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셔리> 2024년 6월호

미술 위를 달리는 기술

오늘날 자동차와 미술의 만남은 단순한 협업을 넘어섰다. 기술을 선도하는 자동차와 우리네 삶을 이야기하는 미술이 만들어낸 결과물은 동시대 문화를 보여주는 바로미터다.

EDITOR 박이현

LEXUS


‘조용한 자신감’, 렉서스를 설명할 때 늘 따라붙는 수식어다. 자동차 애호가라면, 스펙을 내세우지 않아 반신반의하던 렉서스에 올라타자마자 운전의 즐거움이 배가됐던 경험 한 번쯤 있을 테다. 속이 깊은 강일수록 흐름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다고 했던가. 렉서스의 예술 활동도 이와 비슷하다. 묵묵함 그 자체다. 세상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는 디자인을 발굴하는 ‘디자인 어워드’(2013~)와 장인 정신을 바탕으로 꾸준히 자신의 길을 걷는 국내 공예가들을 지원하는 ‘크리에이티브 마스터즈 어워드’(2017~)가 대표적인 사례. ‘밀라노 디자인 위크’도 빼놓을 수 없다. 약 20년 동안 렉서스는 수많은 예술가와 몰입감 넘치는 작업을 선보여왔다. 올해 밀라노 디자인 위크에선 소프트웨어와 에너지 혁신이 고객에게 어떤 경험을 제공하고, 럭셔리함과 탄소 중립이 어떻게 공존할 수 있는지를 고민하는 전시 <Time>



BENTLEY


벤틀리모터스코리아가 한국 고객을 대상으로 최초의 아티스트 협업 한정판 모델인 ‘컨티넨탈 GT 코리아 리미티드 에디션’을 출시했다. 이번 에디션은 한국 현대미술과 벤틀리의 전통적 아름다움을 결합해 뛰어난 예술적 감각을 지닌 럭셔리를 소개하려 기획한 한정판 모델. 뮬리너 비스포크의 매력을 한층 더 높인 존재는 우주의 무한한 질서를 형상화한 하태임 작가의 컬러 밴드다. 흥미로운 점은 컬러 밴드가 운전자 시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대시보드, 헤드레스트, 불스아이 에어 벤트에 새겨져 있다는 것. 컨티넨탈 GT 모델은 소음과 진동이 없는 뛰어난 주행 성능을 자랑하는데, 컬러 밴드를 보며 운전을 하다 보면, 가속페달을 밟는 찰나가 은하수를 만나러 가는 듯한 신비로움으로 다가온다.



PORSCHE


포르쉐의 문화 예술 사랑은 유별나다. 75년 넘게 건축, 게임, 미술, 영화, 패션 등 분야를 넘나들며 다양한 협업 결과물을 발표한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 우리나라에선 예체능 인재와 문화 소외 계층을 초청해 문화 예술 향유의 시간을 마련했고, 한국 전통 조각보를 모티프 삼은 그래픽디자인을 ‘따릉이’에 입혔다. 이러한 ‘포르쉐 두 드림’ 캠페인으로 인해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주최하는 ‘2021 올해의 예술후원인대상’을 받기도. “자신의 영감을 나누는 예술가들은 사회적 구조를 이루는 중요한 부분”이라는 포르쉐코리아 홀거 게르만 대표의 말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실제로 포르쉐 아트 카는 작금의 기술과 문화를 동시에 엿볼 수 있는 지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예로, 지난겨울 스코틀랜드 작가 크레이그 블랙은 자신의 시그너처 스타일인 ‘아크릴 퓨전 기법(손으로 아크릴 페인트를 여러 겹 붓는 방식)’을 활용해 ‘타이칸’을 보랏빛으로 탈바꿈했다. 작가의 아날로그 작업 방식은 무언가를 성취하기까지의 과정을 비유하는데, 이를 보고 있으니 포르쉐의 브랜드 정체성인 ‘꿈’이 떠올라 인상적이었다.



BMW


최근 아트페어에서 현대미술 작품을 꾸준히 선보이는 브랜드는 BMW다. 2023년엔 구지윤·빈우혁·정수정 등의 작품을 학습한 AI가 만든 애니메이션을 BMW ‘뉴 i5’에 투영했고, 2022년엔 인간중심적으로 빛과 소리를 인식하는 BMW ‘i7’ 기술에 영감을 얻은 라파엘 로자노 헤머가 눈에 인간의 심장박동을 가시화한 작품을 제작했다. 올해는 앨릭스 이스라엘이 주인공으로 선정됐다. ‘아트바젤 마이애미 비치’와 ‘아트바젤 홍콩’을 수놓은 그의 작품은 AI 기반의 참여형 인터랙티브 비디오 설치물 ‘REMEMBR’. 작업을 위해 개발한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사람들의 사진을 수집한 AI가 이를 선별해 편집한 일종의 추억 푸티지다. 영상이 상영되는 동안 현장에선 웃음소리가 들렸는데, 이는 예상하지 못한 장소에서 평소 잊고 있던 기억을 만난 몇몇 관객의 유쾌한 반응이었다. 한편, ‘REMEMBR’와 마찬가지로 BMW의 인공지능 역시 즐거움을 선사하고 있다. 인텔리전트 퍼스널 어시스턴트, 자율주행 등 체계적으로 발전 중인 운전자 서포트 기술이 이를 대변할 터. BMW의 AI 기술이 앞으로 얼마나 더 가까이 우리 삶에 녹아들지 기대되지 않는가. 이스라엘의 작품 속 AI가 사진을 큐레이팅한 것처럼 자동차가 운전자의 생각과 몸짓을 오롯이 이해하는 날도 얼마 남지 않아 보인다.

목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