그너처 로고가 새겨져 있는 새틴 소재 침구를 깔아둔 6개의 침대 옆에서 이너웨어를 입은 모델이 잠에 드는 대신 일정한 리듬에 맞춰 슈트를 갖춰 입는 퍼포먼스를 펼친 것. 이어서 잘 차려 입은 모델이 안대를 끼고 숙면에 드는 모습을 연출하며 침실에서도 기능하는 톰 브라운의 웨어러블함을 엿볼 수 있었다. 동시에 침구와 쿠션, 스프레드, 타월 등의 베딩 아이템 그리고 로브 등의 홈 웨어로 구성한 협업 컬렉션도 공개했다.




RALPH LAUREN


2024년 F/W 홈 컬렉션인 ‘모던 드라이버’를 공개한 랄프 로렌. 마호가니 목재나 가죽 스테인리스스틸, 카본 파이버 등의 소재로 만든 가구 및 액세서리를 활용해 일종의 ‘컬렉터의 방’을 연출했다. 랄프 로렌이 자동차 컬렉터였음을 반영한 듯 신규 컬렉션의 디자인에도 자동차에서 영감을 받은 흔적을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컬렉션 대표 가구인 ‘RL-CF 1’ 체어는 실제로 그가 소유한 맥라렌 F1 레이싱 카의 외관을 디자인 요소로 일부 차용한 점이 인상적이다. 이 외에도 벤틀리의 그릴에서 영감받은 ‘백포드’ 테이블 램프, 자동차 내부의 모습에서 모티프를 얻어 타공된 가죽에 손잡이를 더한 ‘피어스 스로’ 베개 등 여러 아이템을 전시장에서 만나볼 수 있었다.




ARMANI CASA


<전 세계의 메아리Echoes from the World>라는 주제로 펼쳐진 2024 아르마니까사 컬렉션 전시. 유럽, 일본, 중국, 아라비아, 모로코 등 실제 조르지오 아르마니가 여행을 통해 여러 국가의 문화를 경험하고 흡수하며 다양한 영감을 얻었던 것처럼 지역적 색채가 물씬 느껴지는 소품과 그에 걸맞은 패션 피스를 비치해 관람객들에게 지구 곳곳을 여행하는 듯한 경험을 선사했다. 그중에서도 다양한 국가가 저마다 지닌 독특한 미학과 문화를 고스란히 살리고자 이국적인 요소를 다수 접목한 제품 디자인은 전시의 화룡점정이었다. 일례로 ‘클럽’ 바 캐비닛은 ‘아라비안나이트’에서 영감을 받아 블루 톤 가죽과 그로그랭grosgrain 천을 활용해 제작됐다. 이국적인 패턴을 활용한 모습도 보였다. ‘모르페오Morpeo’ 침대는 베르베르 문화에 영향을 받아 만든 것으로, 제품의 존재감을 한층 강화하는 강렬하고도 화려한 패턴을 입어 시선을 끌었다.




DOLCE&GABBANA


디자인과 가구 분야 신진 작가를 발굴하고 그들의 창의성과 재능을 조명하는 프로젝트인 ‘Gen D’의 두 번째 전시를 마련했다. 전시에 참여하는 신진 작가들은 큐레이터를 맡은 페데리카 살라Federica Sala가 국가와 국적을 불문하고 오로지 작가관과 작품 세계를 탄탄하게 구축하고 있는지를 기준으로 선정하며, 올해는 총 11인이 그 주인공이 됐다. 기존과는 궤를 달리하는 영 제너레이션 작가들의 아이디어와 이를 뒷받침해주는 이탈리아 장인들의 기술력이 더해져 탄생한 작품을 전시장에서 만나볼 수 있었다. 특히 한국의 김병섭 작가가 전통 예술인 자개를 활용한 작품을 출품해 과거와 현재의 문화를 연결하고 한국 전통문화의 가치를 조명한 점이 눈길이 갔다.




GUCCI


구찌의 ‘디자인 앙코라’ 프로젝트 전시에서는 이탈리아 디자인 역사에서 상징적인 5가지 오브제가 로소 앙코라Losso Ancora 컬러를 입고서 새 생명을 얻은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타키니의 ‘르 무라’ 소파, 베니니의 ‘오파키’ 화병, 아세르비스의 ‘스토렛’ 스토리지, 씨씨타피스의 ‘클레시드라’ 러그 그리고 폰타나 아르떼의 ‘파룰라’ 램프 등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5개 브랜드의 핵심 아이템이 변화의 주인공으로 선정됐다. 녹색으로 가득 채운 기하학적 형태의 전시 공간에 놓인 각 오브제들이 비록 오래전 디자인한 것임에도 여전히 아이코닉한 매력을 뽐내고 있어 오랜 역사와 명성을 지닌 이탈리아 디자인의 동시대적 면모를 여실히 확인할 수 있었다.




LOEWE


로에베는 올해 24인의 아티스트와 함께 빛으로 가득 찬 전시장을 꾸렸다. 전 세계에서 저마다의 작품 활동을 지속해온 각 작가가 자신만의 고유 스타일로 빛을 해석해 표현한 작품을 한데 모은 것. 가죽이나 나무, 유리, 종이 등 각기 다른 소재를 활용해 조명을 제작해 다채로운 방식과 형태로 퍼져나가는 빛이 전시장의 풍경을 한층 인상적으로 만들었다. 한국 작가의 활약도 돋보였다. 2019년 로에베 재단 공예상 파이널리스트에 이름을 올렸던 지승 공예가 이영순 선생이 손으로 실처럼 꼰 여러 개의 종이를 촘촘히 엮어 만든 램프 작품을 선보였기 때문. 이어 말총 공예를 선보이는 정다혜 작가의 작업도 전시장에 자리해 반가웠다.




BOTTEGA VENETA


보테가 베네타는 까시나, 르 코르뷔지에 재단과 함께 형형색색의 나무 상자로 이뤄진 거대한 산등성이를 구현해냈다. 전시 <온 더 록스On the Rocks>에 사용한 나무 상자 형태의 스툴 ‘LC 14 타부레 카바농’은 르 코르뷔지에의 미니멀리즘 철학을 십분 들여다볼 수 있는 가구다. 단순하면서도 정교하고 실용적인 이 스툴은 나무 위스키 박스에서 영감을 얻은 것으로, 이번 전시에서는 특히 보테가 베네타의 가죽공예 기법이 돋보이는 리미티드 에디션 버전을 만나볼 수 있어 뜻깊다. 레드, 옐로, 블루, 레인트리 그린 4가지 색상으로 이뤄진 이 제품은 가죽에 컬러 페인트를 칠한 다음 블랙 페인트를 덧입히고 일부는 벗겨내는 과정을 거쳐 만들어졌다.




ZEGNA


지속 가능성에 대한 필요성을 목놓아 부르짖는 작금의 시대보다 한 세기 앞서 제냐는 양모 공장을 둘러싼 100km² 규모의 부지인 ‘오아시 제냐Oasi Zegna’에 나무를 심었다. 그리고 지금, 오아시 제냐는 50만 그루에 이르는 나무와 식물로 가득한 그린 오아시스가 됐다. 제냐의 철학과 가치를 담은 책 <본 인 오아시 제냐Born in Oasi ZENGA>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 내용이다. 제냐는 해당 책 발간을 기념해 브랜드의 역사와 오아시 제냐를 간접적으로 체험해볼 수 있도록 미디어 아트와 인스톨레이션 등을 큐레이션한 전시를 개최했다. 다양한 예술을 접목해 오감을 자극하는 전시장을 꾸린 것. 실제로 숲을 구현한 듯한 인상적인 시노그래피가 마치 오아시 제냐에 방문한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생생해 몰입감을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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