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셔리> 2023년 10월호

MODERN WEAVING

고전적인 뜨개질에 현대적 미감과 첨단 기술을 더해 독창적인 예술 작품을 만들어내는 작가들이 있다. 날실과 씨실의 직조로 구현한 모던 위빙의 세계 속으로.

EDITOR 김수진


ALEXANDRA KEHAYOGLOU

아르헨티나 출신의 텍스타일 아티스트 알렉산드라 케하요글로우는 기후변화를 주제로 한 거대한 스케일의 카펫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1920년대부터 카펫 제작업체 엘 에스파르타노El Espartano를 운영해온 가족의 영향을 받은 그는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위치한 공장 한편에 작업장을 마련해 독창적인 형태의 러그를 제작해왔다. 카펫을 만들고 남은 실 조각이 작업의 주된 소재. 길고 짧은 색색의 실을 직조해 나무, 이끼, 수풀, 물 같은 자연의 질감을 사실적이고 입체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특징이다. 작가가 특히 주목받는 이유는 자연을 단순히 재현하는 것 이상으로 철저한 사전 조사와 연구를 통해 지역의 환경문제에 접근하고, 그에 따른 해석과 메시지를 대형 태피스트리로 구현하기 때문. 그리스 키클라데스제도의 밀로스섬에서 일어나고 있는 지질학적 현상의 변형 과정을 담아낸 ‘Meadow’, 무분별한 개발로 습지 생태계가 위협받고 있는 아르헨티나 파라나 습지의 모습을 마치 항공 샷처럼 상세히 표현한 ‘Paraná de las Palmas River’ 같은 대표작을 통해 작가의 작업 세계를 확인할 수 있다. 10월 15일까지 ‘사물의 지도’를 주제로 열리는 청주공예비엔날레에서 그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alexandrakehayoglou.com



OONA BRANGAM-SNELL

올해 키아프 서울이 새롭게 선보인 섹션 ‘키아프 하이라이트’는 국내외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작가를 지원하는 프로그램. 각 갤러리의 추천 작가를 기반으로 심사를 거쳐 20명의 아티스트를 선정했다. 미국 아티스트 오오나 브렌엄 스넬은 그중 한 명. 저평가되거나 새롭게 떠오르는 작가를 주로 소개해온 뉴욕 퀸스의 미세스Mrs. 갤러리가 주목한 아티스트로, 기묘한 디테일이 시선을 붙드는 5점의 작품을 부스에 걸었다. 로드아일랜드 디자인 스쿨을 졸업하고 세계적 직물 회사 마하람Maharam의 수석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는 작가는 고전적 텍스타일 작업을 계승하면서 우화적 상징과 현대적 도상을 접목하는 방식으로 차별화된 작업을 펼치고 있다. 초현실적이고 위트 넘치는 구성, 한 편의 동화를 보는 듯한 치밀한 스토리텔링이 강점. “신화, 민속예술, 만화 등에서 차용한 익숙한 이미지에 상상을 더해 제한된 화면 안에 새로운 스토리를 담아낸다. 산업용 자카르 퀄팅과 수작업 자수를 결합해 작업하는 편이다. 익숙한 것과 새로운 것이 만나 일어나는 예기치 못한 긴장감과 시너지를 표현하고자 한다.” 작가의 말이다. 10월 마이애미의 프라이머리Primary 갤러리에서 개인전 를 개최한다. oonabrangam-snell.com



SARAH ZAPATA

뉴욕 브루클린 레드 훅Red Hook 지역에 거주하며 작업을 이어온 페루계 미국인 텍스타일 아티스트 세라 자파타. 위빙, 코일링, 래치 훅 기술 등 전통적인 패브릭 제작 기법을 두루 활용해 현대적이고 추상화된 패브릭 작품을 구현한다. 평면 작업은 물론 공간의 건축적 요소와 관람객의 동선을 고려한 대규모 몰입형 설치 작품을 선보이는 것이 특징. 전시장 내에 여러 개의 높은 기둥을 세운 뒤 외관을 색색의 실로 뒤덮거나, 바닥과 벽면은 물론 천장까지 설치를 확장해 공간의 분위기를 반전시킨다. 페루의 유산과 페미니스트 이론에 기반을 둔 작가의 작품은 노동, 권력 및 통제 시스템, 퀴어성, 문화상대주의, 정체성의 상호 교차성 등에 대한 문제를 두루 다룬다. 뉴욕에 거주하는 텍사스인이자 기독교인으로 자란 퀴어 아티스트, 공예 매체에서 일하며 고대 문화를 탐구하는 현대미술 작가, 페루 조상을 둔 미국인인 자신의 정체성과 그 사이에서 일어나는 긴장과 사유를 작업의 주제로 삼는 것. “직물은 시간과 무역의 산물이기도 하지만, 한 사람의 존재를 보여주는 아름다운 지표라고 생각한다”라는 작가는 실을 직조하고 천을 이어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고, 수많은 다양성을 탐구해나가고 있다. sarah-zapata.com



RACHEL SCOTT

세계적인 갤러리 하우저 & 워스가 주목한 위빙 아티스트 래이철 스콧. 1959년부터 1964년까지 로열 칼리지 오브 아트에서 회화를 공부한 그는 1960년대 중반, 영국의 혁신적인 미술가 집단인 런던 그룹의 멤버로 활약했지만 이후 화가로서의 활동을 멈추고 1976년부터 위빙 작업을 시작했다. “계단 카펫이 낡아 새로 만들어야 했는데, 가까운 지인이 웨일스 양모가 내구성이 좋다며 추천했다. 런던 북부의 핸드위버 스튜디오에서 태피스트리 직조 과정을 수강했고, 남동생이 거주하던 서머싯 지역의 농부가 블랙 웨일스 양떼를 키우고 있어 몇 마리 구입했다. 이후 양모를 주된 소재로 한 위빙 작업을 계속해왔다.” 약 45년간 천연 양모를 사용한 핸드메이드 작업을 꾸준히 이어온 작가는 직선을 다채롭게 변주한 기하학적 패턴을 주로 디자인한다. 양모의 다채로운 질감과 컬러를 자유자재로 조합해 현대적이고 감각적인 형태를 구현하는 것. “나는 러그가 유용하고, 잘 밟히며, 매우 견고하고, 세탁하기 쉽다는 사실을 좋아한다. 1970년대 후반과 1980년대에 제작한 작품이 여전히 거실과 계단에 자리하고 있다.” 작가는 런던에 거주하며 아침에는 직물을 짜고, 저녁에는 실을 꿰며 1년에 약 20~30개의 러그를 만들고 있다. rachelsrugs.com



MINGYES

실을 자유자재로 꿰고 엮어 잔디, 이끼, 수풀 같은 식물 오브제를 만들어내는 유민예 작가. ‘밍예스’라는 작가명으로 활동하는 그는 “식물과 예술의 경계에 있는 위빙 아트로 초록이 주는 에너지를 갈망하는 회색 도시에 작은 정원을 끌어들인다”라는 모토를 기반으로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발랄하고 위트 넘치는 텍스타일의 매력에 빠져 섬유 오브제를 제안하는 작업을 시작한 작가는 실의 물성과 촉감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주제로 ‘식물’에 주목했다. 특히 선태식물에 속하는 이끼에 집중해 작은 오브제부터 햇빛을 향해 성장하는 거대한 줄기 같은 대형 설치 작업까지 다채로운 스케일의 작업을 전개하고 있다. 빛을 향해 성장하는 식물의 균형 잡기를 보여주는 ‘군락Association’, 이끼의 크기 및 형태의 변화를 표현해 주변 환경에 따라 끊임없이 적응하고 성장하는 식물의 모습을 담은 ‘모스 시리즈Moss Series’ 등이 대표작. 식물관 PH, 이구성수, PHYPS 등에서 협업 전시를 열었으며, 북서울미술관의 유휴 공간을 살리는 ‘라운지 프로젝트’에 참여했고 올해 6월에는 서정아트 부산에서 풀림 작가와 함께 2인전을 열었다. instagram.com/mingyes_project



KAYLA MATTES

미국 LA를 기반으로 실을 직조해 현대사회의 단면을 포착한 위트 넘치는 태피스트리를 제작하고 있는 파이버fiber 아티스트 카일라 매츠. “나는 태피스트리 위빙의 내러티브와 여성성, 기술적 역사와 그것이 지금 시대의 다양한 요소를 아카이브하는 능력에 관심이 많다. 각각의 짜인 실을 통해 매 순간 엄청난 속도로 피드를 통해 쏟아지는 스크린 속 찰나의 순간을 포착한다. 밈이 작동하듯 유머 역시 내 작업에서 큰 부분인데, 코미디와 비극이 디지털 및 물리적 요소와 함께 교차하며 농담과 사회적 논평의 역할을 하는 동시에 형식적 아이콘이자 묵직한 예술 작품으로 기능하기 때문이다.” 작가의 설명이다. 온라인상에 떠도는 이미지나 SNS 피드에서 포착한 순간을 엮은 그의 작품은 감각적이고 트렌디하면서도 결코 가볍지 않은 메시지를 담고 있어 아트 신의 주목을 받고 있다. 올해 LA 찰스 제임스 갤러리, 바르셀로나 스튜디오 M41, 포틀랜드 조던 슈니처 뮤지엄, 베이징 아시아 아트센터 등에서 그룹전을 가졌고 내년에는 마드리드 바드르 엘 훈디Badr El Jundi 갤러리, 이스트 랜싱 보드 아트 뮤지엄에서 개인전이 예정되어 있다. kaylamatt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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