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UXURY ART

컬렉터와 갤러리스트 사이 김시내

예술을 향한 순수한 열망으로 작품을 모아온 한 명의 컬렉터에서 좀 더 넓은 예술의 장을 펼치기 위해 갤러리를 오픈하기까지 김시내가 표출해온 아트 예찬은 늘 변함이 없었다. 오래도록 꾸준히 수집해온 작품이 자신의 감정적 편린 같다 말하는 그는 예술이 곁에 머무는 삶을 한결같이 꿈꾸고 있다.

EDITOR 이호준 PHOTOGRAPHER 이경옥

김시내  아트 에이전시 TDA 하우스를 운영하고 있다. 올해 봄 아트 에이전시의 오프라인 갤러리를 오픈하며 컬렉터이자 갤러리스트로 변신했다.


몇 해 전, 김시내 대표의 집을 방문한 적이 있다. 패션 브랜드 타라 드 알마를 운영하며 SNS 인플루언서로 활동해오던 그의 공간은 독특하고 이색적인 감각으로 중무장한 모습이었다. 피에르 샤포와 앙드레 소르네의 빈티지 가구부터 내부 파사드를 가득 메우던 이우환의 작품 ‘다이얼로그’, 존 발데사리John Baldessari와 헤르난 배스Hernan Bas의 아트 피스 등 하나하나 그 가치를 쉬이 짐작할 수 없는 요소들이 한데 모여 집을 이루고 있었다. 이는 20여 년에 이르는 컬렉팅 경력을 소유한 김시내 대표의 역량이기도 하겠지만, 그에 못지않게 많은 작품을 수집해온 남편의 감각이 더해진 결과다. 그리고 김시내 대표는 올해 초, 새로운 행보를 선보이며 다시 한번 자신의 감각을 세상에 공개했다. 아트 에이전시인 TDA 하우스Haus의 오프라인 갤러리를 오픈하고 지민경 작가와 함께한 개관전을 시작으로 컬렉터의 삶에서 갤러리스트로서 진취적인 첫걸음을 내디딘 것. 새로운 변곡점을 맞이한 그의 집을 다시 한번 방문해 마주 앉아 몇 가지 질문을 던졌다.


늦었지만 축하 인사 전해요. 4월 말 즈음 아트 에이전시인 TDA 하우스가 오프라인 갤러리 공간을 오픈했어요. 한 명의 컬렉터에서 갤러리스트로 새로운 삶의 항로를 개척한 감회가 궁금합니다.

이제 와 말하지만 처음부터 갤러리스트를 꿈꾸진 않았어요. 힘든 길이라는 걸 너무 잘 알기도 했고요. 그렇지만 아트 에이전시를 운영하면서 공간에 대한 필요성을 계속해서 느꼈어요. 아티스트와의 커뮤니케이션이 더 용이하기도 하거니와, 에이전시 업무를 하면서 전시 기획이나 컬래버레이션 제의를 수용할 수 있는 물리적인 공간이 필요했거든요. 여차저차 꾸려가고 있습니다.(웃음)



거실에는 헤르난 배스의 작품이 서로 마주한 채 주인공처럼 자리하고 있다. 그중 한 작품인 ‘The Gourd Nest’.


몇 년 전 처음 집에 방문했을 때, 거실의 한 벽면을 통째로 차지한 이우환 화백의 작품이 정말 인상적이었습니다. 지금은 그 자리를 헤르난 배스의 작품이 차지했네요. 다른 벽면에도 이전에 방문했을 때와는 다른 작품이 걸려 있고요. 이쯤 되면 컬렉터로서의 첫 시작이 궁금해집니다.

27세 때 경기도의 한 미술관에서 큐레이터 일을 하던 친구를 따라 박서보 선생님의 작업실을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선생님의 유쾌하신 모습이 아직도 기억에 선명해요. 당시에도 큰 호수의 작품을 채색하고 계셨어요. 그 공간과 작품 그리고 선생님의 열정에 압도당했다고 해야 할까요? 홀린 듯이 박서보 선생님의 작품을 샀는데, 제 첫 아트 컬렉팅이기도 했죠.


대표님만큼이나 남편분도 컬렉팅에 일가견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결혼하기 전에는 몰랐는데, 알고 보니 꽤 많은 작품을 소장하고 있더라고요. 지금 부엌에 걸려 있는 버턴 모리스Burton Morris의 ‘주크 박스’도 남편이 오래전부터 가지고 있던 작품이에요. 해외로 출장이라도 가면 시간을 쪼개서라도 갤러리를 반드시 방문하고 마음에 드는 작품이 있으면 꼭 품에 안고 왔다고 하더군요. 그런 작품 중 하나인 셈이죠.


피에르 샤포의 빈티지 가구가 놓인 주방에는 남편이 오래전부터 소장해온 버턴 모리스의 ‘주크 박스’가 걸려 있다.

입체적인 형태의 팝아트 작품은 평면 작품에 비해 훨씬 유니크한 편.


소장하고 있는 작품 중 어떤 작가의 작품에 가장 애착이 가나요?

쿠사마 야요이 작가의 ‘드레스’를 꼽을 수 있을 것 같아요. 2007년에서 2008년 사이에 한참 컬렉팅에 몰두할 때 구한 작품이에요. 예술에 대한 열망이 가장 큰 시기였고, 그만큼 이리저리 찾아다녔죠. 어릴 때부터 늘 예술을 하고 싶었지만, 예술 작품을 향유하고 소장하는 것으로 그 소망을 대신하고 있었거든요. 딸 해나가 태어나기 전이어서 시간도 많았고요.(웃음) 저는 이 작품에서 마치 쿠사마 야요이의 소녀 시절을 들여다보는 듯한 느낌을 받았어요. 빨간 원피스에 담긴 쿠사마 야요이의 꿈같은 유년이 자연스레 머릿속에 그려지기도 했죠. 아주 귀엽고 말간 눈을 크게 뜬 소녀가 말을 거는 것 같은 첫인상을 받았다고나 할까요? 덧붙이자면, 그가 이 작품을 완성할 시기가 한참 왕성히 작품 활동을 하던 때예요. 그래서인지 다른 작품도 가치 있지만, 유독 쿠사마 야요이가 그림을 향해 쏟아부었던 당시의 열정이 더욱 여실히 느껴져서 항상 제가 제일 애정하는 작품으로 ‘드레스’를 꼽곤 합니다. 작


그간 수집해온 작품들 중 가장 애착이 간다는 쿠사마 야요이의 ‘드레스’. 작품을 통해 작가의 어린 시절이 느껴지는 것만 같았던 김시내 대표는

이 사랑스러운 작품을 소장할 수밖에 없었다고.


품의 첫인상이 컬렉팅의 중요한 기준이 된다는 얘기로도 들리네요.

그렇죠. 작품을 투자 가치로만 바라보면 결국 예술을 예술로 온전히 즐기기 힘들다고 봅니다. 물론 항상 감정만을 우선적인 기준으로 내세울 수는 없지만 작품을 바라볼 때 매번 작가의 성장 가능성과 시장 경쟁력만 염두에 두는 컬렉팅은 명확한 한계점이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제게 작품을 수집하는 행위는 예술을 체화하는 행위와도 같아요. 작품을 보고 내면에서 특별한 감정이 일렁여야만 ‘이 작품을 소장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대표님의 컬렉션을 한마디로 정의해본다면요?

정서의 연대기라고 표현하고 싶어요. 작품을 볼 때마다 처음 마주했을 때의 감정이 마치 일기장을 열어볼 때처럼 떠올라 몇 번을 보더라도 당시의 감정을 복기할 수 있거든요. 굳이 글로 쓰거나, 사진으로 남기지 않아도 그 작품을 보는 것만으로 다시 그때의 기억과 감정이 떠오르고, 나아가 그간 걸어온 내 삶의 자취까지 느껴지곤 해요. 그래서 한 가지 원하는 게 있다면 훗날 해나에게 제 컬렉션을 물려줄 때, 그 아이도 제가 느꼈던 감정을 경험할 수 있기를 바라요.


이제는 컬렉터이자 갤러리스트이기도 합니다. 작품을 선택하는 기준에서도 기존과는 다른 접근법이 필요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무래도 갤러리스트로서 작품을 선택할 때가 더 예민해질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컬렉팅은 결국 제가 소장하는 것이니만큼 결국 나라는 개인의 감정을 일정 부분 우선시하지만, 갤러리스트는 더 꼼꼼한 기준이 필요합니다. 비단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필수불가결하게 논리적인 접근이 필요하니까요. 특정 장르에 특화된 작가인지, 자신의 세계를 더욱 확장할 가능성이 있는지, 그 범위나 가용성은 어느 정도일지를 고려할 수밖에 없고, 수요와 공급의 문제도 놓칠 수 없는 부분인 것 같아요. 제 갤러리에서 소개하는 작가가 오래도록 활동할 수 있는 경제적인 기반도 중요한 부분이니까요.


현재 눈여겨보는 작가가 있는지도 궁금해지네요.

많이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페인팅이 정통 예술이라는 인식이 잔존해 있는 것 같아요. 갤러리를 운영할 때도 다양한 장르의 작업을 선보여봤지만, 페인팅이 아니면 작품 구매로 쉽사리 이어지지 않는다는 걸 종종 경험했고요. 하지만 그래서인지 저는 더 다양한 작업을 선보이는 아티스트에 눈길이 가는 것 같습니다. 지금은 아트피플Artppl이라는 작가를 주목하고 있어요. 직접 소장하고 있기도 하고요. 글라스로 만드는 작품인데 풍경 사진 위로 핑크 플루이드 커튼을 쳐놓은 듯한 느낌을 줘 흥미로워요. 지금 저와 함께 전시를 기획하고 있기도 합니다. 9월에 오픈할 예정이에요.


거실과 안방으로 통하는 방향에 자리한 하얀 벽면에는 이배 작가의 2가지 작품이 걸려 있다. 피에르 샤포가 디자인한 빈티지 우드 체어가 함께 있다.

목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