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셔리> 2024년 5월호

향기 속의 시간

‘2024 베네치아 비엔날레’ 한국관 단독 작가로 선정된 구정아. 한국의 도시, 고향에 얽힌 향의 기억을 이야기하는 한국관 전시 <오도라마 시티>를 만나보자.

EDITOR 박이현

구정아의 작업은 난해하다. 마치 신비주의를 고수하는 듯 작가는 자신이 구축한 세상을 명징하게 묘사하지 않는다. 전시장에서 그에게 질문을 던져도 아리송한 대답 탓에 애가 타는 일이 잦다. 작품이라 불리는 가시적인 대상도 마찬가지다. 1990년대 후반부터 ‘그저 평범한 것은 없다Nothing is Merely Ordinary’라는 테제 아래, 나프탈렌·아스피린·자석 등 일상적이지만 오브제라 부르기엔 다소 난해한 사물을 작업 소재로 이용한 건 일부에 불과하다. 분명 얼마 전 작품엔 외계 생명체가 등장했는데(‘MYSTERIOUSSS’, 2017), 어느 날엔 반짝이는 별 풍경이 펼쳐지는 게(‘Seven Stars’, 2020) 의아하다. 심지어 전시장을 온통 분홍빛 공간이나(‘Dr. Vogt’, 2010), 스케이트 경기장으로 탈바꿈하기도(‘OTRO’, 2012). 이러한 생뚱맞은 상황을 마주할 때마다 구정아의 결과물에 물음표가 붙는 건 당연지사다.


불을 꺼야 보이는 별들이 가시적인 대상인지 아닌지를 질문하는 구정아의 ‘Seven Stars’(2020).


구정아의 작업은 난해하지 않다. 작가의 언어와 작품 속 다층적 레이어가 첫 만남을 어색하게 하지만, 찰나의 순간만 넘기면 새로운 차원에 도달하게 된다. 익숙한 것을 기묘한 무언가로 승화한 까닭에 현실과 현실 저 너머를 넘나드는 느낌이랄까. 이를 응축하는 단어는 ‘우스OUSSS’다. 1990년대 구정아가 창안한 우스는 이것이 됐다가 저것이 되기도 하고, 가상이었다가 실제가 되기도 하는 가변적이면서 우연한 개념이다. 이에 따라 작가 작품 안을 유영하는 관객은 눈앞의 것만 보는 1차원적인 시선에서 벗어나 비가시적인 영역을 탐험할 수 있다. 한마디로 열린 결말인 셈. 여기에 작년 PKM갤러리에서 열린 개인전 <공중부양>에 출품한 드로잉 이미지 ‘NOMOS Alpha’(2016)를 소개한 글을 덧붙이면, 구정아의 작품 속 “선잠이 들 때 어스름하게 떠오르는 듯한 형상들은 아이의 그림처럼 단순하게 그려졌지만, 이면에는 흐릿한 사실과 허구, 심리적인 충동과 명랑함 등의 복잡 미묘한 세계가 담겨 있다. 이처럼 매체를 넘어선 결과물은 상호작용하고 앙상블을 이루며 예측하지 못한 경험과 발전의 경이로움을 선사한다.”


“우스는 여전히 확립되지 않은 현재진행 중인 개념입니다. 접두사, 접미사 같은 수사학적 장치가 될 수도 있고요. 뿌리나 줄기 혹은 수수께끼같이 변형되는 움직임을 암시하며 내부에 있는 물질과 에너지를 나타내기도 하죠. 저는 ‘우스 세계’를 확장해나가며 물리적인 세계와 비물질적인 세계의 틈, 다시 말해 명확한 경계가 없는 곳으로 ‘경험의 또 다른 확장’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아이의 그림처럼 단순하게 그렸지만, 이면에는 흐릿한 사실과 허구, 심리적인 충동과 명랑함 등의 복잡 미묘한 세계가 담겨 있다.


우스에 관한 3D 필름의 스크립트가 된 드로잉 시리즈.


구정아의 생활 반경은 굉장히 넓다. 홈페이지에 “모든 곳에서 살고 일하는Lives & Works Everywhere”이라는 문구가 있을 정도다. 예술을 구심점 삼아 궤도마냥 각 도시를 돌아다니는 모양새다.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도 없다’라는 표현과 잘 어울린다. 더욱이 시차만큼 도시마다 관점 차이가 있어 언제나 육체적·정신적 비현실에 빠져 있을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명징함과 명확함이 발현하기 어려운, 어쩌면 크게 필요하지 않은 환경으로 보인다. 구정아 역시 긴긴 이동에서 예상되는 것들이 프로젝트에 영향을 준다고 설명한다. 올해 구정아는 서울, 말뫼, 바젤, 파리 등에서 활동이 계획되어 있다. 그중 미술계의 이목이 쏠리는 건 단연 ‘2024 베네치아 비엔날레’ 내 한국관 전시 <오도라마 시티>다. 그동안 본전시에 참여한 적은 있지만, 한국관 단독 작가로 선정된 건 이번이 처음. 공동 예술감독인 이설희 쿤스트할 오르후스 수석 큐레이터·야콥 파브리시우스Jacob Fabricius 아트 허브 코펜하겐 관장과 선보일 시너지에 기대가 쏟아지는 이유다. ‘오도라마’는 향기를 뜻하는 ‘odor’와 드라마drama의 ‘rama’를 결합한 단어다. <오도라마 시티>는 ‘한국의 도시, 고향에 얽힌 향의 기억’을 큰 줄기로 삼는다. 향(냄새)을 매개체로 한국의 드라마(이야기)를 써 내려가기 위해 전시팀은 2023년 6월 25일부터 9월 30일까지 향기에 관한 기억을 묻는 온라인 설문지를 한국 외교부와 재외 한국대사관, 한국계 입양인과 커뮤니티, 한인 학교 및 한국계 미국인 협회, 북한에서 태어나 남한에 사는 사람들, 북한 이탈 주민과 그들을 지원하는 재단 및 북한을 방문한 외국인, 서울 외신 기자 클럽 등에 전달한 다음, 답변을 정리했다. 흥미로운 점은 작가 구정아와 기획자 이설희 & 야콥 파브리시우스 역시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니는 인물이라는 것. 이들의 공통분모는 ‘2024 베네치아 비엔날레’ 주제인 ‘이방인은 어디에나 있다Stranieri Ovunque’와 일맥상통한다.


“한반도라는 지역에만 초점을 맞추진 않았습니다. 이방인은 흔한 개념이에요. 생각을 달리하면, 언제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 누구나 외국인, 이민자가 될 수 있죠. 프로젝트에서 관계를 맺은 이방인은 우리와 동떨어진 인물이 아닌, 한국의 자화상을 만드는 주체로 참가했습니다. 전 세계 도시가 촘촘히 이어져 있는 오늘날, 한국의 자화상을 그리는 일에 한국 도시로만 범주를 좁히는 건 현실과 거리가 있으니까요. <오도라마 시티> 는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과 함께했으며, 공동의 미래를 설계하고자 하는 염원을 담고 있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 이름 모를 분들의 수고가 작업에 녹아 있음을 강조하고 싶네요. 전시장에선 3개월간 수집한 600여 개의 정보 중 핵심 단어를 추려서 제작한 16개의 향과 1개의 커머셜 향수를 체험할 수 있을 거예요. 향(냄새)의 향연에서 시각적 상상을 해보길 바라요.” 이렇게 선정된 공중목욕탕 냄새, 매연 냄새, 온돌방 냄새, 옷장 속 나프탈렌 냄새 등은 한국관에서 디퓨저 조각, 뫼비우스 띠 형태로 부유하는 2개의 나무 설치 작품, 전시장 바닥에 새긴 무한대 기호를 통해 퍼질 예정이다. 기실 구정아는 ‘향의 선구자’다. 파리 스튜디오의 작은 옷장에 나프탈렌을 설치한 ‘스웨터의 옷장’(1996) 이래, 맨체스터에선 향수 엔지니어들과 협업했고(2007), 런던 채링 크로스 역 주빌리 라인 승강장에선 비눗물 향을 활용했다(2016). 향은 눈과 귀로 인식할 순 없지만, 코로 그 존재를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향을 맡는 순간, 시각이 작동하는 일을 한 번쯤 겪어봤을 테다. 이는 삶이라는 축적된 시간 속에 새겨진 기억과 기분을 소환해서가 아닐는지. 만약, 한국적 향을 맡은 많은 사람이 다양한 이야깃거리를 끄집어낸다면, 하나에 국한되지 않은 특별한 한국 지형도가 탄생하지 않을까.


야광 스케이트 경기장으로 탈바꿈한 공간. 빛이 어떻게 시공간으로 번져 나가는지 실험했다.


“향은 다른 매체보다 광범위한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습니다. 이미 존재하는 원료들로 보석이나 소프트웨어를 디자인하듯, 향은 정교하면서 즉흥적인 실험을 할 수 있죠. 더불어 비가시적인 향의 성질은 박애주의적이기도 하고요.” 여러 인류를 포용한다는 것, 문자를 읽는 것만으로도 멋지지 않은가. 불현듯 앞서 구정아가 언급한 ‘공동의 미래’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지 궁금해진다. 초연결 사회를 관통하는 지금, 내셔널리즘과 쇼비니즘은 어떻게 당위성을 획득하고 있는 것일까. 한국인의 정의는 절대 불변일까. 자유로이 떠다니는 향처럼 경계를 넘나드는 고민을 가능하게 하는 <오도라마 시티>는 ‘2024 베네치아 비엔날레’ 기간(4월 20일~11월 24일)에 만나볼 수 있다.



COOPERATION  PKM 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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