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9월호

BE MY GUEST CHEF!

셰프 없는 레스토랑, 레스토랑 없는 셰프. 뚱딴지같은 소리가 아니다. 도시 곳곳을 유랑하며 자신의 요리를 선보이는 셰프 그리고 그들을 위해 주방을 기꺼이 내어주는 바와 레스토랑이 화제다. 정기적으로 게스트 셰프를 초대해 다채로운 경험을 선사하는 전 세계의 트렌디한 바와 레스토랑을 소개한다.

GUEST EDITOR 한동은

NEWYORK FULGURANCE, LAUNDROMAT


‘퓔귀랑스, 런드로마트’는 전 세계의 수셰프나 자신의 레스토랑이 없는 셰프들의 실험과 발전을 위한 ‘셰프 인큐베이터’다. 파리의 와인 바 ‘퓔귀랑스Fulgurance’는 젊은 셰프를 지원하기 위해 2015년 첫 번째 셰프 인 레지던스 바Chef in Residence Bar ‘퓔귀랑스 라드레스Fulgurances, l’Adresse’를 오픈했고, 2021년 뉴욕에서 동일한 콘셉트의 퓔귀랑스, 런드로마트의 문을 열었다. 뉴욕 브루클린의 힙한 동네 그린포인트Greenpoint의 한 빨래방에 자리 잡은 이곳은 간판이나 타일을 그대로 활용한 것은 물론, 상호에도 그 뜻을 담았다. 빈티지 가구와 자체 제작한 목재 가구가 어우러져 따뜻한 집 안에 들어온 듯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퓔귀랑스는 11년 전인 2012년부터 레지던스 셰프 운영 방식을 고안한 선구자다. 창립자는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전했다. “우리는 레지던스 셰프를 위한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레스토랑뿐 아니라 콘텐츠 제작, 이벤트, 컨설팅, 매거진 발행 등을 함께한다. 지난 수년간 퓔귀랑스에서 레지던트를 한 셰프끼리 레이블이 형성되기도 했다. 그들은 우리와 변함없는 우정을 나누고 있고 서로 도움을 주고받기도 하며 미식 신에서 함께 회자되고 있다.” 3~6개월의 레지던스 기간 동안 젊은 셰프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 아이디어를 실험하며, 팀을 관리하는 방법을 배운다. 올해 7월부터 10월까지 이곳에서 자신만의 음식 이야기를 써 내려가는 셰프는 미국 콜로라도 출신의 게일런 켄메르Galen Kenmmer다. 그는 콜로라도 덴버에서 요리를 시작해 벨기에를 거쳐 뉴욕 2스타 파인다이닝 블랑카Blanca에서 경력을 쌓았다. 켄메르는 제철 재료에 초점을 맞춘 요리를 선보일 예정이며, 소믈리에 피에르 뷔페Pierre Buffet가 큐레이션한 유기농 와인 페어링이 그 맛을 한층 더 돋울 것이다. 132 Franklin St, Brooklyn, NY 11222



LONDON CAROUSEL

2014년 런던 메릴본Marylebone에 문을 연 ‘캐러셀’은 수년간 약 30개국 출신, 300명 이상의 게스트 셰프를 초대했다. 신진 셰프보다는 전 세계의 쟁쟁한 스타 셰프들이 캐러셀을 거쳐갔다. 최근 서울 루이 비통 메종에서 팝업 레스토랑을 연 런던 미쉐린 레스토랑 ‘이코이iKOYi’의 제레미 찬Jeremy Chan 총괄 셰프도 그중 한명이다. 2021년 말 샬럿가Charlotte Street로 근거지를 옮긴 새로운 캐러셀에 큰 변화가 생겼다. 기존에 없던 상설 와인 바를 만든 것이다. 상주 셰프이자 캐러셀의 오픈 멤버 올리 템플턴Ollie Templeton의 다국적 요리를 맛볼 수 있는 와인 바와 1~2주 간격으로 새로운 셰프를 만날 수 있는 게스트 셰프 다이닝룸을 분리해 독립적으로 운영 중이다. 올여름엔 홍콩의 이름난 셰프들이 연이어 주방을 맡았다. 먼저 7월 17일부터 26일까지 홍콩에서 미쉐린 스타를 받은 세계 최초의 펀자브 레스토랑 ‘뉴 펀자브 클럽New Punjab Club’의 팔라시 미트라Palash Mitra 셰프가 캐러셀을 찾았다. 이어 홍콩을 대표하는 퓨전 광둥식 레스토랑 ‘호 리 푹Ho Lee Fook’의 헤드 셰프 아챈 챈ArChan Chan. 그는 랍스터 토스트, 숯불에 훈연한 버크셔 돼지 차슈 등 전통적 풍미에 현대적인 위트를 더한 요리로 사랑받고 있다. 아챈 챈 셰프는 7월 27일부터 8월 5일까지 상주했다. 19-23 Charlotte St, London




LONDON ORANJ

바 디자이너로 알려진 창립자 재스퍼 델라모쓰Jasper Delamothe는 코로나 19로 인한 봉쇄 기간 동안 영국 와인 배달 서비스 및 온라인 보틀 숍 ‘오랑지’를 창립했다. 와인 구독 서비스는 물론, 매달 아티스트가 큐레이션한 믹스 테이프나 디자인 스튜디오가 만든 포스터를 패키지 형식으로 받아 보는 멤버십 프로그램 ‘클럽 오랑지’ 폭발적인 반응을 불러왔다. 지난해 11월 오랑지는 런던 쇼어디치에 최초로 내추럴 와인 바를 오픈했다. 옛 창고 건물을 개조한 곳으로 인더스트리얼 디자인에 비추는 오렌지 조명이 인상적이다. 와인의 발효와 숙성에 사용하는 재료인 호두 목재와 알루미늄, 콘크리트를 바 디자인의 주요 요소로 삼았다. 오랑지는 게스트 셰프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스타 셰프부터 신진 셰프까지 경력과 무관하게 셰프를 초청하며 뉴욕, 뉴올리언스, 베트남, 아프리카 등 요리의 경계 역시 폭넓게 넘나든다. 올여름, 오랑지는 멕시코시티의 타케리아로 변모한다. 멕시코시티에 있는 ‘카리니토 타코스Cariñito Tacos’의 두 셰프가 멕시코산 옥수수와 밀가루로 만든 수제 토르티야와 함께 두 달간 바를 찾을 예정. 카리니토 타코스는 고전적인 멕시코 요리에 전 세계의 풍미를 불어넣은 창의적인 타코를 선보인다. 전통 멕시칸 타코는 물론 태국 북동부, 라오스 또는 광둥식 터치를 더한 타코까지 만날 수 있다. 14 Bacon St, London




PARIS 228 LITRES

부르고뉴 와인의 오크통 용량을 뜻하는 이름을 가진 와인 바 ‘228리터’는 저녁이면 와인 애호가들로 붐빈다. 창립자 피에르 르노Pierre Renauld가 세계적인 와인 판매 및 경매 사이트 ‘아이디얼와인iDealwine’에서 마케팅 프로젝트로 시작한 곳으로, 2018년 말 몽마르트르 인근에 문을 열었다. 전문적인 와인 지식과 전 지역의 와인 생산자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세워져 유기농 내추럴 와인부터 프랑스 전역에서 생산하는 클래식한 컨벤셔널 와인까지 500종 이상의 와인 리스트를 갖췄다. 공간은 캐주얼한 분위기의 1층과 지하로 이뤄져 있다. 지하는 아늑한 와인 동굴 같은 인테리어로, 매주 다양한 생산자를 만나는 와인 시음 이벤트를 연다. 피에르 르노는 “레스토랑이 없는 젊은 셰프들의 요리에 대한 열망을 지지하기 위해 게스트 셰프 시스템을 도입했다. 손님들이 방문할 때마다 새로운 요리를 접하고, 우리의 방대한 와인 리스트를 보고 페어링하기 좋은 와인을 골라 시음하는 기회를 선사할 수 있어 기쁘다”라고 말했다. 최근 6월과 7월 두 달간은 일본인 셰프 나오히사Naohisa가 주방을 맡았다. 파리의 레스토랑 아브리Abri에서 근무한 셰프로, 일본 길거리 음식에서 영감받은 프렌치 요리를 선보인다. 콩 버터로 만든 카치오 페페, 도미 세비체, 훈제 뱀장어 등이 그의 시그너처다. 3 Rue Victor Massé, 75009 Paris




BERLIN JAJA

깔끔하고 세련된 도시를 기대했다면, 베를린의 중심 구역인 미테Mitte 지역에 가는 것이 옳다. 그러나 무질서하고 날것 그 자체의 분위기에서 피어난 힙한 분위기를 경험하고 싶다면? 베를린 남쪽, 노이쾰른Neukölln이 제격이다. 2016년에 문을 연 뒤 7년째 자리를 지키고 있는 내추럴 와인 비스트로 ‘야야’는 그런 동네의 분위기를 닮았다. 이곳은 프랑스를 비롯해 유럽 전역의 작은 와이너리에서 생산한 200여 가지의 내추럴 와인 리스트를 자랑한다. “너와 나는 똑같이 먹고 마신다!”를 모토로 ‘팜투테이블Farm to Table’ 운동에 동참하며 자체 농장과 현지 농부들에게서 공급받은 제철 재료로 와인과 잘 어울리는 작은 안주 요리를 낸다. 야야는 1년에 3~4회 정도 게스트 셰프를 초대한다. 셰프의 경력이나 유명세보다는 자신의 개성을 자유롭게 표현하는 젊은 셰프들을 만날 수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일례로, 올 상반기에는 셰프 빌 앨리슨Bill Allison과의 협업해 자메이카의 음식 문화에서 기인한 다채로운 퀴진을 선보였다. 한편, 야야는 다른 도시로 게스트 셰프를 찾아 떠나기도 한다. 올해 초 이태원의 내추럴 와인 바 ‘와일드 덕 칸틴’과 제주의 프렌치 비스트로 ‘르 부이부이’에서 팝업 스토어를 진행했다. Weichselstraße 7, 12043 Berlin-Neukölln




NEWYORK OSTUDIO

브루클린에 위치한 ‘오스튜디오’의 시작은 크리에이티브 스튜디오였다. 2019년, 세라믹 브랜드 페포스튜디오Fefostudio를 운영하는 도예가이자 과거 레스토랑을 운영했던 셰프인 페르난도 아시아르Fernando Aciar가 디자이너, 건축가, 포토그래퍼, 일러스트레이터 등 다양한 분야의 창작자들과 함께 작업하는 공간을 창립했다. 약 1년의 세월이 흐른 2022년 5월, 페르난도는 이곳 바로 앞에 동명의 레스토랑이자 와인 바의 문을 열었다. 이름하여 ‘오스튜디오 앳 나이트Ostudio at Night’ 프로젝트. 페르난도는 “음식과 공예의 경계를 허물 수 있어 기쁘고 둘의 상관관계를 면밀하게 관찰할 수 있어 즐겁다”라고 말한다. 레스토랑과 와인 바는 오스튜디오의 창의적이고 협업적인 정체성을 반영해 셰프, 소믈리에를 정기적으로 초대한다. 월요일이나 화요일 저녁에는 ‘셰프 레지던시 먼데이즈Chef Residency Mondays’와 ‘게스트 셰프 튜스데이즈Guest Chef Tuesdays’가 열린다. 매주 수요일 저녁에 만날 수 있는 ‘와인 테이크오버 웬즈데이즈Wine Takeover Wednesdays’는 와인 생산자나 디렉터, 소믈리에가 게스트로 참석해 좋아하는 와인을 공유하는 시간이다. 이벤트가 없는 날에는 와인 디렉터이자 교육자인 제임스 슬리그James Slig가 추천하는 다양한 내추럴 와인을 맛볼 수 있고, 모든 음식은 페르난도의 도자 작품과 함께 즐길 수 있다. 오스튜디오는 8월 한 달간 여름방학에 들어간다. 9월부터 펼쳐질 흥미로운 셰프, 소믈리에와의 협업은 홈페이지나 인스타그램을 확인하자. 366 Stockton St, Brooklyn, NY 11206




INTERVIEW WITH CHEF 빌 앨리슨BILL ALLISON

소개를 부탁한다.

나는 자메이카에서 태어나 캐나다에서 자랐다. 주로 자메이카의 전통 음식을 요리하지만 가끔 그 반대의 요리를 도전하는 것도 즐긴다. 지금까지 나는 아시아 음식과 조리법에 초점을 맞춘 훌륭한 식당을 많이 경험해왔다. 이 경험을 통해 배운 점들을 자메이카 음식과 결합해보고, 나만의 브랜드를 가꾸는 데 활용하고 있다.


지금과 같은 여정을 이어온 동기가 궁금하다.

게스트 셰프 여행은 큰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이 과정에서 많은 사람을 만났고, 친구나 멘토로서 우정을 이어가고 있다. 꿈꾸던 낯선 도시에 갈 수 있다는 것도 분명 큰 장점이지만, 무엇보다 가장 흥미로운 점은 자메이카 음식이 생소한 유럽 사람들에게 내 요리를 소개하고 자메이카 요리의 가능성을 보여줄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방콕 ‘슈냉’에 초대받아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요리하는 경험은 정말 영광이었다.


게스트 셰프로 초대받고 싶은 도시나 바가 있나?

여행과 팝업 이벤트를 즐기는 편이지만 지난 2년간 너무 달린 것 같다. 현재는 정착하고 싶은 단계에 있다. 그러나 서울이나 도쿄에서 초대해준다면 당장 달려갈 준비가 돼있다. 특히 서울의 ‘와일드 덕 칸틴’과 ‘힐스 앤 유로파’의 열렬한 팬이다.


앞으로의 계획은?

최근 ‘파투아Patois’라는 나만의 브랜드를 만들었다. 파투아는 음식과 음악, 음료에 초점을 맞춘 브랜드로, 현재는 고정된 공간 없이 팝업 스토어로 운영 중이다. 나의 뿌리인 자메이카 음식을 모티프로 하지만 전통적인 것보다는 나의 여행과 경험을 반영한 참신한 요리를 선보인다. 언젠가 스톡홀름에서 낮에는 와인 바, 밤에는 리스닝 바를 운영하는 날을 꿈꾼다.


지금까지 게스트 셰프로 초대받은 바 & 레스토랑  캐러셀, 180 코너Corner(런던), 슈냉Chenin(방콕), 레블 와인 바Rebel Wine Bar(브뤼셀), 탄리 미사피리 Tanri Misafiri(이스탄불), 야야(베를린), 카페 마스터 Café Mater, 얼리 준Early June (파리) 등 총 11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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