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UXURY ART

삶의 편린이 된 컬렉션 진상미·안영주

아티스트를 꿈꿨던 치과 의사 아내와 부부의 삶을 시작하며 아트의 세계에 눈뜬 변호사 남편은 작품을 수집하는 행위를 과거와 현재의 자신을 돌아보고 미래의 삶을 그려보는 일이라 말한다. 예술이라는 매개체가 한층 넓혀준 매일을 만끽하며 부부는 그들만의 컬렉션을 완성하는 중이다.

EDITOR 이호준 PHOTOGRAPHER 이창화

진상미·안영주   한때 미술 대학 진학을 꿈꿨을 정도로 미술에 대한 강렬한 열정을 지녀온 치과 의사 아내 진상미와 배우자인 안영주 변호사는 각자의 집은 물론, 병원과 사무실에도 가치 있는 작품을 걸어둘 만큼 예술이 녹아든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 훗날 그들의 이름을 남길 수 있는 컬렉션을 목표로 한다.



예술 작품을 바라보며 자신의 삶과 정서를 투영하고, 예술로 인해 삶의 영역이 확장되는 경험을 한 이라면 ‘작품에 순식간에 매료됐다’는 말을 실감할 것이다. 진상미·안영주 부부 또한 이 같은 경험의 힘을 느낀 이들 중 하나다. 특히, 오래전부터 작품을 수집해온 할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어린 시절부터 예술을 가까이한 진상미는 미술학도를 꿈꿨을 만큼 예술에 대한 강렬한 애정을 품어왔다. 인터뷰를 위해 방문한 그의 병원에서 컬렉팅을 통해 해소해온 열정을 엿볼 수 있었는데, 입구에서부터 줄리언 오피, 장 미셸 오토니엘, 이배 등 걸출한 작가의 작품을 비치해 마치 갤러리 같은 인상을 전했기 때문. 더욱이 곳곳에 키키 스미스Kiki Smith, 김보희 등 여성 작가의 작품과 함께 조이솝, 람한 등 신예 작가의 작업이 조화롭게 자리해 그들의 컬렉션에 대해 한층 더 궁금증이 일었다.


병원에 들어서자마자 줄리언 오피의 강렬한 팝아트와 오방색이 돋보이는 제이디 차의 작품 ‘4 Dorothea, 2 Katchina’가 자리한 모습을 봤습니다. 병원이 아니라 갤러리 같다는 느낌을 받기도 했어요. 병원을 방문하는 사람들의 반응은 어떤가요?

아트에 관심이 있는 분들도, 그렇지 않은 분들도 일반적인 병원 같은 모습이 아니라고 좋아해주세요. 어느 날인가 한 중년 신사분이 병원 안쪽에 걸어둔 오토니엘의 작품을 지그시 감상하고 있는데, 뭔가 저도 뭉클하더라고요. 저희 때문인지는 몰라도 직원들까지 컬렉팅을 시작하기도 했고요.


병원 상담실에 자리한 키키 스미스의 작품 ‘Barred Spiral Galaxy’.

우주에 자리한 은하가 대변하는 잔잔한 풍경과 별을 쏟아내는 눈을 지닌 여성이 신비로운 인상을 전한다.


키키 스미스나 김보희 작가 등 여성 작가들의 작품은 물론, 신진 작가의 개성 있는 작품도 더러 보입니다. 컬렉팅에 대한 기준점 혹은 방향성이 있나요?

지나고 보니 작품 간의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더라고요. 외할머니가 전쟁으로 인해 미망인이 된 여성들과 함께 산속에서 군복 공장을 운영하셨는데, 그 시절에 여성이 혼자 큰 공장을 운영한다는 게 여간 힘든 일이 아니잖아요. 군인을 상대하는 일이기도 하니까요. 당대의 신여성상과 부합하는 분이었죠. 그분의 영향을 적잖게 받은 것 같아요. 그런가 하면 어머니는 제게 늘 기도와 안부를 전해주세요. 신기하게도 제주도의 풍경을 주로 그리는 김보희 작가의 작품에서 비슷한 느낌을 받았죠. 이렇게 외할머니나 어머니같이 모계로부터 내려오는 정서나 여성이라는 유대감을 보여주는 작품을 주로 선호하고 모아왔더라고요. 신진 작가의 작업도 관심 있게 지켜보는데, 특히 퀴어 아티스트들의 작업에도 눈길이 가더군요. 사회적으로 소외된 이들이 저마다의 개성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작업에 마음이 가곤 해요. 병원에도 조이솝 작가의 조각 작품을 전시해뒀죠. 그런 걸 보면 제가 역사·사회적으로 소외된 이들의 이야기와 정서를 담은 작품을 좋아하는 것 같아요.


9월에 키아프나 프리즈 같은 큰 아트페어가 연이어 열리기도 하니 지금 주목하고 있는 작가도 궁금해지네요.

신진 작가로는 앞서 말했던 조이솝 작가를 꼽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아직 학교를 졸업하지 않았음에도 남서울시립미술관에서 전시를 할 정도로 감각적인 작품을 많이 선보이더라고요. 이번 프리즈에서는 제이디 차를 주목하고 있어요. 타데우스 로팍에서 진행했던 3인전에 출품한 작품을 소장하고 있는데, 한국계 캐나다인으로서 이방인이기도 한 그의 시각에서 바라본 한국의 해석도 재미있었어요. 이번 프리즈 VIP 세션 기간에 한국의 굿에서 영감을 받은 퍼포먼스도 진행할 예정이라고 하더군요. 실린더 갤러리도 기대하고 있습니다.


최근 일민미술관에서 단체전을 마친 김민희 작가의 작품 ‘Colonel Baradagi’. 실린더 갤러리를 통해 구매했는데,

만화나 애니메이션에서 발견한 캐릭터의 전형을 회화에 접목해 재해석하는 독특한 작업을 선보이는 작가에게 매료됐다고 한다.


남편분께서는 아내 진상미씨를 만나며 본격적으로 아트의 세계에 입문했다고 들었습니다. 지금은 아내와 함께 컬렉팅 라이프를 즐기면서 예술의 매력을 만끽하는 중이라고요.

작품의 매력도 매력이지만 예술의 힘을 여실히 느끼는 것 같습니다. 세상을 보는 시야가 넓어졌다고나 할까요? 줄리언 오피의 작품을 소장하고부터 차창을 통해 본 사람들의 움직임이 작품처럼 느껴지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퀴어 아티스트의 작품을 접하면서 알게 모르게 지니고 있던 선입견을 다시금 재정립하기도 했죠. 이제는 출장이나 여행을 갈 때도 그 지역에 어떤 갤러리가 있는지부터 알아봅니다. 예술이 삶을 이렇게나 바꿀 수 있다는 것에 계속해서 놀라워하고 있어요. 그래서 예술이 제 삶에서 늘 함께하길 바랍니다. 저희의 컬렉션은 저희가 넓혀가고 있는 삶의 조각들이라는 생각을 늘 가지고 있어요.

목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