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9월호

환상과 잔상, 아피찻퐁 위라세타쿤

9월 3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MMCA 영상관에서 <아피찻퐁 위라세타쿤: 2023 서울국제실험영화페스티벌 인디비주얼>을 통해 총 29편의 중·단편 작업을 소개하는 위라세타쿤. 영화계와 미술계를 오가며 확고한 입지를 다진 그의 예술관에 대해 살펴본다.

EDITOR 정송 PHOTOGRAPHER 이기태

아피찻퐁 위라세타쿤

1970년 태국 방콕에서 태어났다. 태국에서 건축을 공부했지만 미국으로 건너가 시카고 예술대학교에서 영화를 공부한 뒤 본격적으로 영화의 길에 들어섰다. 1999년 방콕에서 ‘킥더머신Kick the Machine’이라는 스튜디오를 세웠고, 그 후 치앙마이로 활동 기반을 옮겨 작업을 지속하는 중이다. 2004년 칸영화제에서 <열대병>으로 심사위원상을, 2010년 칸영화제에서 다시 한번 <엉클 분미>로 황금종려상을 품에 안으며 국제적으로 이름을 알렸다.



태국을 기반으로 영상 및 설치 작업에 천착해온 아피찻퐁 위라세타쿤. 그는 먼저 영화감독으로 이름을 알렸지만 상업적이기보다는 실험적이며, 이해하기 어렵고 모호한 예술적인 접근으로 더 알려진 작가다. 좀 더 자세히 소개해보자면, 그는 주로 기억, 시간, 자연, 영적 세계, 그리고 신비하고 미스터리한 것과 현실의 교차점을 탐구한다. 이는 모두 주관적이고 눈에 보이지도, 손에 잡히지도 않는 추상적인 개념이다. 그 때문에 그의 작품은 쉽게 이해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음이 당연하다. 위라세타쿤은 영화를 통해 현실과 꿈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드는 것에 집중한다. 이를 가장 효과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여러 가지 영화적 장치를 사용하는데, 영상 전반에 뚜렷한 내러티브를 부여하지 않는다는 것이 가장 두드러진다. 다시 말해 애매한 서술 방식을 차용한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이야기가 전개되는 일이 극히 드물다. 장면 장면으로 존재하거나 사건에서 사건으로, 공간에서 공간으로 이동하며 이야기가 펼쳐지고 종국에는 많은 의문점을 남기며 끝난다. 아피찻퐁 위라세타쿤이 세계적인 영화감독으로 발돋움한 데에는 2010년에 발표한 <엉클 분미Uncle Boonmee Who Can Recall His Past Lives>가 큰 역할을 했다. 같은 해 그는 칸영화제에서 태국 영화 역사상 처음으로 황금종려상을 받는 쾌거를 거뒀다. 영화는 “정글과 언덕 그리고 계곡 앞에 서면 짐승이나, 다른 존재였던 내 전생이 떠오른다”라는 글귀와 함께 시작한다. 배경은 태국의 어느 정글로, 시간의 흐름과 상관없이 등장하는 소, 개, 벌레, 공주, 일꾼 등 카메라가 비추는 모든 존재가 관객의 시선을 붙잡는다. 이를 통해 작가는 이 세상 모든 생명체가 인간 혹은 인간 외 모든 생명체였을 수도 있음을 시사한다. 이 작업을 기점으로 사람들은 위라세타쿤만이 하고 싶은, 또 할 수 있는 이야기에 대해 인정하기 시작했다. 존재의 본질에 관한 이야기 말이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 소개하는 29편의 중·단편영화는 어떤 작업인지 궁금하다.

이번에 선보이는 프로그램들은 서울국제실험영화페스티벌 20주년을 기념해 마련했다. 언급한 것처럼 총 29편의 중·단편 영화를 선정했는데 <엉클 분미에게 보내는 편지>, <제3세계>처럼 장편영화를 제작하는 과정에서 파생한 작품도 있고, 친구 및 동료와 함께 작업한 작품도 있다. 미술관과 기업, 태국 문화부, 영화제에서 의뢰받은 트레일러도 있고. 모두 총 4개의 섹션으로 나눠서 상영을 진행하고 있다. 아마 영화의 전개가 전통적인 영화와 많이 달라 관객들이 적잖이 당황할 것 같다. 하지만 이번 작품을 통해 실험적인 작업을 하면서 내가 힘을 얻은 시공간에 대해 소개하는 시간을 갖는다고 생각하면 좋을 것 같다.


실험 영화 분야에 있어서 독보적인 존재다. 다루는 주제와 방법 역시 당신만 가능한 것이다.

누군가 내 작품을 20~30번 봤다고 얘기한 적이 있는데 솔직히 믿지 않았다.(웃음) 종종 아주 느린 템포로 흘러가기 때문에 졸고 있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나는 누구를 만족시키기 위해 작업해본 적이 없다. 오만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영화에서만큼은 다른 영화감독이나 다른 작품과 비교해서 내 작품을 조율할 필요가 전혀 없다고 믿는다. 촬영할 때 내가 느낀 속도와 흐름이 그 작품에 맞는 것이라고 판단해서 영화 작업을 진행한다. 주제도 마찬가지다. 많은 작가와 감독이 비슷하겠지만 결국 주제는 내 정체성을 비롯해 주변 환경, 관심사 등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내가 태어나고 자란 태국의 전통, 현대성, 정치적 상황이 은근히 반영될 수밖에 없고, 밤에 꾸는 꿈과 처한 현실, 감각이 버무려진다. 자연과 인간의 관계도 중요하다. 관심을 쏟고 편안하게 생각하는 주제들이 모두 영화에 담긴다.


작가님 작품에서 ‘공간’의 의미가 무척 중요한 것 같다. 특히 정글이 말이다. 이곳을 선호하는 이유가 있나?

태국의 작은 마을에서 자랐다. 도시보다는 자연과 더 가까웠다. 물론 정글까지는 아니었지만. 그런데 작업하면서 정글을 찾아다녀보니, 자연스럽게 긴장을 풀게 되고 경계심이 무너지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곳에서는 마치 아이가 된 것 같았다. 규칙이나 규율, 조건이 없다. 원초적인 공간이지 않나. 그렇다 보니 종교, 신념, 성적 취향, 삶과 죽음에 대한 생각 등에도 얽매이지 않게 된다. 빛도 있는 그대로 노출되고. 영상 색감에서도 좀 자유롭다는 생각이 든다. 조명을 사용하지 않고 자연 빛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정글은 어떠한 것에도 엮이지 않는 곳이라는 믿음이 생기는 장소다. 그래서 자꾸 되돌아갔던 것 같다.


하지만 과감히 정글을 떠나기도 했다. <메모리아>가 바로 그 첫 번째 영화였다.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장소에 변화를 줬는데, 작업 과정에 더 큰 변화가 일어서 기억에 남는다. 익숙한 공간인 태국과 정글을 벗어나다 보니 감각에 의존해서 만드는 영화가 아니었던 거다. 나도 스펀지가 되어 타인의 감정과 기억을 흡수하고, 동시에 그 상태를 배우 및 스태프들과 동기화하는 작업이 필요했다. 막상 작업하고 나니 ‘왜 빨리 시도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만족스러웠다.




요즘엔 스마트폰으로 누구나 영상을 촬영할 수 있지 않나. 마음만 먹으면 짧은 실험 영화 한 편은 뚝딱 만들 수 있다. 이런 시대에 영화는 무엇이라 생각하나?

나 또한 궁금하다. 우리는 과연 어디로 향하고 있는 걸까? 우리 세대 때에도 영화에 대한 정의가 확립되지 않았었다. 요즘은 모두가 창작자가 될 수 있다. 지금 영상은 보편적으로 새로운 언어가 되었다. 시네마, 영화라는 건 그저 단어일 뿐이다. 나는 모두 프레임이라는 어둠 안에서 집합적인 꿈을 꾸는 행위라고 얘기하고 싶다. 영화란 무엇인지 예전보다 더 정의 내리기 힘든 시대가 됐다.


예술 장르의 경계가 불분명한 시대다. 당신도 영화와 비디오 아트, 설치미술을 넘나들며 넓은 스펙트럼을 자랑한다. 작업의 접근 방식이나 내용에 차이가 있는가?

우리가 미술관과 박물관에 가는 이유가 예전과 많이 달라졌다. 벽과 바닥에 디스플레이된 작품을 바라보는 수동적인 전시 관람이 아닌 적극적으로 작품과 교감하고 깊은 관계를 맺는 경험을 기대한다. 예술은 작가와 관람객 모두에게 굉장히 즉각적인 반응을 촉발하는 것 같다. 특히 전시의 형태로 보였을 때 작품이 놓인 환경과 상호작용하면서 개인적인 감정까지 건들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작가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더 자유롭게 제 목소리를 투영할 수 있다. 그래서 현대미술의 영역에서 활동할 때는 개인적인 이야기와 민감한 메시지도 많이 전하게 되는 것 같다. 영화는 수많은 삶과 얽히니까 그게 좀 어렵다.


한국에서 처음 당신의 설치 작품을 봤던 건 2018년 광주비엔날레에서였다. (구)국군광주병원에 설치한 ‘별자리’였는데 앞서 얘기한 크리티컬한 메시지에 대한 예술적인 접근이 잘 드러난 작품이었다. 그리고 영화가 아닌 공간 설치 작품이어서 더욱 기억에 남는다.

한국의 광주비엔날레는 씻을 수 없는 상처로부터 출발한 행사다. 특히 내가 작품을 선보인 공간인 (구)국군광주병원은 1980년 5·18 민주화운동 당시 광주시민들이 끌려와 치료와 함께 취조를 받던 곳이다. 폐허가 된 채 상처를 간직한 그곳에서 나는 그 기억 자체를 보존하려 했다. ‘빛과 그림자’, ‘그림자의 그림자’를 모티프로 삼았다. 병원 내부에 있던 휴식 공간인 당구대를 ‘고스트 볼’이라 명명하고 총 4개를 설치했다. 말 그대로 불도 제대로 들어오지 않는 흉가에서 불빛의 흔들림에 따라 선명해지다가 또 희미해지는 고스트 볼을 보며 온전히 알지 못하는 기억과 완전히 지워지지 않은 상흔이 얼마나 고통스러울 수 있는지 얘기해보고 싶었다. 당시 많은 이가 공감했다고 해서 작가로서 감사했다.




영화감독으로서, 또 작가로서 젊은 감독 및 작가 지망생에 미치는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다. 마지막으로 그들에게 남기고 싶은 말이 있다면?

먼저 가장 중요한 건 스스로 꼭 이런 질문을 던져야 한다는 거다. ‘당신은 누구인가?’, ‘당신의 시간은 어떻게 흘러가나?’, 또 ‘당신의 관점은 무엇인가?’ 이에 대한 답변은 앞으로 영화감독으로서 그들이 만들 작품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 하나 강조하고 싶은 점은 실험 정신의 중요성이다. 나는 시카고 예술대학교에서 처음 실험 영화에 관해 배웠다. 대부분의 훌륭한 감독들은 젊은 시절 실험 영화에 대한 경험이 있다. 자신의 실험 정신을 거침없이 실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후배 영화인들에게 이러한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오늘날 ‘서울국제실험영화페스티벌’도 열리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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