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UXURY ART

피어나는 애정 정재혁

풍성한 결실을 보기 전에 꽃부터 피워야 하는 법이다. 예술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면, 이미 컬렉터의 자질은 충분하다고 할 수 있다. 올해 30대 중반에 들어선 컬렉터 정재혁은 이제 막 예술을 향한 마음을 꽃피우기 시작했다.

EDITOR 정송 PHOTOGRAPHER 이기태

정재혁  30대 초반 예술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호기롭게 뛰어든 컬렉터의 길. 아직은 진정한 컬렉터라 불리기 민망하다며 ‘아트 러버’라는 수식어로 충분하다는 그는 꾸준히 전시를 돌아보고 자신이 좋아하는 작가들을 찾아보며 컬렉터로서 자신이 가야할 길을 조정하고 있다.



컬렉터 정재혁에게 첫 번째 예술 경험은 강렬했다. 그 기억을 바탕으로 30대가 된 지금 굵직한 작품 2점과 일러스트 작품을 시작으로 자신만의 길을 걸어가기 시작했다. 여기에는 가족의 역할도 중요했다. 예술적 안목이 높은 부모님과 함께 다닌 유럽 여행과 집 안 곳곳을 수놓은 작품 모두 정재혁에게 영향을 미쳤다. 본격적으로 컬렉팅의 길에 뛰어들었을 때 가족의 아낌없는 지지도 한몫했다고.


처음 경험한 예술에 대한 기억은 무엇인가요?

초등학생 때 부모님과 함께 바티칸의 시스티나 성당에 있는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를 봤어요. 그 거대한 공간이 그림으로 촘촘하게 채워진 광경이 정말 인상적이었어요. 그게 예술에 대한 저의 첫 기억입니다. 20대 때는 책을 통해 접한 폴 세잔에 매력을 느꼈어요. 완전한 추상으로 이르는 미술사적 흐름에 주요한 영향을 미친 인물이라는 점이 특히 그랬죠. 2016년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풍경으로 보는 인상주의> 전시에서 ‘생트 빅투아르산’을 직접 마주했는데, 벅참과 경외감이 밀려오더군요. 그때부터 예술에 대한 감정이 불타오른 것 같아요.


영국을 베이스로 활동하며 자신의 내면세계를 들여다보는 작가 고준호의 ‘Odyssey’. 일러스트레이션 작품이다.

정재혁은 이 작품에서 인생의 덧없음에 대한 메시지를 읽었다.



작품을 그저 감상하는 것과 소장하는 것에는 분명 차이가 있을 것 같아요.

컬렉팅을 하면 할수록 ‘성장 스토리’를 쓰는 것처럼 느껴져요. 전시를 보고, 미술사를 공부하고, 또 작가에 대한 연구가 선행되어야 비로소 하나의 작품을 마주할 준비가 된다고 생각해요. 저는 미술 전공자가 아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이러한 모든 과정을 통해 배우고 성장한다고 봅니다. 어떤 이들은 컬렉팅을 투자의 목적으로 할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아직은 제 소양을 쌓는 과정이라고 말하고 싶어요.


아직 컬렉팅한 작품이 많지 않다며 인터뷰에 응해도 될지 모르겠다고 고민하셨죠. 대구 집에 데이미언 허스트, 데이비드 거스타인 같은 거장의 작품이 눈에 띕니다.

저보다 더 좋은 작품을 많이 가진 컬렉터가 있을 테니, 제가 무슨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싶었어요. 그런데 저를 통해 이제 막 컬렉팅을 시작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도 들려줄 수 있다면 좋을 것 같았습니다. 두 작가는 제가 정말 많이 공부한 이들이에요. 가족이 함께 컬렉팅하며 그 즐거움을 알았죠. 그중에서도 데이미언 허스트는 제가 정말 좋아하는 작가입니다. 그는 1980년대 영국에서 청년 예술가를 모아 yBa를 결성, 영국 현대미술씬을 이끈 주축입니다. ‘죽음’이라는 주제를 그로테스크하게 풀어내면서 과연 예술이 무엇을 말할 수 있는지 역설한 점이 매력적이죠. 최근에는 일러스트 작업을 펼치는 젊은 작가 고준호를 주목하고 있습니다. ‘Odyssey’, ‘Cantilever’, ‘Pollination’이라는 작품 3점을 품에 안았어요. ‘Odyssey’ 작품 화면 중앙에 배치한 도상은 17세기 네덜란드 정물화에서 볼 수 있는 인생무상, 즉 바니타스vanitas의 메시지를 전하는 것처럼 느껴져서 특히 좋아요. 허스트와 거스타인, 고준호의 작품 모두 바라보고 있으면 삶에 대해 생각해보게 돼요. 어쩌면 제가 매력을 느끼는 작가들은 모두 이러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금 주목하고 있는 작가가 있나요? 최근 스페이스K에서 개인전 <구미호 혹은 우리를 호리는 것들 이야기>를 통해 작품을 선보인 제이디 차가 인상적이에요. 다양한 방식을 통해 자신이 가진 많은 정체성을 드러내는 작가죠. 한국인으로서 동질감을 느끼면서도 동시에 익숙한 문화를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게 됐어요. 제이디 차 역시 익숙했던 무언가를 생각해보게 만든다는 점에서 제가 앞서 얘기한 다른 작가와 공통점이 있네요.


데이미언 허스트의 ‘For the Love of God, Shine’. 2007년 작품으로 리미티드 에디션 판화다.

해골에 다이아몬드를 뒤덮어 ‘죽음’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자신만의 예술로 승화했다.


언젠가 꼭 내 것으로 만들고 싶은 작품이 있다면요?

망설이지 않고 말할 수 있어요. 올라푸르 엘리아손의 ‘Your Museum Primer’입니다. 만약에 저만의 공간을 갖게 된다면, 제일 먼저 모시고 싶은 작가이기도 해요. 물론 저만의 바람이지만요. (웃음) 천천히 회전하는 원반 모양의 조형물이 빛을 반사하고, 투사하면서 형태가 다르게 보이는 작품인데요. 움직이는 방향과 시선에 따라 계속해서 다른 작품을 마주하는 듯한 느낌이 들죠. 작품의 형태가 물리적으로 바뀌진 않지만, 마치 바뀌는 것 같은 이러한 모순적인 모습이 작품과 감상자 사이에 적극적인 상호작용을 만드는 것 같아 마음에 들어요. 아마 바뀌지 않을 저의 위시 리스트 1번일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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