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0월호

이야기라는 창구, 강화길

강화길은 스스로를 느린 사람이라 말하지만, 그는 그저 상황과 감정을 오래도록 머금고 곱씹을 뿐이다. 이야기를 통해 자칫 흘려버릴 수 있는 것에 보다 깊은 층위를 부여하며 사람과 세상을 받아들이는 그가 신작 <풀업>을 출간했다.

EDITOR 이호준 PHOTOGRAPHER 이우경

소설집 <괜찮은 사람>, <화이트 호스>, 장편소설 <다른 사람>과 <대불호텔의 유령>, 중편소설 <다정한 유전> 등을 펴냈다. 2020 젊은작가상 대상을 비롯해 한겨레 문학상, 이상문학상 등 주요 문학상을 휩쓴 그는 지금 명실상부 한국 문단을 이끄는 작가 중 하나다.



이 시대의 여성을 조명하는 서사를 써내는 한편, 서스펜스적 스토리와 고딕 스릴러적 구성으로 많은 팬층을 쌓아온 강화길 작가. 단편부터 <대불호텔의 유령>, <다정한 유전>등의 중·장편에 이르기까지 활발한 작품 활동을 해온 그가 올해 2 가지 신작과 함께 독자에게 찾아왔다. 작가의 소설 속 자주 등장하는 가상 도시 ‘안진’과 모녀의 이야기를 다루는 소설집 <안진 : 세 번의 봄> 그리고 출간한 지 채 한 달밖에 안 된 장편소설 <풀업>을 연이어 선보이며 숨가쁜 한 해를 보내는 강화길 작가를 양재에 위치한 한 서재에서 만났다.

올해 단편소설집 <안진 : 세 번의 봄>에 이어 8월 말에 장편소설 <풀업>까지 출간했어요.

찾아주시는 분들이 많다는 게 그저 감사하죠. 두 소설 다 모녀의 이야기를 다룬다는 점에서 연속성이 있다고 느껴질지도 모르겠어요.


여성 서사, 고딕 스릴러적인 분위기, 가상의 도시 안진. 미움과 악의, 혐오 같은 감정, 모호한 결말 등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연속적인 요소를 두고 팬들은 ‘강화길의 조각들’이라고 표현하더군요.

소설을 읽고 일종의 코드를 발견해주신 것이니 그 자체만으로도 좋았어요. 제 소설이 어떻게 읽히는지, 고딕 스릴러처럼 제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요소와 독자들이 좋아하는 영역이 어떻게 상응하는지 체감하기도 했고요.


전작 <대불호텔의 유령>을 비롯해 가족 서사에 주목해오고 있다는 점 또한 흥미로운 부분입니다. 두 신작 또한 모녀의 이야기를 다루는 가족 서사예요. 전작과 차이를 둔 부분이 있다면요?

‘막연한 공포’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 싶었어요. 이번에는 가장 일상적인 공간과 가까운 사람들에게서 느끼는 공포와 괴로운 감정이 무엇일지를 조금 생각해봤던 것 같아요. 가족은 가장 쉽고 편안하면서도 동시에 가장 어려운 존재이기도 하잖아요. 이러한 생각에서 출발한 가족 서사를 그리고 싶었습니다. 다만 <풀업>에서는 서사적인 기승전결을 보다 뚜렷하게 설정했던 것 같아요. 주인공 격 인물인 지수가 ‘운동’이라는 신체 행위를 거듭하며 가족으로부터 독립의 의지를 키우는 비교적 명확한 결말을 구성했어요. 모호한 결말의 전작들과는 다른 지점이죠. 1인칭 시점으로 서술하던 방법 대신 3인칭 시점을 도입했다는 점에서도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캐릭터에 많이 몰입하시는 편인가요?

이전에 비해 몰입을 덜 하는 편이에요. 1인칭 시점으로 소설을 쓰다 보니 몰입하지 않으면 소설을 쓰기도 힘들었고요. 제가 만든 캐릭터지만, 어쨌든 명확히 저와는 다른 사람이잖아요. 하지만 <풀업>은 오히려 거리를 두고 바라보는 입장이다 보니 여러모로 생각할 여지가 많았던 것 같아요.


처음 소설을 써야겠다고 생각한 계기가 있었나요?

사실 생각은 잘 안 나요. 어렸을 때부터 책 읽는 걸 굉장히 좋아하는 아이였다는 것 빼고요. 그런 애들 있잖아요? 반에서 혼자 놀면서 책만 보는.(웃음) 특히 이야기가 있는 책을 좋아했죠. 글을 쓰고 싶다고 생각한 것도 주변에 늘 책이 있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아요. 만약 제가 직접적으로 느끼고 경험할 수 있는 다른 직업이 있었다면 소설을 쓰지 않았을 것 같기도 해요.


작가님께 ‘이야기’란 무엇이며 이야기를 쓰고 읽는 행위란 과연 어떤 의미인가요?

저는 소위 눈치가 빠르다거나 상황 파악에 능한 사람은 아니에요. 머리 대신 감각으로 상황을 파악하는 사람도 아니고요. 그렇지만 감정에 둔하거나 상황을 그저 흘려버리는 사람은 아니에요. 다만 머금고 있는 거죠. 그저 고립된 사람으로 남겨질 수 있었던 제가 사람들, 그리고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창구가 바로 이야기였던 것 같아요. 머물러 있던 일련의 감정이나 상황을 곱씹은 다음 이야기로 구상하고 단어와 문장으로 구현하면서 비로소 이해하는 과정을 거치는 거죠. 이야기를 읽는 행위도 흡사한 것 같아요. 사람과 세상의 다양한 이야기를 읽는 과정을 거치며 다채로운 층위의 삶과 감각을 체화하는 과정인 셈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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