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셔리> 2023년 10월호

전통 공예의 미래

샤넬이 재단법인 예올과 손잡고 두 번째 ‘예올×샤넬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올해는 디자이너 양태오가 총괄 기획을 맡아 <우보만리 : 순백을 향한 오랜 걸음> 전시를 함께 선보였다.

EDITOR 윤정은

2023 올해의 장인, 한기덕  경기도 무형문화재 제29호, 화각장 전승교육사. 고故 한춘섭 경기도 무형문화재 제29호 화각장의 아들로 태어났다. 한때 공학도의 길을 꿈꿨으나 아버지의 권유로 화각 작업을 시작했다. 현재 경기도 성남시에서 공방과 상설 전시장을 운영하며, 화각닷컴(hwagak.com)이라는 웹사이트를 통해 화각 공예에 대한 정보를 공유한다.


2023 올해의 젊은 공예인, 김동준  도자 공예가. 1981년 경북 영주 출생으로 계명대학교에서 공예 디자인을 전공하고, 2007년부터 약 4년간 조선 시대 관요 백자를 제작했던 경기도 광주시에서 도제식으로 도자를 공부했다. 오랜 시간 탐구해온 시각적, 감성적 미학을 조선백자에서 찾았고, 그 이상적 미학을 작업에 담아내고 있다.



쿠튀르의 가치는 공예와 장인 정신에서 기인한다. 샤넬은 이러한 뿌리를 기업 철학으로 삼고 세계 곳곳에서 전통 공예와 장인 정신을 계승하는 일에 앞장서 왔다. 국내에서는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예올×샤넬 프로젝트’다. 재단법인 예올은 우리 문화유산을 아끼고 전통 공예의 가치를 올바르게 성찰하고자 탄생한 비영리 재단으로, 지난해 샤넬과 5년간의 파트너십을 맺었다. 해마다 ‘올해의 장인’과 ‘올해의 젊은 공예인’을 선정해 후원하며, 전시를 통해 공예의 가치를 알리고 확장을 모색한다.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로 진행한 이번 프로젝트에는 특별히 총괄 디렉팅 및 작품 협업을 위해 양태오 디자이너가 합류했다. 전시 제목에는 ‘우보만리牛步萬里’라는 사자성어를 붙였다. 우직한 소처럼 천천히 만 리를 걸어 끝까지 인내하고 노력하면 결국 그 뜻을 이룬다는 의미다. 양태오 디자이너는 2023년 올해의 장인과 젊은 공예인의 작업이 이러한 우보만리의 자세를 상기시킨다고 말한다. “현대의 빠른 변화와 끊임없는 경쟁 속에서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할 소중한 가치들에 대해 생각할 여유를 갖기 어렵습니다. 이러한 현실에서도 공예는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가며, 세상의 흐름에서 한 반짝 물러선 채 잊혀가는 가치들을 우리에게 전달합니다.”

소의 성장 과정에서 만들어진 자연스러운 문양을 살린 화각 갓 조명.
전통 화각 작업에서는 각지가 그림의 배경으로 사용되었기 때문에 얼룩이나 문양이 있는 부분은 버려지곤 했다.

여러 가지 수공예 기법을 활용한 한기덕 화각장의 뚜껑과 김동준 도예가의 백자 합.


2023 올해의 장인으로 선정된 인물은 화각장 한기덕이다. 아버지인 경기도 무형문화재 제29호 화각장 고故 한춘섭 선생의 자제로, 아버지의 뒤를 이어 조선 시대의 왕실 공예인 화각 공예의 맥을 잇고 있다. 화각華角은 오직 우리나라에서만 발달한 고유의 전통적 공예 기법 중 하나다. 소의 두꺼운 뿔을 펴낸 후 갈고 또 갈아 마치 백지처럼 얇고 순수한 각지를 얻어낸 다음, 그 위에 도안을 그리고 채색해 가구 또는 소품을 제작하는데 활용한다. 재료가 모두 천연 소재이기 때문에 온도나 습도 등에 민감하며 제작하기도 까다롭다. 또한 쇠뿔 중에서도 오직 황소의 뿔만 사용하는데, 그 때문에 재료 수급에도 어려움이 많다. 과거 신라 시대부터 조선 시대까지는 이 귀한 재료의 사용을 계급에 따라 제한했고, 이 때문에 화각 공예 역시 왕족과 일부 귀족만 즐기는 고급 문화로 자리 잡았다. 이번 전시는 이러한 화각 공예를 보다 친근하게 소개하고 그 가능성을 확장하는 데 주안점을 뒀다. 무엇보다 주목할 만한 점은 작업의 방식이다. 화각은 본디 장식성이 두드러진 공예다. 얇게 가공한 쇠뿔은 도안을 그리기 위한 빈 종이의 역할을 담당했고, 그 위에 오방색 같은 화려한 색채가 더해져 화각의 미학을 드러내왔다. 하지만 이번 프로젝트를 위해 한기덕 화각장은 색과 그림을 배제하는 과감한 시도를 했다. 각지 자체가 가진 소재 본연의 색상과 질감의 아름다움에 주목해 새로운 스타일의 화각 작품을 선보인 것. 결과물은 가히 ‘화각의 재발견’이라 할 만큼 독특하고 경이롭다. 소의 성장 과정에서 형성된 얼룩이나 문양을 그대로 살리고, 옻칠을 통해 본연의 톤에 채도를 더한 각지 조각들은 서로 쌓이고 세워지고 말리고 오려져 다양한 형태의 오브제로 재탄생했다. 2023 올해의 젊은 공예인에 이름을 올린 김동준 작가는 백자白磁를 빚는다. 오랜 역사를 지닌 도자 공예 중에서도 백자는 특히 도자기의 색과 장식성을 덜어내고 본질적인 아름다움을 탐구하는 분야다. 김동준 작가는 2007년 권대섭 도자 작가의 전시를 보고 문하생이 되어 4년간 도공으로서 철저한 수련을 거쳤다. 매년 꾸준히 질 좋은 백토와 나무를 확보하고, 고유의 유약을 만들며, 소나무를 사용한 전통 장작 가마에서 소성해 완성도 높은 관요 백자를 만들어낸다. 한동안 달항아리 작품을 많이 선보였으나 이번 전시에서는 기본에 충실하며 그릇다운 그릇에 집중했다. “초심으로 돌아가 기본에 충실한 그릇을 만들고자 했습니다. 지난 3년 동안 중단했던 소품 작업을 다시 시작하면서 좋은 작업이란 무엇인지, 진정성에 대해 고민했습니다”라고 작가는 설명했다. 화각과 백자는 제작 과정이나 표현 방식 면에서 서로 다른 특성을 지녔다. 하지만 본질을 탐구하는 정신이나 완성을 향해 정진하는 인내의 과정은 닮았다. 이번 전시에서는 두 공예가의 개인 작품은 물론 협업한 작품들도 선보여 더욱 의미가 있었다. 재단법인 예올의 김영명 이사장은 “이번 전시를 통해 장인들의 결실을 선보이게 되어 감격스럽다”라며, “소중한 전통과 아름다움이 모두의 일상에서 빛나는 그날까지 한국 공예를 꾸준히 아끼고 지켜내겠습니다”라는 소감을 전했다.


조선백자 고유의 단아하고 절제된 매력이 돋보이는 김동준 도예가의 작품들.
대표작인 달항아리는 물론 합과 그릇 같은 다양한 소품으로 전시를 구성했다.


COOPERATION  샤넬(080-805-9628, chanel.com), sponsored by chan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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