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셔리 M> 2023년 9월호

2023 F/W Fashion Choice

새 계절, 2023 F/W 컬렉션을 본격적으로 맞이할 때다. 사진가와 모델, 비디오그래퍼, 디자이너, 헤어와 메이크업 아티스트까지, 비슷한 듯 다른 각자의 무대에서 활동하는 그들에게 영감의 원천을 물었다.

EDITOR 홍혜선, 김송아

PHOTOGRAPHER



장기평


가장 촬영해보고 싶은 룩은?

JACQUEMES  베르사유 궁전에서 선보인 ‘르 슈슈’ 컬렉션은 정말 자크뮈스다웠다. 화이트, 블랙, 레드를 베이스로 풍성한 실루엣과 모델의 살갗이 비치는 얇은 시스루 소재를 적절히 믹스한 강약 조절이 아주 훌륭했다. 리본, 페더, 레이어드한 란제리 디테일을 곳곳에 더해 입체감 역시 놓치지 않는 센스까지. 특히 아주 얇고 작은 깃털이 달린 블랙 맨즈 슈트가 꼭 촬영하고 싶은 룩 1순위. DIOR MEN  부드러운 크림 컬러로 시작해 베이지, 옐로 그리고 그레이와 브라운으로 이어지는 디올맨의 컬렉션은 마치 한 편의 시를 읽는 듯했다. 여러 겹으로 부드럽게 흘러내리는 니트 케이프, 와이드핏의 퀄로트 팬츠, 아이코닉한 컬러의 레인 재킷이 특히 돋보였다. 이번 시즌 디올맨은 파리 남성복 패션위크의 베스트 컬렉션 중 하나라는 평을 들었다고 하니, 촬영장에서 만날 날만을 고대 중이다.

HERMÈS  톤온톤 무드에 각기 다른 광택감의 소재로 차원이 다른 우아함을 보여준 에르메스는 F/W 시즌 느낌이 나는 고풍스러운 컬러로 그 위상을 증명했다고 생각한다. 깊은 역사를 지닌 에르메스의 질 좋은 소재감은 카메라에 담았을 때 특히 빛을 발한다. 과도한 기교를 부리지 않아도 사르륵 떨어지는 소재에서 이미 게임 오버. 에르메스는 그냥 에르메스 그 자체다.



배준선


가장 촬영해보고 싶은 룩은?

MIU MIU  반짝이는 액세서리에는 약하지만, 안경만큼은 누구보다 깊게 안다고 자부한다. 최근 패션 잡지를 휘리릭 넘기는 와중에 페이지를 멈추게 만든 건 바로 미우 미우의 안경이었다. 안경에 모든 스타일링을 맞춘 것처럼 그 룩 자체가 완벽했다. 안경이 없었더라면 되레 불완전해 보였을지도 모른다. 부스스한 머리, 화장기 없는 말간 얼굴, 대충 손에 잡히는 대로 입은 것 같은 스타일. 하지만 각각의 디테일은 놀랍도록 완성도가 높았다. 주변을 세심하게 관찰해 일상적 모습을 표현한 미우 미우의 2023 F/W 컬렉션을 나만의 시선으로 재해석해보고 싶다. 안경은 필수다.

BOTTEGA VENETA  지난 시즌 화이트 탱크 톱과 데님 팬츠로 완성한 룩은 정말 ‘쿨’했다. 케이트 모스가 입고 나온 플란넬 셔츠는 평소 즐기는 아이템이라 당장 따라 사고 싶을 정도였으니까. 편안하고 베이식한 룩도 면면이 가죽으로 만든 걸 알아차렸을 땐 무릎을 탁 쳤다. 2023 F/W 시즌 역시 가죽을 입기 쉽게 디자인한 점이 흥미롭다. 힘을 모두 뺐지만 조용하고 우아한 한 방이 있는 룩을 카메라에 담을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기대된다.

CELINE  가장 좋아하는 음악 장르는 단언컨대 록이다. 1990년대와 2000년대를 불태운 록 음악. 그때의 언더그라운드 문화를 좋아하기도 하고. 그래서 따라 입기는 어렵지만 록 시크 패션이 마음속 로망 중 하나다. 셀린느의 이번 시즌 컬렉션은 그런지한 아이템의 완벽한 조합이었다. 화이트 셔츠, 루스한 타이, 스키니 진. 공연을 마친 록 스타의 애프터 파티가 연상된다. 2000년대의 록을 배경음악 삼아 마음 가는 대로 찍어보고 싶다.


박현경


가장 촬영해보고 싶은 룩은?

JIL SANDER  사진가 데이비드 심스가 작업한 1990년대 질 샌더 캠페인을 시작으로 브랜드의 패션 아이덴티티에 대해 꾸준한 궁금증을 가지고 있다. 2023 F/W 컬렉션에서는 그동안 보여주던 룩보다 자유로움을 선보였으나 질 샌더만의 감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 고유한 무드를 이미지화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하는 브랜드 중 하나다.

LEMAIRE  르메르 컬렉션은 도회적이고 서정적이다. 채도를 한껏 덜어낸 단색 톤의 조합, 중앙을 벗어났지만 균형 잡힌 단추의 위치, 질감이 다른 소재의 레이어링까지. 각각의 요소를 보면 서늘해지는 계절이 곧장 떠오른다. 말로 설명할 수조차 없는 그 미세한 온도를 사진에 담아보고 싶다.

MIU MIU  패션은 모양과 기능 사이에서 변화한다. 그 사이를 명민하게 오가며 줄타기를 잘하는 브랜드를 꼽자면 미우 미우가 꼭짓점에 있을 것이다. 뺄셈의 미학이 느껴지는 이번 2023 F/W 컬렉션을 아주 담백한 이미지로 풀어내면 어떤 그림이 나올까.




HAIR & MAKEUP ARTIST



메이크업 아티스트 임정인


눈에 띈 헤어와 메이크업은?

PRADA  프라다는 매 시즌 메이크업이 가장 기대되는 브랜드다. 컬렉션 룩과 완벽하게 어우러지는 독특한 텍스처를 제대로 활용하기 때문. 이번 시즌에는 포슬포슬한 질감의 오버사이즈 컬러 래시 메이크업을 선보였는데, 모델과 룩마다 컬러를 다르게 적용하는 섬세함까지 발휘했다. 모델이 걸을 때마다 살랑살랑 흔들리는 컬러 래시가 어찌나 탐이 나던지.

VERSACE  아이 메이크업 하나만으로도 메이크업의 인상이 좌지우지된다. 베르사체는 이번 시즌 볼드하지만 깔끔하게 떨어지는 아이라인으로 컬렉션에 힘을 불어넣었다. 완벽한 대칭을 이루는 아이라인에서는 안정감마저 느껴질 정도. 강렬하고 묵직한 한 방이 필요한 현장에서 꼭 적용해볼 예정.

MIU MIU  모델이 고유하게 가지고 있는 본연의 피부 톤과 컬러를 똑똑하게 활용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내추럴한 듯하지만 가까이 들여다보면 완벽하게 정리된 피부 표현은 감탄을 자아낸다.




메이크업 아티스트 장소미


눈에 띈 헤어와 메이크업은?

DIOR  디올은 해를 거듭할수록 색다른 메이크업을 선보이는 대신 어떤 아이코닉한 그림을 만들어가는 것처럼 보인다. 검은 아이라인을 미니멀하게 그리면서 아주 간결하지만 존재감이 뚜렷한 메이크업이 바로 그거다. 위치를 조금씩 바꾸지만 크게 벗어나지 않으면서 디올만이 낼 수 있는 느낌을 한껏 드러내는데, 이제는 이 라인만 보면 디올이 떠오른다. 심플한 선 하나로 완벽한 면모를 보여준 메이크업이란 바로 이런 것 아닐까.

PRADA  전체적으로 깔끔하면서 생기를 살린 메이크업으로 끝냈다면 아쉬웠을 텐데, 기막힌 한 방이 있었다. 바로 룩의 텍스처와 비슷한 느낌으로 연출한 파스텔 색상의 속눈썹. 모델들이 런웨이를 걸으며 눈을 깜빡이는 모습조차 드라마틱한 장면으로 만들어버렸다.

GUCCI  선연한 노란색과 쨍한 핫 핑크가 한데 섞여 그러데이션 효과를 낸 입술 포인트 메이크업은 강렬한 색조의 조합이 신선했다. 어우러질 것 같지 않은 2가지 색의 조화가 의외로 부드러워서 나 역시 실제 현장에서 활용해 볼 생각이다.




헤어 아티스트 강지원


눈에 띈 헤어와 메이크업은?

ALEXANDER MCQUEEN  요즘 깔끔하고 담백한 헤어스타일을 시도하는 것에 재미를 붙이고 있다. 이번 시즌 알렉산더 맥퀸의 헤어는 이 깔끔함에 약간의 위트를 담았다. 헤어 제품을 이용해 잔머리를 연출한 스타일링은 과하지 않고 심플하지만, 알렉산더 맥퀸다운 기교를 부린 것이 느껴졌다.

MIU MIU  평소 내추럴한 헤어스타일링을 좋아하는데, 그 어떠한 헤어보다 어렵다는 것을 느낀다. 그 점에서 이번 시즌 미우 미우의 헤어는 내추럴함의 교과서다. 자연스러운 머릿결과 컬러를 십분 활용해 완벽한 내추럴 헤어를 구현했기 때문. 머리에 풍선을 붙였다 뗀 것처럼 부스스하게 일어난 잔머리는 사랑스러움 그 자체였다.

ROKH  가르마의 비율을 1:9까지 나눠 강렬한 대비를 만들어내는 헤어 트렌드도 눈길을 끌었다. 로크는 가르마를 나눈 후 긴 앞머리로 얼굴 한쪽을 가려버리는 초극단적인 헤어를 연출했다. 모델의 헤어 기장에 따라 얼굴이 가려지는 면적이 달라져 쇼 내내 지루하지 않게 연출한 점도 흥미로웠다.




DESIGNER


가방 브랜드 선셋07 대표 이주연


가장 기억에 남는 가방은?

JACQUEMUS  자크뮈스의 빨간색 클러치백. ‘빨간’이라고 말하기보다 ‘시뻘건’이라고 말하는 게 응당한 색감이 먼저 눈길을 사로잡았다. 빵 봉투를 둘둘 말아 접은듯한 디자인 역시 인상적이다. 어쩌면 런웨이에서 모델이 신줏단지 모시듯 들고 나온 그 모습 때문에 더 뇌리에 박혔을지도 모른다. 디자인과 디테일이 새로웠던 브랜드는?

PAULA CANOVAS DEL VAS  과감한 색조의 조합, 다채로운 소재의 기막힌 믹스 매치, 유기물을 연상시키는 과장된 형태의 액세서리, 조형적 실루엣까지. 이 모든 걸 시도했음에도 불구하고 컬렉션의 면면이 유기적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어느 하나 허투루 만든 것이 없어 보여 같은 디자이너로서 고개를 주억거리게 된다. 앞으로가 기대되는 라이징 브랜드는?

CAROLINE HU  기이하면서도 로맨틱하다. 어울리지 않을 법한 두 단어가 캐롤라인 후의 룩에는 찰떡처럼 어우러진다. 여기에 한 땀 한 땀 정성을 다했을 것 같은 수공예 디테일까지 더해졌다. 앞으로의 행보가 더 기대되는, 다음 컬렉션을 기다리게 하는 브랜드다.




주얼리 브랜드 씨시어 대표 김미성


눈에 띈 주얼리 스타일링은?

이번 시즌에 발견한 주얼리 디자인의 특징은 온몸을 감싼다는 점이다. 주얼리 디자이너로서 흥미롭고 반가운 일. 특히 브로치를 활용한 코페르니의 위트 있는 드레이핑, 이너웨어와 언더웨어를 갈음해 연출한 에르메스와 스텔라 맥카트니의 주얼리가 눈에 밟힌다. 번쩍이는 스톤 체인을 직조하듯 엮은 세인트 신트라의 드레스, 프라발 구룽의 톱, 디 펫사의 헤드기어는 꼭 소장하고 싶을 정도. 주얼리와 텍스타일의 경계가 무너질 날이 머지 않았다.


주얼리 디자인에 영감을 얻을 만한 2023 F/W 컬렉션은?

빅터앤롤프의 리본 장식에 눈이 번쩍했다. 질서정연하게 반복되지만 모순적이고 난폭한 디자인. 기능과 재료의 한계를 핑계 삼아 나태해지기 쉬운 주얼리 디자인의 뭉친 실마리가 풀린 느낌이었다. 철옹성처럼 뭐 하나 끼어들 틈 없이 검게 물든 발렌시아가 컬렉션에는 세련되지 않은 크고 거친 주얼리를 끼워 넣고 싶었다. 문화유적에 제 이름을 낙서하는 어린아이 같은 마음으로.




브랜드 굼허 대표 허금연


가장 기억에 남는 룩은?


GOOMHEO  현재 스스로 전개하고 있는 브랜드 굼허. 컬렉션 전반에 손길이 닿아 애착이 가고 소중하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룩은 데님과 퍼를 함께 사용한 립 퍼 재킷과 와이드 퍼 팬츠다. 재킷 패널을 나눈 뒤 사이사이에 퍼 트림을 재봉해 그래픽을 만들었다. 이 룩이 이번 시즌의 테마인 ‘라이더Riders’를 관통해 보여준다 해도 무방하다. 디자인과 디테일이 새로웠던 브랜드는?

NO/FAITH STUDIOS  볼 때마다 “데님과 가죽으로 이게 가능하다고?” 하며 놀라게 되는 브랜드다. 정교하고 섬세한 패턴 작업, 독특한 디테일을 활용해 시그너처인 데님으로 만들 수 있는 모든 것을 만든다. 앞으로가 기대되는 라이징 브랜드는?

VAQUERA  라이징 브랜드라고 하기엔 이미 유명한 브랜드지만, 꼭 짚고 넘어가고 싶다. 이번 시즌은 펑크에 그들의 색깔을 더해 바퀘라만의 펑크를 창조했다. 팬츠 위에 브리프를 착용하고, 티셔츠 위로 브레지어와 하네스를 걸치고, 속옷이 완전히 드러나는 드레스까지. 브랜드의 첫 론칭부터 지금까지 파격적인 실험으로 신선한 옷, 스토리, 이미지를 만들어내고 있다. 앞으로 그들이 보여줄 유쾌한 비주얼이 기대되는 이유다.




MODEL



장해민


가장 눈에 띈 모델은?

STERRE HAKET  목이 드러나는 쇼트 커트에 마이크로 브라 톱을 찰떡같이 소화하며 구찌 2023 F/W 컬렉션의 포문을 연 스테레 하켓. 그처럼 과감한 쇼트 커트에 도전하고 싶은 마음을 꾹 눌러 참느라 꽤나 고생했다. 하나 재밌는 점은 그가 바로 쌍둥이라는 것! 심지어 쌍둥이 자매도 함께 모델 활동 중이다.


화보나 런웨이에서 꼭 입어보고 싶은 룩은?

RICK OWENS  사진작가 리처드 아베돈으로부터 영감을 받았다는 릭 오웬스의 2023 F/W 컬렉션. 그중 거대한 볼륨감을 자랑하는 푸퍼 아이템과 케이프, 맥시한 드레스를 입어보고 싶다. 릭 오웬스의 아이덴티티와 리처드 아베돈의 피사체가 되는 듯한 느낌을 동시에 경험할 수 있지 않을까? 런웨이 위의 모델들처럼 두툼하고 높은 플랫폼 부츠를 신고 검은 콘택트렌즈를 착용한 채 카메라를 응시하는 모습을 상상해본다.




이요셉


가장 눈에 띈 모델은?

RIANNE VAN ROMPAEY  주근깨 가득한 얼굴, 진저 컬러 헤어가 시그너처인 리아너 판 롬파이. 모델스닷컴의 TOP 50을 졸업하고 인더스트리 아이콘으로 등극한 톱 모델이다. 그의 런웨이와 화보는 볼 때마다 경외심이 들 정도다. 특히 2023 F/W 미우 미우 컬렉션에서 도트 패턴의 시스루 드레스에 안경을 쓰고 걸어나오는 모습이 아직도 뇌리에 박혀 있다. 앙큼하고 귀여운 미우 미우마저 저리 완벽히 소화하다니.


화보나 런웨이에서 꼭 입어보고 싶은 룩은?

COLLINA STRADA  뉴욕의 패션 브랜드로 로맨틱하면서도 펑키하다. 평소 유니크한 스타일을 즐기는 내가 옷을 입을 때 참고하기도 한다. 비비드한 컬러, 프린팅, 패치 워크, 레이스, 튈을 믹스 매치하는 신공은 질투가 날 정도! 이번 시즌에는 실제 동물을 형상화한 가면, 액세서리, 메이크업을 활용해 ‘Please Don’t Eat My Friends’ 라는 메시지까지 담은 똑똑하고 착한 브랜드다.




루루


가장 눈에 띈 모델은?

SIMONA KUST  패션모델로서는 조금 작은 키지만, 그 신체적인 한계를 뛰어넘는 매력이 있는 시모나 커스트. 특히 눈빛과 포징만으로도 엄청난 압도감을 선사한다. 그의 작업물에서 느껴지는 에너지를 보고 있노라면, 더 잘하고 싶다는 동력이 생긴다. SNS에 공유하는 라이프스타일을 찾아보는 즐거움 또한 쏠쏠하다.


화보나 런웨이에서 꼭 입어보고 싶은 룩은?

JIL SANDER  미니멀리즘의 대표 주자 질 샌더. 컬렉션을 볼 때마다 질 샌더만의 조형감과 컬러감이 굉장히 세련되다고 생각한다. 이번 시즌, 양모 펠트와 레더 등 빳빳한 소재를 사용해 만들어낸 실루엣은 마치 하나의 예술품 같아 탐이 났다. 앤디 워홀이 프린트한 것 같은 체리 프린팅 의상도 꼭 입어보고 싶은 룩 중 하나다.




VIDEOGRAPHER



하룩히


인상 깊었던 쇼 음악은?

VERSACE  Y2K의 부활과 함께 활발한 행보를 펼쳐나가고 있는 베르사체.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이번 컬렉션은 지지 하디드의 등장과 함께 강렬하고 웅장한 음악으로 시작했다. 바로 프리퀄Prequel의 ‘PART XV’. 프리퀄은 작곡가를 주축으로 한 프랑스의 음악 그룹으로, 고전음악의 우아함과 일렉트로닉의 사운드의 강렬함을 동시에 감상할 수 있는 것이 그들 음악의 특징이다. 이후 음악의 변화와 함께 일몰 아래 당당하게 런웨이를 걷는 모델들의 모습이 하나의 감동으로 다가왔다.


기억에 남는 무대장치 혹은 패션쇼 장소는?

MIU MIU  파리 팔레 디에나 궁전에서 관객들이 컬렉션 룩을 더욱 자세히 관찰할 수 있도록 지어진 런웨이와 그위를 줄지어 걷는 모델들의 모습에는 대중을 향한 미우 미우의 포부가 담겨 있는 듯했다. 무대 디자인은 아티스트의 신체를 중심으로 퍼포먼스를 펼치는 한국인 아티스트 정금형 작가와 협업해 진행했는데, 무대 위에 스크린 화면을 설치해 끊임없이 작업물을 재생한 점이 흥미로웠다. 사물과 신체의 관계를 탐구하며 ‘옷’이라는 것을 새롭고 낯설게 만드는 비디오는 여러 브랜드와 협업 작업을 하고 있는 나에게 귀감이 됐다. 미우 미우의 의도가 여실히 드러나는 직관적인 쇼였다.




최제익


인상 깊었던 쇼 음악은?

MIU MIU  이번 시즌을 통틀어 모든 분야에서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어놓은 브랜드가 아닐까. 카디건, 시스루, 언더웨어를 활용해 전체적으로 차분한 무드의 룩과 다르게 미우 미우의 배경음악은 광란 그 자체였다. 빠르게 쪼개지는 비트 위로 간간히 재즈의 선율이 흘렀는데, 그 이질감이 미우 미우의 룩에 오히려 더욱 집중되도록 기능했다.


기억에 남는 무대장치 혹은 패션쇼 장소는?

GUCCI  구찌의 2023 F/W 컬렉션은 엘리베이터에서부터 시작한다. 가슴을 겨우 가릴 정도의 마이크로 메탈 톱을 입은 모델이 엘리베이터에서 걸어 나오며, 겨자색 카펫 위를 성큼성큼 걷는다. 일상에서 흔히 이용하는 엘리베이터를 컬렉션장에서 보니 왜 이리 달라 보이던지. 런웨이를 모두 걸은 모델들은 다시 엘리베이터로 돌아가고, 그 엘리베이터에서는 이번 쇼를 위해 최선을 다한 12명의 크리에이티브 디자인팀이 나와 관중을 맞았다. 브랜드 최초로 크리에이티브 디렉션 없이 진행된 이번 컬렉션은 디렉터의 부재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이든신


인상 깊었던 쇼 음악은?

BURBERRY   버버리에 변화의 바람이 불었다. 바로 대니얼 리가 버버리의 신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데뷔한 것. 이 기념비적인 쇼를 위해 버버리는 영국 프로듀서 베리얼Burial과 손을 잡았다. ‘Truant’, ‘Young Death’, ‘Exokind’, ‘Shell of Light’, ‘Homeless’ 총 5개의 트랙으로 이어진 음악은 달라진 컬러 팔레트와 디자인만큼이나 음악에도 공을 들인 태가 여실히 느껴졌다. 5개 트랙의 흐름과 밸런스가 정말 훌륭한 것은 두말할 것 없다. ‘변화의 바람’이라는 티셔츠의 슬로건만큼이나 완전히 달라진 버버리의 모습을 확인해보시라.


기억에 남는 무대장치 혹은 패션쇼 장소는?

LOEWE  로에베의 쇼는 항상 기대를 불러일으킨다. 이번 시즌에는 새하얀 런웨이 위에 이탈리아의 아티스트 라라 파바레토Lara Favaretto가 색종이 가루를 몇 시간동안 압축해 만든 21개의 큐브 조각상을 설치했다. 이 작품은 접착제를 사용하지 않고 쌓아 컬렉션이 진행되는 동안 형태가 살짝 흔들리기도 했는데, 이는 조너선 앤더슨의 비영속성에 관한 아이디어를 반영한 것. 컬렉션이 끝난 후 이 조각상은 모두 수거해 라라 파바레토의 설치 작품에 재사용해 환경까지 생각했다.




EDITOR



패션 에디터 홍혜선


이번 시즌 가장 기억에 남는 브랜드는?

SAINT LAURENT  체크 패턴이든, 가죽 재킷이든, 점프슈트든 그 옷이 무엇이건 간에 이번 생 로랑 컬렉션은 우아함으로 귀결된다. 여기에 과장된 어깨와 드라마틱한 형태, 젓가락처럼 가는 실루엣 등이 뒤섞였지만 결국 우아하다는 결론이 난다. 바카렐로만이 구현할 수 있는 특유의 날카로운 면까지 더했다.

SIMONE ROCHA  언뜻 스쳐도 디자이너가 누군지 짐작이 가는 옷이 있다. 시몬 로샤가 그렇다. 하지만 매번 새롭다. 같은 취향과 스타일 안에서 다양성을 찾고 새로운 미래를 보여주는 건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2023 F/W 컬렉션은 아일랜드 전통 축제에서 얻은 영감을 그만의 언어로 써내려갔다. 그래서인지 어딘가 토속적인 분위기가 있지만 그마저 시몬 로샤답다.

PROENZA SCHOULER  프로엔자 슐러를 베스트 컬렉션으로 꼽은 이유는 단 하나, 클로에 세비니 때문이다. 그가 스타일 아이콘이 아니던 시절부터 열렬한 지지를 보낸 팬으로서 컬렉션을 본 순간 가슴이 뛰었다. 면면을 섬세하게 다룬 옷들은 전부 옷장에 넣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여성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고민했다고 한 디자이너의 한마디가 가슴에 꽂히는 순간이다.




패션 에디터 김송아


이번 시즌 가장 기억에 남는 브랜드는?

LOUIS VUITTON  믿고 보는 쇼가 있다. 내겐 루이 비통이 그렇다. 니콜라스 제스키에르는 프랑스를 상징하는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 오르세 미술관에 프랑스의 현대 예술가 필리프 파레노와 협업한 런웨이를 설치했다. 우아하고 고풍스러운 미술관 사이에 자리한 기하하적인 런웨이를 배경으로 쏟아진 뉴 프렌치 룩의 향연. 드레이핑, 플리츠, 조형적 실루엣이 바로 그것이다.

FERRAGAMO  페라가모는 이번 시즌 두 번째 고향인 할리우드로 회귀했다. 1950년대를 함께한 소피아 로렌, 메릴린 먼로 등 할리우드 패션 스타들의 옷장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맥시밀리언 데이비스의 시선으로 모던하고 미니멀하게 풀어낸 것. 화이트, 레드, 블랙 컬러 팔레트로 펼쳐지며 허리를 잘록하게 강조하는 서클 스커트와 드레이핑 저지 드레스를 보고 있자니 페라가모의 신부흥기가 얼마 남지 않음을 직감할 수 있었다.

MOLLY GODDARD  몰리 고다드는 학창 시절을 되돌아보며 회색 코트, 네이비 테일러드 재킷을 빈티지한 스웨터, 시폰 스커트와 함께 스포티하고 경쾌하게 스타일링했다. 메리 제인 슈즈를 신고 나오는 모델들의 룩 하나 하나가 얼마나 다 사랑스럽던지! 올가을에는 꼭 몰리 고다드의 카디건을 소장하리라.




어시스턴트 에디터 차세연


이번 시즌 가장 기억에 남는 브랜드는?

VALENTINO  남성 정장에서나 사용하는 넥타이를 이토록 로맨틱하게 표현할 수 있다니! ‘발렌티노 블랙 타이’ 컬렉션을 보았을 때 가장 먼저 든 생각이다. 격식을 갖춘 블랙 슈트에 프릴, 리본, 꽃, 페더 등의 디테일을 접목했는데, 이들은 룩에 여성성을 부여하고 젠더를 허물며 주어진 역할을 완벽히 소화해냈다. 단순히 모양에만 치중한 것이 아니라 입체감을 살려 하나하나 덧붙였기에 더욱 기억에 남는 컬렉션.

GUCCI  구찌의 2023 F/W 컬렉션은 과거에서 막 넘어온 듯한 복고적인 분위기가 강했다. 1990년대 스타일의 로라이즈 스커트부터 거대한 퍼 재킷, 루스한 핏의 데님 팬츠, 컬러 스타킹까지. 하우스가 줄곧 선보여온 화려한 패턴과 창의적인 벌, 꽃 등의 모티프는 배제하고 핏과 소재에 집중한 것이다. 여기에 강렬한 컬러 팔레트까지 적용했으니, 타고난 원색 마니아로서는 보는 내내 눈이 즐거울 수밖에 없었다.

DIESEL  최근 가장 핫한 브랜드 중 하나가 무엇이냐 묻는다면 바로 디젤이 아닐까. 수많은 MZ 팬들을 보유한 뉴진스나 르세라핌처럼 핫한 아이돌이라면 반드시 한 번쯤은 입었으니 말이다. 디젤은 이번 쇼에서 다시 한번 그 저력을 보란 듯이 증명했는데, 다 찢어진 청바지와 니트, 몸에 딱 달라붙는 트레이닝복, 펑키한 프린팅 점퍼 등으로 무대 위를 가득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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