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셔리> 2024년 5월호

MEET THE NEW KIND OF ART CITY

대만을 대표하는 새로운 아트페어로 입지를 굳혀온 ‘타이베이 당다이 아트 & 아이디어’가 5월에 5회째 행사를 연다. 페어를 이끌어온 디렉터 로빈 페컴과의 인터뷰.

GUEST EDITOR 박지혜

로빈 페컴  지난 15년간 중화권에서 큐레이터, 작가, 편집자, 아트페어 디렉터로서 일해왔다. 2014년부터 2018년까지는 미술 잡지 의 편집장으로 일했으며, 2015년에는 휴고 보스 아시아 아트 어워드의 심사위원으로 활동했다. 2018년부터 타이베이 당다이 아트 & 아이디어의 공동 디렉터로 일하고 있다.



한 도시의 속살을 제대로 만날 수 있는 기회를 꼽으라면, 단연 ‘아트페어’라고 말하고 싶다. 그 나라가 내세우는 당대 예술가들의 작품을 비롯해, 그 도시에 호기심을 품은 다국적 컬렉터와 갤러리스트들이 모여 뿜어내는 체감 가능한 열기가 바로 아트페어 현장에 있다. 홍콩과 싱가포르, 서울과 도쿄까지 아시아의 웬만한 아트페어를 섭렵했다면, 이제 타이베이를 주목할 차례다. 2019년 설립된 ‘타이베이 당다이 아트 & 아이디어’(이하 타이베이 당다이)는 아시아의 새로운 ‘아트 허브’의 역할을 자처하며, 대만이라는 나라의 문화 예술적 유산과 동시대 미술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수면 위로 끌어올리고 있다. 포스트 코로나 이후 열린 지난 4회째 행사에서는 90개 이상의 갤러리가 참가해 성황을 이뤘으며, 앤서니 곰리와 토비아스 레베르거, 김종학과 이배, 대만 작가 우메이치 등 아시아와 서양미술의 거장과 신진들의 대작과 신작들을 두루 만날 수 있었다. 5회째를 맞은 이번 페어는 5월 10일부터 12일까지 타이베이 난강 센터에서 진행된다. 올해는 데이비드 즈워너, 갈레리아 콘티누아, 페로탕 같은 세계적 갤러리를 비롯해, 중견 갤러리 부스인 ‘갤러리’ 섹션과 신진 작가를 선보이는 ‘에지Edge’ 섹션, 한 명의 아티스트를 집중해 선보이는 ‘인게이지Engage’ 섹션에 총 11개의 한국 갤러리가 참가할 예정. ‘타이베이 당다이’의 저력을 꼽자면, 그 설립자들의 면모를 빼놓을 수 없다. 2007년 홍콩 아트페어를 설립하고, 이를 ‘아트바젤’에 매각한 백전불패의 기획자 매그너스 렌프루Magnus Renfrew가 그 설립자이며, 중국 현대미술계의 태동과 생성을 지켜봐온 큐레이터 로빈 페컴이 공동 디렉터로 이 페어를 이끌고 있다. 특히 로빈 페컴은 오랜 세월 축적해온 아시아 미술계에 대한 통찰과 기획력으로, 타이베이의 문화 예술적 유산과 전 세계의 예술계를 잇는 가교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바로 지금, 타이베이의 중심에서 아시아의 새로운 예술 지형도를 만들어가고 있는 선구자, 로빈 페컴과 나눈 이야기.


큐레이터로서의 당신의 주요 경력이 대부분 중화권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중화권 미술계를 떠나지 않고 있는 이유는 뭔가? 당신을 이끄는 아시아 미술의 매력은 뭔가?

올해로 아시아에서 일한 지 20년째가 된다. 사실 나는 경력의 대부분을 베이징과 홍콩, 상하이 그리고 지금의 타이베이에서 보내왔다. 이곳에는 여전히 배울 것이 많다. 나는 이러한 도시들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여러 세대의 아티스트들과 함께 성장해왔고, 더 최근에는 서울, 도쿄, 방콕의 역사와 현장에 대해서도 많이 배우려 노력하고 있다. 이 지역은 엄청나게 많은 예술가와 문화적 이야기가 있는 풍부하고 밀도 높은 거대한 영토다. 나는 아트 신과 시스템 사이의 가교 역할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어떤 특정 지역으로 범위를 한정 짓고 싶지는 않다. 타이베이 당다이에서 우리는 대만에 대한 흥미를 증폭시키고, 더 넓은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선별해서 소개하는 일을 하고 있다.



제 5회 타이베이 당다이 아트 & 아이디어에 참가하는 조현 갤러리가 출품한 이배 작가의 작품.



당신은 기획자이자 아트 매거진 편집자로도 일해왔다. 사업적인 면보다 ‘큐레이토리얼’에 집중된 당신의 커리어가 페어의 대표로서 당신이 일하는 데 어떻게 활용되나?

‘타이베이 당다이 아트 & 아이디어’라는 명칭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는 처음부터 예술 그 자체와 예술가들이 관심 있어 하는 아이디어를 소개하는 것을 사명으로 삼고 있다. 아트페어는 미술계의 다양한 면모들을 한자리에 모으는 장치이며, 시장에서 컬렉터와 갤러리 간의 만남을 촉진하는 것이 핵심 미션이다. 하지만 여기엔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 예술이 세상에서 생명을 가지려면 작가, 큐레이터, 예술 애호가가 필요하며, 아트페어는 예술의 다양한 분야에서 일하는 우리 모두가 서로를 알아가고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장이다.


타이베이를 다음 목적지로 선택한 이유가 궁금하다. 타이베이의 매력은 뭔가?

5년 전 상하이에서 타이베이로 이주한 후, 대만에서 발견할 수 있는 컬렉팅의 유산에 매료되었다. 이는 중국에 있을 때 익숙하던 기업가적 수집 방식과는 매우 다른 것이었다. 올해 아이디어 포럼의 주제는 ‘문화로서의 수집’이며, 패널들은 이곳의 수집이 특별한 이유를 탐구할 것이다. 동시에 타이베이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친절하고 살기 좋은 도시이며, 도시와 하위문화가 만들어내는 에너지가 과소평가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5월 아트페어 기간에 시내에 위치한 푸본 미술관Fubon Art Museum이 개관할 예정이고, 타이베이 미술관Taipei Fine Arts Museum에서는 런던 왕립예술학교와 공동 기획으로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유명 아티스트 윌리엄 켄트리지의 대규모 개인전을 연다. 또한 타이완 컨템퍼러리 컬처Taiwan Contemporary Culture Lab(C-LAB)에서는 홍 재단Hong Foundation이 주최하는 대만 아티스트 무스키키 치잉Musquiqui Chihying의 개인전과 현지 음악 이벤트도 열린다. 페어 기간 때 타이베이를 찾으면, 이렇듯 대만 예술 신 전체의 힘을 확인할 수 있는 다양한 경험이 기다리고 있다.


지난해 페어 때 작품을 살펴보고 있는 관람객들.



기존의 다른 아트 시티와 새롭게 떠오르는 아트 시티인 타이베이의 차이점이 궁금하다. 타이베이 예술 시장의 분위기는 다른 도시와 어떻게 다른가.

우선, 나는 이 질문에 답변하기 앞서 지금은 아시아 전체가 흥미롭고 다양한 ‘컨템퍼러리 아트의 목적지’가 된 것을 축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시아의 대표적 도시들은 저마다 개성과 역사, 문화가 있고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세계적인 대도시이기도 하다. 그중 타이베이는 컬렉터가 주도하는 탄탄한 예술 생태계로 인해 뛰어난 박물관과 문화 기관, 갤러리, 개인 소장품을 갖추고 있다. 또한 아시아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비엔날레 중 하나인 ‘타이베이 비엔날레Taipei Biennial’가 열리는 도시이기도 하다. 타이베이는 다양한 지역 페어들이 예술 생태계를 지속해나가는 데 점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으며, 현 시점의 아시아 미술 시장에서 굉장히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타이베이의 분위기를 이야기하자면, 여느 도시들에 비해 덜 부산스럽고, 여유로우며, 장기적인 사고를 한다는 점을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이곳에서는 여느 아트 시티들에 비해 비교적 더 친근한 환대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올해의 페어를 위해 가장 야심 차게 기획한 프로그램이 있다면 소개를 부탁한다.

올해 페어에는 데이비드 즈워너, 에릭 파이어스톤 갤러리, 갈레리아 콘티누아, 페로탕, 린 & 린 갤러리, 티나 켕 갤러리 등 세계적 갤러리들이 참여한다. 타이베이 현지 예술 생태계에 합류하고자 하는 그들의 지속적인 관심을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다. 또 올해는 처음으로 타이베이 문화부와 공동으로 주최하는 기획 전시를 열게 되어 매우 기쁘게 생각한다. 이 전시에서는 ‘아이디어 포럼Ideas Forum 2024’에 참여했던 4명의 큐레이터가 선정한 대만의 중견 작가 12명의 작품에 초점을 맞출 예정이다. 페어에 참가하는 주요 갤러리뿐 아니라, 시장에 본격적으로 소개되지 않은 작가들까지, 대만 예술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국제적으로 소개하고자 하는 것이 우리의 목표다. 우리는 이렇듯 민간기관이나 공공기관과의 파트너십을 구축하고 활기찬 타이베이 예술의 모습을 지속적으로 보여주고자 한다.


대규모 설치미술 섹션인 ‘노드Node’에서 만나볼 수 있는 작품들을 미리 소개해준다면?

올해 노드는 장인 정신, 그리고 물질적 유산과 관련된 2개의 대형 조형 작품을 선보인다. 우선 교토의 유메코보우 갤러리 전시관에서는 아티스트 다나베 치쿤사이Tanabe Chikuunsai 4세가 일본의 전통 바구니 짜기 기법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설치 작품을 선보인다. 또 다른 전시관에서는 공간에서 시간의 흐름을 포착해 섬유 직조 기법으로 표현하는 줄리아 헝Julia Hung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두 작품 모두 이번 페어에서 놓쳐서는 안 될 작품이다.


해외 컬렉터들의 편의와 흥미로운 관람을 위해 제공하는 서비스나 프로그램이 있다면 소개를 부탁한다.

이번 페어에서 처음으로 ‘컬렉터를 위한 VIP 문화 투어 프로그램’을 선보인다. 아시아 미술사, 대만의 다양한 문화와 요리, 아름다운 현지 자연경관을 만끽할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타이베이·타이중·타이난·가오슝 4개 도시에서 미쉐린 스타를 받은 다이닝을 경험하고, 대만의 주요 역사 문화 랜드마크를 둘러보게 된다. 더불어 아시아 미술사에 중요한 족적을 남긴 예술가들의 스튜디오와 박물관, 사유지 등도 함께 방문한다. 이러한 경험을 통해 해외 컬렉터들이 대만 문화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기를 바란다.


한국의 갤러리들을 대신해서 묻고 싶다. ‘갤러리’ 섹션에 참가할 수 있는 요건이 궁금하다. 더불어 이 섹션에서 동양과 서양미술의 비율을 어느 정도로 유지하려고 하는지도 궁금하다.

우리 아트페어의 참가 신청은 공개 지원 절차를 통해 이루어진다. 참가자는 대만과 아시아 미술에 대한 헌신, 지역에서 입지를 입증한 국제 갤러리스트로 구성된 선정위원회의 심사를 통해 선정된다. 올해 한국에서는 조현갤러리, 갤러리 바톤, 가나아트, G갤러리, 에이라운지, 파운드리 서울, 서정 아트, 갤러리 SP, 아트 스페이스 3 등 11개 갤러리가 각기 다른 섹션으로 페어에 참여하게 돼 매우 기쁘게 생각한다. 우리 아트페어에는 물론 유럽과 미국의 갤러리도 참여하지만, 아시아 지역에 좀 더 중점을 두고 있다. 아시아를 여행하면서 방문했던 갤러리, 특히 한국과 일본의 젊은 갤러리들의 수준 높은 작품에 놀랐고, 이 카테고리에서 어떤 아트페어보다 흥미로운 갤러리들을 많이 소개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지난 4년간 페어를 개최하며 얻은 가장 큰 발전이나 성과는 무엇이라고 보나.

아트페어가 시작한 이래로 발전을 거듭하며 해외 방문객에게 타이베이를 소개하는 플랫폼으로 자리매김하는 것을 지켜보는 것은 매우 흥미진진한 일이었다. 우리는 전 세계에서 방문하는 큐레이터와 예술 애호가, 컬렉터들을 늘 환영해왔고, 일련의 토크 프로그램과 공개 프로그램을 기획해 그들이 대만의 문화 커뮤니티와 소통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왔다. 큐레이터나 작가, 예술 자문가들이 뉴스에서 타이베이 예술계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소개할 때 타이베이 예술이 글로벌 예술계에 한자리를 차지했음을 실감하며, 이를 위해 애써온 것이 자랑스럽게 느껴진다.


아시아의 수많은 도시가 아트 시티를 표방하며, 저마다 최고의 아트페어를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그 가운데서 타이베이 당다이가 결코 놓치고 싶지 않은 중요한 정체성과 목표가 있다면 뭔가?

나는 타이베이가 현지 문화와 역사에 뿌리를 둔 친근하고 친밀한 예술 도시라고 생각한다. 이곳은 도시의 높은 지대에서 하이킹을 하고, 천연 온천에서 피로를 풀고, 세계적인 수준의 중국 유물을 구경하고, 저녁 식사 자리에서 친구들과 예술과 정치에 대해 논쟁하고, 만다린 디스코의 테크노 리믹스에 맞춰 춤을 추며 밤을 마무리할 수 있는 곳이다. 이 모든 것의 가장 중요한 정체성을 꼽으라면 ‘뒤죽박죽’이라는 것이지만 분명히 사랑스러운 면모를 지니고 있다. 타이베이의 이 다양한 면을 세계와 공유하는 것이 우리의 목표다.


타이베이 난강 센터에 마련된 페어장 전경.



COOPERATION  타이베이 당다이 아트 & 아이디어(taipeidangda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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