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셔리> 2024년 5월호

ONE STEP CLOSER #3

멘토와 멘티의 관계를 넘나들며 서로의 성장을 돕고, 긍정적 영향을 주고받는 사람들이 있다. 특별함을 내세우지 않아도, 눈빛만으로 서로의 마음을 읽는 사람들의 이야기.

EDITOR 이민정 PHOTOGRAPHER 김제원

함께 걸어가는 길 아나운서, 전종환 × 아나운서 오승훈



전종환이 입은 램스킨 블루종과 새틴 팬츠는 엠포리오 아르마니. 폴로 셔츠는 토즈.

오승훈이 입은 올리브 그린 컬러 오버 셔츠와 이너 셔츠, 리넨 팬츠 모두 제냐.



얼마 전 MBC 아나운서국은 ‘우리들의 읽는 밤-손석희를 읽는 밤’이란 주제로 낭독회를 개최했다. 낭독회는 전현직 아나운서들이 똘똘 뭉치는 계기가 되었다. 이 의미 있는 자리는 MBC 아나운서국의 유튜브 채널인 ‘뉴스안하니’를 통해 실시간 스트리밍됐다. 이 채널의 공동 기획자가 바로 전종환 아나운서와 그의 후배 오승훈 아나운서다. 공중파 방송의 무게가 줄어든 요즘, 정통적인 아나운서의 역할이 흐릿해져가고 있다. 이런 변화 속에서 MBC 아나운서라는 자부심 하나로 ‘진정한 언론인은 무엇일까’, ‘현재에 아나운서의 역할은 무엇일까’를 고민하며 둘은 외려 의기투합했다. 선배인 전종환 아나운서가 의문을 제기하면 후배인 오승훈 아나운서는 함께 해답을 찾으려고 노력한다. 둘의 상호 보완적인 케미스트리 덕분에 아나운서국은 여전히 ‘온에어’ 상태다.


오승훈 아나운서는 2011년에 방영한 MBC <신입사원>이란 공개 채용 프로그램을 통해 입사했습니다. 그때 전종환 아나운서가 실제 멘토로 참여했었죠. 벌써 10년도 넘은 이야기네요. (오승훈) 당시 선배들은 다 멋있어 보이고 크게 보였는데 종환 선배가 살갑게 다가와 챙겨줘서 정말 고마웠어요. 종환 선배가 부담스럽지 않게 적당히 친절한 조언도 해주고 미용실도 소개해줬어요. (전종환) 저희 조에 많은 후배가 있었는데 오승훈 아나운서가 제 후배로 들어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아나운서 준비생 특유의 전형성이 없고 맑아 보이는 모습이 좋아서 선배들께 이 친구를 뽑아야 한다고 강력 어필했죠. 그런데 막상 아나운서국에 들어온 후로는 저는 기자로 전환하고 이 친구도 아나운서국을 비운 적이 많은 터라 물리적으로 함께한 시간은 길지 않아요.



“종환 선배는 현실적이면서도 이상주의자라 제가 추구하는 부분을 많이 갖춘 사람이에요.

그래서 늘 곁에 두고 닮고 싶어요.” _ 오승훈


“승훈 씨가 갇혀 있다고 이야기했지만 그건 사실 올곧음의 다른 표현이기도 하거든요.

40대 중반을 향하는데 그러기가 쉽지 않잖아요. 대부분 현실에 타협하는데,

승훈 씨는 제가 본 사람 중에서 가장 자기만의 기준을 확고하게 세우고 지키려 노력하는 사람이에요.” _ 전종환



오승훈이 입은 라이트 베이지 컬러 재킷과 이너 니트 모두 제냐. 전종환이 입은 파스텔 그린 컬러 재킷은 토즈.


당시 멘토와 멘티로 만나서 지금까지 이어져왔네요. 서로 어떤 영향을 주고받는지 궁금해요.
(오승훈) 저는 딱히 다른 사람에게 기대고 싶어 하지 않고, 누가 나한테 기대는 것도 안 좋아해요. 조언을 듣기보단 내가 하는 판단이 옳다고 생각하죠. 한마디로 ‘독고다이’ 같은 스타일이에요. 그런데 종환 선배만큼은 예외예요. 경계하는 성향 때문에 틀에 갇힐 수 있는 저를 항상 해제시켜줘요. 능수능란한 언변으로 제 마음을 열게 하고 항상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어주죠. 그래서 일뿐만 아니라 삶의 전반적인 부분에서 많은 조언을 받습니다. (전종환) 제가 정말 훌륭한 사람을 만들었네요.(웃음) 승훈 씨는 장점이 확실한 친구라 제가 많은 걸 조언한다기보다 균형을 잡는 데 도움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전형적인 아나운서 느낌이 없기에 신선하면서도, 또 이 업계에 잘 스며드는 것도 중요하기 때문에 그런 면에서 신입 때는 잔소리를 하기도 했었죠. 지금은 외려 제가 오 아나운서를 찾을 때도 있어요. 저 같은 사람은 물에 물 탄 듯 술에 술 탄 듯 흘러가는 성향이라 기준과 판단이 흐려질 위험이 있거든요. 올바름에 대한 기준은 항상 승훈 씨한테 묻는 것 같아요. 아닐 땐 아니라고 강직하게 말해주기도 하고, 주어진 틀 안에서 최선이 뭘까 함께 고민하기도 하고요.

오승훈 아나운서의 이력이 특이하잖아요. 카이스트를 졸업한 뒤 아나운서가 되고, 또 그런 다음 법 공부를 해서 변호사 자격증을 취득하셨죠. 이런 중요한 결정에서도 전 아나운서에게 조언을 구했나요?
(오승훈) 대부분의 중요한 결정을 앞두고 꼭 한 번은 선배를 찾았던 것 같아요. 휴직하고 법 공부를 하기 전에도 물어봤고요. 한번은 종환 선배가 공부를 계속 이어가는 것보다 잠깐 끊고서라도 회사로 돌아오는 게 좋겠다고 했어요. 그때는 앞뒤 재지 않고 방송국으로 돌아갔죠. 다 이유가 있을 거라 생각했거든요. 저런 단호한 말 뒤에는 엄청난 고민이 있었을 것이고 그런 다음에 내뱉는 말이란 걸 종환 선배와 진지한 대화를 해본 사람이라면 알 거예요. (전종환) 당시 승훈 씨가 연차는 쌓이고 방송 경력은 멈춰 있는 상태라 그 시점에서는 복귀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방송은 어느 정도 몸으로 배워가는 시간이 필요하거든요. 그래서 언젠가 이런 것들이 쌓였을 때 승훈 씨가 방송에 한 획을 긋는 프로그램을 맡지 않을까 싶어요. 아나운서를 잘하고 싶다고 변호사 시험을 보는 사람이 어디 흔한가요.(웃음)

전종환 아나운서가 진행한 의 바통을 작년에 오승훈 아나운서가 이어받았죠. 감회가 남다를 것 같아요.
(전종환) 의 진행자로서 갖춰야 할 윤리적 태도나 시대정신보다 옷에 대해 조언했어요.(웃음) 저는 슈트를 입고 타이를 맸는데 승훈 씨는 셔츠를 입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식으로요. 이런 게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진행자로서는 고민될 수밖에 없는 세세한 부분이거든요. (오승훈) 선배의 존재가 많은 도움이 됩니다. 매주 토요일 회의를 하는데, 답답하거나 조언이 필요할 때는 그래서 늘 종환 선배를 찾죠.(웃음)

유튜브 채널 <뉴스안하니>를 비롯해 낭독회 등 MBC 아나운서를 브랜딩하는 일을 함께하고 있는데, 어떠세요?
(전종환) 저희 둘의 관계가 끈끈하게 이어질 수 있는 데는 둘 다 이 업을 소중히 여긴다는 공통점이 있어요. 그래서 우리가 속한 이 조직을 어떻게 해야 조금 더 멋있게, 이 시대에 맞게끔 디자인해 가는 것이 직업적으로 큰 과제라고 생각해요. 누가 시켜서 하는 것도 아니고요. 이런 가치가 승훈 씨와 잘 맞아요. (오승훈) 저도 선배와 마찬가지예요. MBC 아나운서라는 것에 자부심을 느끼고, 선배들이 닦아둔 MBC 아나운서의 이미지를 닮고 싶고, 또 이런 정체성을 후배들한테 전하고 싶어요. 제가 살가운 선배는 아니지만 후배들이 아나운서로서 정체성에 대해 고민할 때 본보기가 될 수 있는 선배라면 좋겠어요. 굳건히 제자리를 지키고 있으면 좋은 교본이 되지 않을까요?

이제는 멘토와 멘티의 관계를 넘어선 것 같은데요.
(전종환) 맞아요. 멘토와 멘티로 만났지만, 이제는 같은 시대를 사는 동년배죠. 제가 정말 힘들고 고통스러울 때 승훈 씨를 찾을 거 같아요. 위로도 받고 대화를 통해 생각을 정리할 수도 있고요. 사실 이제 그런 사람이 많이 없거든요. 친한 친구 이상으로 폭넓은 대화를 할 수 있죠. 이제는 거의 전우 같아요.(웃음) (오승훈) 둘 다 가치를 두는 게 비슷해요. 아나운서국을 사랑하고, 언론에 대해 고민하고, 또 가족을 생각하고…. 시간과 애정을 쏟는 부분이 거의 일치하는 편이죠. 그래서 거대 담론부터 아나운서국의 시시콜콜한 이야기, 아내한테 무슨 선물을 할지도 종환 선배와 논의해요.

마지막으로 서로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전종환) 마음에 수많은 번뇌가 있을 수 있지만 가다 보면 없던 길도 만들 수 있을 거라고 말하고 싶네요. (오승훈) 늘 지금처럼만 계셔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저뿐만 아니라 많은 후배의 바람일 거예요.


STYLIST 현국선 HAIR 이영재 MAKEUP 김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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