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셔리> 2023년 10월호

희망을 전하는 슈퍼 히어로, 에드거 플랜스

마스크를 쓰고 망토를 두른 귀여운 영웅 캐릭터로 가득한 캔버스. 스페인 작가 에드거 플랜스는 이들을 통해 사회의 어두운 이면을 꿰뚫고, 용기와 희망을 이야기한다.

EDITOR 김수진 PHOTOGRAPHER 이경옥

에드거 플랜스  스페인 출신의 팝아티스트. 장 미셸 바스키아, 키스 해링 등 낙서를 예술의 경지로 이끈 아티스트로부터 영감을 받아 독학으로 스트리트 아트 기반의 독자적인 작업 세계를 구축했다. 동물 영웅 캐릭터인 ‘애니멀 히어로즈’를 주인공 삼아 전쟁, 기후변화, 아동 학대, 인종차별 등 묵직한 사회적 이슈를 다룬다. 2021년 알민 레시 갤러리 브뤼셀, 2023년 쑤저우 현대미술관 등에서 대규모 전시를 하며 스타 작가로 거듭났고, 최근 자신의 경매 기록을 여러 차례 경신하며 화제를 모으고 있다.



‘귀여움’으로 세상을 구원하려는 작가가 있다. 스페인 출신의 아티스트 에드거 플랜스. 그가 창조한 캔버스 속 세상에는 색색의 망토와 마스크를 쓴 작고 귀여운 동물 영웅이 가득하다. 이들은 구름을 탄 채 하늘을 날고, 높은 산을 단숨에 오르는가 하면, 호기심 가득한 모습으로 세계를 누비며 기후변화, 인종차별, 아동 학대, 전쟁 등으로 피폐해진 지구를 되돌리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에드거 플랜스는 세계 아트 신에서 지금 가장 주목받는 팝아티스트 중 한 명이다. 10대 시절, 장 미셸 바스키아와 키스 해링을 ‘영웅’ 삼아 스트리트 아트를 기반으로 한 작업을 시작한 작가는 아케이드 세계관과 TV 시리즈 등에서 모티프를 얻어 분신과도 같은 애니멀 히어로즈 캐릭터를 창조했고, 지금까지 독창적인 작업 세계를 이어오고 있다. 마주하는 순간 미소 짓게 하는 깜찍한 캐릭터와 밝고 다채로운 색감 이면에 지금 우리가 직면한 사회적 이슈들을 담아내는 것이 특징. 만화 캐릭터를 닮은 유쾌하고 친근한 이미지를 통해 심오한 주제 의식을 표현한다는 점에서 아트 컬렉터와 애호가들의 뜨거운 지지를 받고 있다. 특히 지난해에는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크리스티 경매에서 애니멀 히어로즈 시리즈 작품이 약 8억5000만 원에 낙찰되며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회화와 드로잉은 물론 공공 미술 프로젝트, NFT 등 장르를 넘나들며 활약 중인 에드거 플랜스의 한국 첫 전시가 글로벌세아 그룹의 전시 공간 S2A에서 열리고 있다. 타이틀은 <인 마이 커피 타임In My Coffee Time>. “커피 한 잔의 여유를 즐기는 순간이 작가에게는 세상을 원근법으로 볼 수 있게 만들어주는 시간”이라는 미술평론가 후안 야노 보르보야의 설명처럼, 다채로운 사유가 깃든 대표작 50여 점을 만날 수 있다. 서울이 예술의 열기로 가득했던 아트위크의 첫날, 전시장에서 작가를 만났다. 라테 한 잔과 함께 시작한 대화는 작업과 커피, 예술과 가족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졌다.






한국에서의 첫 전시를 축하한다. 소감이 어떤가?

근래 들어 한국에서 내 작품이 좀 더 알려지기 시작했는데, 이런 시점에 방문해 팬들을 만나 인사를 전하고 관람객의 반응을 가까이에서 직접 경험할 수 있어 매우 뜻깊고 영광이다.


머무는 기간이 서울의 아트위크 시즌인데, 열기가 굉장하고 아주 많은 이벤트가 열린다. 특별히 계획하고 있는 일정이 있는지?

전시 오픈 후 바쁜 일들을 어느 정도 마무리하고 주말에 처음 서울 도심을 좀 걸었는데 흥미로운 요소가 상당히 많았다. 이 도시를 더 알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재 서울은 아시아에서 가장 중요한 문화 거점으로 주목받고 있다. 전 세계 아티스트들이 서울에서 전시를 열고 싶어 한다. 그 열기를 직접 경험해보고 싶다. 미리 예정한 것은 아니지만 좋은 전시가 많이 열리는 시즌이니 시간을 만들어서라도 서울의 갤러리들을 투어해보려 한다. 원래 다른 나라에 가면 거리에 나가 사람들의 일상을 보고 느끼는 걸 좋아하는 편이기도 하고.


S2A는 지난해 글로벌세아 그룹에서 문을 연 전시 공간이다. 이곳에서 한국 첫 전시를 열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올해 3월 아트바젤 홍콩에서 S2A 관계자들을 만날 계기가 있었다. 사진을 통해 전시 공간을 처음 마주했는데 무척 마음에 들었고, 위치 면에서도 아트위크 시즌의 가장 큰 이벤트인 프리즈와 키아프가 열리는 코엑스 근처여서 좋았다. 쿠사마 야요이, 김환기 등 거장들의 작품을 전시했던 공간인 데다 글로벌세아 그룹의 김웅기 회장이 굉장한 아트 애호가이자 컬렉터라는 걸 잘 알고 있었기에 예술을 이해하는 이들과 함께할 좋은 기회라고 생각해 손을 잡게 되었다.


약 50점의 작품을 한자리에 모았다. 선정 기준은 무엇인가?

최대한 다양한 스타일과 형식을 보여주고 싶었다. 대형 회화 작업은 물론 드로잉, 설치 등을 두루 포함하려고 했다. 또한 ‘커피’ 하면 떠오르는 작업에도 초점을 맞췄다.


타이틀을 ‘커피 타임’으로 정하게 된 이유는? 더불어 당신에게 커피란 무엇인가?

커피를 무척 좋아해서 하루 평균 8잔 정도 마시는데, 작업할 때는 빠르고 편하게 즐길 수 있는 아메리카노를, 휴식 시간 혹은 지인들과 대화를 나눌 때는 좀 더 천천히 음미하기 좋은 라테를 선호하는 편이다. ‘커피 타임’은 내게 휴식이자 여유이고, 사고의 전환점이기도 하다. 특히 작업할 때는 몰입하던 것에서 잠시 벗어나 시선을 환기하고 작품을 객관적으로 관찰하게 해주는 시간이다. ‘


애니멀 히어로즈’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이 귀여운 동물 캐릭터가 탄생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어릴 때부터 그림을 그리면 늘 동물을 그리곤 했다. 어느 순간부터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묘사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강아지에 악어의 모습을 더하거나 새와 고양이를 매칭하는 식으로 여러 동물을 섞어 그리기도 했다. 그러다 인간의 모습도 조금 섞이면 재미있을 것 같다고 생각한 것이 캐릭터의 초안이 되었다. ‘슈퍼히어로’라는 콘셉트는 어릴 적 읽은 책에서 많은 영감을 얻었다. 유기된 고양이와 개가 외계인으로부터 초능력을 얻어 슈퍼파워를 얻게 되고, 영웅으로 활약한다는 내용이었다. 내가 그린 동물들에게 슈퍼파워를 선사해 오염되고 병든 지구를 살리고,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이기적인 사회를 구원할 수 있길 바라는 마음으로 캐릭터를 만들었다.





작업 초기에 장 미셸 바스키아, 키스 해링 등에게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 이들의 어떤 면에 매료되었나?

어릴 적 친구들과 스케이트를 타는 등 거리에 나가 노는 걸 좋아해서, 벽에 그려진 그래피티를 늘 접했다. 바스키아나 해링의 작업은 미적인 요소도 흥미롭지만 그 안에 비판적 메시지를 포함하고 있다는 점이 특히 마음에 들었다. 그들의 작품을 보며 나 역시 친근하게 시선을 사로잡으면서도 사회에 명료한 메시지를 던질 수 있는 작업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귀여운 캐릭터 이면에 전쟁, 기후변화, 불평등 같은 사회적 문제에 대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복잡한 이슈를 하나의 작품으로 표현하기까지 상당히 오랜 사유의 과정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맞다. 지금 우리가 사는 지구를 위협하는 여러 문제에 관심이 굉장히 많고, 따라서 뉴스를 읽거나 독서를 하는 등 정보를 흡수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러다 보니 생각도 많은 편인데, 머릿속의 수많은 데이터와 생각을 아이가 그린 듯한 단순하고 귀여운 이미지로 표현하기 위해 고민을 많이 하는 편이다. 엄청난 집중의 시간이 필요하다.


최근 가장 눈여겨보고 있는 주제나 사회적 이슈는?

환경오염, 폭력 등 이기적인 사회에 대해서 오래전부터 꾸준히 관심을 두고 있다. 세상을 위협하는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더불어 근래에는 아이들에 대한 문제에 특히 눈이 간다. 어린 딸을 키우고 있어서 전쟁이나 불평등 같은 아이들의 의지와 전혀 무관하게 그들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이슈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는 편이다.





평소 무엇에서 여유와 위로를 찾고, 작업의 동력을 채우는 편인가?

작업할 때 생각이 많아지고 정신적으로 피로해지는 편이라 머리를 비우기 위해 자전거를 자주 탄다. 또 일을 완전히 잊은 채 딸과 함께 놀고 이야기하는 시간을 많이 갖는 편이다.


작품을 바탕으로 애니메이션 작업도 논의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 SNS에 애니멀 히어로즈의 세계관을 보여주는 ‘릴 히어로즈 유니버스Lil Heros Universe’의 티저를 공개하기도 했고. 좀 더 구체적인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나?

아티스트로 활동하며 처음 캐릭터를 그리기 시작했을 때부터 그들이 살아나 움직이는 모습을 상상해왔다. 때문에 항상 애니메이션에 대한 바람이 있었는데, 2년 전쯤 미국 파트너들과 이야기할 기회가 생겼고 ‘릴 히어로즈 유니버스’라는 회사를 설립하게 되었다. 그 안에 플랫폼을 만들어 대본 등 캐릭터를 입체화하는 작업을 전개하고 있다. 아직 한창 준비 중이고, 앞으로 얼마나 많은 시간이 더 걸릴지 모르지만 평생 꿈꿔온 일이고 성공적으로 이뤄내고 싶기에 차근히 준비해나가려 한다.


전시장을 찾을 관람객들에게 관전 팁을 전한다면?

동심으로 돌아가, 즐거운 마음으로 작품 그 자체를 감상하길 권한다. 더 나아가서는 작품에 담긴 메시지를 살펴보고 스스로가 편견을 가지고 있는지, 혹은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사람인지에 대해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전시장을 나갈 때 본인이 ‘영웅’인지, 아니면 ‘빌런’인지 판단해보길 바란다.(웃음)



COOPERATION  S2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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