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UXURY ART

컬렉팅이라는 천체 고준환

예술 작품의 가치는 작가뿐만 아니라 컬렉터의 안목에도 달려 있다. 의미 없이 트로피 작품을 좇기보다 나만의 트로피를 발굴하는 컬렉터 고준환은 오늘도 자신만의 예술적 천체를 확인한다.

FREELANCE EDITOR 유승현 PHOTOGRAPHER 이기태

고준환  원자재 트레이더로 일하며 아트 컬렉팅에 취미를 갖고 있다. 최근엔 옥수동의 와인 바 ‘팟 프로젝트Pot Project’에서 영화감독 윤성준과 협업해 소장전 및 음감회를 열었다.



컬렉팅은 자신만의 세계관을 견고히 하는 일이다. 컬렉터 고준환은 ‘가족’, ‘맨 케이브man cave’, ‘시대정신’이란 3가지 키워드의 균형을 맞춰 작품을 수집한다. 시대와 장르를 자유로이 넘나드는 컬렉팅은 어쩌면 그의 인생과 가치관을 물리적으로 확인하는 일이기도 하다. 아파트라는 보편적 주거 공간의 한계를 뛰어넘어 공간마다 그만의 스토리나 기획을 설정해 배치하는 일 또한 즐겁다고. 늦은 오후 그의 집에서 이뤄진 인터뷰는 각각의 작품에 녹아든 컬렉팅 이야기를 듣느라 날이 저무는지 몰랐을 정도다.


원자재 트레이더이자 아트 컬렉터시죠. 흔히 연상하기 어려운 조합이에요.

저는 곡물을 중심으로 바이오 원료 등 넓은 범주의 자재를 트레이딩해요. 종종 제가 중세 시대 이곳저곳을 누비던 상인의 배와 닮았단 생각을 해요. 인도, 네덜란드, 스페인 그 어디든 지역에서 가장 좋은 것을 구해서 무역을 했잖아요. 제 관심사는 교역이라 일축할 수 있는데 그 대상이 곡물도, 바이오 원료도, 예술 작품도 될 수 있는 거죠. 처음 컬렉팅에 입문했을 땐 ‘예술이란 불투명한 시장에도 나름의 시장 논리가 있지 않을까?’ 궁금했어요. 1년여의 공부 끝에 우고 론디노네의 판화를 시작으로 컬렉팅을 시작했어요. 7년여의 시간 동안 70여 개의 작품을 소장했고요.


침실에는 박노완과 다니엘 엄 작가의 작품을 놓았다. 모두 음지나 늪을 주제로 일상적 기쁨과 슬픔을 이야기하는 그림에서 부부의 모습이 연상되었다고.



70여 개의 작품을 관통하는 컬렉팅 키워드는 무엇인가요?

처음 컬렉팅을 시작했을 땐 기준 없이 작품을 사들였던 것 같아요. 그러나 지금처럼 여러 차례 매체와 인터뷰하고 작품들이 점차 쌓이면서 제 컬렉팅의 기조, 골격이 보이기 시작했어요. 자연스럽게 가족, 맨 케이브, 시대정신 3가지 키워드가 정해졌죠. 이건 제 인생의 큰 축이기도 해요. 훗날 딸아이에게 제 컬렉션을 물려주었을 때 그 나름의 스토리를 읽을 수 있길 바라죠. 그게 제가 생각하는 수집이자, ‘럭셔리’이기도 해요. 이전까지 리서치 70, 개인적 컬렉션 구성 30 정도의 비중으로 작품을 수집했다면, 이제는 점점 저만의 기준, 이야기가 중요해지고 있어요.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나만의 이야기를 완성하기 위해 수집하는 거니까요.


컬렉터에게 꼭 필요한 소양이 있다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흑인, 여성, 비주류, 퀴어가 가장 동시대적 미술계 키워드잖아요. 하지만 내용이 반복되고 작품이 답습되는 어느 순간, 사람들이 피로감을 느낄 거라 생각해요. 그렇지만 그 메시지를 처음 제시한 마스터의 작품 가치는 결코 내려가지 않아요. 결국 컬렉터에겐 옥석을 가려내는 눈, 안목이 가장 중요한 듯해요. 그렇다면 안목을 키우는 건 뭘까요? 저는 뉴런 네트워크를 확장시키는 훈련이라 생각해요. 무언가를 단편적으로 받아들이기보다 네트워크적 사고를 통해 끊임없이 연결하는 것 말이에요. 시대와 장르를 넘나들며 작가와 작가, 작품과 작품을 연결하는 눈이 필요하다고 봐요. 또한 그렇게 쌓은 컬렉팅의 맥락이 타인에게 흥미롭게 다가올 때 안목 있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겠죠.


지리학자이자 데이터 수집 작가 트레버 패글렌Trevor Paglen의 ‘Chemical And Biological Weapons Proving Ground’.아름다운 자연의 풍광 같지만

생화학 실험장이 위치한 사막을 멀리서 찍은 사진이다. 고준환 씨는 아름다움 속 이면의 진실을 담은 작품에서 우리의 인생을 떠올렸다.


컬렉팅을 하면서 잊지 못할 순간을 꼽아본다면요?

발품 파는 건 당연하고 온라인을 통해 다양한 전시들을 많이 찾아봐요. 오래된 것들도요. 뉴욕 현대미술관에서 2017년에 진행한 전시 를 통해 컴퓨터 예술의 선구자인 베라 몰나르Vera Molnár를 알게 되었어요. 스스로를 기계라 상상하고 그만의 알고리즘을 통해 추상 작품을 그란 작가인데, 어느 날 갑자기 컴퓨터가 출현한 거예요. 시대를 매우 앞서 생각한 아티스트죠. 깊이 빠져들어 작품 <(Des)Ordres>를 수집했는데 팬데믹과 함께 언택트 시대가 도래하면서 작가가 크게 주목받았어요. 엔데믹으로 작가의 인기가 조금 시들해질까 싶었는데 챗GPT가 등장했어요. 작가의 선구안이 어느 모멘텀에 빛을 발하는 걸 눈으로 목격한 순간이었어요. 제게 컬렉팅은 본능적 욕구에 가까워요. 목표는 없고 수집이라는 목적만 있을 뿐이죠. 그 목적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달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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